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운동 이후 다섯 번째 여름을 맞아 상담소는 미투운동의 현재적 의미와 쟁점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5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제도적, 문화적으로 많은 변화들을 경험했지만 여전히 가해자 중심적이고 퇴행적인 담론들을 우리는 마주하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두 번의 선거를 지나며 미투운동 그리고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이 심각한 수준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작년 8월에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출소, 7월에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2주기가 있었고, 다른 미투운동 가해자들의 법적 처벌 기간이 만료하는 복귀의 시점에서, 상담소는 과연 주변인과 공동체가 어떤 준비를 해왔을지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더불어 함께 논의하고 싶은 쟁점들도 있었습니다. 2018년 이후 성폭력에 대해서 문제제기하는 것 자체를 탄핵하는 양상이 더욱 격렬해졌고, 성폭력을 부정하기 위해 들어가는 자원의 양도 커졌습니다. 동시에 2차피해 개념과 같은 반성폭력의 용어들이 이전보다 대중화되었지만 이를 통해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어떤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는지 고민을 나눠 보아야할 필요 속에 논의의 장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 내내 지지와 연대의 언어가 풍성하게 살아있었는데 그중에서 저에게 가장 인상 깊게 남아있는 부분을 설명해 보려 합니다.1

일상을 거꾸로 세우기, 다른 지금을 살아가기
미투운동의 잘 알려진 구호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에서 일상회복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미처 담지 못하는 피해자의 싸움의 내용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정의당 장혜영 의원님은 "피해자는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일상이 없다"라며 이는 "미투운동은 기득권과의 싸움이고, 기득권 위에 구조화된 것이 나의 일상이었기 때문"이라고 발언했습니다. 가해자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문화적 기득권이 가해 구조의 핵심이고 부당한 권력사용에 대해서 자신의 존엄을 선언하며 맞서는 것이 피해자의 싸움이라면, 폭력의 구조 속에 조직되어 있었던 일상을 새롭게 창조해야 하는 과제가 피해자 앞에 놓이게 되는 것이죠.
충북스쿨미투연대의 주연님은 자신의 경험 속에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다른 지금을 살자"라는 선택을 하기까지의 고민을 들려주었습니다. "가해자만 쏙 빠진" 일상을 바라왔지만 폭력의 구조를 알아버린 나의 관계와 생활이 결코 이전과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인권운동사랑방 미류 활동가가 상담소의 다른 토론회에서 "차별받는 사람들의 말하기, 피해자의 말하기는 차별의 구조 때문에 온 세계를 거꾸로 세워야 하는 일"이고, 이 작업을 '아무도 이와 같은 폭력을 경험해서는 안 돼'라는 생각을 공유하는 주변인, 동료들과 함께 해 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게 떠올랐어요.1 주연님도 스쿨미투지지모임이라는 새로운 관계를 통해 그 시간을 버텨내며 새로운 일상을 짓는 과제를 해나가고 계셨고, 장혜영 의원님의 "피해자의 용기에 대한 확장"도 공동체가 함께 발명하는 하나의 이야기로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공동체' 구체적으로 사유하기
피해자가 일상을 새롭게 구성하는데 공동체가 중요하다면, 책임 있는 공동체는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 연극계 내 반성폭력 운동을 지속해오고 있는 이산님은 공동체란 무엇인지 질문이 선행되어야 한다며, 특히 이해관계망으로서 공동체를 전제하며 성폭력 사건의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해 주신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공동체가 자원을 여러 요인에 따라 차등적으로 배분해왔고, 서열에 포함되기 위해 소수자를 타자화하고 착취해온 역사를 함께 돌아보는 경험이 없다면 공동체의 이익 추구는 차별과 폭력을 전제할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공동체의 환경 자체를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피해자에 대한 공감은 이해관계의 울타리를 넘기 어렵고, 가해자는 공동체와 분리되었던 시간을 권력으로 보상받으려 하기 쉽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이해관계망에 연루된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세심하고 다양하게 고민할 필요성을 나눠주었습니다. 연루된다는 것이 현실에서는 의도적으로 비윤리적 행위를 하는 것이기 보다 피해자에게 힘을 보탤 수 있는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을 때, 부채감이나 자책감으로 위축되기보다 책임을 나눠가질 수 있는 주변인의 구체적 역할들이 더욱 알려질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는 금속노조 부위원장 권수정님의 말 속에서도 이어지는 문제의식이라고 생각했는데요. 피해자가 피해 이후에도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는 결국 "네가 하는 말이 맞아" 하는 것이 말 또는 행동으로 집단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환경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 속에서 선명하게 들려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집단적 표현의 방식을 어떻게 매뉴얼 등을 통해 교육하고 알려나갈지 고민하고 있다는 소식에서 든든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미투운동 중간결산'
올해 상담소가 미투운동 중간결산의 자리를 연다고 들었을 때,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던 것 같아요. 미투운동 당시 학생으로서 뉴스 등을 통해 미투운동의 개별 사건들을 접했었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저 역시 커다란 무게를 가진 이야기가 공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장면에 기대되는 한편 중요한 싸움인 만큼 개별 사건마다 피해생존자와 지원자들이 얼마나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걱정도 되고, 생존자들의 목소리가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문화와 제도 등의 변화로 연결될 수 있을지 긴장이 되었던 것 같아요. 기획팀 활동을 하면서 '미투운동가'로서 그 시간을 통과해온 사람들의 이야기, 여전히 싸우고 있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질문들을 확인하면서 연루된 주변인들의 역할, 일상을 새롭게 짓는 피해자의 여정에 함께하는 방법 등 미투운동의 의미를 새롭게 이해하고, 고민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보는 회원분들에게도 미투운동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떠올려보고, 미투운동의 무게를 소화하고, 어떤 말을 보태어 보고 싶은지 고민해 보는 시간 — 미투운동 중간결산 — 이 마련된다면 지금 여기에서 미투운동이 어떻게 존재하는지 드러내려고 했던 기획팀으로서는 더없이 기쁜 일이 될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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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로서 연대의 광장 만들기_사회운동만들기, 연대하기 (2021.7.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