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할 수 없지만, 이야기를 말로 해보는 게 왠지 도움이 되더라"
2021년, 오랜만에 아무일 없었던 듯 잘 지냈습니다. 주방에서 근무하며 빠르게 손을 움직이고 있으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2022년부터는 찰나의 틈새를 비집고 덮어놓았던 감정들이 불쑥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동료들과 웃다 말고 뒤돌아서서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한계가 느껴지던 2022년 초여름, 인스타에서 평소 좋아하던 은유 작가님과의 글쓰기 수업 공지를 발견했습니다. 무작정 신청서 적어내고, 뒤늦게 날짜와 시간을 확인하다보니 공지글은 무려 "1분 전 업로드"라고 된거더군요. (그저 조상님이 도왔다고 밖에…)
그렇게 저와 한국성폭력상담소와의 첫 인연이 이어졌습니다. '치유적 글쓰기' 수업은 마냥 쉬운 경험은 아니었지만, 신기하고 낯선 감각이 압도적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미처 언어화하지 못한 채, 엉키고 눌러붙은 슬픔과 혼란. 처음으로 작정하고 건드려보았습니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은유 작가님과 모두의 노력으로 안전한 관계망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글이 자극이 되어 "더 안으로, 더 명료하게" 뻗어나가며 글이 성장하는 것을 함께 지켜보았습니다.
'여기까지 말해도 될까?' / '내가 이런 마음이었구나.' / '저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 '어쩜 내 마음과 똑같을까?' / '나 혼자 저러는게 아니었구나.'
수업이 끝날 때즈음, 한 분이 '집단상담' 경험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자신의 피해사실을 말로 털어놓은 경험,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요. 시간이 흘러 퇴사를 앞둔 가을, 한국성폭력상담소 인스타그램에서 '집단상담' 모집글이 올라왔습니다. 마음이 반짝였습니다. '집단상담은 얼마나 해방감을 줄까… 6주도 좋았는데, 10주 과정은 어떨까…'
이 낯선 감정을 따라가보고 싶어
6주간 글쓰기모임 덕분에 처음 느낀 안정감, 동료애는 낯선 것이었고 저의 희망이자 북극성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2011년의 피해사실을 오랜 시간 비밀로 하고 지냈습니다. 8년이 지나, 겨우 털어놓았을 때에는 조롱당하고 공격당해서 더 큰 트라우마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비밀을 가지고 사는 것에는 많은 에너지가 들었습니다. 게다가 생각지 못한 부작용도 있었습니다. 비밀을 지키려다보니,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마음에 벽을 세워야 했습니다. 피해 이후에 더더욱 필요한 온기/사랑/공감의 기회를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11년만에 안전함과 연결감이라는 감각을 느꼈으니, 그 감정을 따라가보고 싶은 마음이 오죽했겠습니까. 하지만 …
'혹시 트리거로 더 상태가 나빠지면 어쩌지?' / '나에게도 도움이 되라는 보장이 있나? 시간 낭비는 아닐까? 지금 돈을 벌고 토대를 꾸리는데 총력을 다해도 모자란데. 나는 이미 많이 뒤쳐졌잖아…' / '내가 자주 멍해지는 것 때문에 집중을 못하면 어떻게 하지? 다른 사람에게 상처주는 말을 하면 어쩌지?'
몇 주씩 계속 결정을 미루는데, 1자리인가 남았다는 공지가 뜨는게 아니겠어요? 못 이기는 척, 운명에 몸을 맡겨보기로 했습니다.
