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내 성폭력이 반복되는 이유,
그 고리를 끊기 위해
유랑 | 여성주의상담팀 활동가
2013년, 군 상관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겪은 후 세상을 떠난 여군이 있었습니다. 2015년 국방부는 <성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했습니다. 2017년 성폭력 피해로 해군 여군이 스스로 세상을 떠난 일이 있었고, 2018년 국방부는 성범죄 특별대책 TF를 운영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고등군사법원은 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2심에서 두 가해자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리고 2021년 군 선임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겪은 공군 여군이 또다시 세상을 떠났습니다. 피해자는 피해 직후 바로 신고했지만 수사는 지지부진했고 군 상관들은 오히려 사건을 없던 일로 하자며 피해자를 회유하고 은폐했습니다. 이 사건은 시민들의 큰 공분을 샀고, 곧 국방부는 군 검·경 합동수사팀을 구성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우리가 예전부터 익히 보아온 장면입니다. 군대 내 성폭력 사건이 보도된 후, 국방부는 항상 새로운 대책을 발표합니다. 그런데 왜 군대 내 성폭력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을까요?
군대 내 성폭력이 반복되는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군대 내 여군의 현실을 살펴봐야 합니다. 현재 여군은 1만 4천여 명으로 병사들을 제외한 간부들 사이에서 7.4%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수적으로 소수집단인 여군은 '진짜 사나이'의 공간으로 인식되는 군대에서 모순적인 메시지를 받습니다. '너는 여자가 아닌 군인이다.'라는 말을 들으며 여성성을 의도적으로 지우기를 요구받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상석에 여군 앉히기' 등 객체화된 '여성'으로서의 역할 수행을 요구받기도 합니다.1 이중적인 요구 사이에서 여군은 부대 배치 시 기피 대상이 되기도 하고 진급, 업무, 회식 등에서 배제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여군을 같은 동료 군인으로 보지 않고 배제하는 문화는 성폭력이 발생해도 피해자가 쉽게 말하지 못하게 하는 환경을 만듭니다. 집단주의 문화가 강한 군대에서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여군은 '조직에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되고 이는 곧바로 소수집단인 여군에 대한 편견과 낙인으로 이어집니다. 이번 사건처럼 권리를 보장받아야 할 성폭력 피해자가 '관심병사'가 되고 주변의 비난, 소문, 따돌림 등 2차 피해에 노출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조직 분위기와 문화 속에서 피해자 보호 조치마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피해를 이야기하기는 더욱 어려워집니다. 2019년 국방부 성폭력 실태조사에서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응답자 중 성폭력 피해를 기관에 보고 또는 신고한 수는 32.7%에 그쳤습니다. 나머지 응답자들은 보고하지 않은 사유로 '아무 조치도 취해질 것 같지 않았다.(44%)'라고 답했습니다. 이러한 우려는 이번 사건에서도 실제로 나타났습니다. 「부대관리훈령」에 따르면, 각 부대장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공간적으로 우선 분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분리조치는 즉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피해자는 성폭력 피해자로서 치료가 필요할 때 60일 이내로 사용할 수 있는 청원휴가를 써야 했습니다. 또 훈령은 피해자를 협박하고 강압하여 피해자의 신고를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가 신고한 뒤 이어진 것은 군의 조직적인 회유와 은폐, 압박이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 보호에 관한 규정이 존재했지만 제대로 시행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앞서 말한 성평등하지 않은 조직 문화, 성폭력을 사소하게 바라보는 인식, 피해자를 오히려 낙인찍고 비난하는 분위기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반복되는 군대 내 성폭력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말뿐인 대책을 매번 새로 발표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기존의 규정과 매뉴얼이 조직 안에서 충분히 이해되고 시행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군대 내 조직문화와 인식을 점검하는 작업이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번 사건의 경우도 가해자의 처벌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왜 피해자 보호 매뉴얼이 유명무실했는지, 조직이 어떻게 사건을 축소하고 은폐시키려 했는지, 어떤 2차 피해가 있었는지 낱낱이 밝혀져야 합니다. 더 나아가 성차별적인 근무환경을 개선하고 군의 인식을 제고하는 작업은 성폭력 대응뿐 아니라 군대 내 모든 분야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여군이 동등한 동료 군인으로서 인정받고 당당히 복무할 수 있는 환경일 때 군대 내 성폭력 피해자는 더 말할 수 있고, 권리를 보장받으며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성평등한 군대는 군대 내 성폭력의 고리를 끊어내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
1 "여군을 위한 나라는 없다", 한겨레, 2021년 6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