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상담 현장에서 절실히 요구되었던 성폭력특별법
1990년, 상담소 개소를 준비하면서 우리 활동가들은 '과연 상담이 들어올까'라는 물음을 갖기도 했다. 당시 성폭력을 다루는 유일한 법이었던 형법 제32장은 '정조에 관한 죄'라는 제목으로 피해 여성들에게 수치심을 강요하며 말조차 꺼내지 못하도록 입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8개월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7.5평 작은 사무실에서 활동을 시작하자마자 쏟아졌던 상담! 우리는 매년 4~5천 회 상담 전화를 받으며 기존 법이 피해자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례를 접했다. 6개월 이내에 고소해야 하는 친고죄 규정으로 인해, 피해 후유증에 시달리거나 직장 상사, 선생님, 친족 등 가해자와의 관계의 특성상 혼란을 겪느라 고소 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많았다. 또한 아버지가 강간해도 직계존속은 고소할 수 없는 형사소송법(224조)에 의해 피해자는 어떤 법적 절차도 진행할 수 없었다.
또한,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위한 심리적·법적·의료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도 전혀 갖춰지지 않았다. 어느 날, 멀리 부산에서 전화로 지속 상담을 하던 친족성폭력 피해여성이 더 이상 가해자와 같은 공간에서 살 수 없다며 갑자기 짐을 싸 들고 상경해 상담소를 찾아온 일도 있었다. 우리나라 어디에도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쉼터가 없었던 때라 우리는 그분을 어디에 모셔야 할지 몰라 발을 동동거리다가 간신히 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에 연계하였다. 이와 같은 총체적인 문제들은 결코 현행법 체계에서 해결할 수 없음을 절감한 우리는 가해자 처벌만이 아니라, 피해자 권리 보장을 위한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기로 결의했다.
가열차게 성폭력특별법 제정운동을 한 3년의 시간
성폭력특별법 제정운동의 시발점은 1990년에 한 가정폭력 가해자가 한국여성의전화 쉼터에서 자신의 아내를 인신매매했다며 경찰에 신고한 사건이다. "경찰이 사무실에 난입해 활동가들과 상담원들을 위협하고 상근자 세 명을 경찰서로 데려가 거칠게 조사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기도 했다. 이때 경찰은 구타 남편을 '선생님'이라고 대접하는 반면 여성의전화 활동가들에게는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하면서 범죄자 취급했다". 1 이러한 상황을 겪은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시작한 성폭력특별법제정운동은 1991년에 21년 전 강간범을 살해한 사건을 지원하고 있던 4개 단체를 중심으로, 그해 여름에 성폭력특별법제정위원회(이하 '성특위')로 연대 범위를 넓혔다. 1992년에는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성연합')에서 '올해의 주요사업'으로 성폭력특별법 제정운동을 선정하면서 성특위는 여성연합 내의 특위 형태로 새롭게 틀을 갖추어갔다. 성특위에서는 현장활동가들과 변호사, 연구자들이 함께 밤샘 작업을 통해 성폭력특별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청원했다. 그리고 이를 시민들에게 알리고 입법부 및 행정부에 압박을 가하는 시위를 계속했다. 특히 1992년에 발생한 13년간 의붓딸을 성폭력한 아버지를 남자친구와 함께 살해한 사건으로 전국 대학생들을 포함한 시민들의 성폭력특별법제정 요구는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마침, 그해에는 대통령 선거와 총선이 겹쳐있어, 정치계에서도 당마다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주요한 공약으로 채택하지 않을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였다.
그러나 당시 법조인을 비롯한 많은 법학자들은 특별법 형태의 법제정은 법의 안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며 원론적인 반대를 했다. 성특위에서는 형법 개정은 요원할 뿐만 아니라, 형법이 다루지 않는 피해자 권리 보장 체계까지 구축하기 위한 성폭력특별법 제정으로 운동 방향을 굳혔다. 입법 공청회에서 한 의원은 아내강간죄 규정을 들어 "이 법은 부인들이 맘 내키면 출근하는 남편의 넥타이를 잡아 경찰서로 가게 하는 법"이라며 강력하게 반대해 관련 조항은 빠지기도 했다. 그날 국회 공청회의 풍경은 앞으로 반성폭력운동의 갈 길이 얼마나 먼지를 절감하게 했다. 우리 활동가들은 상담 사례에 기반 해 현행 법체계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토론회를 개최하거나 국회 공청회에 진술인으로 참여하여 의견을 개진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국회의사당 앞에서 법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과 거리 행진을 하고 언론 기고, 방송출연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이 법의 필요성을 홍보했다.
