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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더 좋을수없는, 초여름 상담활동가엠티
  • 차차 | 본 상담소 상담활동가
본편보다 재밌는 후일담

이보다더 좋을수없는, 초여름 상담활동가엠티

차차 | 본 상담소 상담활동가

주중 10시부터 5시까지 전화 상담부스에 전화벨이 울리면 상담자원활동가들은 가장 먼저 성폭력피해자의 목소리를 듣는다. 총 열 여섯 명의 상담자원활동가들은 초기 전화 상담을 통해 다양한 지원 경로를 안내하기도 하고 전화로 심리 상담도 진행한다. (전화상담 외에 면접 상담만 진행하는 상담활동가도 있다.) 그런데 1년 정도 활동을 하며 지켜보니 이 열 여섯 명의 상담활동가들은 (요일별로 오전과 오후 시간대 별로 활동을 하기에 그런지 몰라도) 한 달에 한 번 있는 월례회와 사례연구회에서 모두를 만나지만, 활동한 기간이나 만나온 시간들이 달라서인지 서로를 아는 편차 또한 커보였다. 과연 이번 엠티에서는 상담활동을 벗어난 서로의 얼굴과 어떻게 마주하게 될지, 어떤 이야기들이 오가게 될지 약간은 두근거렸다. 게다가 평일에 떠나는 엠티라니!

평일로 잡은 상담활동가 엠티를 막상 맞이하니 일상을 정신없이 살다가 갑자기 충동적으로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해야 할 것’들의 압박이 차에 오를 때까지 마음을 무겁게 했다. 하지만 차가 내부 순환로에 진입하고 선선하고 세찬 바람이 얼굴을 스치자, 부담들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우리들의 목적지는 상담팀 활동가 유영이 고심하여 선택한 아침고요수목원 근처 산골짜기에 자리 잡은 펜션이었다. 펜션은 각각 보면 흡사 천장이 높은 모던한 미술관 같은 오묘한 느낌을 뿜었고, 한꺼번에 보면 방공호 같이 생긴 독특한 구조로 보였다. 마치 다른 나라에 온 것 마냥 공기도 온도도 도시와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서울에서 한두 시간 떨어져 있을 뿐인데.

엠티1부 · 서로를안다는것의즐거움을준 ‘상담소짝’

모두가 도착하여 짐을 풀고 간단히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나서 상담소 ‘짝 프로그램의 막이 올랐다. 진행자인 유영이 정해준 짝끼리 펜션 주변 이곳저곳을 함께 거닐며 한 시간 정도 서로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나중에 함께 모여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는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미소 선생님과 짝이 되어 한 시간 동안 이야기했는데, 신기하게도 딱 하나의 질문 정도만 서로 묻고 대답할 정도로 시간이 빨리 흘렀다. 사실 미소 선생님과는 1년 간 얼굴을 많이 마주치기는 했지만, 서로에 대해 많이 알지 못했고, 30년 정도 나이 차이도 나는 터라 더더욱 소통하기를 주저했던 것도 같았다. 오히려 이런 기회가 반갑게 와 닿았다.

모두 모여 소개를 나누기 전, 토리 활동가가 숨겨놓은 보물찾기를 진행했다. 못 찾은 사람에게 보물을 나누어주는 훈훈한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시상은 저녁 이후에 진행하기로 했다. 드디어 서로의 짝을 모두의 앞에서 소개하는 시간. 우리는 ‘상담팀답게’ 눈을 반짝거리며 집중한 채 서로의 말을 경청했다. 일대일로 밀도 있게 서로를 알아가고, 다 같이 있는 자리에서 서로를 소개하면서 알아가는 과정이 예상 외로 상당히 매력 있었다. 타인을 안다는 작업은 상당한 듣기와 질문의 과정과 소화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상대를 알고 싶은 욕구나 아는 과정은 나와의 차이를 인식한다는 차원이기도 했다.

