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하자!'는 외침이 정치에 이용되는 지금, 한국 정치 속 젠더의 위치를 짚어봅니다.
2021년은 여성가족부 출범 20주년이 되는 해였다. 한국에서는 1983년 여성정책심의위원회가 설치된 이후, 1990년 정무장관실과 1998년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를 거쳐 2001년 정부조직 상 독립부처인 여성부로 신설되었다. 독립적인 행정기관으로서 '여성부'의 설치는 이전의 장관실 산하 조직 또는 특별위원회 형태로 존재했을 때의 조직적 한계와 성평등 정책 전담 기구 강화에 대한 강력한 요구에 의해 이뤄졌다. 이후 여성부는 기능 변경에 따라 여러 차례 부처명이 변경되었다가 현재는 독립부처인 여성가족부와 각 정부 부처 내에 하부조직인 양성평등담당관이 존재하는 형태로 기구화되었다.
2001년 여성특별위원회에서 승격 개편된 여성가족부는 당시 1실3국11과(담당관) 102명의 정원으로 편성된 '초미니급' 부처1였다. 이후 보건복지부로부터 영유아 보육업무를 이관받고 2005년 여성가족부로 개편되어 가족 정책까지 전담하게 되었으나 인력이나 예산이 더 확대되지는 않았다. 지난 5월 취임한 윤석열 정부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본인의 소임으로 하는 여성가족부 장관을 내정했고 취임했다. 국제조약에 따른 성평등 정책 전담 기구의 설치, 전 부처의 성평등정책을 조정하는 역할을 갖는 정부부처인 여성가족부 폐지가 왜 이렇게도 중요한 정치적 문제가 되었을까.
여성가족부를 폐지하라는 요구
여성가족부를 폐지하라는 요구는 한국사회에서 지난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2006년 여성가족부가 송년 모임에서 성매매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성인남성들에게 회식비를 지원하는 이벤트를 실시한 데 과도한 비난이 쏟아진 이후, 인터넷 등에서 여성가족부가 특정 상표의 과자와 자동차회사의 로고가 성기 모양을 닮아 불매운동을 펼친다는 등의 소문2이 퍼지며 여성가족부 폐지에 대한 글들이 공유되기 시작했다. 당시 포털사이트에 개설된 '여성가족부 폐지를 위한 10만인 서명운동' 사이트는 여성가족부가 남성 역차별을 조장한다고 주장하는 한 네티즌에 의해 개설되었고, 폐지에 동의하는 다수의 네티즌은 '여성가족부의 업무가 보건복지부와 중복돼 제대로 된 역할이 없고 사회적 역차별을 조장하며 예산만 낭비한다'고 응수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남녀평등이 아니라 여성대우이며 이기주의 집단일 뿐'이라는 당시의 주장3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여성가족부 폐지를 요구하는 2022년 지금의 내용과 너무나 닮았다.
2006년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은 2007년 제17대 대선으로 당선된 이명박 정부가 전략적으로 선택하여 활용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원회에서 여성부와 보건복지부를 통합하는 개편안을 내놓았으나, 여러 반발에 부딪혀 여성가족부 폐지안은 철회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 선거 국면 때마다 여성가족부 폐지와 같은 젠더 이슈는 전략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활용되었다.
페미니스트 주권의 선언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로 '이대남'의 표심이 대권을 둘러싼 정치권의 화두로 떠올랐다. 당시 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후보는 '민주당은 2030 남성의 표 결집력을 과소평가하고 여성주의 운동에만 올인'해서 패배했다고 말했다. 대통령 선거를 한 달여 앞둔 시점, '여성가족부 폐지' 단 일곱 글자의 글이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지지율을 극적으로 돌려놨다. 정책적 공약이라고 볼 수 없는 단 한 문장이 대선판의 핵심적 구호로, 정책적 공약으로 등장한 것이다. 여성들이 열어온 정치적 공간을, 성평등 정책을 국가 비전으로 제시해온 역사를 불공정과 역차별 담론으로 뒤엎는 정치적 퇴행, 반페미니즘 공약의 난무, 여성에 대한 혐오와 배제, 더 나아가 '증오 선동'에 가까운 대선 정국에서 여성의 목소리는 삭제되고 무시되었다. 선거 시기에만 주요한 정치적 주체로 등장하는 유권자가 아니라, 이 사회를 살아가는 정치적 존재로서의 페미니스트 '주권자' 행동은 가시화된 집단적인 '여성'들을 드러내고, 실천적 행동으로 대선정국을 돌파하자는 제안에서 비롯되었다. 저들이 원하는 '무기력'이 아니라, 지지 않고, 지치지 않고, 더욱 거세게 대응하자는 제안에 전국의 단위들이 모여들었다.
