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12월 17일 14대 국회가 가결하고 1994년 4월 1일부터 시행된 법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 어느덧 30년이 됐다. 이 법은 중간에 두 개 법으로 갈라졌다. 2011년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이하 성폭력처벌법)과 〈성폭력방지및피해자지원등에관한법률〉(이하 성폭력방지법)로 분리 입법된 것이다. 전자는 법무부, 후자는 여성가족부 소관이다. 그러나 반성폭력운동 현장에서 보면 두 법은 연결되어 있다. 한국 사회 성폭력 대응체계에서 피해자 지지와 가해자 처벌은 뗄 수 없는 두 축이다.
"성폭력특별법 제정하라!" 수많은 피해자, 시민, 여성운동가가 요구했다. 당시 형법 32장은 '정조에 관한 죄'였고, 강간죄는 부녀에게만 적용됐다. 말로는 보호지만, 법은 이 부녀가 정조가 있는지 확인하려 드는 장치와 다름없었다. 강간죄는 친고죄였고, 피해자 본인이 6개월 내 고소하지 않으면 안 됐다. 피해자에게 너만 조용히 하면 된다고 종용하던 법적 배경이다. '성폭력특별법'은 이런 온통 남성중심적인 법과 사회에 맞서는 요구였다.
시행 이후로 30년, 성폭력특별법과 성폭력처벌법, 성폭력방지법은 총 50번 정도의 개정을 거쳤다. 어떤 조항이 변경됐는지 정리하고 보면 한줄 한줄에서 당대의 사건, 여론의 일성이 들리는 듯하다. 여성운동단체, 반성폭력운동 현장의 요구와 의견이 들린다. 일부 국회의원의 보수적인 볼멘소리와 법원행정처와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실의 반복되는 '신중검토' 보고서 사이로 현실의 목소리가 외쳐졌다. 친고죄 폐지, 디지털성폭력 법조항 구비, 전반 형량 상향, 성폭력 방지 대책 및 예방 교육 책무, 피해자 불이익 금지, 13세 미만과 장애인 대상 공소시효 배제, 신뢰관계있는 자 동석, 증거보전 특례 등등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특별법'은 '보편 법체계는 못 바꾼다'며 변화를 가로막는 자리에서 그 이유로써 내밀어진다. 한동훈 전 법무부장관은 형법 297조 강간죄 개정에 반대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 성범죄 죄명이 150개다, 촘촘한 편이다, 아동이라든가 장애라든가 특별법으로 있다, 이미 필요성을 많이 메꾸고 있다, 제시카법, 사후치료감호제 이런 것을 위해 노력하겠다".1 '사각지대론'은 법이 닿지 않는 성폭력을 조명하고 법이 포섭하는 범죄를 하나씩 추가하며 늘려가는 방식이다. 특별법 역시 '사각지대론'에 입각해 제정됐다. 특별법은 기존 법체계의 한계와 정상성에 균열을 낸 징검돌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변화 대신 쉽게 포섭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특별법이 변경될 때도 13세 미만, 장애인 피해자에게만 먼저 겨우 시도되는 것을 보면 성폭력특별법은 성폭력을 특수하고, 취약한, 잔여적인 문제로 보는 경향을 보인다.2

그럼에도 보수적이고 가부장주의적인 법, 성폭력 정상성이 유지되는 구조를 깨려는 개입과 노력은 계속된다. 앞으로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2024년 12월 9일 열린 〈성폭력특별법 시행 30년 토론회: 보편을 바꾸는 가장 보통의 경험〉 토론회에서는 논의가 이루어졌다. 그중에서 우선 세 가지를 꼽아본다.
첫 번째, 동의문제다.
