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주택과 할머니와 동네우물과 김치통
전수경
“여기 아파트가 있다는데 안 보이네” 점심 먹으러 가는 길, 할머니 한분이 길을 묻습니다.
“아파트 이름 아세요?” “아파트가 뭔 이름이 있어, 사람 사는 데가 아파트지”
틀린 말씀은 아닌데, ‘OO 뷰’니 ‘ㅁㅁ 힐’이니 이름을 알아야 아파트를 찾을 수 있는 게 현실이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더운 날 도시 한 복판, 할머니가 안쓰러웠습니다.
몇 해 전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는 손자들이 집에 오면 미닫이 문 여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내밀고는 하셨습니다. 쪽진 흰머리 간수하기가 어려워 아흔이 다 되었을 때 할머니는 머리를 자르셨죠. 작아진 몸, 마디 굵은 손가락과 함께 쪼글쪼글 말간 애기 얼굴 같은 할머니 얼굴이 나타납니다. 미닫이 문소리는 해가 갈수록 느려지더니 그 방에서 할머니는 돌아가셨어요. 집에 가면 할머니 계시던 방에서 제가 잡니다. 드르륵 드르르륵 미닫이문 도르래가 천천히 구르고 ‘수경이냐’ 하던 할머니, 가끔은 많이 보고 싶어집니다.
요즘은 벽에 평면 TV가 붙어있고 긴 소파가 있는 각진 공간이 집의 이미지를 대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 것이 집이냐 물으면 그렇다고 답하실 분들이 많지는 않을 것 같고요.
집은 기억이 깃들고 시간이 베를 짜는 기억의 역사관 입니다. 제가 집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건 해당화꽃 붉은 빛, 깊은 우물과 감나무, 불을 때던 할머니 옆에 쪼그리고 앉던 아궁이, 방학이 끝나가서 쓸쓸하던 여름날 오후 마당가의 빗물자국, 젊은 아버지의 잘 생긴 스뎅 세숫대야, 집으로 들어오는 밭두렁길,…. 시골이기에 도시에서 태어난 분들과 추억이 많이 다르겠죠. 지금은 콘크리트에 묻혀 더 이상 가 볼 수 없는 집이 되었어요. 시간이 갈수록 마음속에서는 선명해지는 게 이상합니다. 앗, 원래 얘기로 돌아와야 겠습니다.
집은 브랜드, 시공법, 편의성, 자산 가치로 남지는 않겠죠. 돈, 물성보다 아우라라고 부르는 것, 그 집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집의 요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지난해 겨울, 공동주택을 함께 지을 사람을 모집한다는 동네광고를 보자마자 며칠 궁리하다가 냉큼 찾아갔습니다. 전셋집 구하고 기간 다 되면 연장하거나 다시 전셋집을 구하는 것 말고는 집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도 없던 저인데 집을 짓겠다고 쉽게도 결정을 했습니다.
왜냐, 마을에 먼저 들어선 공동주택 구경을 가게 되었습니다. 겉은 5층짜리 평범한 빌라인데 담백하고 담담한 분위기에 집장사가 지은 집에서 풍기는 느끼함, 과대포장, 저렴한데 비싸게 보이려는 허영심 같은 것들이 없는 집이었습니다. 일층 현관부터 옥상, 계단, 공용공간까지 내 집은 한 칸이지만 주택 전체가 내 집이기도 한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그 때 알게 되었죠. 내 집이 작아도 공간이 확장되는 경험, 내 식구만 거두는 집이 아니라 옆집 윗집 아랫집이 서로 거두고 드나드는, 의식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유년의 집과 동네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는 것을 느닷없이 깨달았습니다.
우선 돈은? 서울시내에서 땅을 사서 집을 짓는 것이기에 집값이 아파트값보다는 많이 싸지만 전세 살던 돈으로는 어림도 없는 큰돈이 필요했습니다. 전세값 말고는 없었습니다. 그마저도 전세대출이라는 게 끼어있는 형편이고요, 공동주택 입주할 돈은 은행에서 빌리는 공식 대출과 가족친지에게 빌리는 비공식 대출로 조달하는 형편입니다.
