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
  • 열림터
  • 울림
  • 울림
  • 열림터
  • ENGLISH
위기의 코로나19 시대, 활동가들은 어떻게 ‘활동’해?
  • 백목련_사무국 활동가
시끌시끌 상담소 ①

위기의 코로나19 시대,
활동가들은 어떻게 '활동'해?

2020년을 집어삼킨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활동가 중 한 명이라도 감염되면 열림터가 봉쇄 위기에 처한다? 상담소와 열림터를 지키기 위해 방역에 나선 백목련 활동가의 대활약!

백목련 | 사무국 활동가

처음 코로나19 발발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나는 우리가 이렇게까지 오래, 끝을 가늠할 수 없이 감염병과 함께해야 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사스도 신종플루도 메르스도 치명적인 바이러스였지만 내 주변까지 다가오지는 않았고 또 일정 기간 후에는 종식되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무도 겪어보지 못한 사태여서 처음의 대응은 미숙했다.

발발 초기에 지자체에서 방역물품 현황 조사 요청 공문이 왔을 때 우리 상담소는 수량 조사대상 목록 중 체온계와 마스크도 상비하고 있지 않았다. 이전까지는 그럴 필요도 없었거니와 사실 상비 약품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다.

뉴스에서는 연일 코로나19에 대해 보도했지만, 감염자 수도 그렇게 크게 늘지 않았고 이렇게 또 새로운 전염병이 끝나가나 싶던 때였다. 방역 지침을 준수하지 않은 집단 활동으로 인해 지역 내 감염으로 상황은 심각하게 변했다. 확진자 동선에 상담소가 있는 합정도 포함되면서 위기감이 높아졌다. 활동가가 감염이 아니라 확진자와 접촉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피해자보호시설인 열림터와 사무실을 같이 쓰기 때문에 자칫 열림터 운영에도 영향이 갈 수 있었다. 혹시라도 언론의 표적이 되면 시설 폐쇄나 위치 노출도 걱정해야 했다. 가해자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이미 본인의 생활 공간을 떠나 시설 생활을 하는 생활인들이 또다시 원치 않는 이주나 위험을 겪게 하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면역력이 약한 활동가들도 있어서 누구도 감염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그 당시에는 방역물품 대란으로 아무리 돈을 줘도 마스크나 체온계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기관 차원에서도 구입할 수 없다면 활동가들 개인은 더더욱 마스크 수급에 어려울 수 있는 데다 출퇴근 이동 시간이 긴 활동가들이 마스크도 없이 다녀야 한다면 활동가들의 건강과 안전은 어떻게 담보할 수 있을지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최소 인원만 당번제 출근하고 나머지는 재택근무를 하다가, 업무가 어려워 증상이 있는 사람만 재택근무하기로 근무 형태를 여러 번 전환했을 때 위기감은 더 높아졌다. 인터넷으로 가망이 없다고 생각해서 사무국 동료인 닻별과 망원, 합정 일대의 약국을 일일이 돌며 체온계와 마스크를 구입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다행히 열림터는 사태 초기에 구매 취소를 겪어가며 방역물품을 준비해둔 상황이었다. 확산세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사회적 거리 두기의 필요성이 더욱 강조되면서 1주일에 2장밖에 안 되지만 공적 마스크 구입비라도 지원하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 위기감을 느낀다 생각해서 발을 동동 구를 때 다른 활동가들도 방역 담당자만 느껴야 하는 책임감은 아니라며 같이 마스크를 확보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집에 여유 수량이 있으면 구입한 공적 마스크를 상담소에 기부하기도 했다. 체온계는 열림터에서 생활인과 약국 동행하는 길에 우연히 체온계가 입고된 걸 알아서 대신 구해다 주었다. 8:30과 10:00로 출근 시간을 달리해서 사무실 밀집도를 낮추고 오전, 오후로 나누어 사무실에 손닿는 지점들을 소독하는 당번제도 도입했다.

