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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된 문제, 연결된 변화 : 강간죄 개정을 위한 릴레이 의견서
  • 오매 |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우리나라 성폭력 법은 매우 촘촘하게 설계되어 있다." 현장에서도 정말 그렇게 느끼고 있을까요? '강간죄'개정을위한연대회의 7개 단위의 릴레이 의견서를 소개합니다.

2023년 2월 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류호정 정의당 국회의원에게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양성평등기본계획 3차에 결정되었던 '형법상 강간죄 개정 검토' 과제를 왜 반대하고 나섰냐는 국정질문에 대한 답 중 일부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첫째 성범죄를 처벌하는 법규 자체가 꽤 촘촘합니다. 예를 들어 아동이라든가 장애라든가 특별법으로 있고 실질적으로 동의를 요하지 않는 규정들이 굉장히 많아요. 우리나라에서 성범죄로 하는 범죄 죄명 개수가 몇 개인지 아십니까? 150개입니다. 독일은 51개, 일본은 16개입니다. 특별법으로 상당부분 비동간의 필요성을 많이 메꾸고 있다는 점이 있습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한국의 법이 성폭력 문제를 '촘촘히' 대응하고 있고, 폭행 협박을 좁게 보지 않도록 바뀐 판례변화가 긍정적이라고 말한다. 성폭력의 보호법익은 성적자기결정권이며, '동의 여부'로 성폭력 판단기준이 바뀌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라고도 한다. 그러나 피해자가 내심으로 주장하면 신고, 고소된 사람이 억울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강력한 벽을 세운다. 그리고 그것이 형사사법 절차상 '원칙'이라고 강조한다. 강간죄 판단을 '동의 여부'로 변경한 나라들은 형사사법 절차상의 기준과 절차를 재정립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 법무부 장관은 안 되는 일이라고 못 박는다. 장관이 말하는 '피해자 내심'은 피해자 의심, '억울한 피고인'은 가해자 두둔의 다른 표현 아닌가?

'강간죄'개정을위한연대회의는 '촘촘'하다고 말해지는 한국의 성폭력 관련 법이 어떤 관점을 가졌는지, 어떤 현실을 생성하는지 이야기해 보기로 했다. 7개 단체가 릴레이 의견서를 매주 발행했다. 폭행·협박이 없이 발생하는 술과 약물, 업무상 위력, 성매매/성착취/성산업, 청소년, 장애여성, 결혼/친밀한 관계, 이주여성 주제를 꼽았다. 매주 목요일 SNS, 홈페이지, 보도자료를 통해 카드뉴스와 글을 배부했다. 릴레이 의견서에 이어 성폭력 피해생존자도 글을 발표했다. 국민참여설문조사 '원치 않는 설문조사'도 함께 진행됐다. 바야흐로 법 틈에 존재하는 여성폭력 현실을 '연결된 문제'로서 말하는 것이다. '연결된 문제'들이 '연결된 변화'를 일구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① 심신상실, 항거불능을 증명하라고?
술과 약물에 의한 성폭력, 동의 여부로 바뀌어야 한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의 통계에 따르면 피해자가 잠이 들었거나 술 또는 약물에 취한 상태에서 피해가 발생한 준강간 사건의 경우 유죄 선고는 14%에 불과했다. 가해자들은 '만취 이전에 동의받았다', '(만취한 줄) 몰랐다', '이미 스킨십이 있었다.'라며 고의성을 부인하고, 수사 사법기관 역시 가해자의 진술을 근거로 판단한다. 강간을 '동의 여부'로 판단한다면 동의를 할 수 없었던 피해자 상태, 즉 잠이 들었거나 술 또는 약물에 취한 것이 범죄요건이 된다.

_ 천주교성폭력상담소

② 업무상 위력 조항이 있으니 개정은 필요 없다?
동의도 거부도 표하기 어려운 위력성폭력

일부는 업무상 위력 간음, 추행 조항이 있기 때문에 비동의강간죄는 필요 없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업무상위력에의한간음죄 고소·고발 사건은 강간죄로 고소·고발된 사건의 0.45%에 불과하다. 또한 2018년 안희정 성폭력 사건의 1심 판결처럼 '저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할 정도'였어야 강간 피해자일 수 있다는 '유형력' '저항' 관점이 업무상 위력 간음죄에도 적용되고 있기도 하다.

