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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봄, 국회 앞 출장기: 함께 싸운 우리가 이긴다, 평등으로 가자!
  • 동은 | 성문화운동팀 활동가
올 봄, 국회 앞은 차별금지법을 원하는 이들로 가득했습니다. 다양한 목소리로 각자의 삶을 이야기하고 또 서로를 보듬은, 그 현장의 생생한 후기를 들려드립니다.
무대 뒤쪽으로 경사로가 있는 아름다운 무지개 연단
무대 뒤쪽으로 경사로가 있는 아름다운 무지개 연단! 모두를 위한 말하기 장이 되어 주었다.

차별금지법제정운동은 15년간 유예된 차별금지/평등법을 시민의 힘으로 쟁취하기 위해 2022년, 더욱 세차게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연초에는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만들기 유세단'이 출범하여 서울과 수도권 구석구석 시민들을 만나러 다녔습니다. 유력 정당의 대통령 후보들이 차별금지법을 언급도 하지 않기에 '대선보다 차별금지법!'을 외치게 됐던 것이죠. 3월부터는 국회 앞과 온라인에서 차별을 끊고 평등을 잇는 2022인 릴레이 단식 행동 '평등한 끼'가 시작되었습니다. 밥 먹는 일을 미룰 수 없듯, 평등도 미룰 수 없기에 '평등이 밥'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한 끼 단식에 동참하였습니다. 4월부터는 더이상 미룰 수 없는 평등의 약속, 차별금지법을 반드시 제정하라는 시민들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고자 국회 앞 농성과 두 인권활동가의 단식투쟁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로서 저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운영팀으로 함께하며 매주 1회 국회 앞 집회와 농성을 지원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평등의 봄을 기억하며 3월부터 시작된 국회 앞 출장기를 회원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매일매일 평등 연습!

2022년 봄, 국회 앞은 매일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였습니다. '평등한끼'부터 열린 말하기 장은 제각기 다른 곳에서, 각자의 상황과 정체성을 들고 모인 사람들의 풍성한 발언으로 채워졌습니다. 다녀간 모든 이들이 아름답다고 칭찬했던 무지개 연단에 올라 생생하게 자신이 겪은 차별과 그 차별의 이상함을 증언했습니다. 어떤 청년 여성분은 아픈 가족의 주돌봄자인 '영 케어러(young carer)'로서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이유를 말해주었습니다. 고용 시 불이익을 받을까봐, 입사를 하더라도 잦은 조퇴로 능률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을까봐 자신의 상황을 밝히기를 꺼린다는 것이었어요. 이야기 속에는 청년으로서 '생산성'을 발휘하기를 요구받지만, 정작 주돌봄자로서 가족을 책임지는 것은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차별의 장면이 담겨 있었습니다. 어느 방송작가님은 "프로그램 제작에서 PD는 '아빠'고 작가는 '엄마'다. 작가는 집안 살림하듯 프로그램 전반을 잘 챙겨야 한다"라는 말을 막내작가 때부터 수없이 들었다며, 방송제작현장에서의 성별분업 현실을 생생하게 전해주었습니다. 성별정정을 위한 과정 중 의료적 조치에는 큰 돈이 들어가지만 보험적용이 되지 않아 개인이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경제적 문제, 성별 정정에 소요되는 긴 시간 동안 정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소수의 불과하다는 점도 또 다른 말하기 속에서 짚어졌습니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공공연히 이야기하고,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시기상조라고 외면하는 정치에 맞서 각자의 삶 속 차별의 구조를 드러냈습니다.

자리를 지키며 새삼스레 깨달았던 것은, 차별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듣지 않으면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차별은 일상에 너무나 달라붙어 있어서 차별이라고 이름 붙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어떨 때는 한 끼를 덜어내는 비일상적인 자리를 만들어 내야만 비로소 들리기도 했습니다. 또 차별의 구조가 뿌리 깊은 만큼 차별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따로 떼어서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도 고민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국회 앞에 모인 이들은 매일매일 평등연습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별금지법이 지금껏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들에 자리를 마련하여 사회가 응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라면, 차별의 현실을 듣고 서로가 차별하지 않고 돌볼 수 있는 방법을 학습하는 것이라면, 그래서 평등한 관계 맺기 방법을 더 많은 동료시민들이 알아갈 수 있게 하는 법이라면, 차별금지법이 그리는 내일이 구체화되는 장소가 국회 앞에 열려 있었습니다.

