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를 어떻게 입증하나요?
동의 여부는 피해자 의사에 전적으로 달려있고, 합의한 성관계를 했어도 그 이후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하면 성폭력이 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있습니다. 우선, 어떤 성폭력 수사 재판에서도 피해자의 일방적 진술만으로 성폭력이 판단되지 않는다는 점을 짚어야 합니다. 대법원은 사건 경위, 피·가해자의 관계, 사건 당시와 그 후 정황 등을 종합하여 구체적인 상황을 기준으로 성폭력을 판단해야 한다고 하였고, 피고인의 진술, 주변인 진술 역시 종합적으로 고려됩니다. 특히 '성인지감수성'은 몰성적인 관점에서 오히려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워지는 성폭력 사건의 특성상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판단기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폭력 수사·재판에서 '동의'는 처음 시도되는 판단의 영역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많은 판례에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이루어졌는지를 살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동의를 번복할 자유"나 "예상하거나 동의한 범위를 넘어서는 신체접촉을 거부할 수 있음"과 같이 동의에 대한 판단지침이 될 만한 판례들이 이미 존재합니다.1
그렇지만 강간죄가 성립하려면 '폭행·협박' 수단이 입증되어야 하므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이루어졌고 동의가 없었지만 상대방의 저항을 곤란하게 하거나 현저히 불가능하게 할 만큼의 수준에 이르지 않았거나, 폭행·협박이 사용되지 않으면 재판부에 따라서 성폭력으로 인정하지 않기도 합니다.
폭행·협박 구성요건이 동의 여부로 바뀐다고 하여서 '진술'에만 의존해 성폭력을 판단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결국 성폭력 피해자의 진술에 따라 가해자가 처벌된다거나 성폭력 피해자의 말을 불신하는 사회적 통념에 근거한 우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내가 겪은 건 성폭력이 아닌 건가요?
협소한 법 때문에, 수사재판부에서 성폭력 범죄가 인정받지 못했다고 해서 내가 경험한 일이 성폭력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피해자들은 본인 의사에 반해서, 동의하지 않고 이루어진 성관계를 성폭력이라고 인식합니다. 2019년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담 사례 통계에 따르면 폭행협박 없이 이루어진 강간 피해 상담은 71.4%에 달했습니다. 이는 한국 사회의 상식이기도 합니다. 상담소가 2021년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6.7%가 동의 없이 이루어진 성관계는 성폭력이라고 응답했습니다.
성폭력의 개념과 의미는 피해자들의 말하기를 통해 계속 변화해왔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성폭력이 일어난 조건과 맥락, 성폭력 피해 경험의 의미와 피해 이후의 회복을 이야기하며 법과 상식을 다시 써가고 있습니다.
비동의강간죄 도입은 여성의 의사와 능력을 깎아내리는 것인가요?
성적자기결정권의 '행사'에만 초점을 맞추는 시각에서는 사회 구조적 불평등에서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대해서 간과하곤 합니다. 여성에 대한 사회경제적 차별, 여성이라는 이유로 마주하는 적대와 혐오, 상대방의 성적 욕망에 응해야 한다는 성적 시나리오 등은 성적 행위에서 여성의 의사가 무시되도록 하는 구조입니다. 게다가 성폭력 가해자들은 상대방이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나, 아는 사이에서 신뢰나 호의 또는 기존에 형성되었던 통제적, 일방적 관계 등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구조, 맥락, 관계를 무시하고 여성이 결정하고 선택하는 능력을 발휘하라고 하는 것은 성폭력과 성적 불평등의 사회적 문제를 보이지 않게 하고 이를 여성 개인의 능력으로 해결하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국가가 다수의 성폭력이 일어나는 양상을 묵인, 방관하는 것이야말로 약자, 소수자의 의사와 성적자기결정권이 계속해서 무시되도록 내버려 두는 셈입니다.
비동의강간죄 개정, 어떤 상황인가요?

현재 21대 국회에는 3개의 법안이 발의되어 있습니다.2 그러나 지난해 말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한 차례 논의된 이후 국회 안에서 제대로 된 논의가 진전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 사이 여성가족부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2023~2027)에서 비동의강간죄 검토 계획이 철회되었고, 지난 6월 정부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에 비동의강간죄에 대한 반대의견을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현 정부는 그동안 여성에 대한 젠더폭력이 발생하는 구조에 대한 무지를 전략적으로 택해왔고, 일부 남성 청년들의 무고 담론을 부추겨 왔습니다. 비동의강간죄는 현 정부의 백래시에 의해 막혀있는 상황입니다.

비동의강간죄 오해와 진실! 더 이상 피해자에게 얼마나 어떻게 저항했는지 묻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동료 단체들, 피해생존자들, 시민들, 회원분들과 함께 활동을 이어가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