한집 두집 공동주택을 같이 짓겠다는 입주자들이 모였습니다. 젊은 부부와 아이 하나로 이루어진 3인 가족이 가장 많고, 비혼 1인가구도 있고, 아이가 둘인 저희 집이 제일 인구가 많은 집이 되었습니다. 마을과 인근에 원래 살던 분들이 세집, 공동주택에 살고 싶어 멀리서 이사 오는 집이 다섯 집입니다.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집을 짓고 살아보겠다고 오는 것이니 대담하기도 하고 무모하기도 하고 열린 마음을 가진 분들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먼저 집을 지을 땅을 물색하고 구입하는 절차부터 시공, 이후 관리까지 입주자들이 다 하는 것이 아니고요, 공동주택을 짓는 동네기업과 시공사가 있다는 말씀을 드려야 겠네요.
입주자들은 집을 보는 관점, 내가 원하는 집, 내가 생각하는 공용공간 등에 대해 교육도 받고 토론하고 엠티도 가면서 친해지고 이야기 나누고, 더 친해지고 더 많은 이야기 나누고 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러니까 두 바퀴로 공동주택 건축이 굴러가는데요. 내 집 설계를 하면서 꿈꾸던 다락방도 배치해보고 불가능해 보이는 툇마루도 그려봅니다. 시공사의 전문적인 조언과 개입을 거치면서 가능한 것은 반영이 되고 안 되는 것은 꿈으로 남습니다. 도시에서 좁은 터를 사서 8가구가 사는 공동주택을 짓는 것이기에 집 평수는 어떤 크기를 상상하든 그 이하로 작습니다.
또 다른 바퀴는 공용공간 -마을회관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공용현관, 주차장, 계단, 옥상 등 내 집이면서 모두의 집이 될 공간에 대한 토론과, 집짓기에 반영하는 과정입니다. 입주자들 모두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공용공간에 대한 꿈이 있고 사용목적이 있습니다. 이를 좁혀가는 것이 공동주택 건축의 백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공동주택의 공용공간을 동네 청소년들 프로젝트의 숙박시설로 하루 이틀 내줄 수도 있는 열린 쓰임새를 생각합니다. 물론 밤이면 입주자들이 모여 하루닫이를 하면서 맥주 한잔, 기타연주에 노래 한 소절 오가고, 반찬 하나씩 들고 모여 저녁밥을 같이 먹는 건 기본이겠지요.
집터를 샀을 때 당연하게도 거기엔 집이 있었습니다. 반듯한 이층집에 마당이 정갈한, 늙은 부부가 곱게 가꾼 집이었습니다. 집을 허물기 전 우리들은 그 집에서 하루를 잤습니다. 집에게 미안한 마음, 그 집에 살던 사람들에 고마운 마음, 이 터에 들어설 공동주택이 잘 되게 해달라는 마음을 담아 이별식을 치렀습니다. 돈으로 오가는 관계라 해서 마음을 지우는 것보다 정성을 다해 할 도리를 하는 것, 빈집에서 잘 때 배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공동주택 짓는 과정이 평화롭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웃으면 대화하는 물밑에는 엄청난 각축이 있습니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가격, 자재, 공법, 기한, 일의 순서 등에 대한 무한 전투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전투는 입주자와 시공사 간에 주로 일어나지만, 입주자와 입주자 사이에도 일어나고 한 가구 안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가령 화장실을 설계할 때 저는 색깔에는 민감한 편이지만 가격, 공법 등에는 도통 관심이 가지 않고 시공사가 알아서 해주기를 바랍니다, 누구는 변기기능, 조명위치, 타일재질 등에 대해 꼼꼼히 조사하여 시공사에 얘기합니다. 건축과정에서 입주자의 성격, 가치관, 삶의 태도가 묻어납니다. 집이 곧 사는 사람의 개성을 응집해 보여주는 경우는 공동주택이 아니더라도 많이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시공과정에 최대한 관여하여 내가 원하는 집의 물성을 만들어내고자 할 때, 공동주택을 짓는 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어떤 가치관을 반영하는가에 대해서는 긴장이 생깁니다. 고객으로서 소비자로서 요구할 수 있고, 내 집이 상품가치가 높아지길 기대할 수 있습니다. 어느 동네에서 집을 짓든 집장사가 지은 집이 아닌 개인주택, 공동주택을 선택한다면 한번은 맞닥뜨릴 긴장입니다.
