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 | 유영, 키라, 지선
인터뷰 진행·정리 | 란, 박지희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지선_ 저는 고등학교에 보건 교사로 있어요. 작년부터 코로나 때문에 학교의 방역을 담당하고 있어요. 서울이나 경기 지역보다는 덜하지만, 위드 코로나로 전환되면서 주변 학교에서도 확진자가 늘어났어요. 학교에 확진자가 한 명이라도 발생하면, 선별진료소가 학교 내에 차려지고 서류들도 다 준비를 해야 해요. 그래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는데, 우리 학교만 비껴가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역할들과 별도로 여성 문제는 계속 마음에 두고 있게 되는 것 같아요. 학교 안에서도 성폭력 같은 문제들이 생기다보니 관심을 가지고 있던 차에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여성위원회 "흐름"을 알게 되었어요. 흘러가는 변화에 우리가 민감하게 흐름을 읽고 동참하자는 의미에요. 이 활동을 올해 초에 시작했어요. 지난주에는 박소현 감독님의 《에프터 미투》 상영과 감독과의 대화를 진행했습니다.
키라_ 저는 전라북도 정읍에 살고 있고요. 정읍에서 "기린 동물병원"이라는 작은 동물병원에서 일하고 있어요. 제가 원장입니다. (웃음) 개나 고양이들이 많이 와요. 당뇨나 심장병, 치매같이 노견들에게 있는 질병들이 많아서, 그런 환자들을 많이 관리하고 있어요. 그리고 저는 앵무새와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살고 있어요!
최근에는 녹색연합에서 저감 스티커를 붙이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투명창은 사람이 더 시원하고 밝게 보려고 만드는 건데, 새들은 투명창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빠른 속도로 지나가다가 거의 즉사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런데 창문에 사람의 시야를 별로 가리지 않는 반투명한 스티커를 일정한 간격으로 붙이면, 사람이 보기에도 크게 불편하지 않고 조류들은 스티커 사이를 빠져나갈 수 없다고 생각해서 창을 피해서 날아가요.
유영_ 저는 결혼하고 파주 가서 살다가 서울에 다시 돌아온 지 2년 정도 됐고요. 작년에 문학동네 출판사를 통해서 신인상을 받고 시인으로 등단하게 돼서 지금은 글을 쓰면서 첫 번째로 나올 시집을 준비하고 있는 중입니다.
세 분 다 다른 곳에서 다양한 삶을 살고 계시는데요,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유영_ 저는 대학교 때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었는데, 그때에는 제가 가장 하고 싶은 운동이 페미니스트 운동인 것 같았어요. 마침 상담소에서 활동가를 뽑는다고 해서 지원했죠.
키라_ 저도 비슷한데요. 대학 다닐 때 왠지 모르게 여성학 수업을 선택해서 들었는데 너무 재밌었고, 비슷한 친구들을 만나고, 여학생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페미니스트 활동하는 게 제일 재미있었어요. 그것보다 더 재미있는 게 없더라고요. 졸업하고 여성학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서 영어 학원에 강사로 취업해서 등록금을 열심히 벌면서 여성학과에 갔습니다. 여성학과에 가서 썼던 논문이 성폭력과 관련되기도 했고, 상담소에서 자원활동도 했다보니 졸업하면서 자연스럽게 상담소에 들어왔던 것 같아요.
