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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에서 연대자로
  • 이안나
〈생존자의 목소리〉는 성폭력 피해생존자들의 이야기를 에세이, 시, 그림 등의 형식으로 싣는 코너입니다. 본 코너는 생존자의 고유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창구이며, 교정 교열 외의 편집은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상담소의 다른 글과 관점도 논점도 조금 다를 수 있음을 안내드립니다.

강간의 잘못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이 사회에 살면서 괴로웠습니다. 지인으로부터 당한 강간에 애초에 내가 가해자를 가해자라고 알아보지 못한 자책감으로 살았습니다. 그 우울감이 저를 옥죄고 저를 미치게 만들었습니다. 요즘도 잘 지내다가 우울감이 덮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예전처럼 스스로에게 화를 내진 않습니다. 화를 내어야 할 이 가부장적인 사회에 화를 내고 있습니다. 그것을 도움 받게 된 시작은 여성주의 집단상담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처음 만난 생존자들은 모두 하나 같이 스스로를 탓하고 있었고 사회가 주는 따가운 시선에 몸과 마음을 움츠리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탓이 아니라며 서로를 위하는 시간을 가졌고 그때부터 여성주의 공부라는 것에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 때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하는 성폭력상담원교육의 한국여성사를 시작으로 성에 관련한 모든 폭력의 구조를 공부하며 성폭력 피해자가 스스로를 탓하는 이유까지 알게 되니 치유가 빨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한동안 잘 지냈습니다.

코로나가 끝나고 사람들을 다시 대면하게 되면서 우울증은 다시 심해졌습니다. 여성인권에 대해 같이 연대하는 사람들 이외에는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가부장적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여성이 성폭력 당한 맥락에서 여성피해자답지 못했다고 피해자들을 삿대질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피해자들에게 무죄 판결을 내리는 모습들을 봤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여성인권을 위해 공부한 소수들과 함께한 시간들, 이 현실, 괴리감에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럴 때 작은 말하기를 만났습니다. 생존자끼리 오가는 연대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회복력을 제게 주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작은 말하기는 다른 집단상담처럼 정해진 기간이 없이 이어갈 수 있다는 안정감에 더없이 좋습니다. 현재까지 반년을 빠지지 않고 참여 중입니다. 그런데 요즘 제가 듣게 된 아픈 소식이 있습니다. 이번 정부가 밀고 있는 여성 폭력 피해자 지원 예산 삭감입니다. 아직 작말(작은 말하기)에 어떤 영향이 올지에 대한 이야기는 들은 것 없지만 작말이 어느 날 없어지게 될까 봐 걱정입니다.

예전에 제가 생애 처음으로 한 집단상담에 들어간 지원 비용이 최근에는 예산이 줄어 그것의 n분의 1으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것도 여성 폭력 피해자 지원 예산 삭감 발표 이전입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더 줄어들지 아니면 이 또한 언제 사라질지 모르겠습니다. 비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현재까지도 대한민국의 사회는 여성이 하늘의 절반을 지탱한다는 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성의 경험과 지혜를 고려하지 않은 어떠한 사회 변혁의 시도도 모두 실패하고 말 것이라는 점 또한 외면하고 있습니다.

이 무력감 속에서 회복의 희망인 작말을 또 다녀왔습니다. 작말을 맡고 계시는 활동가 선생님께서 나눔터에 싣을 원고 의뢰를 해주셨습니다. 그 덕에 글로나마 속시원하게 내 안에 고여있는 썩은 핏덩어리를 토해내고 싶어서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저는 제가 가진 성폭력 PTSD가 회복에 있어서 여성학 공부가 크게 도움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보아온 한국여성운동은 지난 20년 넘게 이뤄낸 운동 성과가 매우 큽니다. 그중에서도 법률 제정과 제도의 정비는 주목할 만합니다. 특히 여성폭력추방운동은 피해사례를 발굴하고 이 문제와 싸웠습니다. 그에 따른 법률제정운동 그리고 제정 후 법집행 참여의 운동 스타일을 낳고 열악한 상황에 있던 여성 단체가 양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물리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각지에서 여성단체가 활발해져 전국적인 네트워크도 강해졌습니다. 이러한 힘은 또 새로운 법률 제정운동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여성 운동과 NGO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를 가져오고, 운동의 진로에 대해 스스로를 성찰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피해자 보호는 전국에서 24시간 운영하고 있는 여성긴급전화 1366과 상담소와 쉼터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저 또한 그 속에서 보호받아 왔습니다. 하지만 이 안에서 들여다보니 한 시설은 거의 100% 민간이 운영하고, 그 절반은 사단법인인 여성 단체의 운영입니다. 관련법에 따라 4명 정도의 인건비와 운영비 일부가 지원되지만, 그 대상이 되고 있는 상담소는 50%에 못 미칩니다. 근데 이 열악한 환경에서 정부는 여성 폭력 예산 삭감이라니. 정말 말도 안됩니다.

