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시설 모델은 퇴소 이후의 삶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피해로 인해 여러 자원이 부족한 생존자에게는 자립(自立)을 안정적으로 준비할 시간과 공간 역시 마땅치 않은 데도요.
그래서 30년을 맞아 '스스로 힘으로 서는 것'에 초점을 맞춘 커다란 사업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시설과 자립 사이의 중간집을 만드는 일입니다.
2024년, 상담소의 피해자 보호시설 열림터가 개소한 지 30년을 맞았다. 열림터의 의미는 "모든 성폭력 피해 여성들에게 열려 있으며, 이들의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게 하는 터"로, 이름에서 드러나듯이 생존자의 치유회복과 자립이라는 운영 목표를 갖고 있다. 열림터가 문을 연 1994년은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되어 성폭력피해자 보호시설의 설치에 관한 근거 법령이 마련된 해이기도 하다. 그러니 지난 30년은 열림터가 생존자의 '새로운 삶의 지평'을 함께 만드는 것을 목표로 생활인과 활동가들이 같이 먹고 자고 생활하며 성폭력피해자 보호시설 제도를 실행해 온 시간이기도 한 셈이다.
그 수가 줄었다고 하더라도 꾸준히 입소가 이루어지고 있고 우리의 미션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열림터는 몇 년 전부터 '쉼터 모델'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주거 및 자립 지원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고민하고 있다. 생존자를 지원하는 활동가와 열림터에서 생활한 생존자들 모두 쉼터가 가진 한계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1
생활인들은 열림터가 있어서 집을 나올 수 있었지만, 열림터에서 보내는 1년여의 빠듯한 시간 동안 자신의 피해를 돌아보고 사건을 해결하는 동시에 퇴소 이후 혼자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성폭력피해자 보호시설 퇴소자에게 주어지는 자립지원금 500만 원은 만 19세 미만 입소하여 1년의 기간을 머문 후 19세 이상의 나이에 퇴소한 이에게만 주어지고 있어, 2019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시설에 입소한 피해자의 6.3%만이 이 제도를 이용했을 뿐이다. 2
쉼터는 24시간으로 운영되어 누군가의 돌봄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이지만, '보호'를 위한 규칙은 생활인에게도 활동가에게도 때로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기본적인 의/식/주를 비롯한 의료, 문화생활, 직업훈련 등을 위한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지만, 생존자 개별 일상의 다양성과 상충되기도 한다. 자신을 이해하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지만, 비밀 시설이기에 생활인의 일상에도 비밀이 늘어나고 1인 1실이 보장되지 않아 공동체 생활에서의 갈등이 더 커질 때도 있다.
이런 쉼터의 한계에 더하여, 청년이거나 청소년이 대부분인 쉼터 퇴소 생존자들은 불안정한 주거 문제를 겪는 동시에 피해로 인해 사회적, 경제적, 관계적 자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어렵게 자립하고 있다. 열림터 안에서 점점 고민이 깊어지던 즈음, 한 후원자분께서 생존자들의 자립을 위해 써달라며 후원을 해주셨고 이를 마중물 삼아 열림터가 '또같이'를 열게 되었다.
'또같이'는 말 그대로 생존자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주거 공간, '집'이다. '또같이'를 만들기로 결정한 후 몇 개월간, 열림터와 상담소 활동가들은 또우리 인터뷰에서 그들이 이야기했던 따뜻하고 환한 분위기에 하늘이 보이는, 평범하게 불 켜진 집을 찾기 위해 돌아다녔다. 청소년, 대학 비진학 청년, 여성폭력 피해자를 대상으로 주택을 운영했던 기관과 단체들을 만나 자문을 구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2024년 11월이고 내년 1월이면 '또같이'에 입주가 시작될 것이다.
