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소 최초 시도, '온라인' 한해보내기
수수 |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열림터 활동가
올해는 최초가 많다. 마스크를 쓰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이 에티켓이 된 2020년이 아닌가. 이제 나는 꿈에서도 마스크를 챙긴다. 전 세계가 겪는 '최초'의 상황 속에서 '최초'의 도전이 많이 일어난다. 다들 상상력이 넘쳐흘러서 새로운 도전을 많이 하게 된 것이 아니라, 코로나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쥐어 짜내어 '최초'의 모험을 하고 있다는 것이 조금 슬픈 일이지만... 비대면이 상식이 된 시대에서도 우리는 만나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상담소 한해보내기를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모험이 시작되었다.
코로나→비대면→온라인. 여기까지는 익숙한 도식이다. 그래서 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 그래, 코로나 확산이 심각하니까 한해보내기를 온라인으로 준비하자! 그러나 온라인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온라인은 오프라인의 연장선이면서도 완전히 다른 세계라, 오프라인에서 하던 방식을 그대로 온라인으로 가져갈 수 없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세계 사이에 적절한 번역 작업이 없으면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 더 엉성해지기 마련이다. 거기다 온라인 세계가 단일하지 않다는 문제도 있었다. 영상 송출이 가능한 온라인 매체만 하더라도 벌써 여러 개고, 어떤 매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기획이 필요했다. 온라인 행사를 준비하기로 결정한 다음에야 이 문제를 직면한 한해보내기 준비팀은 마음 속으로 눈물을 한 바가지 흘리며 머리를 짜냈고, 유튜브 최초공개 형식으로 행사를 준비하기로 결정했다.(물론 제안자 닻별은 눈물을 좀 덜 흘렸을 수도 있겠다. 나는 유튜브 최초공개가 뭔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처음엔 상담소 회원들에게 상근활동가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여주는 영상을 만들자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상근활동가들의 일상을 밀착 촬영해서 '상담소 생태관찰기'를 상영하겠다는 소박한 목표를 동료 활동가들에게 내밀었는데, 돌아온 평은 이런 콘텐츠로는 상담소와 함께 하는 회원들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니, 여기서 뭘 더 해야 한다니!' 온라인 행사 준비로 이미 무거웠던 마음이 더 무거워졌지만, 그 평은 너무도 맞는 말이었다. 한해보내기 행사의 주요 목표는 회원들과 교류하는 장을 만드는 것이니까 말이다. 코로나 시대에도 함께 연결되어 있는 회원들의 모습을 더 비추고, 더 많은 참여를 독려하는 기획을 하기 위해 다시 머리를 모았다.
황급하게 추가 코너 기획을 하고, 출연진이 되어줄 여러 사람들을 바쁘게 섭외했다. 바특한 제안임에도 흔쾌히 수락해주신 모든 분들게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감사를 보낸다. 오프닝 코너에는 상담소와 함께 해온 자원활동가, 후원회원, 이사, 연대자인 여러 사람들이 함께 해주었다. 다소 익숙한 코너이지만 뺄 수 없는 올해의 활동사진 코너도 있었다.
이 코너를 위해 사진을 훑어보니 정말 많은 자리들이 코로나 때문에 연기되거나 취소되었단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동시에 새로운 형태로의 전환도 많이 일어났으며, 상담소가 예년과 다를 바 없이 많은 의제와 사람들을 만나왔다는 것도 되짚을 수 있었다. 2020년 안젤라어워드는 상담소의 공동대책위원회 활동 기록을 백서로 만들어주신 자원활동가 가림님과, 부설 연구소 울림과 함께 '비대면 세미나'란 형태를 마스터 해버린 페미니즘신간읽기소모임이 수상하였다. 유튜브를 시청하는 건 다소 수동적인 느낌이 들어 신설한 '막간, 자기방어훈련' 코너에서는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인 오매와 함께 마스크 속 입을 크게 벌려 목소리 내는 법과 언택트 악수를 가장한 '후려치기'를 훈련해볼 수 있었다. 상담소 공식 단짝이자 이번 한해보내기 사회였던 사자와 지리산은 기획팀인 나와 닻별을 볼 때마다 사회 보는게 너무 수줍다고 입을 모아 외쳤지만, 정작 카메라가 돌아가자 프로다운 모습으로 촬영자를 감탄케 했다.
그리고 드디어 행사 당일. 오늘 함께 준비할 게 아무것도 없냐는 동료의 말에 그렇다고 답했다. 보통의 오프라인 행사였다면 모두 함께 분주하게 식사를 준비하고, 참여자들을 맞이하고,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뛰어다녀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온라인 한해보내기를 위한 준비는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페미의꿈' 코너에 출연한 유랑, 신아, 주리 활동가는 공연에 앞서 목소리와 몸짓이 제대로 화면에 담기고 있는지 몇 번이나 확인해주었다. 이번 온라인 한해보내기 준비에 대해 기록할 때, 영상편집 자원활동가들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자원활동가 호찬님은 지인에게 컴퓨터를 대여하면서까지 활동사진들을 영상화해주셨고, 은희님은 소중한 새벽시간을 영상 편집에 할애해주셨다. 행사 준비를 통해 온라인과 오프라인 행사의 차이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대체할 수는 없다. 직접 만났을 때 감각할 수 있는 많은 요소들이 온라인에서는 사라지고 만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직접 만날 수 없더라도 우리가 서로 연결되고자 하는 노력은 중요하다.
코로나 19로 사회 속 취약한 고리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 거리두기 단계가 상향되면서 음식점과 카페는 잘 꾸며둔 공간이 무색할 만큼 텅 비었다. 오늘의 저녁과 함께 방문한 배달노동자는 서툴게 카드리더기를 조작하며 '원래 일하던 곳이 3주간 영업 중단하게 되었는데, 놀 수는 없어서 이 일을 시작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공공시설은 수시로 휴관명령을 받는다. 열림터 생활인들에게 소개할 만한 도서관 문화프로그램이나 공공체육시설의 운동프로그램도 사라지고 말았다. 상담소 역시 휴관명령을 받으면 면접상담을 할 수 없다. 열림터에서 연계하는 정신과와 심리상담소에서도 최근 자해와 자살시도를 하는 여성들이 급증했다고 어두운 표정으로 말한다. 사회적 안전망에 의존하던 이들의 삶이 '비대면'과 '거리두기', '멈춤'으로 인해 위협받는 장면들이 뉴스 사회면에 '안타까운 사고'로 등장한다. 이런 장면들을 마주하며 "취약한 사람들의 존재기반이 전부 뜯겨나가도 모른 채 하며 서서히 소멸도록 방치하는 건 방역실패보다 더 부정적인 상황"이라는 생각을 함께 사는 친구와 나눈다. 안전한 기반들이 흔들리는 지금을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고 방안을 찾아내고자 움직이는 것은 곧 생존을 위한 일이 되었다. 그 고민의 가운데에서 이번 '최초! 온라인 한해보내기'처럼 비대면으로도 즐거움을 나누는 작은 연결고리가 많이 생기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