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임신, 어떡하죠?
본 글은 오마이뉴스에 개제된 기사
“갑작스런 임신... 이젠 어떡하죠?(2013.07.01.)”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Q 며칠 전 임신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임신 소식이 반갑고 기쁘기 보다는 난감하기만 해요. 얼마 전 이직을 해서 직장 생활에도 여유가 없는데다, 대출금 이자, 부모님 생활비 보조 등으로 경제적으로도 형편이 어려워서 아이를 낳아 기른 다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거든요. 남자친구도 비슷한 상황이어서 결혼을 결심하기도 여의치 않아요. 어떡하면 좋을까요?
<From 난감이>
A 난감이님 안녕하세요. 보내주신 글 잘 읽어보았습니다. 최근 임신을 하게 되었지만 출산을 할 상황이 아니신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 많이 고민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난감이님처럼 많은 여성들이 임신 소식에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임신한 여성을 돕지 않는 사회적 조건들 때문에 결정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임신과 출산은 성교육의 오랜 주제입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된 후, 9개월간의 임신기간을 거쳐 출산을 하게 된다는 출산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성교육 시간마다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임신과정에 대한 생물학적 지식에 대해서는 성교육 등을 통해 여러 번 접하지만 정작 임신과 출산이 당사자인 여성과 주변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사회 경제적 자원이 필요하며 어느 정도의 마음가짐이나 노력, 희생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거나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임신 했을 때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 가에 대한 정보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미리 차근차근 계획하고 준비해서 임신한 경우가 아니라면, 난감이님처럼 임신을 하고 막상 내 일이 되고 나서야 출산에 대해 본격적으로 생각해 보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임신 소식에 기뻐하기 전에 난감하고 당황스러운 마음이 앞서게 되는 것이지요.
특히 아이를 낳아 기르는데 필요한 사회적 조건들, 예를 들어 보육 제도나 의료제도,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든 원하는 사람은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분위기 등이 충분히 갖추어지지 않은 한국사회에서 임신 사실은 부담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출산을 원하는 경우에도 출산을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기란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경제적 현실이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지요. 한국사회에서 한 명의 자녀를 낳아 대학 졸업 때까지 키우는데 필요한 비용은 평균 3억890만원이 든다고 합니다(보건복지부, 2013). 충분하지 않은 보육 지원제도, 높은 사교육비, 등록금 등은 현실적으로 출산을 선뜻 결정하기 어려운 조건들입니다. 이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은 물론 기혼 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여성들이 아이를 낳아 기르는데 투여해야 하는 엄청난 양의 시간과 자원 부족을 이유로 출산을 포기하는 것은 여성들의 엄살이 아니라 생존과 직결되는 현실이에요. 기혼여성들이 비혼 여성보다 더 많이 낙태를 하며, 1회 이상 반복적으로 낙태를 하는 비율도 기혼여성이 더 많은 현실은 이 사회가 얼마나 아이를 키우기 힘든 환경인가를 너무나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이뿐 아닙니다. 결혼제도 안에서의 임신과 출산만을 바람직하게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 한부모 가족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 만연한 문화 속에서 원치 않는 임신을 한 비혼 여성들은 출산을 하고 싶어도 결혼제도 밖의 임신과 출산에 쏟아지는 비난과 편견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이가 겪어야 할 어려움도 염려할 수밖에 없으며, 혼자 아이를 낳아 기르는데 필요한 경제적 상황도 고려해야하지요. 출산을 결심한다면 심지어 가족과의 관계 단절도 각오해야합니다. 만약 학생이라면 출산과 양육을 위해 학업을 중단해야 할 가능성도 높습니다. 학업의 중단은 취업과 같은 진로와도 밀접하게 연결되기 때문에 출산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삶 전반에 대한 신중한 결정일 수밖에 없습니다.
출산을 원치 않는 경우도 난감한 상황에 처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사회에서 인공유산은 건강상의 이유나 성폭력으로 인한 임신 등 몇몇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불법으로 규정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형법상 낙태의 죄가 고발 건수도 거의 없고 처벌도 크지 않는 등, 일반적으로 ‘사문화된 법’으로 인식되고는 있지만, 엄연히 형법상 처벌받을 수 있는 범죄로 규정되어 있어, 출산을 원치 않아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받고자 하는 여성들은 범죄자가 되는 부담을 감수해야 합니다. 이뿐 아니라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제대로 해주는 병원도 찾기 쉽지 않으며, 현금거래를 요구하거나 비현실적으로 높은 수술비용 등을 감당해야 하는 경우도 많고요. 관련 시술 중 의료사고가 발생해도 적극적으로 문제제기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여러 위험을 임신한 여성 개인이 모두 감수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임신, 출산과 관련하여 최선의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심사숙고해야할 것들이 많습니다. 난감이님도 출산을 한다는 것, 또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 내 몸과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최선의 결정은 무엇이고 그 결정은 누가 내려야 할지를 심각하게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다음 체크리스트를 검토해 보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YES! 출산을 하고 싶다면
☑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신체적, 심리적 변화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나요?
