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출생 미등록 아동에 대한 복지부 감사와 전수조사가 시행되며 영아 살해 및 유기 사건이 연이어 드러났습니다. 이를 계기로 병원에서 아이를 낳으면, 의료기관이 지자체에 의무적으로 출생통보를 해야 하는 출생통보제가 통과되었습니다. 여전히 미등록 이주아동, 외국인 아동이 배제되었다는 큰 한계가 있지만, 아동의 출생 등록을 제도화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와 함께 '익명'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게 하는 '익명출산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출생통보제가 시행되면, 출산을 알리고 싶지 않은 산모가 병원 밖에서 출산을 하지 않겠냐는 이유였습니다. 이 제도는 보호출산제라는 이름으로 빠르게 입법이 진행되어 10월 6일, '위기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보호에 관한 특별법안'으로 통과되었습니다.
보호출산제. 이름만 보면 좋은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사실 이 법은 여성도, 아동도 보호하지 않습니다.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임신·출산은 삶에 대한 기획을 전반적으로 변화시켜야 하는 큰 사건입니다. 여성이 양육을 포기하는 이유를 '출산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아서'라고만 설명하기에는 여성이 임신 상태를 유지하고 아동을 양육하는 것에 매우 다양한 요인과 변수가 영향을 미칩니다. 이 요인은 개인이 처한 상황이기도 하지만, 여성이 임신에서 출산·양육에 이르기까지 자기결정권을 온전히 행사하기 어렵게 만드는 사회와 법제도, 문화가 만들어낸 것이기도 합니다. 가령, '낙태죄' 조항이 폐지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임신중지를 할 수 있는 병원이나 공식적인 정보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미프진 등의 유산유도제와 임신중지에 대한 건강보험도 아직 도입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여성은 임신중지와 관련한 정보나 병원을 찾지 못해서, 임신중지를 할 비용이 없고 접근하기가 어려워서, 또는 재생산권과 관련한 교육을 전혀 받을 기회가 없어 임신중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예 알지 못하거나 임신 사실을 몇 개월동안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알게 되기도 합니다. 임신 유지를 원하지 않았으나 이와 같은 문제로 포기하거나 임신중지 시기가 지연되어 신체적으로 큰 부담을 지는 여성들이 있습니다.
또한, 원가족 또는 친부에게 임신 사실을 알릴 때 상대방이 관계를 단절해 고립된 상태에서 혼자서 아이를 양육하는 사례도 많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한부모 양육지원 수당은 월 20만원(청소년 한부모의 경우 월 35만원)으로 턱없이 부족합니다. 다른 한부모 지원정책은 어디서 어떤 조건으로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찾기 쉽지 않습니다. 한국미혼모가족협회가 협회 회원 14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 따르면, 양육을 선택한 미혼모들이 경제적인 어려움(51명, 29.3%)을 가장 많이 느끼고 양육비를 신청해도 받는 경우는 극소수입니다.1 청소년 미혼모의 경우, 4명 중 3명은 여전히 학업을 중단합니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23). 정상가족 결혼제도 바깥에서 아이를 기르는 미혼모나 사회적 약자·소수자에 대한 낙인과 차별도 빼놓을 수 없는 어려움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보호출산제는 여성이 양육을 포기하는 이유를 단지 산모가 출산 사실을 알리기 싫어한다며 개인의 책임으로만 전제함으로써 오히려 미혼모에 대한 낙인을 강화합니다.
보호출산제 제정법안을 찬찬히 뜯어보면, 권리를 침해할 여지가 있는 조항이 많은 것도 문제입니다. UN 아동권리협약 제7조 1항은 아동이 출생 후 즉시 등록되어야 하며 "가능한 한 부모가 누구인지 알고 부모에 의해 양육받아야 한다"고 명시합니다. 그러나 보호출산제 제17조는 보호출산제로 태어난 사람이 출생증서 공개청구를 할 때 친생모나 생부의 동의 없이 정보공개가 불가능하도록 규정2하고 있어 실질적으로 아동이 부모를 알 권리를 침해합니다. 또한, 9조 2항은 "임산부가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충분하지 아니한다고 판단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보호자가 보호출산 신청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여전히 장애를 가진 사람이 임신이나 출산을 할 때 임신중지나 불임시술을 종용하는 사회에서 이 조항은 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재생산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여지가 있는 조항입니다. 성인과 같은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청소년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인 배우자와 결혼한 결혼이주여성이 아닌 외국인, 미등록 이주민은 기초생활보장법을 포함한 한국의 사회보장제도에서 늘 배제됩니다. 위기임신 상황으로 지원 단체를 찾는 여성의 절반이 외국인이라고 하나 이들의 존재는 불완전한 보호출산제 법안에서조차 고려되지 않았습니다.3
그러나 문제 되는 보호출산제 법 조항만 개정한다고 영아 유기와 같은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아직도 보장되지 못한 임신중지 접근성, 미혼모나 약자가 아이를 양육하기 너무도 어려운 사회문화적 환경, 낙인과 편견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산적한 문제를 외면한 채 보호출산제만 도입된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 앞에는 양육을 포기하거나 위탁하는 선택지만 놓이게 될 뿐입니다. UN아동권리위원회는 병원에서의 비밀출산제 도입 가능성을 최후의 수단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권고했지만, 보호출산제는 너무도 빨리 통과되었습니다. '낙태죄'가 폐지된 지 3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아직 임신중지 접근성이 보장되지 않은 것과 대비되는 속도입니다. 이 과정에서 '익명으로 양육 포기를 할 수 있으니, 임신했다면 일단 출산하기만 해라.'라는 메시지가 읽히는 것은 과장된 생각일까요?
한편, 보호출산제 통과와 함께 모자보건법 개정안이 다시 논의되고 있습니다. 여러 의원들이 발의한 모자보건법 개정안에는 유산유도제 도입과 건강보험 적용 등 임신중지 접근성을 높이는 법안이 있는 반면, 의료인의 거부권 인정이나 임신중지 전 사전상담을 의무화하는 내용 등 임신중지에 대한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법안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민들이 일구어낸 '낙태죄' 폐지 이후 우리 사회는 더 이상 후퇴해서 안 됩니다. 빠르게 통과는 되었으나 영아 유기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는 보호출산제에 대한 비판은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 함께 모자보건법 개정안 논의 역시 많은 관심과 날카로운 감시가 필요한 때입니다.
1 여성신문, "보호출산제, 이용하는 사람 없어야 성공... 미혼모 사회적 편견 국가가 개선해야", 2023.11.01., 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1977
2 위기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보호에 관한 특별법안 제17조(출생증서의 공개 청구등) ② 제1항의 청구를 받은 보장원장은 신청인 및 생부의 동의를 받아 보관하고 있는 출생증서를 지체 없이 공개하여야 한다. 이 경우, 보장원장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신청인 또는 생부의 동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신청인 또는 생부의 동의 여부가 확인되지 않거나 신청인 또는 생부가 동의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그 신청인 또는 생부의 인적사항을 제외하고 출생증서를 공개하여야 한다.
3 〈여성과 아동 모두를 보호하지 않는 보호출산제 제정법안을 둘러싼 현안과 과제〉 국회 토론회 자료집(2023) 참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