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가부장제와 정상가족주의가 만든 '현장' 후기
명아 | 반성폭력 운동가
친족 성폭력에 맞서 '광장'을 여는 액션 워크숍에 참여하기 위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 상담소를 방문했습니다. 이안젤라홀에 들어서자 워크숍 시작 전부터 활동가들의 열의 가득한 준비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진지한 모습에 얼마나 애써서 준비하셨는지, 얼마나 진심이신지 알 수 있어서 감동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첫 번째 패널인 조은희 열림터 원장의 발표시간에는 친족성폭력의 정확한 개념과 법적 처벌, 친족성폭력의 실태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나 상담소 통계를 통해 친족성폭력 문제를 살펴보는 것이 의미 있었고 이미 알고 있는 내용도 더욱 신뢰를 가지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상담 전 대응방법으로 법적 대응이 19.5%로 생각보다 낮은 편이었고 주변인 도움을 요청한 경우가 49.4%인 반면 주변인에게 지지받지 못한 비율이 53.7%나 된다는 점에서 안타까웠습니다. 주변인들의 지지와 대처가 치유회복과 일상복귀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있기에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친족성폭력 피해의 특성 중 자책감과 수치심을 느낀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피해자들은 피해 당시 아동이기 때문에 생존의 위협감과 무기력감도 크게 느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법적 해석에 있어서는 피해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꼈냐는 기준보다 실제적 피해 규모와 가해자의 학대 행위에 중점을 두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족에게 피해를 당하고 배척당하는 상황에서도 가족과의 끈을 놓지 못하는 생존자들의 마음이 너무나 안쓰럽고, 가족 부재의 공허감을 채우는 것이 일생일대의 과업이 된다는 말에 깊이 공감하였습니다.
두 번째 국제아동인권센터 김희진님의 아동학대에 대한 발표에서는 "가장 작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그 사회를 말해준다."라는 말씀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법률 행위 무능력자라는 의미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경험을 보완할 수 있는 안전망이 필요할 뿐 법적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친권자는 보호하는 미성년자에 대하여 의무가 있는 것이지 당사자의 권리를 침해, 무단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모든 가해 부모에게 외치고 싶은 말이었습니다. 또한, 김희진님은 아동학대행위자의 75.6%가 부모인 현실에서 가족을 '신성한 무엇'으로 만들어놓고 사회가 접근할 수 없도록 하여 제재 장치가 너무 없다는 점이 친권 제도의 큰 문제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아동과 미성년자 보호는 사회의 공동책임이자 의무라는 점도 짚어주셨습니다. 친족성폭력 피해를 받거나 견디고 있는 아동이 얼마나 막대한 고통과 신체적, 정서적 피해를 입고 있는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고, 친족성폭력은 '성'의 문제가 아닌 한 사람의 인생과 건강, 살 권리에 대한 문제이며 사회가 안고 가야 할 매우 중대한 사안이라고 느꼈습니다.
아동을 보호해야 할 주체로서의 국가가 의무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과연 의지가 얼마나 있는 것인지 매우 분노를 느꼈습니다. 그동안 국가와 사회가 가족 내에 발생하는 중대한 폭력에 대해서 제대로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 화가 났고, 지금까지도 아동들이 방치와 무책임에 계속 놓여 있다는 점이 개탄스러웠습니다. 아동학대 및 아동성학대는 국가가 방치하고 사회가 은폐할 일이 아니라 국가가 중대하게 해결해야 할 일입니다. 국가가 가해 부모의 친권을 제한하거나 축소하고 강력한 처벌조항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동은 평화, 존엄, 관용, 자유, 평등, 연대의 정신 속에서 양육 받아야 한다는 유엔 아동권리협약 전문의 당연한 내용에 울컥했습니다. 친족성폭력 생존자들은 전혀 반대의 환경에서 생존을 위한 버팀을 해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발표는 가정폭력을 주제로 한 김홍미리님의 발표였습니다. '가정폭력' 연구자에게 낯설고도 익숙한 친족성폭력. 그러나 가정폭력과 친족성폭력이 유사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과거에 성폭력범죄는 가장의 소유물인 여성을 더럽혀서 가정을 파괴한 범죄로 여겨져 가해자를 엄벌에 처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습니다. 피해자 회복의 문제보다는 '정상가정'의 기능을 어떻게 해서든지 복구하는 데 중점을 두는 행태, 친족성폭력에 대한 논문이 10년에 평균 10개 정도밖에 없을 만큼 담론화가 너무 안 되었다는 점을 지적해주셨습니다. 가정폭력과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은 분절적인 법·제도의 문제로 분리되어 있지만 연속선상에서 봐야 한다는 말씀과 "가족의 이름으로 구축되는 조밀한 폭력관계망"이라는 말에 공감했습니다. 친족성폭력은 가정문제이자 구조적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분석을 해주셨고, 친족성폭력 중단을 위해 어떤 변화의 이론을 만들 것인지, 우리는 각자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질문을 남겨주셨습니다.