성폭력 법조항은 어떤 요건을 충족하면 성립되는지 조건을 걸고 있는데 이를 '구성요건'이라고 한다. 특별법과 형법 조항이 연동되어 있다. 형법 297조 강간죄는 '폭행 또는 협박'이 있어야 한다. 강간죄의 폭행·협박은 '피해자의 저항이 현저히 곤란할 정도'라는 최협의설을 판례와 학설로 두고 있다. 형법 298조 강제추행죄는 마찬가지로 폭행·협박이 조문에 있는 상태지만 해석상의 최협의설이 2023년 10월 대법원 판례로 폐기되었다. 의제강간은 폭행·협박 등 없이도 강간으로 친다는 것인데 13세 미만 피해자 연령 조건이었다가 16세 미만으로 상향되었다. 그러나 이는 16세 미만이 아예 성적인 주체나 행위자가 아니라는 규범을 내포하며, 강간죄보다 낮게 처벌된다. 성폭력특별법 14조 불법촬영 관련 조항에서는 '의사에 반하여'가 요건으로 있다. 피해자 의사와 관계없이 재생산되는 범죄는 의사를 묻고,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거나 할 수 없던 성폭력에 대해서는 폭행과 협박을 따져 묻는 구성요건인 것이다. 형법 제299조 준강간, 준강제추행, 성폭력처벌법 제6조 장애인에 대한 강간·강제추행 등에서는 항거불능을 요건으로 한다. 가해자가 장애인 피해당사자나 술과 약물 상태에 있던 피해자의 '동의 의사 없이' 행위를 한 것이 문제인데 피해자가 얼마나 항거불능이었는지 입증하라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성폭력은 물리적 폭행과 협박을 동원하지 않는 방법으로 이뤄지는 것이 70%에 달한다. 따라서 성폭력이 발생하는 당시와 꺼내 말하는 과정, 고발 이후의 피해자 의사표현을 어떻게 들리게 하고 공적으로 이를 반영할 것인지가 과제이다.
두 번째, 보호법익이다.
강간죄 구성요건을 폭행 또는 협박이 아니라 '동의 없이'로 바꿔야 한다는 개정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이유는 법이 보호해야 할 이익이 성적 자기결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다혜(2024)는 특별법 30년 토론회에서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자유주의적인 권리 개념만으로 젠더에 기반한 폭력 대응을 충분히 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3 헌법재판소나 법원이 성적자기결정권을 권리행사 '능력'의 문제로 보거나, 국가로부터 자유롭게 사적인 성적 생활을 할 수 있는 개인권리로 인용하는 장면을 본다. 성폭력이 모두 타인과의 성적 '관계'에 대한 문제라고 할 때, 개인의 권리/능력이 아니라 관계에 대한 개입으로 법익 구성이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성폭력 법의 한편에 '성풍속에 관한 죄'가 있고 이 조항 일부는 성폭력에 포함되어 있다. '음란', '건전한 공동체 질서유지를 방해하는 성' 등이 사회적 법익의 개념들이다. 디지털 성폭력에는 사회적 보호법익과 개인적 보호법익이 혼재된 상태인데, 최근 대법원은 성적대상화가 되지 않을 권리도 성적자기결정권이라고 해석함으로써 성적자기결정권에 인격권을 연결했다. 기존 성풍속, 음란 개념에 균열을 내는 사회적 법익 변경 논의로부터 '성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 말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장다혜는 제안한다.

세 번째, 피해자 참여다.
성폭력처벌법과 방지법은 피해자 지지를 하는 정책과 제도를 법적으로 설정하고 있다. 증거보전 특례, 신뢰관계있는 자의 동석, 불이익 방지 조치 등이다. 재판절차에 관해서는 2004년 특별법 22조4 1항 증인신문 규칙을 2013년 〈성폭력 범죄 등 사건의 심리·재판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규칙〉으로 제정했다. 피해자'보호' 제도는 여전히 불안정한 위치에 있기도 하다. 예컨대 19세 미만 피해자 진술녹화 증거 진정성립 특례조항이 2021년 12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났다. 보완 입법은 1년 7개월의 논의 과정을 거쳐 2023년 7월 11일 의결되었는데 증거보전 특례를 활용하도록 하되, 증인신문을 위한 공판준비절차를 열게 했다. 또 증인신문 장소 특례를 설정하고 안내를 의무화했다.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이 우선한다고 헌재는 결정했지만, 피해자가 참여할 수 있는 제도를 더 고심하는 과정이었다. 참여권은 보호를 넘어선다. 호랑(2024)은 피해자를 위한 제도를 넘어 피해자의 법적 지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4 성폭력 형량이 올라가도 법정에서 가해자/피고인 서사만 있다면, 피해자 변호사 제도가 생겨도 도리어 무력해지는 경험만 크다면, 피해자는 보호대상이 되어 배제된다. 독일은 부대공소제도, 프랑스는 사소제도, 일본은 피해자 참가제도로 피해자의 참여권을 보장하고 있다.
성폭력특별법의 30년 여정을 보았을 때 중요한 제언은 또 있다. 앞의 세 가지 중점과제가 법으로 따지면 성폭력처벌법에 더 강하게 연루된 문제라면, 성폭력 대응과 예방, 방지정책의 구조를 튼튼히 하는 일이다.
첫 번째는 교육과 예방이다.