여성 관련법은 남성의 이해에 근거한 남성의 언어로 기술된다는 한계가 있어서 여성의 인권은 특별한 것으로 제한됩니다. 특별법이라는 형태의 제정이 되어 있는 일반법에는 남성 중심성의 극복이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여성의 인권보호법인데 법의 운영은 남성의 경험을 바탕으로 여성 피해자는 남성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질서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피해자는 항상 남성에 의해 명예훼손죄로 역고소되어 피해자인데 가해자가 되거나 남편에게 지속적으로 맞고 있다가 정당방위로 남편을 사망에 이르게 하면 살인자가 돼 있습니다. 여성의 인권 확립은 여성 피해자의 보호라는 도식을 낳았지만, 여성에 대한 폭력 방지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을 수립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자유주의 인권의 관점은 여성을 대상화 또는 비주체화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몸을 분해하여 각론으로 했습니다. 나아가서는 장애를 가진 여성이나 이주 여성의 문제에 대해서 설명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습니다. 양성평등이라는 용어는 여성주의를 대중에게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남녀 이분법적인 섹슈얼리티를 고정하고 동성애 등 다양한 성적 지향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폭력을 성적 자율권의 침해로 정의하고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동의의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데이트 폭력 피해자는 "왜 도망치지 않았나요?"라고 종종 질문을 받습니다. 이것은 여성을 주체성으로 행동할 수 있다고 보고 있지만, 우리는 폭력하에 놓여진 여성이 이미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 알고 있습니다. 법은 모두에게 평등하다는 가설은 여성에게 이렇게 이중 폭력의 상황을 만듭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법 이외에 여성의 인권 보호의 방책을 갖지 않는 것이, 여성폭력추방운동의 한계입니다.

또 여성의 인권을 발목 잡고 있는 것은 가족주의입니다. 한국 여성을 현대적인 개인이 아닌 봉건적인 가족 정체성 속에 머물고 있는 것은 견고한 가족주의입니다. 여성은 개인이 아니라 가족의 것입니다. 데이트 폭력 방지법 역시 제정 당시 가족주의와 타협할 수밖에 없고, 아내를 때리며 생기는 가정 문제의 보호를 제일의 목적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인은 가정이 망가졌다는 말을 들으면 마치 무인도에 혼자 남겨진 인간의 공포감으로까지 연결됩니다. 아내를 때린 남성의 명예는 지킬 수 있지만 남편이 있는 여성에게 성폭력을 한 남자는 가정을 붕괴시킨 것으로 중죄가 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사회의 가부장제는 여전히 견고합니다.

한국의 여성운동은 지금 20년이 넘는 시간들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운동 방향성을 숙고하기 위해 다양한 평가회의, 토론회 등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아마도 쉬운 작업이 아니기에 결론이 나올 때까지 시간이 계속 걸릴 겁니다. 그래도 이러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한국의 여성운동은 21세기를 리드하는 새로운 비전을 세계에 보여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하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제가 작말에서 요즘 늘 적는 말이 있습니다. 평생 연대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시는 우리 활동가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여성 다섯 명이 손을 맞잡고 바다를 바라보는 실루엣 사진

_ 감사해서 존재하는 이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