우리는 이 긴장이 낯섭니다. 정면으로 대응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가령 저는 ‘집을 상품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집 짓도 것도 사회운동이라고 생각해서 공동주택 한다’ 하고 말한다면 수긍할 분들이 몇 분 계실까요. 운동은 이렇게 큰 돈 들여서 선택하는 것에 붙이기에는 부조화가 있습니다. 당연히 큰돈이 필요한 사회적 기업이나 귀농 같은 프로젝트가 아닌 내 집을 짓는 일에 사회운동이라 ….
그래도 저는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일, 작은 균열을 갖고 오는 일에 흥분하고 보람을 느낍니다. 내 집 짓는 일이 집도 생기고 사회운동도 되니 아름답지 아니한가요. 물론 대출금 갚아야 하는 자, 채무자로서의 정체성도 깊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 집이 생기면 보수주의 보신주의에 빠지는 사람이 많습니다. 못 가진, 없는 곳에 대한 관심은 관심으로만 밀어놓고, 내 거 지키는 게 급해지게 됩니다. 공동주택에 살면 좀 덜 할까요. 덜 하도록 노력은 할 수 있을 겁니다. 치열하게 공부하고 사회를 돌아보지 않으면 그저 돈 있어서 모여 사는 사람들이 될 수도 있습니다.
TV프로그램에서 공동주택 취재한다기에 추억이라도 될까 싶어서 수락했다가, 막상 방송이 나간 후 돈 걱정 안 하는 사람이 애들 교육 때문에 공동주택 선택한 것처럼 비춰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코하우징, 공동주택, 마을, 커뮤니티, 공동체… 로 의미를 덧입기 전에, 멋진 이름으로 집과 마을이 유명해지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유일하고 소중합니다.
서울이라는 거대도시에서 집은, 땅덩이 전체가 빠르게 도시화되어 가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집은 돈을 빨아들이고 내뱉는 블랙홀이 되었습니다. 집이 화폐로 바뀌는데 사람이 걸림돌이 되면 사람을 치워버리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공동주택을 짓는다고 하는 것이 참 염치가 없습니다. 옥탑, 반지하, 지하, 쪽방, 비닐하우스에 사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에게 참 미안합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 해도 미안한 마음은 진심입니다.
냉장고가 생기기 전 풍경입니다. 동네 우물가에 가면 빨간 노끈에 집집마다 김치통을 매달아 우물에 담가 놓습니다. 밥 때면 우물까지 달려가서 김치를 퍼오고는 했습니다. 남의 집 김치통 열어서 맛도 보고요. 김치통을 매달아놓은 동네 우물은 우리 집이었습니까.
네 우리 집이었습니다. 집을 떠올리면 동네우물 빨간 바가지와 달달 시원하던 물맛도 떠오르니까요. 제 기억 속에 스뎅 그릇 들고 우물까지 뛰던 여름날이 있습니다.
참, 집에 대해서 생각할 거리를 큼직하게 던져주고 딱딱하게 굳은 머리를 시원하게 마사지해주는 이일훈 건축가의 책을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 전수경 일하는 사람, 일 하기 싫은 사람, 공부 좋아하는 사람, 놀기 좋아하는 사람, 돈 좋아하는 사람, 돈 좋아하는 데 돈 없는 사람, 서로를 얽매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