「2022 페미니스트 주권자 행동」에 함께 참여했던 한국성폭력상담소는 2022년 2월 12일 서울 보신각에서 <2022 페미니스트 주권자 행동 : 차별과 혐오, 증오 선동의 정치를 부수자>의 집중 집회에 함께했다. 전국적인 흐름을 조직하기 위해 <2022 페미니스트 주권자 행동 온라인 10만 서명운동>도 함께했다. 서울에서, 경남에서, 전남에서, 대구에서, 경북에서 그리고 부산에서 페미니스트 주권자들은 모이고 행동했다.
<시국토론회- 세대와 젠더분열을 넘는 페미니스트 주권자행동 포럼: 미투에서 대선까지>는 한국여성학회와 동아대학교 젠더어펙트연구소와 공동 주최로 진행되었다. 시국토론회에서는 페미니즘 대중화를 통해 만들어진 확장적 민주주의의 퇴행에 맞서는 다른 말하기의 필요성과 디스토피아적 상황의 막막함을 함께 바꾸자는 제안, 젠더 갈등 프레임의 담론정치의 분석까지 폭넓은 분석이 이어졌다. 2부의 필리버스터에는 수많은 발언자가 참여하여 거대 양당의 '협박 정치' 프레임에 눌리지 않고, 여성의 존재를 지우려는 정치에 맞서는 더 많은 '페미니스트 주권자'의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약 한 달여 간 지속된 페미니스트 주권자 행동은 그 여느 선거보다 심각한 절망감 속에 진행된 20대 대통령선거 국면에서 투표라는 행위에 멈추지 않는 정치적 실천에 대해 고민하고 대안적 운동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여성가족부 폐지를 핵심 공약으로 제시한 윤석열 정부가 당선되었지만, 페미니스트들은 차별과 혐오, 분열과 갈등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자신들의 뜻을 국민의힘이 아닌 다른 정당에 대한 투표로, 미처 투표라는 행위에 담지 않은 정치적 실천을 선거 이후 특정 정당과 후보에 대한 후원으로 드러냈다.
여성가족부 존폐의 논의를 넘어
지난 1월 미국방송 <CNN>은 '한국의 놀라운 안티 페미니즘 운동'이라는 방송에서 한국의 상황을 '온라인에서 부채질 되고 우파 정치인들의 기회주의적인 구애를 받으며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은 오히려 여성가족부 주요 사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응답을 내놓았다. 주요한 중점 사업으로는 '여성 경제활동 지원'과 '여성폭력방지·피해자 보호'였다. 지난 1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전국 만 18세~69세 성인 남녀 5천 명을 대상으로 여성가족부 주요 사업에 대한 인식조사4를 한 결과다.
사실과 다른 내용이 온라인 기반 특정 커뮤니티를 통해 마치 거대 담론처럼 기획되고, 이에 편승한 정치권이 이를 확산하며, 정치적으로 기운 특정 정당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대통령선거와 지방자치단체선거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는 주요한 정책인 듯 다뤄졌다. 그러나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현실의 요구를 단순히 젠더 갈등 프레임이라고, 혐오와 갈등을 조장하는 우파 정치권의 전략이라고만 치부하기에는 현실이 녹록치 않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진행한 위의 설문조사에서 여성가족부가 그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 물었더니 부정적 평가가 많았다. 4점 척도로 물어본 결과, 전체 응답자의 평균은 2.25점으로 낮았다. 그 이유로 '성평등한 사회 구조변화보다 여성 지원에 치중해서(49.5%)', '성차별 문제 발생 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서(39.5%)', '공직사회 성희롱·성폭력 발생 시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해서(36.8%)'의 응답 비중이 높았다. '성차별 문제 발생 시 제대로 대응 못해서(여성 43.7%, 남성 36.0%)'와 '공직 사회 성희롱·성폭력 발생 시 적극 개입하지 못해서(여성 45.8%, 남성 29.4%)'는 남성보다 여성의 응답률이 더 높았다. 2018년 미투 이후 드러난 성차별, 성희롱 사건에 있어 주무부처로서 대응이 부족했다는 뼈아픈 평가다. 성평등 정책 전담 기구로서, 정부부처 전체의 성평등정책을 조정하는 역할로서 여성가족부가 더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지금, 성평등 추진체계로서의 여성가족부에 대한 더 많은 권한의 확대, 강화는 단순히 여성가족부 폐지 반대라는 요구에 담길 수 없다. 지난 20여 년간 페미니스트 주권자들이 쌓아 올린 역사가 퇴보되지 않도록, 저들이 원하는 '무기력'이 아니라, 지지 않고, 지치지 않고, 더욱 거세게 대응해야 할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