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보다 큰 예외는 안 된다"
제대로 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하여
신아 | 성문화운동팀 활동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더는 미룰 수 없는 때
최근 "인간과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AI" 컨셉으로 출시된 '이루다'라는 챗봇이 성희롱을 비롯하여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흑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드러내어 거세게 비판받고 결국 2주 만에 운영 중단되었다. 제작회사 '스캐터랩'은 '연애의 과학'이라는 어플 이용자들의 카카오톡 메시지 약 100억 건을 토대로 AI를 개발했다고 한다. 챗봇 '이루다'가 사람들 사이에서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대화를 학습했던 것임을 고려했을 때, 한국사회에서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얼마나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드러낸 사건이었다.
차별이 무엇이고 왜 문제인지에 대한 상식을 두텁게 만들고 평등한 관계와 사회를 고민하게 하는 법이 바로 '차별금지법'이다. 현재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안)'은 차별을 "합리적인 이유없이 성별, 장애, 병력(病歷), 나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 유전정보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學歷), 고용형태, 사회적신분 등을 이유로 다음 각 호의 영역에서 개인이나 집단을 분리·구별·제한·배제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차별금지법/평등법이 제정되면 이러한 차별행위가 고용, 교육, 행정, 재화용역과 같은 공적 영역에서 이루어지게 된다면 해당 법률을 통해 사안에 개입하여 피해를 구제하고 차별을 시정할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도 차별을 예방하고 평등을 증진시키는 일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규정한다는 것이 중요한 내용이다. 소수자 개개인이 각자의 삶에서 고군분투하며 싸워왔던 차별과 혐오를, 제도 안에서 방관하지 않게 된다. 차별금지법/평등법은 공적 영역에 국한되어 있지만 법이 가닿지 못하는 사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혐오와 차별을 해소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기대된다.
어떤 사람들이 '차별금지법'을 반길까? 학교 내 여성 혐오에 지친 여성 청소년, 동일가치의 동일노동을 하고 있음에도 임금을 비롯한 대우에서 차별을 겪는 비정규직 노동자, 부당한 해고나 진료거부 등을 당해왔던 HIV/AIDS 감염인, 휠체어를 탔다는 이유로 식당에서 출입 거부를 겪었던 장애인... 소수자들 삶의 면면이 달라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차별금지법'은 인권기본법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2020년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진전이 있던 해였다. 6월 29일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차별금지법'을 대표발의 하였고 그 다음 날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위의 '평등법' 시안을 발표하며 국회에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강력하게 권고했다.
차별금지법 발의가 처음은 아니다. 2007년 이후 국회 안에서 차별금지법은 발의와 폐기와 철회를 거듭해왔다. 한 보도에 따르면 '풀뿌리 차별금지법'이라고 불리는 지역의 인권조례 역시 2012년 이후 지방자치단체 49곳에서 입법예고 후 철회되었으며 해가 바뀔수록 철회 사례가 늘었다.1
제도권이 차별과 혐오를 방관하는 사이, '더 이상은 안 된다'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도 높아져왔다. 여성 혐오, 성소수자 혐오, 장애 혐오, 이주민 혐오, 빈곤 혐오 등 현상을 명명하였다. 강남역 이후 거대한 추모와 분노의 물결이 일었고 퀴어문화축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규모를 확장하는 등, 돌이켜보면 소수자들의 광장도 점차 가시화되고 넓어져 왔다.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88.5%가 평등권 보장 위한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 87.7%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원칙보다 큰 예외는 안 된다", 제대로 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하여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무시할 수 없었는지 더불어민주당의 이상민 의원이 2020년 7월 차별금지법을 발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5개월 후인 2020년 12월 이상민 의원이 '종교기관예외조항'을 넣은 차별금지법을 발의 준비 중이라는 사실이 한 언론에 의해 보도2되었다. 차별의 예외 조항은 현재 장혜영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이나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평등법 시안에도 있지만, 직업상 특정 직무 수행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 누적된 차별을 시정을 위한 적극적 조치 등에 국한하고 있다. 여기에 이상민 의원은 '종교 집회'를 비롯하여 "(종교) 단체 또는 그 단체에 소속된 기관에서 해당 종교의 교리, 신조, 신앙에 따른 그 종교의 본질적인 내용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행위"를 추가하려고 하는 것이다.
현재의 차별금지법/평등법은 앞서 언급했던 네 가지의 공적 영역(고용, 교육, 재화용역, 행정)에서 일어나는 차별에 대해 규율하는 법이기에 '종교 행위' 자체는 애초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를 차별의 예외 조항으로 명시하게 되면 종교나 신앙을 명분으로 하여 공사영역을 불문하고 이루어지는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할 수 있다. 2018년 한국의 종교 현황을 보면 종교단체에서 운영하고 있는 학교, 사회복지시설, 요양 및 의료기관 등은 전체 1,181개이며 전체 중 53% 정도가 개신교에서 운영하는 곳이다.3 "종교단체에 소속된 기관"에 이러한 학교 등이 모두 포함되기 된다면, 해당 기관 안에서 소수자와 약자를 향해 행해지는 차별과 혐오를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종교, 신앙, 신념의 이름으로 보편적인 인권에 예외를 두려는 시도는 현재에도 행해지고 있다. 2020년 12월 23일 열렸던 "온전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쟁점 토론회" <종교기관 예외조항, 무엇이 문제인가>에서 한 토론자는 의료인이 개인의 신념에 따라 임신 중지 의료행위에 대해 예외적으로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과 종교기관예외조항의 문제점을 함께 짚으며 이렇게 말했다. "원칙보다 큰 예외, 원칙보다 유명한 예외는 안 된다".
그렇다. 이유는 명확하다. 보편적인 인권에 예외가 있을 수 없다는 원칙 때문이다. 수 십년 간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을 차별금지사유에서 빼야한다는 주장에 맞서왔던 것처럼 원칙이 훼손되지 않는 '차별금지법'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