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 |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 열림터 활동가
30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성폭력상담소에 2년도 채 함께하지 않았지만, 이 역사에서 오는 든든함이 있다. 든든한 만큼 30주년 기념식이라는 중차대한 기획에 참여하는 것은 참 막막한 일이기도 했지만, 그 역사에 참여한 멋진 사람들을 볼 생각에 두근거렸다. 30년의 역사를 담아내는 것은 설레는 기념이자 막중한 실무였기에 2020년부터 비전, 스마트워크, 홍보, 규정TF가 꾸려졌고 이를 바탕으로 2021년 하반기에는 본격적인 30주년 기념식TF의 기획 회의가 시작되었다.
"어떤 영상을 보고 싶을까?" 상상하다 내가 달빛시위 때처럼 그 옛날의 에피소드가 궁금하다고 말하니 오매가 신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기념식은 30년의 발자취, 함께 연결된 이들의 5분 말하기, 비전선언문 낭독으로 구성했다. 대중에게 다가가기 쉬운 언어로 흐름과 주제를 숙고하여 고심 끝에 섭외 명단이 결정되었다. 기념식 후원 모금을 위해 굿즈의 품목과 구성, 효과적인 리워드 방식을 한참 고민하다 작은 도마를 선정했다. 돌이켜보니 모든 선택의 과정에는 상근활동가들이 함께했다.
촬영 당일은 코로나 방역수칙을 지키며 안전하게 진행되었다. 각자 집에 있는 살림살이를 영혼까지 끌어모아 예산 절약에 최선을 다했다. 혹시나 촬영 시간이 부족할까 걱정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프로방송인들의 활약이 펼쳐졌다. 지리산은 곧고 단단한 자세로 1번 만에 오케이와 박수갈채를 받았다. 무대본의 프로방송인 변영주 감독님도 2번 만에 촬영을 마치고 여유롭게 스몰토크를 나눴다. 이쯤 되니 나는 걱정을 내려놓고 래퍼 슬릭의 공연에 비건양갱을 응원봉마냥 흔들어댔다. 촬영 중 울컥하신 은유 작가님은 눈물을 닦으며 씩씩하게 "여성해방을 위해, 투쟁!"을 외쳤다. '눈물 닦으면 다 에피소드'라는 말을 이토록 잘 표현한 순간이 있을까? 이 귀한 컷은 쿠키 영상으로 들어가서 촬영장을 넘어 실시간 채팅창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수어 통역의 경우 스케줄 관계로 별도 촬영을 했다. 한국농인LGBT와 사전회의를 통해 기념식 초반에 수어에 없는 단어를 보완하는 안내 영상을 삽입할 수 있었다. 말의 리듬이 느껴지는 수어 통역을 전해주신 보석, 진영, 레고 덕분에 모두가 함께하는 기념식을 만들 수 있었다. 자원활동가분들의 도움도 빼놓을 수 없는데, 기념식 초반부터 사방에 흩어진 자료를 모아 정리하고 자막을 위한 녹취 등 편집에 큰 도움을 주신 홍서현, 박지희, 안은혜, 김민지, 장채원, 박주현, 김하윤 자원활동가님께도 감사 인사를 전한다. 촬영 후 연분홍치마와 동료들의 피땀눈물로 단기간에 최종피드백, 수어 촬영, 최종편집본 수령, 기념식 당일 송출이 이루어졌다.
대망의 기념식 당일에는 각자의 편안한 공간에서 시청했다. "정말 보기만 하면 돼요?"라는 동료의 말에 채팅을 부탁한다 했더니 범상치 않은 별칭으로 등장하여 채팅창을 뒤집어 놓았다. 말하기의 주요 내용을 퀴즈로 내어 「김지은입니다」 저자 김지은 님의 쪽지와 커피 백을 선물로 드렸다. 발자취에서 말하기로 넘어가며 감동받아 후원을 시작했다는 채팅이 속속 올라왔다. 비전선언에서는 "목소리와 자세가 이렇게 강렬한 것이었나."라는 소감도 있었는데 비전영상 담당 앎이 매우 뿌듯해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