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간의 스킨십에 대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동성간의 경계없는, 동의없는 신체 접촉도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추행 가해자가 동성이면, 이성보다 덜 불쾌하고, 덜 심각할 것이라고 추측하는건 편견입니다.
동성 가해자들이 대체로 동성애자일 것이라고 추측하는것 또한 위험한 편견이지 않을까요?
성추행이 성별, 성적 지향에 따라서 판단되지 않는 사회이길 바랍니다.
흔히들 하는 변명 "난 이성애자이고 친구한테 장난 좀 친것뿐이다", "평소에도 하던 스킨십이었는데 억울하다" 등등. 민감한 부위를 만져놓고서는 동성이기 때문에 그게 자연스러운 행위라는 뻔뻔한 변명들이 지긋지긋합니다.
제가 작년에 겪은 일은 이성으로부터 피해를 겪었을때보다 후유증이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꿈에서도 가해자와 2차 가해자가 합세하여 저를 괴롭히는 악몽을 꿨습니다. 저는 작년에 저의 허벅지를 동성이 만진것에 대해 성추행이라고 느꼈고, 문제제기를 하였습니다. 제가 앉은 자세 때문에 치마가 더 올라가서 허벅지가 안쪽까지 노출되긴 했지만, 그것이 맨살을 동의없이 만져도 된다는 제스쳐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가해자는 저의 허벅지에 두번이나 손을 올려두고 그후에는 어깨를 밀었습니다.
불쾌하고 민망했으며 기분이 더러웠습니다.
가해자가 시민운동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였기 때문에 소속 단체 임원에게 징계 및 성폭력예방교육을 요청하였습니다. 하지만 공동체적 해결을 바랬던 저의 기대와는 달리 가해자로부터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했습니다.
그 단체에서 주최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가 사무실내 뒷풀이 자리에서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해당 모임 단체 카톡방에 공론화를 하고, 단체 임원에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이것이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아야 하는 이유라니 몹시 참담했습니다.
저는 그저 가해자가 적절한 징계와 예방교육을 받은후 다시 상근 활동을 하면서 그곳이 안전한 공간이 되기를 바랬습니다. 그런데 믿기지 않은일이 벌어졌습니다.
제가 그 단체 임원에게 피해 제보 메일을 보내면서 실명과 이메일 주소를 밝혔는데, 이런 저의 개인정보까지 포함하여 내용 전문이 고스란히 가해자한테 유출이 된 것입니다.
가해자는 저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서 이렇게 입수한 메일 내용을 고소의 증거자료로 제출하였습니다. 이번에 정보공개청구를 하여 이러한 2차 가해 증거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공익 제보 내용을 이런식으로 유출시킨 2차 가해자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선거 출마 준비를 하며 정치 활동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여러곳에 상담을 해보니 이렇게 업무상 알게된 개인정보를 누설한 경우 문제가 있다고 하더군요.
진보적 시민운동단체에서 활동해온 두 사람은 각각 이사, 대표로 취임까지 했습니다. 취임 시기를 확인해보니까 제가 경찰서에 피의자 신분으로 명예훼손 조사를 받으러 갔던 그 즈음이었습니다. 제가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극단적 생각까지 들었던 그 시기에 그들은 중요 직책을 맡게 되다니 너무 소름이 끼쳤습니다. 특히 저를 추행하고 역고소까지 한 가해자가 징계는커녕 이사로 취임까지 했다는것에 크게 분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잘못은 저들이 했는데 내가 왜 범죄 혐의 조사를 받아야하는지 분통이 터졌습니다. 주말에 혼자 외롭게 경찰서에 조사받으러 가면서 눈물이 났으나 막상 조사를 받을때에는 약해보이기 싫어서 덤덤한 척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1년이 넘는 시간을 그런 인간들 때문에 나의 일상과 에너지를 뺏기고,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게 억울할 따름입니다. 비록 소수이지만 저의 발화를 지지하고 응원해주신분들 덕분에 이렇게나마 버틸 수 있었습니다. 저의 피해 경험을 믿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고통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과거의 저의 웃음과 유쾌함을 간절히 되찾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가서 적극적으로 약물 치료도하고 있습니다. 주치의는 제가 그동안 상대방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노력해왔는데, 정작 나 자신을 위해서는 어떠한 치유 활동을 하고 있는지를 집중해보라고 권유하시더군요.
이제는 정말 나 자신한테 집중하면서 나를 위한 돌봄을 우선적으로 하고자 합니다. 취약한 상태에서 공론화를 이어가는건 내 자신을 위해서도 위험할수 있겠다 싶습니다.
저한테 일상을 회복할 힘이 생기면, 그때 다시 부당함과 맞서보겠습니다.
그리고 설사 그 2차 가해자가 저한테 사과 한마디 없이 공직 선거에 당선이 되더라도 제가 무너지지 않을만큼 멘탈을 유지하고 싶습니다. 미치도록 힘들때마다 나를 믿고 연대해준 몇몇의 사람들을 기억하며 따뜻한 위로를 받겠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인긴관계를 맺으면서 편하고 안전한 일상으로 돌아가는게 저의 꿈입니다. 과거에는 당연하고 소박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이었는데, 지금은 꿈이 되었을만큼 소중하고 간절합니다. 이제는 상처에 몰두하기보다는 저를 위한 건강한 일에 에너지를 듬뿍 쓰겠습니다. 그럴수 있도록 지켜봐주시고 조언도 해주세요.
생존자 후기를 쓰다보니까 한결 홀가분해진 기분입니다. 저의 경험을 나눌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_ 클럽에서 춤추기, 스탠딩 코미디, 여성주의 모임을 좋아함. 사람을 두려워하면서도 금사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