다정한 약속, 화요일마다 서로에게 귀기울이기로 해
지나고보니 집단상담의 전체적 분위기는, 모임을 이끌어주시는 '라다'님의 헤어스타일과 꼭 닮았습니다. 자유롭고 풍성한 히피펌이 "유연하고 창의적이고 다정하지만 결코 불의에 굴복하지 않을 것 같은" 그 마음결을 닮았습니다. 그 마음이 10주 내내 모두를 감싸 안아준다고 느꼈습니다. 라다님과 활동가 감이님, 그리고 피해경험이 있는 7명은 한 주가 지날 때마다, 특히 3주차부터 부쩍 친밀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모임은 보통 그동안 어찌 지냈는지 안부를 물으며 시작됩니다. 이때 마더피스 타로카드를 활용하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 마음을 열고 감정의 경계를 내리는 데에 아주 탁월한 도구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라다님의 가이드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마음을 털어놓습니다.
말하는 당사자는 막상 무덤덤한 표정일 때도 있습니다. 자책과 불안, 두려움이 뒤섞여 겨우겨우 말을 이어가기도 합니다. 귀를 기울이다보면… '우리'는 어쩐지 혼자일 때보다, 더 현명해지고 더 명료해지고 무엇보다 당당해졌습니다.
말하는 사람이 미처 분노하지 못하는 지점에서 대신 분노했습니다. 넓은 홀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욕지거리를 내뱉었습니다. 화가 나서, 억울해서, 안타까워서, 기가 막혀서. 눈시울이 시뻘개지고, 척추부터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형편없는 사법제도, 비겁한 일부 산부인과 의사의 만행, 그리고 무엇보다 그 새끼와 그 새끼를 두둔하는 년들과 놈들…!!
마음 속에서 맴돌던 이야기에 비로소 소리가 붙고, 나보다 나를 더 믿고 들어주는 귀들이 기다려줍니다. 서로 귀기울이는 만큼. 우리의 상처는 '사실'이 되었습니다. 귀기울이는 만큼, 우리의 상처는 선명해졌습니다. 선명해진 상처가 더 아픈 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나의 진실에 귀 기울이지 않을 때, 그때의 미쳐도는 고통보다 훨씬 나았습니다. 선명해진 상처만큼, 딱 그만큼씩 스스로를 바르게 볼 수 있었습니다.
앞길이 창창한 남자 인생을 망치려는 꽃뱀? 아니고 생존자.
남탓만 하는 피해자 코스프레? 아니고 생존자.
예민해서 유난떠는 거? 아니고 생존자.
화요일에 태어난 아홉 생존자들.
어쩌면 치유란 SF를 닮았을지도 모르겠어
언제쯤 인류는 마음의 회복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대처할 수 있을까요? 집단상담 중 일어난 일은, 제 상식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몸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낫기도 하고, 연고를 바르거나 침을 놓거나 수술 등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참 어렵더군요. 게다가 참 비싸더군요. 그래서 그냥 외면하고 묻어두게 되는가 봅니다.
그날은 유독 과묵했던 집단상담 동료가 이야기를 했던 날입니다. 도무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피해경험담이 이어졌습니다. 침도 못 삼키고 숨을 죽이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 안에서는 거칠게 수많은 감정(감동, 경악, 분노)이 들끓었습니다. 한참 숨을 고르고 겨우 입을 열었습니다. 부족한 문장이지만 진심을 담았습니다.
"A씨 잘못 하나도 없어요. A씨는 강한 사람이에요. 살아줘서 고마워요."
그 순간, 제 기억 중 하나가 떠오르더니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졌습니다. 마치 SF(공상과학) 영화의 단골소재인 '시간여행'이라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주 오래전, 대학교 상담실로 돌아갔습니다. 피해 직후에 얼결에 겪은 일을 털어놓았던 순간입니다. 서로 어찌나 당황했던지요. 수련생이던 상담사 선생님이 온 힘을 담아 제게 말했습니다.
"0씨 잘못 하나도 없어요. 0씨는 강한 사람이에요. 살아줘서 고마워요."
이후 6개월간, 상담사가 고집스럽게 들려주었던 그 말을 제가 했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내내 그 말을 거부했습니다. 무려 10년이 지나도록 그 문장들을 마음에 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동료의 이야기를 듣고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더라고요, 그 문장들 밖에는.
