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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X바느질행동단: ‘강정의 코’ 일요코행동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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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돋보기
뜨개X바느질행동단

‘강정의 코’ 일요코행동에 가다

잇을 | 본 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

나의 코 세계 입성기

일요일 오후 대한문 앞은 북적인다. 그곳에서 나와 만나기로 하고 먼저 도착한 토리는 그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전화를 했다. 당연한 일이다. 수문장교대식이라도 하는 중에는 어림도 없다. 나는 간소한 쌍차 분향소 곁, 매표소 앞 담벼락에 바짝 붙어서 뜨개질을 하고 있는 그들을 찾아냈다. 웅크리지 않았지만 처음에는 웅크린 듯이 보였다. 줄선 사람들 속에 파묻혀 있었기 때문이다. 갑갑하지 않을까. 누구에게든 편안하게 내주는 돗자리 한 귀퉁이에 앉았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코바늘이 처음인 난 긴장해서 어깨가 한껏 딱딱했다. 옆 사람은 전에 한번쯤 해봤다고도 하지만 이거이거, 헤매기는 서로 똑같다. 하지만 일일 뜨개선생님의 “벌써 그만큼? 아주 잘하네요!”라는 따스한 칭찬은 코바늘을 춤추게 했다. 같은 질문을 서너 번씩 하고 실이 엉켜 도움을 요청하며 주춤하는 내게, “금방 잘할 수 있어요” 라며 격려와 미소도 아낌이 없다. (나의 첫 연습작품은 왕관을 닮았다. 기쁘게 머리에 써보니 토리는 날 좀 안쓰럽게 보는 듯했다!)

돗자리에 놓인 뜨개 편물들

강정의 코  지난여름 강정마을에 다녀온 사람들이 강정마을에 현수막 등을 비롯한 여러 가지 시각물들이 많이 없어지고, 낡은 것을 보고 다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대한문 앞 쌍용차 농성장에서 했던 뜨개질을 기억하고는 강정마을에도 이러한 손노동을 통해서 활기를 불어넣자는 제안을 하게 되었다. 바느질과 뜨개질은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좁은 장소에서도 할 수 있고 ‘유연하게 이어 붙일 수 있어 개별적이면서도 협력적인 작업’이라는 점에서 페이스북 그룹을 만들고 움직임을 시작해왔다. 반 년 이상 매주 일요일마다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에 모여 뜨개질을 지속하면서 ‘코’가 늘어났고, 마포구, 덕소, 원주 등에 지역 기반 뜨개모임도 생겨났다.

“뜨개 편물의 기본단위를 ‘코’라고 부르는 것, 그물망 같은 연대의 하나하나의 그물‘코’가 되었으면 좋겠단 뜻에서 <강정의 코>라고 우리 스스로를 이름 짓고 다른 사람에게도 강정의 코가 되자고 독려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어떤 연대와 공동의 문제해결이 필요한 사회 문제, 타인의 문제들에 우리 스스로가 ‘내 코가 석 자’라는 핑계로 무관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코가 석 자쯤 빠진 것은 당연한 사회이니 그 코들이 모여서 연대하자는 중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강정의 코>가 되기로 했습니다.” (강정의 코, http://knitnoses.tumblr.com/)

뜨개질에 진작 도가 터버린 다른 이들은 연구에 이르렀다. 번갈아 서로의 선생님이 되어주며 더 어려운 패턴에 도전했다. 즉석에서 끼어든 이에게는 여분의 코바늘을 기꺼이 빌려주기도 하고, 들러서 실만 보태주고 가는 이도 있다. 시장에서 싸게 사온 두툼한 실타래를 두 사람씩 다시 감기도 한다. 한 사람은 두 팔에 걸고 한 사람은 풀면서 손에 감아간다. 이 단순하다면 단순한 일에 있어서도 각자의 방식대로다. “실을 무릎에 올려놓으면 따뜻할 거야, 이렇게 해봐요” 조언도 해준다. 두툼한 목도리에 담요도 필요한 날씨, 야외에 앉아있기가 쉽지만은 않고 손도 시리다. 가끔 손을 놓고 잠시 따뜻한 차를 나눠마셨다.

대한문은 참 이상한 공간이다. 화려한 옷을 입고 악기를 연주하는 수문장교대식. 들뜬 관광객들. 건너편의 시청광장은 축제가 한창이다. 이 즐거움을 장식하기 위한 용도인 듯 꽃도 화단에 가득 피어있다. 누구도 화단을 경찰이 종일 지키고 서있는 이유를 묻지 않는다. 경찰차가 왜 있는지도. 간소하다 못해 초라하기까지 한 분향소가 왜 이 길 위에 있는지도. 하필 스피커 바로 앞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는 우리는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시끄러운 소리를 곧장 받아내야 한다. 돗자리도 맘대로 못 펴는 이곳도, 저곳 시청광장도, 광장이긴 매한가지인데. 우리의 형형색색의 실은 고요한 외침 같다.

대한문 앞에 앉아 뜨개질하는 사람들과 손글씨 안내판

이곳에서 쌍차 농성장이 불탔을 때, 자발적 행동단은 ‘이어붙이는 농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뜨개질을 해 농성장 꾸미기를 했다. 뜨개현수막이 나무 사이에 매달린 것을 봤을 때의 기뻤던 마음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러나 경찰에 뜨개편물을 두 차례 빼앗겼고, 경찰과 마찰도 겪게 되었다. 조용하고 자리도 차지하지 않는 작은 행동이지만 대한문에서 일을 벌이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상징적 장소가 되어버린 이곳 대한문에서 뜨개질을 계속한다는 것의 의미는 더 특별하다. 어쩌면 실을 짜고 엮는 이 자리와 시간, 만남들이 더 의미 있다. 뜨개질을 하는 서로의 생각도 교차하는 실처럼 교환되는 시간. 서로의 실이 섞이며 서로의 무늬가 된다.

나는 인상을 쓰며 낑낑대다 어느새 함께 뜨는 재미에 중독되고 말았다. “파는 거예요?” 라고 행인들이 질문해올 때면 이 일의 취지를 설명하며 조금이라도 더 가닿기를 바랐다. 짧은 해가 이리 아쉽다니. 어둑해지자 근처로 이동해 나와 다른 몇 사람은 남은 실을 다 떠버렸다. 며칠 뒤에는 실을 사서 상담소 활동가들과 나눠뜨기 시작했다. 매주 일요일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뜨개질의 재미에 빠진데다, 이 편물이 쓰임새까지 있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멈춰지지 않는다. 상담소 뜨개질중독자들(정희, 유영, 나)은 실을 서로 조달해가며 틈틈이 떠댔다.

뜨개질 ‘좀’ 할 줄 알고 바느질 ‘좀’ 할 줄 아는 개인들이 알음알음 모이고 모여 수백 장의 편물을 만들어냈다. 4개월여의 직접행동으로 만들어진 수백 장의 뜨개편물은 12월 중 강정마을 나무와 공사장입구 등을 감싸도록 설치되었다. 다시 그곳에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기를 바라며. 누군가의 눈길이 한 번 더 머물기를 바라며.

※ 잇을 / 뜨개질중독자, 하지만 뜨개질보다 상담소와
더 긴 시간을 보내는 이제 막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