친족성폭력은 총체적인 사회적 문제가 고스란히 반영되어있고, 성역화되고 은폐되는 가족이라는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만큼, 국가와 사회의 개입이 필요하고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동폭력은 자율성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겪는 폭력이라고 합니다. 친족성폭력에 관한 담론, 연구, 언어, 정의, 지원체계가 없는 상황에서 발달과정을 침해받은 생존자들이 사회와의 관계와 자신에 대한 가치관을 확립하는 것은 오로지 당사자 자신의 문제로 남겨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발표자들은 공통적으로 사회가 친족성폭력 문제를 다루려 하지 않고 오직 행정편의적 제도만 남발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피해자에 대한 경제적 지원, 정서지원, 관계맺기 등 장기적이고 다원화된 지원체계가 필요하다고 짚었습니다. 이후 질의응답 시간에는 친족성폭력 생존자는 가해자를 처벌한다고 치유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지적과 함께 피해자는 가족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 시스템 때문에 사회적응과 경제생활이 모두 어렵고, 피해자를 제외한 가족들이 가해자와 자기들끼리 연대한다는 등의 문제를 이야기했습니다. 막연하게 문제의 내용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전문가의 의견으로 더욱 명확하게 알게 되고 접근했다는 점이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좋았습니다.
친족성폭력 문제는 상처와 피해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의 권력 관계에 의한 아동의 발달침해이자 인생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주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아동을 보호하고 생존자의 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질문이 남았습니다. 그래도 법적, 사회적으로 발전되어 왔음을 보여주는 자료들과, 워크숍이 마무리되는 순간까지도 70명 가까이 시청하고 계신다는 점에서 희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날의 워크숍이 초석이 되어 많은 담론이 생성되기를 바라며, 워크숍을 준비해주신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활동가들에게 감사를 보냅니다. 큰 위안과 지지를 받았습니다.
현재 매주 토요일 12시 광화문에서는 생존자 스스로 여는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전면폐지를 요구하는 정기1인시위'가 열리고 있습니다. '시간이 경과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행정편의적인 논리로 형성되어 '성인이 된 후 10년'이라는 터무니없이 짧은 공소시효. 친족 성폭력 피해는 긴 시간 동안 가족 내에서 발생하며 은폐되는 특성이 있어 생존자가 상담을 받기까지의 기간만 10년 이상인 경우가 55.2%에 달합니다. 공소시효 제도는 친족성폭력 생존자들이 법적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게 해 또 다른 고통을 받게 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13세 미만 피해자의 공소시효만 폐지되었고 공소시효가 지난 모든 피해자는 고소가 불가능합니다. 외국의 경우 모든 성폭력의 공소시효 자체가 폐지되는 추세에 있기 때문에 '친족성폭력 공소시효는 전면 폐지'되어야 합니다. 생존자들이 스스로 연대와 움직임을 만들어가는 정기1인시위에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유튜브 '성피당당'을 검색하시면 활동 영상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