☑ 임신과 출산과정에 필요한 의료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알고 있나요?
☑ 출산과 양육에 필요한 자원(돈, 집, 시간 등) 이 충분한가요?
☑ 양육을 함께 할 파트너 (애인, 남편, 친구, 부모님 등) 가 있나요?
☑ 주변 사람들(가족, 친구, 파트너 등)이 나의 선택을 지지하나요?
☑ 만약 그렇지 않다면 가족, 친구들과의 관계 단절도 감수할 수 있나요?
☑ 만약 그렇지 않다면 출산하겠다는 나의 결정을 지속할 수 있는 의지가 있나요?
☑ (비혼의 경우) 비혼모와 한부모가족 아이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감수할 수 있나요?
☑ 학교에 보육시설이 있나요?
☑ 임신, 출산, 양육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나요?
☑ 원하는 직업을 구하는데 출산과 양육이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 혹시 나의 결정이 ‘모성을 가진 여성이 임신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거나, ‘낙태는 범죄’라고 말하는 사회규범 때문은 아닌가요?
☑ 부모가 된다는 것은 한 사람의 성장을 돕는 책임과 의무를 갖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충분한가요?
☑ 출산을 결정하더라도 양육이 어렵다고 판단한다면 입양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입양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알고 있나요?
☑ 출산을 하겠다는 나의 결정이 나의 삶 전반에 미치는 모든 영향에 대해 충분히 고려했나요?
No! 출산을 하고 싶지 않다면
☑ 현재 한국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낙태는 아래 모자보건법 14조에서 허용하고 있는 사유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불법입니다. 나의 경우는 어떤가요?
※모자보건법 14조 인공임신중절수술 허용한계
1.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2.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3.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4.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5.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 합법적인 인공임신중절수술가 아닐 경우,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을 수 있나요?
☑ 인공임신중절수술이 나에게 정신적, 신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충분히 알고 있나요?
☑ 인공임신중절수술에 드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나요?
☑ 주변 사람들(가족, 친구, 파트너 등)이 나의 결정을 지지 하나요 ?
☑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출산하지 않겠다는 나의 결정을 지속할 수 있는 의지가 있나요?
☑ 만약 그렇지 않다면 가족, 친구들과의 관계 단절도 감수할 수 있나요?
☑ 출산을 하지 않겠다는 나의 결정이 나의 삶에 미치는 모든 영향에 대해 충분히 고려했나요?
출산 여부는 삶과 미래에 대한 결정, 스스로의 선택이 중요해요
임신과 출산을 둘러싼 사회경제적 조건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다보니 출산을 하고 싶은 여성도, 하고 싶지 않은 여성도 선택과 결정이 쉽지 않습니다. 수많은 여성들이 언제 누구와 아이를 몇이나 출산할 것인지, 그리고 출산을 하지 않을 것인지를 스스로 통제하고 자율적으로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지요. 가끔 뉴스 보도를 통해 접하는 아이를 낳아 유기했다는 여성들의 사례는 아이를 낳을 수도 낳지 않을 수도 없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여실히 드러냅니다.
이런 상황에서 난감이님께서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난감이님 자신의 몸과 삶에 미칠 영향과 미래의 계획입니다. 어렵겠지만 난감이님의 사회경제적 조건들과 자원을 냉정히 따져보고 차분히 생각을 정리해야 합니다.
당사자의 몸과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임신과 출산에 대해 충분히 숙고하고 이를 바탕으로 난감이님이 스스로 출산 여부와 관련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주변사람들에게도 적극적으로 도와달라고 요청하세요. 그리고 난감이님이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그 결정을 지지하고 응원할 것을 요청하셔도 좋습니다.
이와 더불어 사회가 임신과 출산의 당사자인 여성들이 자신의 건강상태나 사회경제적 조건을 충분히 숙고하여 출산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조건들을 마련 할 것을 요구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물론 이는 난감이님 혼자서 할 일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함께 요구하고 노력해야 할 일이지요. 우선 경제적 이유 때문에, 또는 결혼제도 밖 출산 등의 이유로 출산을 원하는 여성들이 출산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도록, 충분한 보육시설과 비용지원 등 현실적인 보육 제도 마련을 요구해야 합니다. 또한 다양한 가족 구성에 대한 인식을 확산하여 미혼모, 한부모 가족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한 전사회적 노력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이뿐 아니라 출산과 관련한 결정의 내용에 따라 여성들이 자신의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충분한 의학적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하며, 임신과 출산에 드는 의료적 비용 지원이나 인공임신중절수술을 안전하고 합법적으로 받을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을 적극적으로 요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여성들이 자기 몸과 삶의 주체로서 건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더 깊이 고민하며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From 두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