진심으로 그 문장에 온 체중을 얹던 그 순간, 비로소 그 문장이 제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그녀가 왜 그렇게 열심히 제게 그 말을 해줬는지, 그 마음을 이해했습니다. 상상인지 기억인지 속에서 전과 달리 그녀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우리는 둘 다 미소를 지었습니다.
다시 돌아온 현실에서 제 앞의 동료는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녀에게도 그 문장이 진짜 마음에 들어가기까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0년 넘게 제 주위를 그 문장이 떠돌고 있었을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언제든 필요할 때, 마음 깊이 들어와서 치유해 주려고 말이죠. 그날 헤어지면서 그 동료를 말없이 꼬옥 안아주었습니다. 이 포옹의 따스함과 아까의 문장이 그녀의 수호천사처럼 그녀 주변에 머물기를 바라면서요. 알맞은 때에 그녀의 마음 깊숙이 들어가기를.
10년의 시공간을 뛰어넘은 SF같은 치유의 순간. 그 순간을 만든 건, '라다'님과 활동가 감이님의 지극히 현실적인 노력 덕분이더군요. (라다님의 노련함, 감이님이 매주 준비한 다양한 간식과 마지막 주의 생화와 케이크… 그 현실노력!) 이 아이러니를 깨달은 건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였습니다. 인류가 마음을 정복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치유의 순간을 기획하는 그녀들 보다 더 공상과학 같은 존재가 있을까! (요즘같은 정치시국에 말이죠~할말하않)
친구라는 징검다리를 통해 세상으로
마지막 시간, '라다'님이 오라클카드를 한장씩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때 제가 뽑은 카드는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상담 동료들을 포함해) 많은 친구들이 생겼습니다.
저는 집단상담을 통해 대화의 치유력을 깊게 느꼈습니다. 그래서 '대화카드 모더레이터' 과정을 들었습니다. 다양한 기질의 대화 친구들과의 교류를 안전하게 연습하고 있습니다. 또 스스로를 치유하려고 해온 독서와 글쓰기를 수업으로 해줄 수 있느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청소년 성교육 활동가로서 교육도 수료했습니다. "성과 성폭력"이라는 주제는 이제 제게 트라우마만을 뜻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화친구, 치유적독서/글쓰기친구, 성교육활동가친구 등등!
너무 자랑을 늘어놓았네요. 기특해서요. 제 자신이요. 여전히 웅크리고 누워있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날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과 달리 그런 자신에게 다정해졌습니다. 희망을 자주 느낍니다.
예전에 제가 사는 세상은 흑과 백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고통뿐인 저의 세상이 여기 있고, 그 고통을 전혀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그들의 세상이 저 멀리 있었습니다. 지금은 멀리 떨어진 두 세상 사이에 '친구'라는 징검다리들이 놓인 것 같습니다.
이 징검다리들이 '홀로 아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닿을 수 있기를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치유와 대화의 자리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마음을 울리는 목표가 생기니 이리저리 배우고 도전하게 되네요. 언젠가 저도 생존자들을 위해 기여하고 싶어서요.
10주의 집단상담은 종결되었지만, 제 삶에는 여전히 진하게 남아 있습니다. 가족들과 심하게 싸운 날에는 동료들의 응원이 육성으로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어찌나 든든하던지요. 아, 게다가 '마더피스' 타로카드는 상담 마지막 날 당장 구매해서 독학하고 있습니다. 종종 아침저녁으로 뽑아, 제 마음을 살피는데 씁니다.
무엇보다 화요일마다 마음이 허전해졌습니다. 그래서 단톡방을 만들어 서로 안부를 묻습니다. 1~2달 마다 후속 모임을 이어나가기로 했습니다. 지난번 모임때 "대화카드"를 배워서 바로 써먹었는데, 반응이 꽤 좋았습니다. 피해 경험을 넘어서 더 깊이 연결되고 싶은, 친구들이 생겨서 연말연초 마음이 따뜻합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언젠가 당신에게 저도 도움이 되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