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자립'이란 단어를 찾으면 이렇게 나온다. '남에게 예속되거나 의지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섬.' 남에게 예속되거나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서는 상태는 어떤 걸까? 어쩐지 되묻고 싶어지는 문장이다. 이 문장이 내게 따갑게 느껴지는 것은 아무래도 온전히 내 돈으로 퇴소한 게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최대한 오래 쉼터에 있으면서 내가 번 돈을 모아서 보증금을 마련해서 나갔어야 했는데, 6개월 만에 쉼터 힘들다고 뛰쳐나간 내가 창피하게 느껴졌다.
다른 생활인들이 퇴소해서 어떤 삶의 형태를 꾸리는지 잘 몰라서 그런 것도 있었다. 자립이라면 당연히 원룸에서 혼자 생활하는 거라고 생각해왔기에 꼭 보증금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퇴소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월세 문제로 열림터 선생님께 상담을 받아보니 금전적으로 어려우면 공동생활을 하며 지낼 수 있는 공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열림터에서 나포함 9명과 단체생활 하느라 힘들었는데 퇴소하고 나서까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고 싶지가 않았다. 결국 보다 못한 친구가 돈을 빌려주었고, 이후 월세가 싼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 이처럼 공동생활을 견디지 못하는 점도 스스로가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퇴소 초기에는 자립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원하던 대로 혼자 살게 됐다고만 생각했다. 어렸을 때부터 쭉 혼자 살고 싶었고 그게 내 꿈이었으니까. 어쨌든 혼자 살게 됐으니까 꿈을 이루기는 했는데, 그 꿈을 멋지게 이룬 것 같지 않아서 찝찝했다. 그 후로 '자립'이라는 단어는 신발 밑창에 달라붙은 껌처럼 끈끈하고 성가신 단어이자, 언젠가는 도달해야만 할 것 같은 결승점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인정받는 자립을 하고 싶었나 보다. 다른 또우리들과 비교해서, 내 또래들과 비교해서 얼마나 경제적으로 제대로 된 자립을 했는지 계산적인 수치로 재보고 있었다. 하지만 자립을 꼭 하나의 기준으로 설명해야 하나? 생각해 봐. 에어컨이 없어서 여름엔 실내온도가 33도까지 치솟는데, 집에 나 혼자니까 아무 것도 안 입고 있을 수 있다. 집에 있을 때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아도 되니 정말 살 것 같다. 가해자와 함께 살 땐 가위에 눌리거나 악몽을 꿀 때가 잦았는데, 혼자 살고 난 이후 가위에 눌린 적이 없다는 게 정말 신기하다. 통금이 있었을 땐 밤새 놀고 싶어서 안달이었는데, 지금은 10시 이전에 집에 들어가는 편이고 아쉽다는 생각도 안 든다. 내가 원하면 밤을 새든, 며칠을 집에 안 들어가든 괜찮으니까 오히려 적당히 놀고 집에 가게 된다.
결국 내가 원했던 자립은 가해자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이었고, 그 점에서 난 성공적인 자립을 했다는 걸 깨닫게 됐다. 나의 자립이 이런 모양이라면 다른 또우리들은 또 다르겠지. 또우리가 10명이면 10개의 자립의 형태가 있을 거다.
그럼에도 또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 있다. 첫 번째는 누구나 예상하듯 돈이다. 가해자가 가족인 경우, 인간관계가 끊길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고립될 수 있다. 여기에 돈마저 부족하다면 더더욱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쉽고 자립하기가 매우 힘들다. 나 같은 경우는 열림터에 들어왔을 때 직업도, 돈도 없는 상태로 들어왔기 때문에 자립이라는 게 현실적으로 잘 와 닿지 않았었다. 생활인이 된 이후 돈을 벌게 되어서야 자립을 해볼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열림터에서 나와 자립을 했더라도 언제든 돈 걱정을 하게 될 수 있다. 일을 그만두게 될 수도 있고, 사정이 생길 수도 있다. 꾸준한 수입이 없다면 불안해진다. 이건 아마 내가 또우리가 아니더라도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고민이라고 생각되기에 답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두 번째로 필요한 건 연결감이다. 당장 수중에 돈이 없더라도 나와 연결된 누군가가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도움을 청해볼 수도 있고,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용기가 날 수 있다. 사실 돈만 있으면 뭐든 다 할 수 있고 더 이상 필요한 게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돈이 있어도 연결감이 없다면 사는 게 좀 삭막하고 외롭다. 특히 나 같은 또우리는 가족관계가 단절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굳이 가족이 아니더라도 연결감을 가질 수 있는 누군가, 혹은 집단이 있다면 삶이 조금은 더 살만해 질 것이다. 느슨한 연결감이라도 좋다. 나도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은 생각보다 많은 걸 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앞의 모든 것들을 뒤집는 말이 될 수도 있겠지만, 모든 생활인들과 또우리들이 자립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너무 스트레스 받지 않고 살아가길 바란다. 나도 한 때 자립에 집착했던 사람이지만 인간은 어차피 혼자서 살아갈 수 없고 좋든 싫든 기대어 살 수 밖에 없다는 걸 인정하고 나서 마음이 더 편해졌다. 자립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또우리가 있다면, 당신이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상황을 두려워하지 말고, 죄책감 갖지 말고 도움 받아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가해 상황으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친 순간부터 우린 우리 힘으로 다시 일어설 준비를 한 것이다.
진짜 마지막으로 열림터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열림터에서 쉼터에 머무를 수 있는 기회를 준 덕분에 집에서 나올 수 있었고, 퇴소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그럼에도 열림터가 있었기에 꿈에 그리던 혼자살기를 시작해볼 수 있었다. 지금 이 글도 열림터에서 소식지에 실을 수 있는 기회를 줬기에 쓸 수 있었다. 기회가 있다는 것도 몰랐을 때 그걸 알게 해 준 열림터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늘 열림터와 연결되어있다는 감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