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8일은 장맛비가 쏟아지는 날이었습니다. 그날 대법원 대법정에서는 제가 오랫동안 기다렸던 사건의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동성 동반자에게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아니하는 것은 평등원칙을 위반하여 위법하다."라는 문장을 듣는 순간 조금 훌쩍였고, 옆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과 서로 빨갛게 물든 눈가를 보며 슬쩍 웃기도 했습니다. 판결 선고가 끝나고 대법원 건물을 나서며, 너나 할 것 없이 외쳤습니다. "사랑이 이겼다!"
한국에서 동성(同性) 부부는 그간 가족으로서 어떠한 법적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 채 살아왔습니다. 이 사건의 당사자 커플 역시 그랬습니다. 게이 커플인 두 사람(A와 B)은 2013년 연애를 시작하여 2017년부터 함께 살기 시작했고, 2019년에는 양가 친척과 친구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려 '부부'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여느 평범한 부부처럼,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며 하나의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제도가 둘의 관계를 부정하는 순간들을 제외하면요. 혼인신고를 하고 싶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한 사람이 아파 병원에 갔을 때 다른 사람이 보호자가 될 수도 없었습니다. 부부 혹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주어지는 많은 것들이 두 사람에게는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한편, 두 사람은 각자 일을 하고 있었는데 2018년 A가 일을 그만두면서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의 지위를 잃게 되었습니다. 대부분 알고 계시겠지만, 한국에서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기 위해서는 건강보험의 가입자가 되어야 합니다. 보통은 회사에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직장가입자가 되는데, 건강보험 직장가입자는 자신이 부양하고 있는 가족들을 '피부양자'로 등록하여 그들의 건강보험료를 추가로 납부하고 건강보험 혜택을 받게 할 수 있습니다. 피부양자가 될 수 있는 가족이 누구인지에 관해서는 기본적으로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데, 구체적인 사안에서 이를 판단하는 건강보험공단은 법에서 정하고 있는 피부양자인 "배우자"의 범주에 "사실혼 관계에 있는 배우자"도 포함된다고 해석해 오고 있었습니다. 사실혼 관계에 있다는 건 말 그대로 법적으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거나 하지 못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부부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도 여기에 해당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두 사람은 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에 두 사람이 동성 부부 관계임을 밝히며, A를 B의 피부양자로 등록할 수 있는지를 문의하였습니다. 공단은 '가능하다'는 답변을 남기며 필요 서류를 안내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필요 서류인 인우보증서(두 사람이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증언해 줄 수 있는 제3자의 진술서) 등을 제출하였고, 2020년 2월 26일, A는 B의 피부양자로 등록이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국가에게 두 사람이 가족임을 인정받은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2020년 10월경, 이 사실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건강보험공단은 직장가입자인 B에게 전화를 걸어 A의 피부양자 등록 사실이 "착오"라고 이야기한 후, 내부전산망에서 A를 B의 피부양자에서 삭제 처리하고, 마치 한 번도 A가 B의 피부양자로 등록이 된 적이 없었던 것처럼 A에게 해당 기간동안의 '지역가입자'로서의 보험금 납입 청구서를 보냈습니다. 이 과정은 어떠한 구체적 설명도, 두 사람이 항변할 기회도 없이 일방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두 사람은 너무도 차별적인 이 상황을 법원에서 다투어보기로 하였습니다. 건강보험공단이 사실혼 관계인 이성커플에 대해서는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면서, 두 사람이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헌법상 평등원칙을 위반하여 위법한 행정행위라는 것을 확인받고자 하였습니다.
1심 법원은 구체적인 이유 없이 동성커플과 이성커플은 '다른 집단'이므로 평등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지만, 2심인 서울고등법원(서울고등법원 2023. 2. 21. 선고 2022누32797 판결)에서는 "혼인의 의사로 실질적인 혼인생활을 하고 있는 동성 커플은 사실혼 관계로 인정되는 이성 커플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므로, 단지 원고(A)와 B의 성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피고(건강보험공단)가 원고(A)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평등의 원칙에 위반한 차별취급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은 국제법적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고, "우리나라 역시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제3호에서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을 전형적인 평등권 침해 차별행위 유형 중 하나로 열거하는 등 사법적 관계에서조차도 성적 지향이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없음을 명백히 하고 있으므로, 사회보장제도를 포함한 공법적 관계를 규율하는 영역에서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고 할 것이다."고 선언하기도 하였습니다.
너무나도 의미 있고 기쁜 결과였지만, 건강보험공단은 이러한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대법원에 상고를 하였습니다. 대법원은 사건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이 사건을 대법관 전원이 함께 판단하는 전원합의체에서 논의하기로 하였고, 1년 반의 시간이 흐른 2024년 7월 18일에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이 타당하다는, 즉 "이성 동반자와 달리 동성 동반자인 A를 피부양자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합리적 이유 없이 A에게 불이익을 주어 그를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과 차별하는 것으로 헌법상 평등원칙을 위반하여 위법하다"는 판결 (대법원 2024. 7. 18. 선고 2023두36800 전원합의체 판결)을 선고하였습니다. 이로써 A는 4년의 기다림 끝에, B의 피부양자라는 자격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과정에 A의 대리인단 중 한 사람으로 함께 하였어요.

