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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진 '낙태죄'도 다시 보자, 모두에게 안전한 임신중지를 보장할 수 있도록!
  • 앎 | 성문화운동팀 활동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3년, '낙태죄' 폐지 후 1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임신중지에 대한 논의가 '중지'된 지금, 모두의 안전한 삶을 위한 투쟁은 계속 되어야 합니다.

상담소에서 활동한 지 어느새 5년, 재충전 휴가를 사용하여 미국에 있는 할머니 댁에 다녀왔습니다. 입사 후 처음 만나는 할머니와 이모에게 제가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하면서 가장 침 튀기며 소개한 활동은 바로 '낙태죄' 폐지 운동! 우리의 운동으로 형법상 '낙태죄'는 67년 만에 법적 효력을 잃었고, 한국은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임신중지 비범죄화를 이룬 국가가 되었다고 자랑했지요. 저는 '낙태죄'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했다는 이유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아서 현재 헌법소원을 진행하고 있다는 허세 가득한 에피소드까지 곁들여서 말이에요.

할머니와 이모가 거주하는 텍사스주는 미국에서 가장 엄격한 '임신중지규제법'을 시행하고 있어서 특히 할 말이 많았습니다. 미국은 1973년 연방대법원이 선고한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에 따라 '태아가 자궁 밖에서 스스로 생존 가능한 시기에 이르기 전에는 어떤 이유에서든 임신중지를 할 권리가 있다'라고 인정해왔습니다. 임신중지를 헌법상의 권리로 보장하되 주수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한 판결이었죠. 일부 보수적인 주에서는 의료 기술 발달 등을 근거로 제한 시기를 점차 앞당겼고, 현재는 20주~25주부터 임신중지를 규제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텍사스주는 2021년 9월 의료인이 태아의 심장박동을 확인한 뒤에는 어떤 경우에도 임신중지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는 이른바 '심장박동법'을 제정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임신 6주부터 태아의 심장박동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하니, 사실상 임신중지를 전면 금지하는 법이지요.

"임신중지를 처벌하는 대신 어려운 조건을 달고 접근성을 낮춰서 임신중지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어." — 이모에게 들은 말

미국에서 산책하다 우연히 지나친 어느 집 마당에는 ('심장박동법'을 통과시킨) 현 텍사스주지사에 반대한다는 현수막 등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왔더니 웬걸, '불법 낙태약'이 문제라는 언론 보도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의료기관에서 임신중지 시술을 거부당한 20대 여성이 불법 유통되는 유산 유도제를 사 먹고 조기 출산한 아이를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되었다는 기사였습니다. 언론은 마치 '불법 낙태약' 때문에 '영아살해죄'가 일어난 것처럼 사건을 자극적으로 묘사했습니다. 오히려 저는 그 여성이 임신 후기에 임신중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의료기관이 임신중지 시술을 거부할 때 당사자에게 어떤 대안이 있는지, 식약처는 왜 아직도 유산 유도제 승인을 미루고 있는지, 후기 임신중지를 하는 경우 '살인죄'나 '영아살해죄'를 적용하는 사례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인지 등이 궁금했습니다. 답답하고, 화가 나고, 안타까웠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지난 4월 10일 일요일 오후 2시 서울 보신각 앞에서 낙태죄 폐지 1년 4.10 공동행동 <모두에게 안전한 임신중지가 보장될 때까지>가 열렸습니다.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불합치를 선고한 지 3년, 낙태죄가 법적 효력을 잃은 지 1년이 지나가는 시점에서 우리가 연대와 투쟁으로 만들어낸 역사적 성취를 함께 기념하고 다시 한번 성과 재생산 권리 보장을 위한 과제들을 짚는 대중 집회였습니다.

파아란 하늘 아래 햇살이 하얗게 부서지는 일요일 봄날. 참여자들의 자유 발언과 싱어송라이터 예람 님의 지지 공연, <진짜 임신중지쏭>, <우리 모두 다같이> 등 다양한 개사곡과 함께하는 행진 등이 이어졌습니다. 사회를 맡은 저는 무대에서 색색의 피켓을 든 이백여 명의 참여자들을 마주 볼 수 있었습니다. 한 참여자께서 구호 앞에 책임 주체를 명확하게 밝혔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셔서 이를 반영하여 다 같이 힘차게 구호를 외쳤습니다.

(식약처는) "유산 유도제 즉각 승인하라!"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은) "임신중지를 건강보험으로 보장하라!"

(국회는) "성·재생산 권리보장법 만들어라!"

(정부는) "모두에게 안전한 임신중지 보장하라!"

얼마 후, 미국에서는 연방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을 예정이라며 판결문 초안이 유출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보수적인 연방대법관이 다수 임용된 상황에서 텍사스주처럼 엄격한 '임신중지규제법'을 제정한 후 법적 다툼에 부치는 사례가 늘어났고, 그 결과 연방대법원은 임신중지 권리를 보장해온 기존 판례를 무효화할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이미 미국 13개 주에서는 이른바 '방아쇠 법'을 제정하여 지금은 효력이 없지만 '로 대 웨이드' 판결이 폐기되면 즉각 효력이 발생하는 '임신중지금지법'을 마련해두고 있습니다.1

단순히 '낙태죄'가 효력을 잃은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되며, 모두에게 안전한 임신중지를 권리로써 보장하는 법과 제도와 사회 인식을 마련하고 또 유지하기 위해 계속 투쟁해야 한다는 것을 해외 사례를 보며 체감했습니다. 한국도 '낙태죄'를 되살리거나 임신중지 접근성을 낮추려는 입법 시도가 이어질 수 있습니다. 백래시를 막고 성·재생산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도 함께 목소리를 내어주시기를 바랍니다.

1 6월 24일, 연방대법원은 '로 대 웨이드' 사건 판례를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본 원고는 폐기 결정 전에 작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