수목원 꽃밭 앞에서 찍은 상담활동가 단체사진

너무도 이질적인 위치와 체화된 역사를 가지지만 왜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다를 수 있는지 등을 열어놓고 소통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상담팀 그 자체가 소중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엠티2부 · ‘쵸묵쵸묵’하며 이어진기예에가까운젠가

‘상담소 짝’이 끝날 무렵 바비큐, 오징어, 새우, 잣 두부와 잣 막걸리가 준비됐고, 모두 펜션 밖 테라스에 나와 석쇠에 모여 서로 고기를 굽겠다며 집게 쟁탈전이 벌어졌다. 승자는 미연 선생님과 란. 서로 먹여주고 챙겨주며 음식을 먹을 때마다 ‘선생님! 저 힐링되는 거 같아요.’, ‘진짜 맛있다’, ‘아이고 맛있다’는 목소리가 들렸다. 근처에 있던 ‘야옹이’는 냄새를 맡고 숙소 근처를 배회하다 ‘야옹이 덕후’인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석쇠에 구운 ‘오징어 조공’을 받았다. (배탈은 안 났으려나 모르겠다.^^;)

한바탕 정리를 마치고 보물찾기 시상식을 가장한, 각자가 준비해온 작은 선물 교환식을 진행했다. 그런데 마치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선물은 제 사람을 찾아가는 게 아닌가! 한껏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은희 선생님이 가져오신 와인, ‘소맥’, 앤 선생님이 가져오신 드라이진 이렇게 세 가지의 술이 오가며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때 등장한 미니 젠가로 엠티는 정점에 이르게 되었다.

미니 젠가를 하면서 상담 활동가들이 얼마나 진지한지 엿볼 수 있었다. 탈락한 사람들은 계속 맛깔나게 중계 또는 훈수를 두기도 하고, 좀 더 흥미진진하게 게임을 이어나가기 위해 도움을 주기도 했다. 나는 날개 선생님이 나무토막을 꺼내어 위에 올리는 것을 돕는다고 자리를 비켜주다 의자를 ‘드르륵’ 바닥에 대고 끄는 바람에 젠가를 무너뜨리기도 했다. 매 게임마다 묘기나 기예에 가까울 정도로 높아지는 젠가를 보며, 긴장감과 흥분감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게임의 위너는 은근한 카리스마를 뿜었던 상담활동가 미연 선생님이었다.

이어지는 술자리에서는 내가 종종 즐겨하는 심리테스트를 진행하면서 귀신이야기를 시작으로 자신이 겪은 폭력 경험이나 성폭력 경험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지기도 했다. 경청과 질문들이 난무하며 이런저런 말들은 계속됐고 잠자리에 들어서까지 거의 모두가 옆에 있는 사람과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상담소 짝’에 이어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치 하나의 ‘거대한 나라’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고, 이런 모습에서 나는 각자의 속에 서로의 자리가 생긴 듯 한 인상을 받았다. 물리적인 장소를 떠나 여러 나라를 여행한 기분이었달 까.

엠티3부 · 평생봤던식물보다더많은식물들과만난아침산책

아침고요수목원에 만발한 수국 화분

다음날. 함께 아침을 든든하게 챙겨먹고 근처 아침고요 수목원으로 향했다. 사실 나는 이 공간에 대한 이름만 들어봤지 실제로 어떤 곳인지 전혀 몰랐다. 그래서인지 너무 낯설면서도 강한 인상을 받았던 것도 같다. 이날 아침 햇살은 뜨거웠지만 그만큼 형형색색의 꽃과 식물들이 만발했다. 은희 선생님은 온갖 식물의 이름을 알고 계셨다. 선생님은 친절하게 가이드를 해주실 만큼 입담을 발휘하셨다. 나는 아마 그곳에서 평생 봤던 식물보다 더 많은 숫자를 보았을지도 모른다. 햇살을 오래 받다보니, 모두 너무 더운 탓에 한옥 건물 대청마루에 누워 잠시 휴식을 갖고, 가평에서 유명하다는 막국수를 먹으며 서로 엠티에 대한 소감을 나누었다. 모두 훈훈한 평가를 마치고 아쉬운 마음에 잣막걸리로 건배를 하며 엠티의 막은 내렸다.

서울에 오니 3-4도 높은 듯 한 기온과 매캐한 공기가 느껴졌다. 마치 꿈에서 깬 듯 한 기분이랄까. 그만큼 이보다 좋을 수 없다는 표현 외에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좋았던가보다.

어설픈 엠티 스케치를 마치며,
함께 하지 못한 상담활동가 선생님들과 함께하지 못한 아쉬운 마음을 전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엠티에서 마주친 상담활동가 선생님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올해에도 상담소의 상담활동은 유쾌하고 열정적이고 진지하게 이어져 나갈 거라는 기대감이 꾸물꾸물 올라온다.

※ 차차 ‘뭐하시는 분이에요’라고 물으면 요즘엔 저를 양아치라고 소개하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