입주자들은 보증금이나 월세를 내지 않고 1년 동안 거주한다. '또같이'에는 각자의 방과 주방, 거실을 비롯한 공용 공간이 있고 생활에 필요한 아주 기본적인 가구와 가전이 준비되어 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다. '또같이' 구성원들은 매월 생활에 들어가는 공동 비용을 스스로 확인하고 지출한다. 설거지, 청소와 물품 구입 등 살림 전반을 이야기하고 실행하는 것도 '또같이' 입주자들이다. 그들이 같이 살 사람을 직접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열림터는 '또같이'에 들어온 이들이 서로 협력하고 돌보는 생활공동체를 구성하기를 바라고 있다. 열림터 활동가들은 한 발 떨어진 옆에서 이 생활공동체가 잘 굴러갈 수 있도록, 입주자 개인이 자신의 삶을 잘 꾸려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하려고 한다.
그런데 '무료로 거주할 수 있는 공간'만으로 주거와 생활의 안정성이 충분히 보장될까? 자립홈에 들어온 이가 여러 이유로 잠시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소득이 불안정하면 공동생활비용을 내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거나, 함께 사는 이와의 관계가 틀어지거나, 결국 퇴거를 선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또같이' 입주자들은 이러한 불안을 덜어낼 수 있다. 머무는 1년 동안 매월 25만 원의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받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은 공간만으로는 모두 충족할 수 없는 안정성을 보장하는 장치이다. 기본소득만으로 살기에 25만 원이라는 액수는 충분하지 않지만, 마음이 버거워 일을 잠시 쉬기로 한 이가 공동생활비를 내고도 개인적으로 쓸 수 있는 돈이 남는 정도는 된다. 월급이 빠듯했던 이는 '해야 하는데'라고 생각만 했던 운동을 시작할 수도 있고, 뭔가를 배우거나 저축하며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에 돈을 쓸 수도 있다. 자신과 타인을 위해 돈을 쓰는 데 덜 망설일 수 있고, '또같이' 생활에 자신의 몫을 낼 수 있기에 '떳떳함'을 지킬 수 있다. 어디에 써야 하는지 정해진 것도 증빙해야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선택을 존중받는다고 느낄 수 있고 실제로도 그런 철학을 가진 제도이다.
누군가는 '주거 공간을 무료로 제공받고 있으니 그 외의 비용은 일을 해서 마련하는 것이 자립 역량을 키우는 데 필요하지 않겠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혼자서 자신을 책임져야 한다는 불안과 두려움에 떠밀려 일을 찾고 유지하게 하는 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자립이어야 할까? 자립에도 여유와 유예가 필요하다. 어떤 사람이 뭔가를 해낼 역량을 갖추고 사회에 자기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비용이 들게 마련이다. 뛰어난 소설가였던 버지니아 울프 역시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능력이나 노력이 아닌 '자기만의 방과 돈'이라는 기반을 말하지 않았나.
여기에 더해 열림터를 거쳐 간 생존자들은 '관계'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회 안에서 살아가며 어려움이 생길 때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사람, 요즘 괜찮은지 물어봐 주는 사람 말이다. 내가 어디로 나아가는지 지켜봐 주는 따뜻한 시선의 힘을 떠올려보자. 쉼터에 입소했던 성폭력생존자들은 피해로 인해 가족이나 일터, 주변인 같은 주요 사회적인 관계와 단절되곤 한다. 안정적인 공간과 일정한 소득, 지지하는 관계가 있는 '또같이'는 이러한 생존자들에게 비로소 마련된 출발선 같은 것 아닐까.
'또같이'라는 새로운 주거·자립 기반 위에서 생존자들이 어떤 시간을 만들어 갈지 궁금하다. 생계에 관한 고민을 조금이라도 덜고 마음 깊숙이 담아뒀던 것을 꺼내 보는, 호기심을 발휘해 보는, 실수해 보니 분명해지는, 잠깐 쉬었더니 힘이 나는, 자립을 위한 1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생활인의 자립 문제 앞에서 조바심이 나곤 하는 열림터 활동가들도 한시름 놓고 이들의 시간을 지켜볼 수 있기를 바란다.
1 나눔터 93호 "성폭력 피해자 쉼터, 새로운 함께 살기를 찾아서" 참고
2 서울신문, "허울뿐인 성폭력 피해자 '자립지원금'... 6년간 61명만 받았다" (검색일 2024.11.13.) https://www.seoul.co.kr/news/society/2024/07/16/202407160120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