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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상대 2차피해 손해배상소송 승리
  • 본 상담소 법·정책 자문위원, 군 법무관 이경환
쟁점과 입장

성폭력 수사과정에서의 2차 피해와 국가배상 책임1

청소년 성폭력 관련 토론회 장면

⊙ 본 상담소 법·정책 자문위원, 군 법무관 이경환

I. 수사과정에서의 2차 피해, 국가배상청구로 제동을 걸다

1. 문제의 제기

성폭력 피해를 입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법적인 조치로는 당연히 수사기관에 신고 또는 고소를 해야겠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수사기관의 편견과 잘못된 통념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적절한 질문과 모욕적 언행, 피해자에 대한 비난, 필요 없는 반복 조사와 가해자와의 대질 조사 등등, 이른바 성폭력 수사과정에서의 2차 피해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2차 피해 문제는 그동안 많은 문제제기와 노력으로 제도적으로는 조금씩 나아지는 면을 보이고 있으나, 현장에서는 그러한 변화가 충분히 체감되지 않아 왔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잘못된 수사에 대해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의미 있는 판결이 나왔다.

2. 사례의 소개

이 사건은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진 이른바 ‘밀양 집단 성폭력 사건’이다. 구체적인 사실관계는 지면상 생략하기로 하고, 피해자인 원고들(성폭력 피해자인 자매 2명과 그 어머니)이 주장한 2차 피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경찰이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배포하면서 피해자들의 인적사항이 기재된 자료를 잘못 배포하여 언론을 통해 피해사실과 인적사항이 알려지게 되었다. ② 담당경찰들이 노래방에서 도우미들이 있는 자리에서 피해사실과 피해자의 이름을 누설하고 비하발언을 하였다. ③ 여성경찰에 의한 조사요청을 묵살하였다. ④ 가해자를 지목하게 할 때 범인식별실을 쓰지 않고 직접 대면하여 고르게 하였다. ⑤ 피해자 조사 시 진술녹화실을 사용하지 않았다. ⑥ 원고들에 대한 보호조치를 제공하지 않아 원고들이 경찰서에 조사를 받으러 갈 때 가해자측 가족들로부터 위협을 받았다. ⑦ 피해자가 학생이어서 다음날 학교에 가야 하는데 밤샘조사를 하였다. ⑧ 식사와 휴식시간을 제공하지 않고 장시간 피해자 조사를 하였다. ⑨ 감식실 담당경찰이 피해자들에게 ‘너희들 밀양에는 뭐하러 갔노’, ‘밀양물 다 흐려놨다’라며 비하발언을 하였다.

제1심 판결(서울중앙지법 2005가합70781 사건)은 위 주장들 중 ①과 ②의 인적사항 유출에 대해서만 국가의 배상 책임이 있다고 하여 각 700만원, 300만원, 5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도록 판결하였다. 제1심 판결은 ③과 ⑦에 대해서는 원고들의 동의 또는 양해가 있었다고 보았고, ⑨에 대해서는 비하발언을 한 경찰이 수사에 참여한 경찰이 아니여서 국가의 책임은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도저히 합리성을 긍정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라고 보았는데, 이러한 판단기준(이하 ‘엄격한 위법판단 기준’이라 함)은 수사기관에게 유리하게 불법행위의 인정범위를 줄이는 입장과 연결되어 있다.

2심인 항소심 판결(서울고등법원 2006나108918 사건)은 ④와 ⑨에 대해 1심과 달리 원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국가배상 책임은 인정하였다. 항소심 판결은 피해자가 미성년자인 성폭력 사건의 경우에는 특히 피해자의 보호가 더욱 필요하다고 하면서, 범인식별실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 피해자들의 권리침해를 감수하면서까지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이 과정에서 항소심은 1심의 엄격한 위법판단 기준을 사용하지 않고, ‘널리 객관적인 정당성을 결여’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하였다(이하 ‘일반적 위법판단 기준’이라 함). 그리고 감식실 경찰 역시 당시 피해자가 성폭력 피해자임을 알고 있었고, 감식실이 피해자들의 대기실로 사용되고 있었으므로 이에 대해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원고 1에게 3000만원, 2와 3에게 각 1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도록 하였고, 대법원(2007다64365 사건)도 항소심과 같은 내용으로 판단하였다.

II. 수사기관의 직무행위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

국가배상법은 역사적으로 볼 때 주권면책의 원칙에 의해 국가에 대해서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입장에서부터, 점차 모든 국가의 행위에 대해 배상책임의 인정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일부 특수한 분야에 대해서는 책임이 제한된다고 보고 있고, 그 대표적인 사례 중의 하나가 바로 수사기관의 행위이다.