A와 B는 1심 재판 과정에서 여러 차례 '정말로 사랑하는 사이가 맞는지'를 증명해야 했습니다. 친구 관계와 어떻게 다른지, 두 사람이 정말로 혼인 관계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지 질문받았습니다. 소송에 관한 기사들이 나오는 날에는 이곳에 옮기기도 민망할 정도의 혐오 댓글들이 달렸고, 대법원 재판 과정에서는 사건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 "탄원서"라는 이름으로 '동성애는 틀렸다'라거나, '죄악이다'라거나, '나라가 망할 거다'라는 혐오 문서들을 여러 차례 보냈습니다. 그에 맞서 국제앰네스티, 가족법과 헌법학자들, 국회의원들을 비롯하여 여러 지지자가 의견서를 제출하였지만, 날것의 혐오를 정제된 언어로 반박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건강보험공단은 대법원에서 판결이 난 이후에도 이 사건 당사자 커플이 아닌 다른 동성부부들의 피부양자 신청에 대하여 "아직 내부적으로 정리가 되지 않았다"며 등록을 미뤘었지만, 10월부터는 이성 사실혼 부부와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여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고 있습니다.1 우리는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수많은 혐오와 싸웠고, 끝내 이겼습니다.
그리고 이 승리를 디딤돌 삼아, 더 큰 변화를 만들기 위한 여정을 시작해 보려 합니다.

2024년 10월 10일, 혼인평등소송의 시작을 알리는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혼인평등소송은 동성부부가 혼인신고를 하였으나 두 사람의 성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행정적으로 '수리'가 되지 않은 상황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는 소송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4년 김조광수-김승환 커플이 비슷한 소송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이번 소송은 총 11쌍의 부부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소송은 기본적으로 구청에서 거부한 '혼인신고 수리를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하는 것인데, 만일 어떤 법원이 "그래 인정한다"고 하면 한국 최초의 법률혼을 한 동성부부가 생기게 될 수도 있습니다만, 현실적으로 그런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운동의 당사자들과 대리인단의 솔직한 생각입니다. 그래서 이같은 요청과 동시에 법원이 혼인신고를 인정할 수 없게 만드는 현행법이 있다면 그것이 위헌적이라고 다투며, 헌법재판소에서 최종적인 판단을 받아볼 예정입니다. 그렇지만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 결국은 '사랑'이 혐오를 이길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미국을 포함한 영어권 국가에서는 동성혼이 법률적으로 가능한 나라들이 많습니다. 2019년에는 아시아 국가인 대만에서도 동성 간 법률혼이 가능해졌고, 최근에는 일본 삿포로와 도쿄 고등법원에서 동성 간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평등원칙과 혼인의 자유를 위반하여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한국에서 '동성결혼 합법화'를 주제로 진행하는 설문조사는 매년 꾸준히 찬성의 비율이 높아져 가장 최근 설문조사에서는 40% 이상이 찬성하고 있다는 결과가 발표되기도 하였습니다.2
한국에서 동성혼이 법적으로 가능해지면, 어떤 것들이 달라질까요? 어쩌면 당신은 퀴어로서 불가능했던 파트너와의 혼인신고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부부로서, 가족으로서 누릴 수 있는 수많은 제도에서 드디어 외면당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당신은 앨라이3로서 친구의 행복한 동성 결혼식에 참여하고, 그들의 혼인신고서에 증인으로 서명을 해주며 축하의 마음을 전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당신은 직장이나 학교에서, 동성의 사람을 "내 남편, 내 와이프"라고 편하게 이야기하는 동료를 만나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당신은 처음으로, 미디어에서 동성부부의 삶을 보며 '아, 동성 커플의 삶도 알콩달콩하고 근데 뭐 별거 없구나!'라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당신은 결혼이란 무얼까? 가족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하고, 좀 더 다양한 가족의 형태에 대해 상상하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누구의 삶도 더 불행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저 더 많은 사람들이 여러 형태의 행복을 평등하게 누릴 수 있게 될 뿐입니다.
여성운동의 길고 격렬한 투쟁 끝에 호주제가 폐지된 지 1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가족' 내에는 젠더불평등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엄마의 성을 물려받으려면 부부가 혼인신고를 할 때부터 '합의'를 하여야 하고, '친가'와 '외가'의 구분은 여전하며, 부부가 된 두 사람이 각자의 원가족 내에서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차이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동성부부에게는 이러한 문법이 그대로 적용될 수 없을 것입니다. 누구 한 사람에게 젠더화된 역할을 부여할 수 없을 것이기에, 두 사람이 함께 '아들'과 '며느리'의 역할, 혹은 '딸'과 '사위'의 역할을 나누어서 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생긴 예외는 다시 이성애 가족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여성과 한 남성이 만나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부모를 부양하는 '이상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이미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삶'들을 어떻게 있는 그대로 존중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바뀌어 갈 사회가 한국성폭력상담소가 꿈꾸는 조금 더 평등한 사회에 가깝기에 이 소송에 함께 연대하고 있습니다. 회원 여러분들께서도 나와 너, 우리 모두의 사랑을 위해 마음으로 응원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또다시 사랑이 이겼다!'는 소식을 전할 날을 기다리며.
1 "건보공단, 동성 배우자 피부양자 등록 허용....'큰 벽하나 사라져'", 한겨레, 정인선 기자, https://www.hani.co.kr/arti/society/women/1161084.html, 2024.11.15.확인
2 한국갤럽 데일리 오피니언, 제544호, 2023년 5월 4주
3 [편집자주] 앨라이(Ally)란 성소수자 당사자가 아니지만 성소수자의 인권을 지지하고 차별을 반대하는 연대자를 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