성폭력특별법 상 성폭력 교육 및 예방 역할은 여러 개정에서 법에 명시됐다. 1997년 18세 미만 사건 신고의무제도 도입을 시작으로 유치원 보육시설 예방교육, 여성가족부 결과 제출, 예방 대책 마련, 기관 평가 반영, 민간기업 교육 책무, 장애인 맞춤 교육, 예방조치 기본계획 수립, 점검 결과 평가 반영 등으로 나아갔다. 2021년에는 공공기관 성폭력 사건 발생 시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보고하고 장관이 현장점검을 나가는 정책의 근거가 형성되었고 2023년에는 기관장에 의한 사건은 1개월 내 보고가 의무화되었다. 미투운동 당시 여성가족부는 전 부처를 아우르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며 군대 내, 문화예술계 내, 체육계, 공공기관 등 다양한 방면의 신고센터 운영, 피해자 지원제도 마련이라는 변화를 독려했다. 예산을 편성해 성희롱이 발생한 기관에 사후 방문하여 해결 과정의 난점을 듣고 전문가 도움을 지원했다. 그런데 '여성가족부가 필요 없다'고 말하는 성차별주의적 정부나 정치권이 등장하면 그 예산부터 삭감된다. 가해자 처벌 법정형만 높이고, 양형기준만 높일 것이 아니라, 생활 세계 곳곳에서 성폭력 방지와 대응 책임성을 높이는 것이 안전망이다. 교육과 예방은 앞으로 성폭력 법적 전개에서 살아 움직여야 한다.
두 번째는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지지의 통합적 점검과 시너지다.
반성폭력 활동가가 국회에 찾아가면 그 조항은 여성가족부 소관이니 여성가족위원회로, 저 조항은 법무부 소관이니 법제사법위원회로 가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성폭력 피해자 지지 체계 전반을 모르는 '처벌법'은 범죄피해자구조체계 속에서 성폭력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형사사법절차를 포기하는 피해자의 지원을 중단하기도 한다. 반면 가해자 처벌체계를 모르는 '방지법'은 피해자를 제도화된 지원시설의 입소자로 보고, 중복지원의 대상이 아닌지 의심하는 절차만을 강조하는 문제로 귀결될 수 있다. 피해자 지지와 가해자 처벌은 한국 사회 성폭력 대응체계의 함께 있는 두 축임을 상기하면서 함께 점검하고 연결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 번째는 지역 격차가 아닌 지역 내, 지역 간 연대다.
윤석열 정부는 2024년 여성폭력 관련 예산을 대거 삭감했다. 갑자기 상담소들을 통합하겠다며 '응모' 방식을 일방적으로 공지하고, 지역 내 상담소들을 경쟁시키고 불안케 했다. 그러나 현장 활동가들은 갈라지고 불안해하는 대신 모였다. 가정폭력, 성폭력, 이주, 장애, 성매매/성착취, 긴급전화 활동가들 420명은 2024년 7월 모여 정부의 일방적인 통폐합, 현장에서 마주하는 여러 쟁점, 활동 자율성과 여성주의적 가치지향, 기후위기와 지역소멸 시대 위기와 도전을 토론했다.
인구가 줄고 지역 간 격차가 심화하는 가운데, 중앙 부처는 국가 책임은 줄이고 지방자치단체로 권한과 예산 부담을 넘기고 있다. 지역 간에 경쟁하게 하고, 그 상황을 지역 소멸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방식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서울 중심, 중앙정부 중심, 전문가 중심을 넘어 지역들이 유기적으로 탄력있게 서로 연결되는 것이 필요하다. 지역마다 살아있는 피해자와 지원자들의 이야기로, 여전히 성폭력의 구조를 부수지 못하는 체념과 낙담을 뛰어넘어, 좁은 자리를 넘어 성적 낙인을 부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연결하는 것이 앞으로도 과제이다. 보편을 바꾸는 가장 보통의 경험으로.
1 2023년 2월 8일 대정부질의, 한동훈 당시 법무부장관이 류호정 정의당 의원에게 한 답변 중
2 서두의 논의는 김혜정(2024), '성폭력특별법 30년, 법의 변천에 담긴 사회변화의 흐름과 쟁점', 〈성폭력특별법 시행 30년 토론회: 보편을 바꾸는, 가장 보통의 경험〉, 한국성폭력상담소,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2024.12.9
3 장다혜(2024), '국가는 무엇을 성폭력으로 처벌하는가: 성폭력 법의 위치와 방향', 〈성폭력특별법 시행 30년 토론회: 보편을 바꾸는, 가장 보통의 경험〉, 한국성폭력상담소,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2024.12.9
4 호랑(2024), "피해자 보호'의 의미와 한계, 성폭력 대응을 위한 조건 상상하기', 〈성폭력특별법 시행 30년 토론회: 보편을 바꾸는, 가장 보통의 경험〉, 한국성폭력상담소,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2024.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