드디어 1993년 12월에 성폭력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1994년 1월부터 시행되었다. 호주제 폐지는 50년이 걸린 것에 비하면 매우 빠른 기간에 이루어진 셈이다. 우리 활동가들은 이 과정을 통해 현장의 문제를 드러내 문제를 제기하고, 법과 제도를 만들 것을 요구하여 마침내 그 결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렇게 마련된 성폭력특별법은 가해자의 처벌강화뿐만 아니라, 피해자 권리를 규정하고 피해자 지원의 제도적 틀을 마련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또한 이어지는 가정폭력방지법(1997), 성희롱관련법(1999), 아동청소년성보호법(2000), 성매매방지법(2004)의 제정 운동에 선례가 되었다.
법제정과 동시에 시작되어 지금까지 지속되는 개정운동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되기만 하면 피해자의 권리가 보장되리라고 기대했지만, 막상 국회를 통과한 법은 여성계가 청원한 법의 핵심이 빠져있었다. 무엇보다 성폭력특별법은 성폭력에 대한 개념정의도 없이 형법의 각 법조문을 나열하는 것에 그쳤고, 형법에서는 여전히 성적자기결정의 죄가 아닌 정조에 관한 죄였다. 친고죄도 고소기간 6개월에서 1년으로 연장되었을 뿐이었으며 장애인도 신체장애만 해당하는 등의 많은 문제점을 안은 채 법이 통과된 것이다.
우리 활동가들은 법개정과 동시에 개정운동을 시작했다. 1997년 8월에 성폭력특별법 1차 개정을 통해 신뢰관계있는 자의 동석제도가 신설되고, 13세 미만 성폭력은 가중처벌 및 비친고죄 규정 등의 변화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약 50여차례 법개정이 있었다. 2 특히 2011년에 성폭력특별법은 성폭력처벌법과 성폭력방지법으로 분리되어 각각 법무부와 여성가족부 소관 법률이 되었다. 2013년 개정 시에는 친고죄 조항이 삭제되고, 강간죄의 객체가 여자에서 사람으로 변경되었으며, 피해자 법률 조력을 위한 변호인 선임제도 등이 마련되었다.
2018년 #미투운동은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죄의 법정형을 상향하고 카메라등이용촬영죄를 보완하는 등 법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왔다. 당시 혜화역에 모인 수만명의 여성들의 "나의 일상은 너의 포르노가 아니다"는 외침 덕택에 우리사회는 디지털성폭력 문제에 국가의 책무를 인정하고 불법촬영 및 유포된 영상을 무료로 삭제지원하는 등의 실제적인 변화를 이끌었다. 이전까지만해도 유포 피해자들은 수천만원 사비를 들여 '디지털장의사'를 찾아야했다. 2023년에는 국가기관의 장에게 성폭력 발생사실을 여가부에 통보하고 재발방지대책을 제출하도록 의무화하였다. 또한, 수사기관에서 피해자 조사 시 나이, 인지적 발달단계, 심리 상태, 장애 정도 등을 고려하여야 한다는 규정 신설 등의 피해자 권리 보장제도들이 촘촘하게 보완되었다. 이처럼 수십회에 걸친 성폭력특별법 개정의 전과정에 여성운동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현장의 목소리들이 법개정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남은 문제들: 폭행·협박이 아닌 동의여부로 '강간죄'를 판단하고 2차 피해를 방지하라!
성폭력특별법 제·개정운동을 통해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고려가 제도화되고, 성폭력 범죄 전담부 마련, 신뢰관계인, 증인지원관, 피해자 변호사 등 인적자원 구축, 개인정보 보호, 신변안전조치 등이 마련되었다. 뿐만 아니라, 국가의 성폭력상담소 및 피해자보호시설 운영지원, 피해자에 대한 법률 및 의료비 지원 등 전반적인 피해자 권리를 두텁게 보장할 수 있는 기반이 구축된 것은 환영할만한 변화이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으로 '무엇을 성폭력으로 볼 것인가'라는 질문과 성폭력 2차 피해 등은 피해자 권리 보장의 걸림돌로 작동하고 있다.