지선_ 저는 간호대를 나왔는데, 간호대 학생회를 하면서 알게 된 선배가 총여학생회의 임원이었어요. 그래서 조금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한국성폭력상담소도 알게 되었어요. 간호대에서는 4학년이 되면 지역사회 실습을 나가게 되는데, 제가 친구들과는 좀 다르게 상담소로 자원활동을 가겠다고 한 거예요. 한 달 동안 상담소 부설 열림터에서 자원활동을 하면서, 사람들도 너무 좋고, NGO 활동이 재미있었어요. 제가 보통 간호사들이 잘 선택하지 않는 여성단체로 오게 되는 계기가 되었죠. 졸업하고 나서 병원에서 몇 개월 일하다가 결심을 하고, 병원을 퇴직하고 상담소로 오게 되었습니다. 월급이 반 토막 되었지만요. (웃음)
그리고 당시에 뽑는 부서가 재정부였어요. 그래서 간호학하고는 전혀 관련도 없고 처음 보는 분야로 입사 지원했었어요. 들어가서 뭐라도 하겠다는 마음이었죠. 저는 학생운동을 굉장히 열심히 한 것도 아니고 건너 들었던 거고, 여성학과에 갈 생각도 사실 없었어요. 그런데 상담소 활동은 되게 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때 당시에는 "뼈를 묻으리라!"라고 생각했어요.
상담소에서 활동하면서 어떤 경험이 가장 기억에 남았나요?
키라_ 저는 "자기방어훈련" 아이디어를 내고 콘텐츠를 만들고 교육사업도 하는 과정이 되게 재밌었어요. "실전처럼 훈련하고 훈련한 대로 행동하라"라는 구호도 만들었는데. 저도 사실 몸을 쓰는 걸 안 해봤었거든요. 여성학과 논문을 자기방어와 관련해서 썼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몸을 움직이는 즐거움을 처음 알았던 것은 상담소였어요. 그리고 고 장자연 배우 사건의 담당자가 저였었는데, 기자회견 당시에 되게 답답하고 슬펐던 기억이 오래 남고, 간간히 뉴스에서 비슷한 사건들을 볼 때도 생각이 많이 나요.
상담소에서 얻었던 좋은 경험에서 지금도 제가 생활하는 데 많이 도움을 받는 것 같아요. 나만의 어떤 힘을 주는 것 같아요.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공간인데도요. 병원에 있으면 10대 여성들이 많이 와요. 그래서 예상하지 않았는데 관계를 맺게 되고 대화를 하게 되는 경우에 상담소에서 생각했던 것들이 많이 도움이 되고 있어요.
유영_ 저는 여성주의상담팀에만 있었어서 피해자 지원 활동을 주로 했기 때문에, 활동가를 그만두고 나서 혼자서 글을 쓸 때 의식적으로 지원했던 기억들을 많이 잊어버리려고 노력하는 편이었어요. 왜냐하면 저도 모르게 다른 사람의 경험들이 내 경험이나 다른 방향으로 나올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커서요. 사실 상담소에서 활동했던 기억들과 동료들과의 기억들은 너무나 강렬하고 좋은 게 많지만, 상담 장면 같은 기억들은 이제 많이 까먹었어요. 다만, 상담일지 양식이 바뀐다고 했을 때 약간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갑자기 바꿔야 된다고 해서 힘들 때 그만뒀던 (웃음) 생각이 나네요.
상담소에서 활동하다 지금의 영역으로 인생의 노선을 바꾸셨는데요. 계기가 있으셨나요?
유영_ 저는 처음에 들어올 때 무조건 3년 이상은 활동을 한다는 게 목표였는데, 사실 3년 되기 전에 그만둬서 약간 상담소에게 미안한 마음이나 부채감이 있기도 해요. 젊은 활동가들이 성장을 하고 익숙해지면 자양분을 얻고 떠나버리는 사이클이 점점 더 짧아지는 것 같다는 얘기를 저도 상담소 안팎에서 듣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조금 더 오래 했으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만두었죠.
지선_ 저는 상담소에 애정도 많았고, 무언가 기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결혼을 하게 되면서 남편하고 의견 차이가 많았어요. 상담소 활동에 대해서 그렇게 동조적인 사람은 아니거든요. 그러면서 제가 애를 낳고 또 남편은 창원에 먼저 내려가야 되는 상황이 발생했어요. 사실은 서울에 염증을 조금씩 느끼면서 내가 만약에 상담소 활동을 접게 되면 지역에서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나름대로 하고 있었는데, 아이를 낳고 남편이 내려가게 되는 상황이 계기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정리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사실 그때 당시에 활동가들하고 잘 정리하지 못하고 급하게 내려온 느낌이 있었습니다. 저에 대한 원망도 조금 있었고, 미안함과 함께 앙금을 안고, 창원에서 여성활동을 하겠다는 계획도 세우지 못한 채 부랴부랴 내려가게 되는 현실이 있었죠.
