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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길 위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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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림터 다이어리>와 <생존자의 목소리>는 성폭력 피해생존자들의 이야기를 에세이, 시, 그림 등의 형식으로 싣는 코너입니다. 본 코너는 생존자의 고유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창구이며, 교정교열 외의 편집은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상담소의 다른 글과 관점도 논점도 조금 다를 수 있음을 안내드립니다.

희망

기억이 올라온 후에도 상담은 계속되었고 상담 선생님은 분노 직면 작업을 제안했다.

"이서 씨, 이제 분노 직면 작업을 시작하면 어떨까요?
이서 씨가 과거의 기억에서 얼마만큼 벗어나고 회복되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될 거예요."

"선생님, 지금은 제가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조금 괜찮아지면 시작하고 싶어요."

"그래요. 그럼 기다릴 테니 이서 씨가 준비되면 얘기해줘요."

종만이 세상을 떠나고 1년의 시간이 지났다. 갑상선 기능항진증 약 복용도 중단할 만큼 체력을 회복했다. 이서는 이제는 그 작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언젠가 그녀의 분노를 꺼내놓지 않으면 결국 억압된 기억이 평생 이서의 발목을 붙잡고 질질 끌고 다닐 거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상담실에서 선생님과 마주 보고 앉았다. 다시 그날의 기억으로 돌아갔다. 이서는 계단을 올라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1989년 6월의 어느 날 새벽이었다. 침대 옆에는 영수가 서 있었고 22살의 이서는 잠결에 누군가 방 안에 들어왔다는 기척을 느꼈다.* 영수가 침대 위로 올라왔고 이서는 영수 밑에서 버둥거리고 짓눌렸다. 그 순간 상담실에 있는 이서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분명 32년 전에 벌어진 일이고 기억만 떠올렸을 뿐인데도 이서는 의자에 손, 발이 묶인 듯 앉은 자리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온몸이 경직되었다. 가위에 눌릴 때처럼 의식이 또렷한데도 숨만 헐떡거릴 수 있을 뿐 꼼짝할 수가 없었다. 마비 증상은 15분간 이서의 몸을 집어삼켜 지속되더니 서서히 사라졌다. 그 순간에 알았다. 그날 성폭행을 당하던 시간이 15분간이었다는 것을.

"선생님, 아무리 입을 열어 말하려고 해도 목소리도 안 나오고 온몸을 꼼짝할 수가 없었어요. 왜 이런 증상이 나타난 거죠?"

"사건이 있던 날 밤으로 돌아가 그 순간의 기억을 온전히 몸으로 경험했기 때문이에요.
힘들었죠? 이제 기억을 직면했으니 새벽에 갑자기 눈이 떠지거나 호흡곤란 증상은 더 이상 겪지 않을 거예요."

원인 모를 신체적 증상과 기억을 잃었던 이유들도 분노 직면 작업을 통해 설명되었다.

처음 기억이 올라왔을 때 이서가 유체 이탈을 한 듯 떨어져서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던 건 '이인증'이었다. 심각한 외상을 경험할 때 자기 자신, 경험, 신체로부터 이탈한 것 같이 느끼는 증상이다. 그날 이후 모든 기억을 잃은 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후유증인 '해리성 기억상실'로 외상 사건의 일부분 혹은 중요한 세부 사항을 기억하지 못하는 증상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상담 선생님은 해리성 기억상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서가 애착 형성의 결정적 시기인 24개월 이전에 지속적으로 탁아소에서 학대에 시달렸는 데다가 5학년 때 이미 충격으로 해리성 기억상실을 경험해 본 것에 원인이 있다고 했다. 감당할 수 없는 충격적인 상황에 정서적, 신체적으로 압도되자 몸과 마음으로부터 기억이 해리되는 현상으로 이서 자신을 보호했다고 설명했다. 이서는 생존하기 위해 기억을 삭제한 대신 20년이 넘는 시간을 불면증과 우울감, 자살 충동에 시달리며 멈춰진 시간에 머물러 있었다.

이서의 이야기는 이렇게 기록되었다. 지난 20년의 원고 작업을 진행하면서 이서는 분노 직면 작업 때처럼 또 다른 놀라운 경험을 했다. 6장 내용인 1989년 6월을 기록할 때 생리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자궁선종을 치료하기 위해 자궁 내 피임장치를 시술했기에 평소 생리 양은 아주 적은 편이었다. 삽입형 생리대를 한 상태에서 가장 두꺼운 패드를 대고 있는데도 침대가 흠뻑 젖을 만큼 피가 쏟아졌다.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증상이었지만, 신체화 증상은 과거의 기억으로 인해 유발된다는 걸 이미 여러 번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이서는 배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왜 이러는지 내가 알고 있어. 이제 괜찮아. 그 일은 다 지나갔어"

이서가 인지하는 순간, 피가 멎기 시작했다. 1989년 6월 21일, 그날이 바로 성폭행을 당했던 날이었다. 기말고사 마지막 날인 건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날짜는 몰랐던 이서는 증상을 통해 사건이 벌어진 날짜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이서의 증상은 외상 사건을 경험했던 시점 전후로 증상들이 더욱 빈번하고 강력하게 나타나는 '기념일 반응'이었다. 외상 사건이 발생한 지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지속될 수 있다고 한다.

처음 성폭력상담소를 찾아갔을 때 이서가 가장 두려워했던 건 과연 사람들이 그녀의 말을 믿어줄까 하는 부분이었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조차도 돌아가며 이서에게 미쳤다고 했지만, 기억 직면 작업을 진행하며 드러나는 증상들은 그 일이 실제로 있었음을 증명해주었다. 증거도, 기억도 사라졌지만, 이서의 몸만은 그 증거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상담사는 이서의 말을 믿는다고 했다.

