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는 2024년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재정 운용의 효율화와 건전성을 내세워 부실사업에 대한 구조조정 계획을 밝혔다. 이를 통해 확보된 재원은 '약자복지 강화 및 미래 준비를 위한 투자,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 국가의 본질기능을 뒷받침'하는 등 4대 집중 정책 분야에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밝힌 부실사업에는 여성폭력 피해자지원 사업도 포함되어있었는데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예산은 2023년 대비 120억 원 감축되었다. 2023년 대비 정부가 내놓은 여성가족부 예산안 감액 명세는 다음1과 같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여성가족부 예산안은 2023년 12월 21일 국회 본회의 심의과정에서 82억 원가량 증액되었으나(2023년 대비 9.9% 증가한 11조 7,234억 원으로 확정), 여성폭력 피해자지원 예산의 삭감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증가한 여성가족부 예산안의 약 70% (1조 1,969억 원)는 가족 정책 사업에 편성되었다. 성폭력 피해자 의료비 지원예산은 8억 500만 원 줄었고, 성인권 교육 사업과 디지털 성범죄 예방 교육 콘텐츠 제작, 디지털 성범죄 특화 프로그램 운영, 이주여성 인식개선 및 폭력피해 예방 홍보사업 예산 등은 전액 삭감된 채 통과되었다.
노동자들이 직장에서 겪는 성차별, 성희롱을 상담해 온 고용노동부 소관의 고용평등상담실 역시, 운영 예산인 고용평등상담 지원예산이 전액 삭감된 채 예산안이 통과되었다. 정부는 2023년 12억 1,500만 원이었던 고용평등상담실 운영 예산을 2024년 5억 5,100만 원으로 삭감하며, 민간 고용평등상담실을 지원하는 대신 전국 지방고용노동청이나 본부 등에서 상담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24년간 민간영역에서 운영되어온 고용평등상담실 운영 지원예산의 전액 삭감이지만, 여성 노동자들이 사직서를 쓰기 전에 상담할 수 있는 창구인 민간 고용평등상담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후원과 응원으로 중단되지 않고 운영될 예정이다.
여성폭력 피해자지원 예산안이 대폭 삭감된다는 계획이 알려지고 나서 여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현장들은 '여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지원예산 감축 철회 촉구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을 발족하여 2023년 10월 30일 국회 앞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1만인 시민 선언,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면담, 정당 원내대표 면담, 여성가족부 공개질의서 발송 등을 통해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예산 감축 철회를 요구했다. 공동행동은 12개의 여성폭력피해자 지원 협의회 및 연대체가 함께 했는데, 가정폭력상담소와 가정폭력피해자 보호시설, 디지털 성폭력 피해지원 상담소, 성매매 피해상담소와 자립 지원 공동생활시설과 성매매 피해자 보호시설, 성폭력상담소, 이주여성상담소 및 이주여성보호시설, 여성장애인폭력피해지원 상담소 및 여성장애인폭력피해보호시설 등,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현장의 모든 분야가 함께 했다.
분절적으로 운영되는 피해유형별 지원시설이 안정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지 못해 통합상담소가 필요하다는 정부의 평가와 달리, 민간영역의 여성폭력 피해자지원 현장단체들은 함께 모여 한목소리로 정부주도의 통합체계 구축에 반대했다. 오히려 영역별 지원현장에서의 활동이 이미 통합적인 지원을 하고 있기에 현장에 대한 기능적이고 물리적인 통폐합이 아니라 민간 거너번스를 바탕으로 한 통합지원의 상을 그려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현장단체들의 의견은 끝내 여성가족부에 전달되지 못했다. 공동행동은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면담을 요구했으나 두 차례에 걸쳐 거절되었다. 여성가족부는 이미 국별로 현장단체의 의견은 수렴했고, 국회에 예산안 심의가 넘어갔으니 면담조차 할 필요가 없다고 회신했다.
2024년에는 가정폭력상담소(30개소)를 통합상담소(25개소)로 전환하며 5개소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지만, 점차 분야별 상담소를 통합상담소로 점진적으로 전환하고 있다. 통합 과정에서 보조금을 중단하는 상담소가 발생할 수 있다는 계획이 들려오고 있다. 동시에 지자체별로 자체 위탁 운영하는 여성폭력 통합센터들이 잇달아 개소하는 소식도 들려온다. 효율과 재정 건전성, 비영리민간단체의 보조금 관리 강화라는 논리로 그간 민간영역에서 자율적으로 운영되어왔던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현장이 중앙정부나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위탁 직영센터로 대체되고 보조금 지원을 빌미로 줄 세우려는 정부 차원의 계획이 가시화되고 있다.
1991년 4월 한국성폭력상담소가 개소했을 때, 성폭력상담소 설치 근거를 담은 성폭력 특별법은 없었다. 24시간 피해자를 상담하거나 피해상담 즉시 경찰, 병원, 법률전문가와 연계하여 응급조치, 법적 고소를 위한 증거 채취, 법률적 지원을 하는 긴급하고 통합적인 지원체계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1993년 12월,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주축이 되어 국민 모금으로 설립기금을 마련하여 개소한 '성폭력 위기센터'가 처음으로 24시간 성폭력 피해자 상담을 하고 긴급하고 통합적인 지원체계를 만들었다. 현재 전국에 170여 곳이 되는 성폭력상담소에 대한 국가지원의 근거를 담은 법 제정도 민간영역의 여성단체들이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법 제정에 역할을 했기에 가능했다. 강조하자면 현재 한국의 여성폭력 지원체계는 여성폭력이 국가적 책임에서 다뤄져야 하는 사회적 문제라는 것을 알고 함께 힘을 보태 정부의 책임과 국가지원의 토대를 촉구한 시민들의 참여와 요구로 마련된 것이다. 여성폭력 피해자지원에 공백이 없으려면 정부는 지금이라도 민간영역의 현장단체들과 지원체계의 구체적인 통합지원의 상을 함께 그려나가야 한다. 시민을 배제한 일방적인 정부 주도의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체계 통폐합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1 김혜정·송란희(2023), 젠더기반 여성폭력 총선 정책 제안 토론회 발제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