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작년 11월을 기억한다. '죽은 자가 돌아왔다'는 슬로건을 걸고 진행했던 제1회 친족성폭력피해자 생존기념축제. 축제에 사용할 가면을 함께 만들고, 축제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해나가면서 살아있음을 느꼈다.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광화문에 모여서 1인 시위를 하며 얼굴을 익혔던 사람들과 가까워졌고 마침내 우리가 해냈다는 마음으로 벅차올랐다. 이 소중한 기억은 지난 1년 동안 일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계속 떠오르면서 나에게 힘을 주었고, 올해의 축제를 또다시 기다리게 했다.
그렇게 1년을 기다렸는데 아뿔싸, 축제 기획을 앞두고 나는 일과 건강 등 여러 가지 문제로 몸과 마음이 완전히 소진되어 버렸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상실감에 기획회의 카톡방을 빠져나왔지만 작년, 제1회 친족성폭력피해자 생존기념축제를 함께 하자고 처음 손을 내밀었던 푸른나비님이 올해도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부담가지지 않고, 이번에도 즐겁게 함께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말로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래, 1년 동안 기다렸던 우리의 축제인데 여기서 멈출 수 없다!
제2회 친족성폭력피해자 생존기념축제는 다시 살아 돌아온 자들의 힘을 보여줄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죽음과도 같은 삶을 버텨내고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존재들을 축복할 수 있도록, 생존을 '자랑'할 수 있는 장이자 '생존자랑' 연대자가 함께하는 소통의 장을 만들고 싶었다.
기획 회의, 집회 장소 선정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많은 인원이 생존자랑대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광화문 광장을 생존자랑대회의 시작장소로 선정하고 사용 허가를 신청했으나, 서울시가 이를 반려한 것이다. 광화문 광장에서 집회할 자유를 보장해주지 않는 서울시로 인하여 장소를 보신각으로 옮겨야 했다. 그러나 멈추지 않는 열정으로 기획단은 생존자랑대회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을 쏟아냈다. 퍼포먼스와 행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고, 집회의 아이돌 이랑님을 공연에 섭외하고, 연대 단체의 네트워크를 늘려나갔다. 집회 전에 함께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모여 참여자들이 사용할 가면을 꾸미는 일은 올해도 즐거웠다.
단막극 퍼포먼스는 푸른나비님의 의견이었고, 하윤님과 내가 함께하기로 했다. 우리는 따로 단톡방과 화상회의를 열어가며 퍼포먼스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퍼포먼스에는 폭력과 2차 가해로 고통받고 있지만 두 발로 세상을 버티고, 서로의 존재를 발견하며, 혼자가 아님을 깨닫고, 지지와 연대의 말들로 내면의 더 강한 힘을 발견하는, 마침내 우리는 모두 함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싶었다. 퍼포먼스 안에 폭력과 생존과 연대를 어떻게 상징적으로 표현할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계속 오고 갔다. 그 과정에서 내레이션을 해줄 집회장인 앎님을 퍼포먼스 팀에 섭외했다.
폭력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야 할까? 물감이 담긴 물풍선? 다트 던지기? 끈 묶기? 위험하고 트라우마가 남는 것은 안 된다. 하지만 사람마다 두려운 감정을 느끼게 하는 물건도 각자 달랐다. 우리는 계속해서 고민해야 했다. 시각적으로 잘 보이지만 안전한 것을 선택해야 했다. 그렇게 선택된 것이 빨간 두꺼운 끈이었다. 열심히 준비한 만큼 공연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생존자랑대회가 열리는 날이 기다려졌다.

2022년 10월 29일, 드디어 제2회 친족성폭력피해자생존기념축제-생존자랑대회가 열렸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온도와 맑은 하늘을 보며 집회하기 딱 좋은 날씨 같다는 생각이 들어 설레었다.