_ 한국성폭력상담소

③ '동의'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성매매'라고 불린 원치 않은 성관계

성매매 여성들이 '성폭력'으로 인지하는 경험은 1) 폭행, 협박이 동반된 성행위, 2) '동의'하지 않은 성적 행위, 3) 약속된 '돈'을 지불받지 못한 성행위 등이다. 하지만 수사기관 포함 우리 사회는 이를 '성매매'로만 이해한다. 설령 신고하더라도 피해 인정이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심지어 피해자가 '무고죄'로 처벌받기도 한다. 성매매 여성에게 '동의'란 무엇이고, 강간은 무엇으로 정의될 수 있을까? 성매매 여성은 성매매에서 무엇에 동의하고, 무엇에 동의하지 않았나? 나아가 성매매 구조에서 무엇에 동의 '할' 수 있고, 무엇에 동의 '할' 수 없는가? 분명한 것은 성매매 여성은 '동의'를 말할 기회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_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④ '동의 없이 성적 접촉을 해도 괜찮다는 생각', 청소년으로 겪은, 원치 않은 성관계

청소년은 도움을 요청했는데 돌아온 것은 황당한 질문들이었다. '그런 행동이 싫은데 왜 계속 사귀었니?', '그런 애를 왜 만났니?', '그렇게 했는데 가만히 있었니?' 피해자는 주변 어른들과 수사기관에 피해를 설명, 설득하는 데 지쳤다. 가해자는 처벌되지 않았고, 피해자는 가해자가 보복하지 않기를 바라며 조용히 살 수밖에 없다. 성별, 연령대 등 환경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동의가 가능했나를 살필 수 있어야 한다.

_ 탁틴내일

⑤ 왜 '장애'가 유무죄 판단 근거가 되는가? 장애여성이 '주체'가 되는 동의

수사 재판 과정에서 장애여성은 장애로 인해 얼마나 무력하고 무능한 존재인지 입증되어야 피해자 '자격'을 부여받는다. 대부분 가해자는 장애를 몰랐다고 주장하며 고의를 부인한다. 수사 사법기관도 장애여성의 일상생활 능력을 근거로 가해자 주장에 손을 들어준다. 또 가해자가 친근감을 표시하며 접근하는 행위를 피해자에게 '오인, 착각'을 일으킨 '위계'로 판단하지 않는다. 강간죄 구성요건을 '동의 여부'로 바꾸고자 하는 것은 동의를 요구하지 않는, 부동의 의사가 무시되기 쉬운 존재들이 무력한 피해자로만 호명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_ 장애여성공감

⑥ 누가 이들을 '취약'하게 하는가? 이주여성 대상 성폭력, 그 수단은 폭행·협박이 아니다

이주여성 피해자를 무력하게 만드는 것은 폭행·협박이 아니다. 제한된 취업, 혼인·출산·육아 등 성역할을 수행할 때 부여되는 불안정한 체류자격 제도로 인해 언제든지 '미등록'이라는 불법적 지위로 몰릴 수 있는 현실이다. 노동현장에서의 가해자는 주로 사업주이다. 그로 인해 가해자는 피해자의 언어능력, 노동조건과 체류자격, 경제 상황, 사회적 관계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있다. 이주여성 피해자는 '재입국특례제도'를 통한 재취업기회를 약속한 가해자(사업주)를 신고하지 못했다. 사업주의 권한이 막강한 상황에서 폭행협박 업무상 위력 등 엄격한 인정은 불필요한 처사이다. 선주민 피해자만큼 상세한 진술로 피해를 입증하는 것도 쉽지 않다. 유불리한 진술의 구별 없이 조서가 작성되기도 하고, 진술의 일관성이 부족하거나 모순된다는 이유에서 무고죄나 명예훼손죄의 혐의를 의심받는 위험에 처한다.

_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백소윤

⑦ 부부간 성관계는 언제든 동의된 것이다? 숨겨진 범죄, 아내 강간

1970년, 대법원은 남편이 강제로 아내를 강간했더라도 '실질적 부부관계'가 유지되는 경우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다고 판결하였다. 시간이 흘러 1995년 정조에 관한 죄에서 강간과 추행의 죄로, 2012년 강간죄의 객체가 부녀에서 사람으로 바뀌어 드디어 2013년 아내강간이 대법원에서 최초로 인정되었다. 현실은 어떤가? 2021년 여성폭력 실태조사에서 여성이 경험한 피해의 13.5%는 배우자이다. 2010년 가정폭력 실태조사에서는 지난 1년간 가정폭력 피해 중 '성학대'를 경험한 비율이 70.4%로 나타났다. 그러나 대검찰청 범죄분석을 비롯하여 국가에서 발표하는 범죄 통계에서 남편에 의한 성폭력 범죄를 파악할 수 있는 항목은 없어 실태를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다. 어렵게 남편을 고소한 경우에도 '이혼할 때 유리하게 적용되려고 신고한 거 아니냐?', '가족인데 신고하냐?' 등의 2차 피해가 발생한다. 언제나 '동의'상태에 있다고 여겨지는 아내의 성적 자기결정권, 이제는 다르게 봐야 한다.

_ 한국여성의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