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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고 산세가 고운 밀양에서 보낸 1박 2일
  • 란 | 본 상담소 여성주의상담팀 활동가
삶의 돋보기

조용하고 산세가 고운 밀양에서 보낸 1박 2일

란 | 본 상담소 여성주의상담팀 활동가

작년 1월, 70대 노인이 분신했다. 70대 노인은 2005년부터 낮밤 가리지 않고 산꼭대기에서 맨몸으로 송전탑을 만들려는 중장비를 막아섰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중장비를 막아서자 20대 초반 손자 벌되는 용역들이 나타나 입에 담기도 험한 욕설을 하며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맨몸으로 막아서는 6~70대 노인들에게 폭력도 서슴지 않았다. 용역들이 내일 또 오겠다며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사라진 그날 밤. 70대 노인은 스스로 몸에 기름을 부었다. 스스로 목숨을 내버린 고 이치우 할아버지의 분신으로 밀양 송전탑 문제는 좀 더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밀양에 한번은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 생각 없이 내가 누르는 스위치를 통해 언제든 들어오는 전기가 누군가의 희생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지난달 갑자기 재개된 밀양 송전탑 공사 때문에 또 다시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는 뉴스까지 보고나서는 더욱 그랬다.

밀양이 소란스러워진 이유

부산시 기장군과 울산시 울주군에는 원자력발전소가 있다. 이 원자력발전소에서는 대도시에 공급되는 전기를 생산하는데 신고리원전에서 경남창녕군에 있는 북경남변전소까지 송전탑 161기를 통해 전력이 수송된다. 계획대로라면 밀양에만 평균 높이 100m의 송전탑 69기를 500~600m 간격으로 세워 765kV 초고압 송전선을 이용해 전기를 이동시키게 된다. 한국전력공사는 밀양 송전탑 공사를 재개하지 못하면 이번 겨울 대규모 블랙아웃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한다.

얼핏 들으면 밀양 송전탑 공사를 빨리 재개해야할 것 같다. 전력 예비율이 위험수준에 도달되기 전에, 느닷없이 정전이 되기 전에, 에어컨, 선풍기, 히터가 멈추기 전에 내가 사는 이곳까지 전기가 끊임없이 공급되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전기가 만들어지기 위해서, 또 이곳까지 공급되어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폐허로 변하는지를 생각해보면 나와 전혀 무관하다거나 어찌되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은 사라진다.

지금 밀양으로 떠나는 버스를 타라

같이 사는 메이트가 속한 공동체에서 밀양에 1박2일로 농촌활동을 하러 떠난다고 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공사, 밀양대책위가 공사중단에 합의한 40일간 밀린 농사일을 도와주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밀양으로 가고 있었다. 왕복 10시간이 넘는 시간을 제외하면 1박 2일 동안 농사일을 얼마나 할까 싶을 정도로 적은 시간의 농촌활동이었지만 밀양으로 떠나는 버스라도 타지 않으면 불편한 마음을 내려놓기 힘들 것 같았다.

토요일 오전 7시 사당에서 출발한 버스는 오후 1시쯤 밀양에 도착했다. 밀양역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바로 2개조로 나뉘어 밀린 농사일에 손이 필요한 마을로 떠났는데, 내가 속한 조가 하게 된 농사일은 백문동 밭 잡초 뽑기였다. 백문동은 한방에서는 약초로 쓰이고 최근에는 잔디 대신에 조경용으로 쓰이는 풀로 일교차가 극명한 밀양에서 가장 질이 좋은 백문동이 생산된다고 한다. 오랫동안 지속된 송전탑 반대 투쟁으로 백문동 밭은 백문동과 잡초가 한데 뒤엉켜 처음에는 잡초와 백문동이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6~7명의 사람이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4시간을 꼬박 일했지만 백문동 밭의 절반 정도도 사람손이 닿지 못했다. 사람 손이 필요한 시기에 한해 농사를 방치할 정도로 송전탑 반대투쟁은 밀양 주민들에게 중요한 일이었다.

끝나지 않은 체르노빌, 후쿠시마 그리고 밀양

조용하고 산세가 고운 밀양에는 물이 참 맑았다. 물이 흐르는 강줄기를 따라 텐트를 치고 야영을 즐기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풍광 좋은 시골마을이 누군가에게는 핵발전소를 기반으로 원거리에서 대량으로 전력을 보낼 수 있는 길목으로 이해되고 있었다. 체르노빌에서 후쿠시마까지 핵발전소는 그 위험성에 대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나와는 상관없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로 여겨졌다. 큰 일만 벌어지지 않으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이 결국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사태를 만들었다.

내가 만난 밀양에 살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핵발전소가 뭔지 모르고, 원거리 대량수송의 전력정책이 뭔지 관심도 없는 것 같았다. 그 분들은 단지 당신이 태어나서 평생 살아온 곳에서 그저 살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7년을 싸워 왔다. 더 나아진다는 문명의 진보보다는 지금도 충분하니 지금처럼만 살게 해 달라는 외침이 다른 세계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단 1초도 전기가 지나가는 폭력의 길을 생각해보지 않고 살아온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전기 스위치 꾹꾹 눌러대는 손가락이 1박 2일 동안 너무도 부끄러웠다.

오늘 밀양행 기차를 타시라

이양숙 시인

한곳에 사람이 천만도 넘게 떼거리로 몰려 살 때부터
내 알아봤다
여름매미가 환한 밤을 낮 인줄 알고 밤새 울어대어
잠 못 드는 서울이라 할 때부터 내 알아봤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는 오늘도 내 밥상머리까지 달려와
초록별 지구가 아니라 핵의 별이라고
피눈물로 아우성인데

단 1초도
삶터를 짓뭉개며 달려온 송전탑 길을 생각해 본 적 없는
서울 사람들을 위해
한 평생 논밭 일구던 밀양 할매 할배들의 삶 다 무너진다

천만 서울사람들이여
오늘 밀양행 기차를 타시라
단 1초도
전기가 지나가는 국가폭력의 길을 생각해보지 않는 서울사람들이여
그대들의 밤을 환히 밝히기 위해
그대들의 지나친 문명생활을 위해
아무 생각 없이 전기 스위치 꾹꾹 눌러대는
그 흰 손가락들에 짓눌려
하나뿐인 목숨 기름불에 내던진

보라마을 이치우 할배 기막힌 얘기가
여기 밀양에 있다.

※란 환경문제와 동물권에 관심이 샘솟고 있는 1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