"저는 이서 씨 말을 믿어요.
친족 성폭력의 경우 대부분 아버지나 오빠가 가해자고 딸이나 여동생이 피해자인 경우를 생각하지만 의외로 어머니의 가해 행위를 호소하는 남성 피해자가 많아요. 차이가 있다면 이런 피해자들의 경우 상담소를 직접 찾아오거나 대면 상담을 요청하기보다는 전화로 피해를 호소하세요. 자신을 낳아주고 돌봐준 어머니가 가해자임을 고발하는데 마음에 부담을 느끼는 거죠."

"그리고 흔히 쓰는 '근친상간'이라는 말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표현이에요. 서로의 합의 하에 이뤄진 관계가 아니니 '근친강간'이 정확한 용어인 거죠."

원고 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 상담 선생님은 다시 이서에게 1989년 6월의 기억을 직면하는 작업을 하자고 제안했다.

"이서 씨, 원고를 쓰기 전에 했던 기억 직면 작업을 다시 해볼까요? 원고를 쓰는 건 다시 상처를 건드리는 일이니 이서 씨가 그걸 감당할 준비가 되었는지 확인해 봤으면 해요."
"네. 선생님, 다시 해볼게요."

쉰네 살의 이서는 다시 상담 선생님을 마주 보고 사건이 벌어졌던 그 집을 찾아갔다. 이서는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위에는 스물두 살의 이서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고 있었다. 어른 이서는 어린 이서에게 말했다.

"이서야, 이제 이 방 밖으로 나가자. 내가 너와 같이 있을게. 여기서 나가자."

"아뇨. 저는 아직은 더 울고 싶어요. 충분히 울지 못했어요. 지금은 이 방에서 나갈 수가 없어요. 움직일 수가 없어요."

이미 모든 기억이 올라온 상태에서도 스물둘의 이서는 그 방을 나설 수가 없었다.

원고를 마무리한 후 이서는 다시 기억 직면 작업을 진행했다. 이서는 그날로 돌아가 대문을 열고 현관을 지나 계단을 올라서 방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스물둘의 이서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고 있었다.

"이서야, 이제는 밖으로 나갈 수 있겠지? 겁내지 마. 네 곁에는 내가 있어. 너는 혼자가 아니야.
그때는 내가 너무 어리고 약해서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아니야. 니가 원한다면 이 방 밖으로 나가면 돼.
아무도 우리를 막을 수 없어."

어른 이서는 이번에는 이불을 걷고 울고 있던 어린 이서의 손을 잡고 방을 나섰다. 어린 이서가 따라나섰다. 문밖에는 지숙과 영수가 있었다.

"어디를 가는 거야? 이서는 놓고 가.
이 방 밖으로 아니 이 집 밖으로 아무도 나갈 수 없어!"

영수가 막아서고 지숙이 붙잡았지만 어른 이서는 영수를 밀치고 지숙을 뿌리치며 어린 이서와 함께 집을 나왔다. 둘은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을 지나 드디어 길 위에 섰다. 그리고 함께 힘껏 달렸다. 더 이상 그 집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숨이 차게 달려서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섰다. 드디어 모든 게 끝이 났다.

힘들었던 과거의 기억도, 원고 작업도 모두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치유되지 않는 상처가 있다는 걸 이제는 받아들인다. 이서는 자신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고 깊은 고통 속에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래서 슬픔이 남아있다면 굳이 빨리 벗어나려고 애쓰지 않기로 했다. 이서는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한 발 떨어져서 정확한 문장으로 기록함으로써 개인적 사건을 객관적 사실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글을 쓰기 전에는 피해자였지만 기록을 한 후에야 이서 삶의 증인이 되고 생존자가 되었다. 그 일을 기록함으로써 이서는 드디어 스스로에 대한 비난과 자책을 멈추고 온전히 자신을 수용하게 되었다.

직계가족에게 성폭력을 당한다는 건 자신이 딛고 있던 땅이 떨어져 나가는 걸 지켜보는 경험이다. 디딜 땅이 없는 세상의 끝에서 절벽에 매달려 삶을 이어가야 하는 과정이다. 가족이 가해자가 되고 방관자가 되는 건 그 누가 짐작하려 애써도 그 아픔에 도저히 닿지 못하는 고통일 것이다. 시간이 아무리 흐른다 해도 이서의 상처는 아물지 않을 것이고, 그 시간마저도 그날 이후 멈춰버렸다. 그 속에 서 있는 이서가 다시 시간을 돌리며 현재를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생존자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다. 절벽에 매달려 살려달라고 소리를 칠 때 이서의 부모는 손가락 하나하나를 떼어내 그녀를 떨어뜨렸다. 하지만 이서를 지켜준 지인들과 상담 선생님이 있었기에 그녀는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서는 [오이디푸스 패밀리]를 시작으로 생존자로서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이서의 글이 누군가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줄 수 있다면, 이서는 글을 쓰는 일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과 마주하고 통과해왔던 그녀의 길에서 다른 사람의 상처와 연결되고 만나서로를 위로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서의 글을 통해 누군가는 죽고 싶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볼 것이며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도 빛을 찾아 계속 걸을 것이다. 이서도 그 길을 함께 걸을 것이다.

생존자의 목소리 이미지
긴 여정을 마무리하며 이서는 뒤를 돌아본다. 한 문장, 한 단락을 지날 때마다 매 순간 다시 상처가 벌어져 고통스러울 때도 있었다. 이제 이서는 그 상처가 자신의 한 조각임을 안다. 상처와 그늘도 품은 이서가 여기 서 있다.

*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임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