우리의 결정이 과잉인가 예방인가는 의문이 들 때마다 서로 토론과 논쟁을 해가며 공통의 합의를 마련했다. 원고 분량 때문에 많이 요약해서 중간 과정이 생략되어서 그렇지 누구도 확신이 어려운 상황에서 서로 활동 반경을 좁히고 번거로운 일상 업무가 점차 늘어나는 상황은 견디기 쉽지 않았다. 외부 일정들이 대부분 취소되고 우리도 계획했던 행사를 연기하면서 사무실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 앞으로 어떻게 활동할 것인가도 큰 고민이었다. 그래도 이 기간에 날선 대화였든 그간 나누지 못한 생각을 교류하는 상황이었든 그 전에는 각자 팀 업무를 수행하느라 접점이 적었던 우리가 하나의 문제 상황과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계속 의논하면서 결집력이 높아진 것 같다.

상황이 장기 지속되면서 높아진 피로감을 해소할 뭔가가 필요했다. 그때 나는 이번에야말로 상담소 생일은 우리를 위해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매년 4월 13일 생일기념으로 떡을 준비해 여러 단체와 기관, 거래처에 방문하는 연대 행사를 진행했다. 시국이 이러니 안전을 위해 외부로 나가기보다는, 바쁘게 이슈 대응을 하고 피해생존자를 지원하며 오히려 스스로 돌보기를 소홀히 하는 동료들과 호흡을 고르고, 이 좋은 봄날을 위기감으로만 채우지 말고 같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기억을 하나라도 남기고 싶었다.

문득 3년 전 각자 김밥 재료를 하나씩 준비해 와서 김밥 장인인 울림의 파이 활동가가 싸준 김밥을 먹었던 기억이 났다. 사실 이제야 말하자면 내가 그때 김밥에 꽂혀 있었다. 파이와 활동가들이 재료를 준비해 오긴 어려울 것 같고 우리가 직접 다 준비해야 할 것 같다고 정리했다. 수고롭고 번거롭다며 우리의 상담소 생일맞이 셀프 축하 소풍 계획을 만류하는 동료들에게는 이제 우리도 우리를 돌볼 때가 되었다며 설득했다. 김밥은 손이 많이 가는 일이기에 울림의 주리 활동가가 지원군으로 붙기로 했다.

상담소 생일 맞이 소풍을 위해 김밥을 만들고 있는 백목련, 파이, 주리
상담소 생일 맞이 소풍을 위해 열심히 김밥을 만들고 있는 백목련, 파이, 주리

이미 많은 상담소 업무로 TF 활동에 익숙한 우리는 김밥 종류를 선정하고 필요한 재료 목록을 만든 뒤 재료 준비부터 바쁘게 특수 임무에 돌입했다. 당일 아침에는 상담소 부엌에 약간의 전운도 돌았던 것 같다. 비장한 우리 셋은 파이의 지도에 따라 당일 김밥 만들기 세부 일정과 이동 동선을 확인한 뒤 분장한 자기 역할에 충실했다. 파이와 내가 예상하지 못한 변수는 그날 그림자 노동을 도맡아 했던 주리가 나서서 해결했다. 김밥을 다 싸서 각자의 도시락통에 넣어주고 두부미소된장국을 끓이고 미리 주문한 샌드위치와 과일 도시락을 수령했다. 소풍에 각자 마실 음료는 성문화운동팀의 신아 활동가가 자원해서 주문을 받고 사러 갔다 왔다.

한강 변에서 소박한 생일파티를 즐기는 활동가들
오랜만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한강 변에서 소박한 생일파티를 즐기는 활동가들

점심시간에 일사불란하게 각자 도시락통과 음료를 챙겨주고 샌드위치와 과일 도시락, 돗자리를 배분한 뒤 서로의 안전거리가 확보되는 한강공원으로 떠났다. 유치원생들 마냥 2줄로 열을 맞춰 이동하며 오랜만에 다들 긴장이 아닌 들뜨고 설레는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았다. 코로나19는 우리가 평소 활동하던 방식에 제약을 걸고 주춤거리게 했지만 내 곁의 동료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현장에서 겪는 고단함을 해소할 수 있었던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끼게 했다.

여전히 우리는 매일 소독을 하고 서로 마스크를 잘 착용했는지 확인한다.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의 지침이 바뀌거나 집단감염이나 지역 내 확산세가 가속화되는 것 같으면 다시 우리의 방역 지침을 변경할 필요가 있는지 날선 토론을 한다. 이 피로감을 견디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서로의 든든한 동료라는 걸 매일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코로나19가 계속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