도착한 보신각에는 우리 이전에 집회를 진행하는 사람들이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들의 일부는 연대와 응원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며 지나갔고, 누군가는 우리를 뚫어지게 쳐다보기도 했고, 몇몇은 2차 가해가 섞인 말과 질문을 하기도 했다. 뭐가 저리도 궁금할까. 언제쯤 이런 시선과 무례한 행동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민지님과 지안님. 일명 민지안 듀오의 유쾌한 사회로 생존자랑대회가 시작되었다. 영서님의 환영의 말과 생존자와 연대자들의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단막극 퍼포먼스에서는 2차 가해의 언어들이 나열되는 동안 생존자역의 퍼포먼서들은 끈이 묶여진 채로 온 몸으로 괴로움을 표현했다. 관객들이 지지와 연대의 말을 시작하자, 퍼포먼서들은 자신의 힘으로 몸을 옭아매고 있던 끈을 풀어내고, 서로를 마주보며 연대하고, 자신의 힘을 발견해낸다.
그들은 관객 안으로 들어온다. 아무도 그들과 관객을 구분할 수 없다. 연대의 마음으로 서로를 연결했다. 우리가 함께 있다. 그 생각 하나만으로 벅차올랐다.
혼자 느낀 벅참이 아니었으리라. 서로가 연결된 순간을 마음속으로 간직하고 행진을 시작했다. '가정폭력 성폭력 일상의 폭력이다. 피해자 잘못이 아니다. 가해자의 범죄다.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하라.' 행진 구호가 거리에 힘차게 울려 퍼졌다.
참여자들은 도돌이표처럼 함께 행진구호를 이어나갔다. 광화문 근처의 주말 거리를 즐기던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행진을 눈으로 보고, 우리가 외친 구호를 들었다. 삼청동 거리에서는 박수를 치고, 손을 흔들며 응원의 눈빛을 보내주신 분들도 계셨다. 옆에서 함께 걷고 있던 참여자가 유쾌하게 말을 걸어왔다. "정말 집회하기 좋은 날 아니에요?"
행진 중간에 개인적인 위기가 한번 찾아왔다. 몸이 갑자기 안 좋아진 것이다. 아픈 배를 부여잡고 어떡하지 고민하는데, 같이 참여한 활동가가 확성기를 대신 들고 힘차게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서로 돕고, 함께 싸운다는 말이 무엇인지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든든한 마음으로 확성기를 맡기고 걸어가는 동안 다행히 몸도 회복되었다.
생존자랑대회를 시작했던 보신각에 다시 모여, 마무리집회를 열었다. 미처 다 하지 못했던 자유발언이 다시 이어졌고, 이랑님이 연대공연을 해주셨다. '생존자가 나타났다!' 모두 노래에 맞춰 신나고 힘차게 외치며 마지막까지 함께 즐겼다. 내년 제3회 친족성폭력피해자 생존기념축제가 열릴 때까지 나는 이 기억으로 또다시 1년을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얼마 전 여성폭력 추방주간에 여성가족부에서 발표한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에서는 '여성폭력'이라는 단어가 삭제되고 '폭력'으로 변경되었다. 성평등을 위해 힘써왔던 그간의 노력들이 지워진 기분이었다. 정상가족이라는 틀을 강화하고, 여성폭력을 없었던 것처럼 지우려는 정부의 태도에 분노하는데 문득, 머릿속에 울분에 휩싸인, 살아있고 강렬한 눈빛들이 그려졌다. "우리를 지우려고 해? 우린 다시는 죽지 않아" 외치는 소리가 귀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존재하는 폭력과 피해를 지우려 들면 그 피해는 더 커지고, 회복되기 어렵다. 사람을 죽게 만드는 일이다. 우리는 이러한 가부장제 구조 안에서 버티며 지금껏 살아냈다. 우리는 생존자이며 연대자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피해와 부당함에 대해서 목소리 높여 분노하고, 함께 아파하며, 끝을 알 수 없는 이 긴 싸움에 지치지 않기 위해 서로를 보듬으며 울고 웃어야 한다. 내년에도 죽음에서 돌아온 우리들이 생존을 자랑하고, 함께 하기 위한 축제가 꼭 열리길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