수사업무는 재판업무와 비슷한 성격으로 중립성과 특수성이 있고, 만약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수사기관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면 수사가 크게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 책임제한의 주된 근거가 된다. 학계에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주장되는데, 대체로 직무행위 기준설과 일견명백설(엄격한 위법판단 기준)에 따라 누가 보더라도 명백하게 합리성이 없는 경우에만 수사기관의 불법행위를 인정하고 있다. 판례도 여러 사안에서 일견명백설과 같이 엄격한 위법판단 기준을 사용하여 수사기관의 책임을 제한적으로 인정하여 왔다.

그런데 위와 같은 학계와 판례의 태도는 2차 피해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위 사안들은 주로 무죄판결이 확정되었을 때 그동안 수사를 받았던 피고인이 수사기관에 국가배상 청구를 한 것들이어서, 이러한 사안에서의 판단기준이 2차 피해에 대한 판단기준에 똑같이 적용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2차 피해를 방지하는 것은 수사에 방해가 되는 것이 전혀 아니고, 오히려 피해자에게 편안한 환경이 제공되어서 좀 더 쉽게 사건의 실체를 밝힐 수 있는 배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의 판결은 바로 이와 같은 점에서 수사기관의 행위이지만, 엄격한 위법판단 기준을 사용하지 않고 일반적 위법판단 기준을 사용했다고 볼 수 있어 수사기관에 대한 국가배상 청구에 있어 변화를 가져 오는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2차 피해에 대한 국가배상 청구 사례가 많지 않아 섣불리 일반화 하기는 어렵지만, 이번 판결의 취지가 잘 유지된다면 수사기관에 의한 2차 피해에 대해서는 국가배상 책임이 넓게 인정될 가능성이 커지게 될 것이다.

III. 피해자 보호 규정과 국가배상 책임의 관계

수사과정에서의 2차 피해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제기의 결과로 그동안 경찰과 검찰에서는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여러 가지 조치들을 취해 왔다. 범죄피해자 보호규칙, 성폭력 피해자 보호 매뉴얼, 인권보호수사준칙, 성범죄수사 및 공판관여시 피해자 보호에 관한 지침 등 여러 피해자 보호규정들도 그 중 하나이다. 이들 규정은 피해자 보호를 위한 여러 가지 내용이 있어 의미가 있으나, 문제는 실무에서 그 내용이 충분히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에서도 원고들이 주장한 내용은 대부분 위 규정들에 이미 포함되어 있는데 경찰이 이를 지키지 않아 문제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판례는 이러한 피해자 보호 규정들이 단지 수사기관의 내부적인 규칙일 뿐 대외적인 구속력이 없다고 하여, 규정을 위반하였더라도 곧바로 국가배상 책임이 인정되지는 않는다고 보았다. 이러한 소극적 해석은 피해자 보호 규정의 의미를 반감하는 것으로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 판례는 “경찰업무의 특성상 그 상대방인 피해자 등의 인권 보호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내용이라면 위 직무기준에 위반한 행위는 위법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하여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각종 피해자 보호 규정들이 단지 과시를 위한 빛 좋은 개살구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적극적인 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이번 판결의 태도가 다른 사건에도 널리 적용되어 피해자 보호 규정들이 실무에서 실질적인 규범력을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IV. 이번 판결의 의의와 전망

수사기관에 의한 2차 피해에 대해 국가배상 책임을 청구하는 것은, 더 이상 2차 피해의 문제가 단지 연약한 피해자를 배려하고 감싸주는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 피해자의 당당한 권리이며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라는 것을 드러내는 의미가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판결이 비교적 적극적으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이후의 판결에도 적용될 수 있는 몇 가지 태도 변화를 보인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다만 밤샘수사나 피해자 보호조치, 대질수사 등에 있어 2차 피해의 내용을 좀 더 적극적으로 검토하지 않은 것은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번 판결이 단지 하나의 예외적인 사건으로 그치지 않고 더 큰 의미로 남기 위해서는, 이번 판결의 홍보 및 기획소송 등의 계속적인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할 것이다.

금전적인 배상은 2차 피해의 아픔을 충분히 치유하기 어렵다. 2차 피해는 예방이 최선이므로 국가배상 청구는 2차적인 대응방법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배상 청구를 통해 일선 수사기관들이 2차 피해 문제를 실질적으로 인식하고, 현장에서의 구체적인 변화가 유도될 수 있다는 점에서, 수사기관에 대한 국가배상 청구는 여전히 의미를 가지며, 그것이 우리가 이번 판결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될 것이다.

1 이 글은 ...에서 발표된 이경환, “성폭력 2차 피해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의 판단기준”을 요약한 것입니다. 지면상 생략된 내용이 많으므로 구체적인 내용을 알고자 하시는 분들은 원문을 참조하시거나, 판결문을 참조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