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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은 건강한 관계다 <살림의료생협 이야기>
  • 박은지(데조로) | 살림의료생협 운동처방사
기획특집 : 더불어 살기의 조건

건강은 건강한 관계다

<살림의료생협 이야기>

박은지(데조로) | 살림의료생협 운동처방사

살림의료생협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은 삶의 과정이자 목표인데 그렇게 사는 것은 사실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주변에 믿을만한 병원도 없는데다가 좋은 먹거리로 식생활을 고쳐보거나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려고 해도 혼자서는 계속하기 쉽지 않고요. 잠시 여행 가 있는 동안 고양이 밥을 챙겨줄 이웃도 마땅히 없고, 그냥 수박 하나 먹고 싶어도 나눠 먹을 수 없어 포기하게 돼요.

이런 생활상의 자잘하지만 중요한 필요들을 협동으로 해결해보기 위해, 평등 평화 민주정신을 바탕으로 주민이 주인이 되는 의료기관을 만들고, 협동하는 사람, 건강한 삶, 더불어 사는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 가기 위해, 한 사람 한 사람의 뜻을 모아 탄생한 것이 바로 ‘살림의료생활협동조합(이하 살림)’입니다.

살림은 2009년 <여성주의의료생협 준비모임>을 시작으로, 2011년 비영리민간단체 <건강마을 살림이>를 설립하고, 발기인 대회를 거쳐 2012년 2월에 창립하였습니다. 그리고 작년 8월 첫 사업소인 <우리마을 주치의 살림의원(가정의학과 의원)>을 개원하였고, 올 7월 조합원 공간인 <우리마을 건강활력소 다짐(이하 다짐)> 개관을 앞두고 막바지 작업에 열중하고 있어요.

건강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지난 4월 21일, 살림의 조합원 공간을 만들자고 하고, 그 안에 어떤 내용이 담겼으면 좋겠는지 워크숍 형식의 회의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40여명의 조합원들을 다섯 모둠으로 나눠 건강곡선 그리기로 각자의 삶을 건강이라는 키워드로 짚어보고, 어떤 요인들이 건강에 영향을 미쳤었는지, 그래서 우리가 만들 공간을 어떤 공간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토론했어요.

‘학교 다닐 때 뚱뚱해서 놀림을 받아 상처를 받은 기억이 있어요’, ‘아이를 낳고 육아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건강이 많이 안 좋아졌죠.’, ‘얼마 전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정말 좋아요.’, ‘살림에 가입하고 좋은 이웃들도 만나고, 동네에 여러 행사들이 많아 지루할 틈이 없어요.’, ‘모아둔 돈이 없어서 갑자기 아프면 어떡하나 무서워요.’ 등등 건강과 관련한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모아보니 ‘나’뿐만 아니라 ‘우리’가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서로 돌보는 관계’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여럿이 함께 그룹 운동을 하는 모습

하지만 이런 관계를 갖는 것은 쉽지 않죠. 특히 내가 사는 동네에서 가까이 사는 이웃과 서로 돌봄의 관계를 맺기란 참 어려운 일입니다. 30대 비혼인 저 같은 경우만 해도 잦은 이사, 낮은 경제수준, 주거-일터의 분리로 집은 그저 잠을 자거나 택배를 받는 곳, 동네란 언제든 이사할 때가 되면 떠나는 곳으로만 생각해왔으니까요. 그러다 문득 ‘이렇게 살다가 늙고 병들면 누가 날 돌봐주지?’와 같은 두려움이 몰려오기도 했어요. 이처럼 도시의 평균적이고 전형적인 상황에서는 인간관계가 거의 없이 이방인처럼 생활하게 됩니다. 도시주민들은 단지 가까이 살고 있다는 점 외에는 그들을 함께 묶어주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성차별주의, 가족주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속에서 비혼-여성-퀴어들이 지역사회에 뿌리내리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서 살림은 기혼/비혼의 경계, 세대 간 경계, 문화적 이질성의 경계 속에서 살아온 시민들 사이에 새로운 접촉점을 제공하고, 이 속에서 서로 배우면서 함께 변화하고, 성장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번에 <다짐(다-Gym)>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준비 중입니다.

‘기계’가 아닌 ‘관계’로 건강해지는 공간, 다짐

올 7월에 개관하는 살림의 조합원 공간인 ‘다짐’은 ‘다지다’, ‘결심하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짐(gym)’, ‘우리 모두 다의 짐(gym)’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짐에는 조합 사무실과 일상적으로 조합원들이 와서 쉬거나 모임을 가질 수 있는 부엌과 베란다가 딸린 방 그리고 상시적으로 그룹 운동이나 각종 교육을 할 수 있는 운동 공간 겸 대교육장이 생기게 됩니다. ‘건강할 때 건강을 지키자’는 의료생협의 가치를 담은 다짐은 생활 속 협동이 일어나는 도시형 마을회관이자 여럿이 신나게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며 온몸으로 소통하는 새로운 개념의 운동센터이기도 합니다.

조합원 공간에 운동센터가 들어선 것에는 몇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규칙적인 운동은 올바른 식생활과 더불어 건강을 지키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역동적이거나 리드미컬한 움직임을 통해서 우리는 해방감과 자유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지요. 마지막으로 여럿이 하는 운동은 새로운 동지를 만나게 해주며 일상의 활력을 불어넣어줍니다. 살림에서 벌써 4기까지 진행된 ‘건강실천단’ 프로그램은 이것의 좋은 예입니다.

여럿이 손을 모아 맞잡은 모습

‘건강실천단’은 대사증후군 위험인자(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비만 등)가 있는 분을 대상으로 사전검사, 주치의 상담, 체력검사 후 현미채식, 만보걷기와 운동처방으로 대사증후군을 개선하는 프로그램입니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8주간 단원들은 함께 채식을 하고, 운동을 합니다. 혼자서는 해내기 어려운 채식이지만 다른 단원들도 힘겹게 채식을 실천할 것이라는 생각에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되고, 어쩌다 고기와 술의 유혹에 넘어가더라도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생활나눔 시간에 고백의 시간을 가지면서 다른 단원들로부터 다시 잘 해보자는 격려와 용기를 받게 되지요. 운동 역시 혼자 하면 ‘이만하면 됐다’며 금방 포기하게 되지만 여럿이 한다면 옆에서 같이 땀을 흘리는 동지들의 에너지를 받아 때로 고통스러워도 목표한 운동량을 해낼 수 있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운동도구도, 뛰어난 시설의 휘트니스 센터도 서로가 서로를 밀어주고, 세워주는 그룹운동만큼의 효과를 내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관계로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운동을 통해 조금씩 넓어지고, 정교해지는 몸의 움직임은 자신감을 주고, 이것은 다시 움직임의 범위만큼 마음의 범위도 확장시켜줍니다.

혼자서 건강해지기란 쉽지 않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 내가 마시는 공기, 내가 다니는 길과 만나는 사람이 나의 건강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서로 돌보고, 돌봄을 받는 마을공동체가 있어야 하고요. 새로 탄생하는 살림의 다짐도 이런 믿음을 싹틔울 수 있는 건강의 씨앗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 이 부분은 살림의료생협 임직원 워크숍에서 발표된 전희경(2013)의 발제문 <우리가 만들어 가려고 하는 여성주의 의료란 무엇일까?>를 참조 및 인용하였습니다.

데조로 ‘운동으로 운동하자’를 좌우명으로 친구들과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파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