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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의 페미니스트 작당모의를 권하며
  • 수수 | 성문화운동팀 활동가

이 글은 두 가지 야심 찬 목표를 가지고 쓰였다. 첫 번째는 올해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진행한 "총선대응 페미니스트 콩깍지 프로젝트"와 "북클럽 폭주하는 남성성의 현재들"이 페미니스트 작당모의였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 글을 읽는 사람들 모두 각자의 장소에서 페미니스트 작당모의를 해보시길 권유하는 것이다. 시~작.

페미니스트 작당모의가 뭔데?

작당모의라는 말을 좋아한다. 좀 장난꾸러기 같은 귀여운 느낌이 있다. 심각하게 얼굴을 찌푸린 게 아니라, 가벼운 마음으로, 그러나 동시에 설레기도 하면서, 관심 있는 무언가를 도모해 볼 것만 같은 그런 단어이지 않은가. 거기다 혼자가 아니다. 여럿이, 함께, 사부작이, 모여서(이게 가장 중요하다) 뭔가를 탄생시킬 것만 같다. 방금 내가 단어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걱정되어 인터넷에 "작당모의"를 검색해 봤는데 "두 명 이상의 사람이 모여서 어떤 일을 함께 꾀하고 의논함"이라고 한다. 휴, 제대로 알고 있었군. 아무튼 그렇다면 좋다.

이토록 귀여운 "작당모의"라는 글자 앞에 "페미니스트"가 붙는다? 벌써 마음이 간질간질하다. 내가 아는 페미니스트들은 많은 경우 웃기고 섬세하고 깊이가 있으며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말하고 만들어내는 사람들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라 세상을 뒤집어놓을 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지만, 전혀 불쾌하거나 누군가를 해치지 않는다. 그렇기에 페미니스트 작당모의는 굉장한 것들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정의에 따른다면 올해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진행한 "총선대응 페미니스트 콩깍지 프로젝트"와 "폭주하는 남성성의 현재들 북클럽" 모두 페미니스트 작당모의라고 불러도 괜찮을 것이다.

총선대응 페미니스트 콩깍지 프로젝트와 북클럽 "폭주하는 남성성"의 현재들


"총선대응 페미니스트 콩깍지 프로젝트"는 2024년 국회의원 선거를 2개월 남겨두고 시작되었다. 여성가족부 폐지 시도, 여성폭력 방지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예산 삭감, 계속되는 정치인들의 여성·소수자 혐오 발언. 정치는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하는 사회 질서를 만드는 일이라는데, 정작 나의 삶을 다루는 정치는 없는 것 같다고 느껴지던 바로 그때. 세상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하고 싶다는 바로 그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다.

일단 "콩깍지 프로젝트"라는 귀여운 이름을 지었다. 그리고 총선 젠더 의제에 대한 고민을 나누겠다는 야망 있는 목표를 세웠다. 그에 걸맞게 발랄한 콩깍지 그림을 그리고 홍보물을 만들었다. 동네 인쇄소에 가서 "페미니스트"라고 크게 쓰인 홍보 전단을 인쇄했다. 그다음 지도를 꺼내 들었다. 이 동네에 수상해 보이던 장소가 뭐가 있었지...? 제로웨이스트 샵, 단골 베이커리, 근처 학교, 청년 지원 공간, 지역 성평등 커뮤니티 센터...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무실을 벗어나 각 공간에 가서 전단을 붙였다. 흔쾌히 벽을 내어주는 곳들을 만나며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모른다. 신난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장 떡볶이도 사 먹었다.


모임 당일,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상담소 건물에 도착했다. 이 모임 구성원은 무려 여덟 번 만났고 강의와 토크쇼, 집회 부스를 차리는 별도의 행사에까지 함께했다. 매주 모여 페미니스트 관점으로 정치를 읽어내며 토론했는데, "나만 이렇게 느끼는 게 아니구나"라는 공감을 나누고 "아, 이런 것도 중요했지."1 하며 서로의 생각의 폭을 넓혀주는 역할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페미니스트들의 관심사와 생각은 모두 다양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주거권에 관심이 많았고, 누군가는 성적 권리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한 가지 의제가 다른 의제와 얽히기도 했다. 가령 동물권과 자본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얽혔고, 사랑과 차별에 대한 생각도 얽혔다. 시민들의 의견이 이렇게 다양한데, 왜 우리가 원하는 정책은 도대체 만들어지지 않는 것인지. 어떻게 하면 페미니스트 관점의 정책과 법을 도입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의논도 펼쳐졌다. (솔직히 글을 쓰는 이 시점은 콩깍지 프로젝트 모임을 한 지 벌써 반년이 지난 때라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당시 콩깍지 멤버들이 작성한 후기를 읽어보니 기억이 생생히 돌아왔다. 여러분도 후기를 추가로 읽어보시길 바란다.)