국회 앞 평등텐트촌 지킴이로 함께한 상담소 활동가들
국회 앞 '평등텐트촌' 지킴이로 함께한 상담소 활동가들

차별금지법이 지금껏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들에 자리를 마련하여 사회가 응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라면, 그래서 평등한 관계 맺기 방법을 더 많은 동료시민들이 알아갈 수 있게 하는 법이라면, 차별금지법이 그리는 내일이 구체화되는 장소가 국회 앞에 열려 있었습니다.

'민생법안' 차별금지법 외면하는 '나중에' 정치

4월에 들어서며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국회 앞 농성과 단식투쟁에 돌입했습니다. 15년의 차별금지법 제정운동 역사 중에 특히 작년에는 10만 국민동의청원을 통해 시민들이 차별금지법에 대한 폭넓은 지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도 국회는 제대로 된 논의 없이 법안 심사를 회기말로 미뤄버렸기에 계속해서 국회 내 평등을 앞당기는 시도가 필요했습니다. 대선 정국에서 또렷하게 드러났듯이 차별과 혐오 선동이 시민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기에 최소한의 공동체적 안전망으로써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진 상황이었습니다. 4월부터의 투쟁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마음을 모아왔고 합의를 만들어온 시민들의 요구를 정치적 장에 올려놓을 다시없을 기회라는 절박한 의지로 시작되었습니다.

'평등텐트촌'을 오가는 동안 모인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벅차기도 했지만, 때때로 두렵기도 했습니다.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에서 더 잘 살아가기 위해 단식이라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었지만 단식자들의 건강에 큰 영향을 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습니다. 농성장에 찾아온 사람들도 단식자들의 건강을 염려하는 동시에 이런 상황을 만든 정치에 분노를 표현했어요. 단식투쟁은 눈치만 보는 국회, 정확히는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시급히 입법절차를 밟아가도록 촉구하는 실질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치권은 시민들의 목소리에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사회적 합의'를 돌림노래처럼 불러댔지만 여러 번의 여론조사는 이미 사회적 합의가 끝났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단식농성이 한참 진행되고 있던 5월 초 한국 갤럽에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57%로 과반을 넘었습니다. 성별, 지역, 지지정당, 직업, 정치적 성향 등을 불문하고 제정해야 한다는 응답이 그렇지 않다는 응답보다 높았습니다. 이제 입법을 추진하는 국회에서 세부 쟁점을 살펴보는 등 '국회의 몫'을 다할 때라는 것이 너무도 명백했습니다. 제정국면에서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소속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평등법안이 무려 3개이고, 대선패배 후 비대위원장과 비대위원들은 개혁입법 과제로 차별금지/평등법을 외쳤습니다. 그러나 상임위원회인 법사위에서는 실질적인 입법절차에 들어서지 못하고 지방선거 '나중'으로 자꾸만 미뤄졌습니다. 올해 봄 차별금지법제정을 원하는 시민으로서 저는, 유력정당들이 시민의 삶을 다루고자 하는 의지도, 역량도 확인할 길 없이 요란한 선거 유세 차량과 공보물을 통해서만 그 존재를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5월 26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농성과 단식투쟁을 마무리하며 "정치의 실패다. 차별금지법 제정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법 제정을 요구한 시간만큼 시민들의 결의는 더욱 단단해지고 평등과 존엄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말하기도 많아졌습니다. 단식자들이 몸으로 투쟁하며 다른 국면을 열어냈고, 그렇게 만들어진 대안적 공간에서 평등에 관한 다양한 의제와 구체적인 시민의 얼굴들이 드러날 수 있었습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이러한 성과들을 바탕에 두고, 또 제 할 일을 다 하지 않는 국회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를 고심하며 앞으로의 운동 방식을 모색해나가겠지요. 한국성폭력상담소도 소속단위로서 앞으로의 투쟁에 함께 할 것입니다. 모두의 존엄은 한순간도 놓칠 수 없기에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를 향한 상상은 계속 확장되고 깊어질 것입니다. 그 길을 회원 여러분도 같이 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