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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용기》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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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과사람들 ②

《아주 특별한 용기》를 읽고

《아주 특별한 용기》 표지
<아주 특별한 용기_성폭력 생존자들을 위한 영혼의 치유> 엘렌 베스, 로라 데이비스 공저/ 한국성폭력상담소 기획
이경미 역/ 동녘 출판/ 2012년(개정판)

봄이

아주 특별한 용기. 정말 아주 특별하다. 왜냐하면 용기란 감추어두었을 때엔 두려움이지만 내어놓으면 용기가 되기 때문에, 게다가 원치 않는 두려움으로 용기를 가려야 했을 때엔, 이것은 매우 특별한 것이 된다. 나는 과연 나의 상처에 어떻게 직면하고 있는가. 아니, 어떻게 반응하고 소화해내고 있는가. 돌아보면 때로는 상처받아 쓰러진 아이처럼 맥없이 늘어지는가 하면, 때로는 투쟁하는 아이처럼 반항하기도 하고, 때로는 나 자신을 궁지로 몰아 세워 스스로를 구타하기도 한다. 어쩌면, 상처 그 자체보다 나 자신이 더욱 힘이 있어서, 그것이 문제라는 생각도 든다. 차라리 솔직하게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리면 될 것을, 뭐가 그렇게 잘났다고, 뭐가 그렇게 수치스럽다고 오히려 내 안에 박힌 가시를 더 짓눌러 버렸는지. 그것은 내가 잘나지 않았고, 수치스러운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아팠던 만큼, 자책했던 만큼 나 자신에게 미안해지기도 하고 나 자신이 미워지기도 한다.

“이것은 내게 일어난 일이며 참으로 참담한 것이었다. 그것은 어른의 잘못이며 어른이 책임질 일이었다. 나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결백하다.”

42페이지의 구절이다. 그리고 나는 성폭력피해자이며 생존하고 있는 생존자이기도 하다. 생존이라는 단어는 두꺼운 책을 읽어가면서 나에게 매우 익숙해져 갔고, 나는 어느새 내가 생존하고 있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그것이 나로 하여금 내가 나름대로 열심히 투쟁하고 아파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느끼게 만들어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재인식, 재경험, 지속적인 의혹과 나 자신에 대한 모멸감들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며, 성 문제라는 것의 특이성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해 주었다.

“신앙심 유지하기”

333페이지 구절이다. 사실상 나는 신을 믿는다. 그리고 칸트의 말처럼 신을 요청하는 인간일 뿐이다. 신과 영성이란 것을 분리하는 것이 가능한지도 불가능한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신이 없다면 영성이 무슨 소용이 있나 싶기도 하다. 나는 하지만 신을 빙자한 가해자를 용서할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용서는 더 이상 가해자로 인해 내 인생을 슬퍼하거나 동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수년간 아파하면서 깨달은 것이며, 신은 내게 관심이 있지 나의 억지스러운 제사를 원치 않는다. 그것은 나의 열 번째 숫양을 가로챈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신의 은혜를 구한다. 아무리 반항하고 부정하고 해보아도, 세상에 홀로 서있다는 것만큼은 진리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신과의 관계가 있어야만 나의 정체성과 가치가 생긴다. 그렇게 나는 요청하고, 갈망한다. 그리고 은혜와 자비를 구한다. 아무리 가해자가 나로 하여금 신을 모욕하게 만들었을지라도 말이다.

“피해자에서 승리자로

모든 여성들이 성폭력의 표적이 될 수 있다. 명석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고 자기방어 기술이 뛰어나며, 자신을 보호할 권리가 있음을 굳게 믿고 있다 해서 성폭력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 성폭력 피해에서 살아남은 여성들은 훨씬 더 취약해지는 경우가 많다. 만약 당신이 자신의 감정들을 인지할 수 없거나, 다른 사람들의 의도를 간파할 수 없다면 당신은 위험을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당신이 상황을 회피하고 있다면 경고가 되는 여러 신호들을 부주의하게 넘겨 버릴 수도 있다. 그리고 효과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도 어려워질 수 있다. 어릴 때 당신을 도울 사람이 곁에 없었다면 지금까지도 폭력을 막기 위해 도움을 청한다는 것이 꺼림칙한 일일 것이다. 혹은 당신이 의존할 첫 번째 사람이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도움을 지속적으로 요구하지 못할 수 도 있다. 당신이 성폭력을 당해도 싸다거나 성폭력이 불가피하다는 엉터리 생각으로 세뇌되었다면 자신을 방어하는 행동을 취할 것 같지 않다.*

나는 어린시절 가해자에게 세뇌 당하였고, 그것에 대해 명석한 판단을 하기에 무기력했으며 힘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간절했고 신만을 원했으며 신을 위해서는 뭐라도 할 수 있는 맹목적인 에너지로 가득한 결핍된 아이였다. 그리고 가해자는 그런 나를 보호해야 할 직위임에도 그것을 악용하여 자신의 정욕을 채웠다. 사실은 나도 ‘성폭력이 불가피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그 당시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그것을 과연 피할 수 있었을까. 여전히 나는 그때로 돌아갔었어도 그것을 피할 방법은 없었고, 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가 그 장면을 목격하거나 감지하거나 의심을 품거나 그런 것이 옳지 않다는 설교나 강의를 듣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한 말이다. 그래서 때로는 자살을 결심했다. 돌이켜도 난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이 없었고, 난 아파했어야 했으며 겪었어야 했다는 그것이, 내 삶이 능동적일 수 없고 나의 나약함이 언제 또 누군가의 욕정에 사로잡힐지 모른다는 무력감과 자괴감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다시 고민해보고자 한다. 물론 아직은 그 일이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이 들지만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의 생각의 포인트는 잘 알고 대처하면 원치 않는 피해에도 잘 대응할 수 있고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다.

아직은 모르겠다. 성행위와 사랑의 관계, 그리고 성적인 경험을 통제하는 것, 욕구에 대한 개념, 성에 관한 자발성은 아직은 부담스럽고 무섭고 두렵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을 느낄 때 내가 피해당했다는 피해의식이 밀려와 나를 더 불쌍하게 만들어버린다. 나는 섬세하고 예민한 감각을 지녔기에 자아고통감이 크다고 하지만, 가끔은 그것이 너무 미울 때가 있다.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고 울어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담긴 한숨과 눈물, 그리고 역경을 딛고 일어서려는 몸부림이 내 안에 닿을 때마다 나는 불안과 평안을 동시에 느낀다. 그리고 내가 살아있고, 치유가능하며 앞으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또 하나의 “아주 특별한 용기”를 얻게 되었다.

* 「아주 특별한 용기」 466p 상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