존엄의 조건
오매 |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
2020년 5월 7일, 이용수 할머니께서 대구의 한 찻집에서 기자회견을 여셨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 운동의 중심에 있던 분께서, 마찬가지로 중심에 서 있던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 그리고 오랜 정의연 활동가이자 이제 막 21대 국회의원이 된 윤미향 운동가를 향해 비판, 토로, 제언 등을 터뜨리는 내용이었다. 그 날 이후 약 두 달간 모든 채널의 뉴스에서 여성인권운동단체와 운동가들에 대해 도배하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나쁜 환경에서 필요한 논의를 부여잡기
'필요한 논의가 나쁜 환경에서 불가능한 시간' 지난 5월에 느낀 고통을 표현하자면 그렇다. 비밀이 보장되어야 할 쉼터 앞에서 사진 기자들이 구름 떼로 플래시를 터뜨렸다. 맞은편 건물 옥상에 올라가 쉼터 안마당을 클로즈업으로 찍은 사진이 각종 기사를 장식했다. 불필요하고 공격적인 개인의 사생활 까발리기, 망신주기, 비난 선동하기 등을 목적으로 작성한 듯한 언론 보도들 사이에서 충격, 염려, 괴로움이 흘러갔다. 무엇도 말할 수 없었다. 우리가 무슨 논의를 건져 올리고 펼칠 수 있을까? 논의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상담소 후원회원들은 사무실로 전화를 하거나 이메일을 보냈다. 피해자들은 여러 복잡한 마음을 SNS 등에 적었다. 임원들과 활동가들은 곳곳에서 토론을 벌였다. 정의연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라는 여성인권운동단체를 거점으로 반성폭력 운동을 하고 있는 상근자, 임원, 회원, 내담자, 지지자 시민들 - 우리들의 문제이기도 했다. 지원 단체와 피해자의 논쟁과 갈등, 활동가 개인과 단체의 관계적 체계, 세기에 걸친 전시 성폭력 대응 운동의 방향과 목표, 그 과정에서의 관점과 쟁점, 단체 재정운영 투명성 책무 등. 우리에게 나눌 이야기는 사실 많았다.
6월 7일,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거주 쉼터에까지 검찰의 압수수색이 온 후, 15년 넘게 쉼터에서 할머니 선생님들을 돌보고 지원하였던 평화의우리집 손영미 소장이 죽음을 선택하는 일이 발생했다. 상담소 상근활동가들은 말하기 어려운 깊은 침묵감 속에서 피해자와 지원자, 지원자와 지원자, 피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형성되어 우리를 더 핵심적인 움직임으로 이끄는 '라포'와 '회복탄력성'에 대해서 입장문을 써, 고인에게 인사를 드리며 당시의 정국에 이야기 나눠야 할 바를 겨우 하나 띄웠다.
다양한 주체들의 협업 _ 존엄해지기의 전략이 서로 부딪칠 때, 조건의 변화를 살피기
상담소는 피해를 경험한 사람, 그의 말을 듣고 사회적으로 울려 퍼지게 하고 여러 사회적 장벽을 부수고 새로운 기반을 만드는 일을 함께하는 지원자, 활동의 거점과 살림살이를 지속가능하게 하고 지지하고 응원하며 사회적 힘을 만드는 회원들이 함께 일한다. 운동가와 전문가라는 지칭은 필요와 맥락에 따라 우리 스스로 가져오기도 하고 외부에서 붙어지기도 한다. 여러 사람들의 위치성과 각각의 역할, 이것이 가져오는 협업의 방식은 긴장과 시너지를 둘 다 품고 있다. 차이를 지우거나 모른 척하지 않으면서 서로 경합, 토론, 협력할 때 우리는 변화를 만든다. 이러한 관계성은 상담소와 쉼터를 거점으로 삼은 여성인권운동의 움직임에 배어 있다. 2004년 발간한 '성폭력 사건지원 나침반을 찾아라'에서는 이를 '삼각관계'로 말했고(권김현영), 2019년 열림터 25주년 기념행사에서는 생존자, 지원활동가, 회원 세 관계를 캐릭터로 표현하고 3인 3색 토크를 열기도 했다.
젠더화된 권력 관계에 의해 '여성화'되면서 상실과 훼손을 겪게 되는 존재들과 소수자들의 존엄함을 회복하는 것은 우리가 걷는 여정이다. 그러나 각기 다른 위치성은 그 전략과 방법과 속도, 사용하는 언어, 우선순위, 에너지 배분 등에서 서로 다른 판단을 형성한다. 어떤 이에게는 끝까지 타협이나 용서 없는 강력한 처벌이 목표고, 어떤 이에게는 협상, 대화, 용서, 합의를 통해 통제감을 신속하게 회복하는 것이 목표다. 이는 한번 결정되면 변경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여러 환경과 상황, 조건이 달라지면 판단을 변경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단체와 활동가들은 지속가능성과 전문성, 소진 예방과 환류되는 체계가 중요하다. 수많은 개별적 데이터를 통계 자료로 도출하여 보편성을 만들고 이를 가지고 사회적 요구를 강력하게 형성하는 작업을 한다. 일정 정도의 예측 가능성, 목표치와 달성도, 일과 쉼의 균형을 규범으로 만들어 지속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한다. 마지막으로 후원회원들은 참여하는 마음을 최대치로 실천하여 특정 단체에 돈을 보내고 마음을 보낸다. 정보로부터 멀리 있어서 예리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맡겨두고 지켜보면서 느슨한 신뢰망을 형성하기도 한다.
서로의 차이가 세게 부딪치는 순간은 여성인권운동에, 각 위치의 사람들에게, 단체에게 여러 형태의 충격을 가져온다. 누구의 판단이 더 나은지, 어떤 정보가 더 믿을 만한지, 어떤 선택이 누구의 지향과 목표에 근접한 것인지 매번 새로운 질문 앞에 놓이는 듯하다. 그러나 '존엄함'의 회복은 변경되는 조건, 변화하는 주체와 환경 속에서 달라지는 숙제다. '존엄함'의 조건이 변화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피해경험자-생존자, 지원자-활동가, 단체, 회원, 시민들은 존엄함을 회복하는 이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여정에서 현재 어떤 조건 속에 놓여 있다고 감각하는가? 피해생존자가 말하고 있는 존엄함의 조건이란 무엇인가? 단체와 활동가들의 감각은 무엇인가? 그것을 더 꺼내고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 필요하다. 현재의 언론 환경, 2020년 5월이라는 시간성, 대구와 서울이라는 지역적 위치성은 존엄함의 조건과 지형에서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2020년 5월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는 존엄함을 회복하는 협업적 여성인권운동을 어떻게 지속해갈 것인가. 이제 겨우 질문을 꺼내어 놓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