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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방’, ‘소라넷’, ‘N번방’을 관통하는 ‘욕망’
  • 호랑 | 여성주의상담팀 활동가
벗방피해자 공동지원단 출범 카드뉴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성폭력 피해의 양상도 바뀌고 있습니다. 피해 양상은 달라지지만, 그 기저에 있는 '욕망'만은 동일합니다. '욕망'의 속성을 활동가의 시선으로 들여다 보았습니다.

금요일 밤, 한 라이브 동영상을 클릭했다. 검은 화면에 한 남성의 목소리만 나오는 영상에서, 남성은 곧 "채팅 앱에서 만나 10만 원을 주고 합의하고 데려온 여자"와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줄 것"이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그런 말을 한지 시간이 꽤 됐던 것인지, 실시간 댓글에는 언제 시작하느냐는 원성이 자자했다. 10분 뒤 다시 클릭한 영상에서는 목소리의 주인공으로 추정되는 남자와 한 여성과의 애무가 실시간으로 송출되고 있었다.

아마 이쯤 되면 반성폭력 활동가가 뭘, 도대체 왜 보고 있었던 것인지 궁금해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4월부터 다른 여성단체들과 함께 만든 "(가) '벗방' 피해자 공동지원단"에 참여하게 되었다(이하 공동지원단). '벗방'은 이른바 '벗는 방송'의 줄임말이다. BJ들은 시청자의 요구에 따라 '과감한' 노출과 성관계를 연상시키는 다양한 행위들을 한다. 짐작했겠지만, 대부분의 시청자는 남성이며 BJ들은 여성이다. 벗방은 그저 몇몇 BJ들의 개별적인 실천이 아니다. 팬더TV, 로즈TV와 같은 일부 플랫폼들은 '벗방'을 주력 상품으로 내세우고 있다. 올해 초 유튜브를 통해 벗방 BJ였던 여성이 계약과 촬영에서의 폭력과 착취를 고발하며 이슈가 되었고, 한국성폭력상담소를 비롯한 몇몇 여성단체들은 '벗방'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어딘가에 있을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공동지원단을 꾸렸다.

BJ라고 생각하면, 여성들이 개별적으로 알음알음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온라인을 통해 이슈화된 '벗방' 피해자의 고백은 달랐다. 그녀는 일종의 매니지먼트를 하는 '엔터' 회사와 계약을 맺었고, 감금과 감시하에 방송해야 했다. 함께 올라온 폭로 영상에서 피해자는 약물로 의심되는 무언가에 취한 채 남성 BJ의 성추행과 폭력을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었다.

고민을 나누는 벗방공동지원단 회의 풍경
_ 고민을 나누는 벗방공동지원단 회의 풍경

해당 이슈에서부터 공동지원단이 시작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가 너무 막막했다. 공동지원단에 모인 모든 단체는 '벗방'이 문제이고, '벗방'에서 겪는 피해들이 엄청나리라 예측했지만,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오리무중인 상태였다. '벗방'을 주 수입원으로 삼는 인터넷 플랫폼을 규제하라고 해야 할까? 이슈화된 사건처럼 '원치 않는' 피해를 입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스스로의 '선택'으로 방송에 뛰어든 이들도 있지 않을까? '벗방' 그 자체를 성폭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규제의 프레임 속에서 '벗방'이 더욱 음지화되고, 여성들은 더 취약한 위치에 놓이게 되지 않을까? 우리의 연대체가 '공동지원단'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 까닭은 꼬리를 무는 질문 속에서, 우선 '피해 지원'에서부터 조금씩 실마리를 찾아가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자. 공동지원단의 회의를 두 번쯤 했을 무렵, 나는 조금 더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굳은 마음으로 가장 유명한 '벗방' 플랫폼인 팬더TV에 들어갔다. 홈페이지는 유튜브의 화면구성과 매우 닮아 있었지만, 다른 것이 있다면 대부분의 메인화면에는 썸네일 대신 "19"라는 아이콘이 띄워져 있다는 것이다. 회원가입과 성인인증을 거치고 나서야 영상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몇몇 방송은 여성들의 1인 방송도 있었지만, 한 명의 남자 BJ와 여러 명의 여성이 출연하는 방송도 있었고 앞서 말한 남성의 주도하에 여성과의 성행위(혹은 유사성행위)가 방송되는 것도 있었다.

모니터링을 하며 5~6년 전쯤 이슈가 된 소라넷이 떠올랐다. 다수의 남성이 한 여성을 타겟팅 삼아 성범죄를 모의하고 실천하며 중계하던 그곳. 물론 소라넷과 벗방은 매우 다르다. 술과 약물에 취한 여성에게 이루어지는 성폭력과 "10만 원을 주고 합의하고"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은 매우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욕망만은 매우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수의 남성이 한 여성을 관람하고 품평하고, 성적 행위를 요구하며 만족감을 채우고자 하는 그 욕망. 룸쌀롱, 단톡방, N번방과 닮아있는 그 '남자들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그 역겨운 욕망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는 그 욕망이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을 일상적으로 타자화하는 밑바탕에 깔려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 글을 쓰기 며칠 전에도 나는 매우 공적인 행사에서 한 남성이 다른 남성에게 "너희 테이블엔 여자가 많아서 좋겠다"고 말하는 장면을 보았다(나는 그 '많은 여자' 중 한 명이었다). 여성은 어떤 위치에 있건 성적인 존재라는 발상을 일상적으로 만드는 기저에는 여성의 안녕과 욕구에는 관심도 없이 여성의 성을 매개 삼아 자신들끼리 희희낙락하는 문화가 숨어있다. 이제, 디지털 시대를 맞아 그 세계가 스마트폰 속에 '벗방'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가) '벗방' 피해자 공동지원단은 생각보다 혹은 생각했던 것만큼 난항을 겪고 있다. 꼴 보기 싫은 것들을 싹 다 없애라고 하면 좋겠지만 성매매특별법 제정 이후에도 성매매가 증가한 현실이 알려주듯이, 법적인 규제와 엄벌주의가 언제나 정답은 아니다. 이 작은 화면 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어떻게 목소리를 내야 할지 공동지원단은 아직 머리를 맞대고 길을 찾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은 우리는 계속 걸어갈 것이고, 길을 발견해 낼 것이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