그렇게 하다가 정신을 좀 차리고 창원에서 여성활동이나 환경활동을 해보고 싶어서 알아보기 시작했는데요. 꼭 여성활동만 하겠다는 마음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시댁과 남편과의 갈등이 계속되고, 집에만 있으라는 요구들을 계속 받으면서 1~2년을 쉬었어요. 그래서 가족들에게 학교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으니까 학교도 싫어했지만 그래도 시민단체보다는 낫다고 하면서 제가 학교를 가게 되었습니다. 눈물과 분노의 세월이 있었어요.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있었죠. (공감의 한숨)
키라_ 상담소에서도 지선이 가족들과 해결하지 못하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었고, 되게 안타까워했었죠. 그래도 새로운 곳으로 가서 지선의 선택으로 더 잘 살 거라고 믿었는데, 이렇게 어느 순간에 지선이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니까 너무 기쁘더라고요.
요즘에도 문득 활동가 정체성이 드러나는 '활동가 모먼트'가 있을까요?
키라_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부분들이 상담소에서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보면 불편한 부분들이 보였던 것처럼, 지금은 동물과 관련된 이슈들에서 불편한 부분들이 저한테 자꾸 보여요. 그런데 이거를 자연스럽게 활동으로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자연스럽게 저 혼자 저감 스티커를 붙이는 것보다는 정읍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조직해야 하지, 우선 녹색연합에 연락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웃음) 그래서 최근에 녹색연합에서 회의를 하고, 저감스티커를 붙인 국도를 1년 정도 모니터링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그 데이터만으로도 정책을 만드는 데 훨씬 도움이 되거든요.
유영_ 다들 화가 났을 때 활동가 정체성을 느끼는 것 같은데, 저는 얼마 전 전두환이 죽었을 때 정말 속이 너무 들끓더라구요. 이거 뭐라도 해야 하지 않나! 그런데 지금은 저는 페미니스트인 것은 그냥 자기 성향인 거고, 이제 활동가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하려고 되게 노력을 하고 있어요. 아직까지는 감정적으로 얽혀있는 것을 완전히 분리하지는 못한 것 같지만요.
여러분들에게 상담소란 어떤 의미인가요?
지선_ 상담소에서 만난 사람들은 제가 다른 어떤 곳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로 저에게 많은 영향을 줬어요. 제가 생각한 이상을 같이 일상 속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 지금 학교나 과거의 병원에서도 코드가 맞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었지만, 상담소는 공간 자체가 그런 공간이었어요. 제가 꿈꾸던 이야기들을 서슴없이 매일매일 할 수 있는 공간이요. 제가 지금 전교조 여성위원회 활동이나 여성학 책 스터디를 시작하게 될 수밖에 없었던 동력이었던 것 같아요.
유영_ 저도 생각하는 걸 상담소 안에서라면 처음 보는 사람하고도 더 자신감 있게 이야기할 수 있고, 이 사람도 잘 들어줄 거라는 감각을 실제로 몸으로 느끼는 게 많이 달랐어요.
마지막으로 상담소에서의 나의 활동을 3단어로 표현해주세요!
유영_ 여성! 연대! 과로! 지금도 저녁에 상담소의 불이 얼마나 훤한지, 마음이 아팠습니다.
키라_ 연대! 도전! 나의 리즈 시절! (우와)
지선_ 감수성! 도전! 함께!
상담소에서 함께했던 추억들을 이야기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각자의 위치에서 다시 만나 이야기를 할 수 있던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유영, 키라, 지선, 그리고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함께했던, 함께 하고 있는 여러분들의 미래를 응원할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