우리 형법 297조는 아직도 굳건하게 '폭행 또는 협박'을 강간죄의 구성요건으로 두고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법적으로 피해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실제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119개 성폭력상담소의 2022년 강간상담 통계를 분석한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전체 4,765건의 강간 상담 중 직접적인 폭행·협박이 없는 강간이 2,979건(62.5%)을 차지한다. 이들 중 대부분은 강요나 회유, 지위이용, 속임, 그루밍 등에 의한 강간으로 현행법 체계에서 유죄 판결을 받기가 어려운 사례들이다. 3 이미 국제적인 흐름은 동의여부로 가고 있고,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한국정부 심의 4 에서도 형법 297조의 '강간죄' 구성요건을 폭행·협박에서 동의여부로 개정할 것을 권고받고 있다. 특히 상대방의 동의여부를 중시한다는 것은 성폭력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기본으로 고려되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앞으로 반성폭력운동의 방향이 사회적 인식개선을 위한 노력으로도 이어져야 할 부분이다.
성폭력 피해 후 사법기관, 의료기관, 언론, 직장, 주변인 등의 성폭력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으로 인해 피해자가 입는 정신적, 사회적, 경제적 불이익과 심리적 고통을 겪는 2차 피해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전국성폭력상담소의 연구보고서 「성폭력수사·재판 시민감시 20년, 피해자와 함께 만든 변화의 기록과 내일 이야기」 5 에는 그간의 여성인권보장 디딤돌·걸림돌로 선정된 307사례 분석을 통해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피해자들이 겪고 있는 인권침해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즉, 법과 제도적으로는 피해자 권리가 보장되어 있지만 이행과정에서 담당자들의 인식과 태도에 따라, 폭행·협박의 최협의설, 양형, 피해자다움과 진술의 신빙성 의심, 역고소 및 절차적 문제 등이 피해자 인권보장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돌아보면, 전국의 성폭력상담소를 비롯해 수많은 피해자 지원단체, 정부, 국회에서 성폭력을 근절하고자 노력했고 실제적인 변화도 만들어왔다. 그러나 아직도 남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성폭력 발생의 근본 요인인 성별 불평등한 사회구조, 낮은 인권의식 등의 개선 없이 가해자 처벌강화 정책은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많은 사례들을 통해 보아왔다. 결국, 피해자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는 법과 제도, 상대를 존중하는 사회·문화적 분위기에서만이 가해자는 처벌받고 피해자는 일상을 회복하는 너무나 당연한 일들이 실현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반성폭력운동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야성'을 잃지 않고, 여성주의 관점으로 피해자 옆에서 지지와 응원을 할 것이다. 나아가 시민들과 연대해 인식을 바꾸고 실천을 통한 변화를 만들어갈 것이다.
1 이현숙·정춘석(1999), "아내구타추방운동사", 『한국여성인권운동사』, 한국여성의전화 엮음, 한울아카데미, 120쪽. 한국여성의전화는 1983년부터 여성폭력피해자들을 상담·지원해 오다가 피해자들의 사정이 너무 다급해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1987년부터 사무실 한쪽 방을 쉼터로 운영해 왔다.
2 김혜정(2024), "성폭력특별법 30년, 법의 변천에 담긴 사회변화의 흐름과 쟁점", 「성폭력특별법 시행 30년 토론회, 보편을 바꾸는, 가장 보통의 경험」, 한국성폭력상담소·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공동주최 토론회 자료집(2024. 12. 9). 12-20쪽 참조. (https://www.sisters.or.kr/data/report/343)
3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2024), "2022년 강간피해상담 분석",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제24차 정기총회』 자료집, 183-224쪽.
4 CEDAW 제9차 한국정부 심의 대응 여성·시민사회단체 및 네트워크 등(2024), 『제9차 한국정부 심의 NGO 대응활동 보고 및 평가 토론회: CEDAW 최종견해 의미와 이행방안』 토론회 자료집 참조.
5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2024), 「성폭력수사·재판 시민감시 20년, 피해자와 함께 만든 변화의 기록과 내일이야기」, 연구보고서 참조. (https://www.sisters.or.kr/data/report/3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