북클럽 〈폭주하는 남성성의 현재들〉도 마찬가지였다. 콩깍지 프로젝트를 통해 "이게 되네?" 자신감을 얻은 터라 좀 더 당당하게 지도를 펼쳐 들었고, 새로운 공간들에도 홍보 전단을 건넸다. 그리고 정말 전단을 보고 모임에 온 사람들이 있었다. 페미니스트가 낙인이 되어 페미라고 지목되면 직장에서 해고당하는 시국에 함께 하고자 온 사람들. 도대체 여성혐오를 기반으로 한 "남성성"은 왜,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 것인지 파헤쳐보고 싶은 동네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우리는 어려운 책과 흥미로운 다큐를 보았고, 아는 사람은 아는 만큼,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만큼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냈다. (이것도 후기가 있다. 책을 읽을 때 누군가가 고민을 담아 만든 독서 리스트를 "커리(세미나 커리큘럼의 줄임말)"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것 아시나요? "커리"가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도 아시나요? 후기에 모두 공개되어 있으니 너도나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너도 나도 페미니스트 작당모의를 하자

코로나 시기 20대 여성의 자살률이 급증했다는 것이 이슈가 되었다. 한국 사회의 불평등, 여성혐오가 여성으로 하여금 삶을 중단하는 것을 선택하게 만들었다는 분석이 이어졌다. 비슷한 시기, 페미니스트 번아웃도 포착되었다. 2016년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을 겪은 후 페미니즘은 다시 급부상했고 많은 청년이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정체화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한 번쯤 지인과 가족으로부터 "누나/얘야/너 혹시 페미야?"라는 말을 듣는다. "페미"는 힘을 주는 정체성이면서도 멸칭이기도 하다. 멸칭을 정체성으로 삼는 일들이 우울과 불안을 겪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서로를 더 많이 만나야 한다. 실재하는 당신과 나를 느낄 때일수록 용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콩깍지 프로젝트에서 "나만 이렇게 느끼는 게 아니구나"란 생각을 했다는 멤버의 얘기는 정말 소중한 증언이기도 했다. 내가 우리가 될 때, 외로움과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외롭지 않게 힘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만난다는 행위는 차별과 폭력을 중단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온라인 커뮤니티 내 혐오 발언과 사이버 불링, n번방 사건, 딥페이크 성폭력 사건 등등을 마주한 페미니스트들은 부단히 고민했다. 해결 방법을 찾으려고. 그리고 많은 자리에서 여성과 소수자가 "숨 쉬는 몸을 가지고 있는 개체이자 사람"2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려냈다. 누군가가 혐오하는 대상은 단순히 흩어지는 디지털 공간의 코드가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부딪힐 때, 우리는 아프기도 하지만 새로운 시야를 갖게 되며 서로를 존중할 수 있게 된다. 상처받더라도 서로 만나고, 서로 만나서 외롭지 않기를. 그것이 내가 이 글을 읽는 모든 분께 페미니스트 작당모의를 권하는 이유이다.

거창한 듯 적었지만요. 어렵지 않을 거예요. 재밌을걸요? :)

1 가을, "[후기] 페미니스트 콩깍지 프로젝트 첫모임: 나와 내삶으로부터 싹틔우는 정치" https://sisters.or.kr/activity/law/7057

2 이와 같은 얘기는 북클럽 "폭주하는 남성성"의 현재들 이후 열었던 이슈대응집담회 "폭주하는 남성성"의 여러 패널이 한 것이다. 이 중 "숨 쉬는 몸을 가진 개체"에 대한 언급은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추지현 님이 하셨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