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가족은 사랑을 가득 갖고 머무르려고 애썼던 곳이다. 30여 년을 그렇게 살았다. 어렴풋이 가족이 이상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하면서 사랑하려고 애썼다.
어느 날, 성폭력과 관련된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생각했던 것이 무너졌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공간에서 폭력을 사랑으로 위장하여 나를 난도질한 것이, '차라리 내가 죽어서 없애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취해서 내가 애썼던 사랑을 붙잡고 무너지지 않게 버텼다. 나의 바람과 달리 결국은 무너졌다.
신기했던 것은 무너짐과 동시에 난 죽어간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이 한 행위를 마주할수록 난 세뇌에서 빠져나와 살아났다. 내가 꾸역꾸역 채워뒀던 그들의 사랑이 빠져나가면서 나는 채워졌다. 그리고 난 무엇을 사랑하는지, 무엇을 사랑하고 싶은지, 무엇에 사랑받고 있는지, 무엇에 사랑받았는지를 아주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나는 토끼를 사랑한다. 나는 햄스터를 사랑한다. 나는 바다를 사랑한다. 나는 꽃을 사랑한다. 나는 내 글씨체를 사랑한다. 나는 내 귀여운 새끼손가락 손톱을 사랑한다. 나는 내가 죽고 싶을 때 옆에서 내 손을 잡아준 사람들을 사랑한다. 나는 내 마음을 사랑한다. 나는 나의 용기를 사랑한다. 나는 복스럽게 먹는 날 사랑한다. 나는 나의 두려움을 사랑한다. 나의 불안도 사랑한다.
마주해야만 지나가는 것들이 있다. 마주하는 과정이 하루가 걸릴 수도 있고, 평생이 걸릴 수도 있다. 난 그 과정이 아주 지난하고 지긋지긋하다고 얘기한다. 나에게 성폭력이 그러한 것 같다. 절대로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지만 마주해야만 하는 것. 나는 마주하고 지나갔는데 또 나타나서 나를 괴롭히는 것. 진짜 질리고 싫다. 이상하고 구질구질한 영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주한 뒤 만나게 되는 것은 아주 사소한 사랑이다. 내가 사랑받는 것도 알게 되고, 사랑하는 것과 사랑하고 싶은 것을 알게 된다. 엄청 거창한 것이 아니다. 사소하지만 내 마음에 남는 순간들이 쌓여가는 것. 그게 나를 사랑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아갈 수 있겠지?
긴 시간을 성폭력과 폭력 속에서 살았기에 어떤 부분은 낫지 않고, 비 오는 날 무릎이 쑤시는 것처럼 아프고 괴롭다고 계속 소리 낼지도 모른다. 지금은 지긋지긋하지만 (예전엔 죽이고 싶었지만, 지금은 지긋지긋하다니 다행이다) 시간이 지난 뒤, 사랑하는 과정이 쌓여갈 때, 지긋지긋이 아닌 다른 마음으로 날 바라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들이 행했던 폭력과 왜곡된 사랑이 아닌 진짜 사랑으로.
작년 8월. 난 가족이었던 가해자들을 만났다.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만나지 않게 되었다. 다행이면서 슬프고 너무 아프고 괴로웠다. 난 나의 여러 마음이 이해되지만, 어떤 부분은 내가 너무 싫고 밉다. 그 마음까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할 수 있게 되길 바라며. 지금껏 걸어온 용기로 사랑으로 걸어갈 수 있길 바라며.
내게 기대어 조각잠을 자던 그 모습 그대로 잠들었구나 무슨 꿈을 꾸니
깨어나면 이야기해 줄 거지 언제나의 아침처럼 — 아이유 〈겨울잠〉 중에서
내가 미워하는 너에게.
From 비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