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내 스토킹 사건의 이모저모
⊙ 여성주의상담팀 이산
한겨레 21에서 ‘여군 군악대장 스토킹 사건’으로 수 차례 보도되었던 군내 스토킹 사건이 3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스토킹은 현재 형법에 들어가 있지 않은 죄명인데 어떻게 법원의 판결을 앞두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이 재판은 스토킹 가해자가 법의 처분을 받는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가해자가 피해자를 허위 고발한 내용에 대하여 피해자가 판결을 기다리는 과정이다. 이 재판에서 다루는 사건의 개요는, 스토킹 가해자인 S소령이 여군 P대위를 작년 9월 강요, 직권권리남용, 항명 등으로 헌병대에 내부 고발한 것이다.
상담소에서는 2008년 2월, 피해자인 P대위가 1심 재판을 앞두고 있을 때에야 이 사건을 접했다. P대위 본인을 만나 사건에 대해 상의하게 된 것은 1심 선고를 앞둔 2008년 3월 말이었다. 이미 재판이 어느 정도 진행되어, 급히 의견서를 발송하였지만 거의 반영이 되지 않은 채 항명죄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이라는 선고를 받았다.
항명은 말 그대로 명령에 반항한 죄이다. S소령이 P대위를 고발한 내용은 남성군악대원들이 외부 행사 지원을 나갔을 때 팬티만 입고 바나나보트에 타도록 강요하였다는 것, 지나친 얼차려로 권리를 남용했다는 것, 회식 후 400m 가량 음주운전을 했다는 것 등 20여건에 해당하는 사건들이었다. S소령은 헌병대 조사가 진행되던 중 항명과 상관모욕으로 P대위를 추가 고발하였다. 지난한 조사와 12시간의 재판을 거쳐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내용은, 수십 가지의 사건 중 단 2건의 항명이었다.
1심 공판기록에는 P대위의 유죄를 주장하는 납득할 수 없는 자료들이 많았다. P대위의 음주운전을 증명하기 위해 회식자리에 있던 병사들에게 P대위가 그 날 회식에서 마신 술의 양을 진술하게 했다. 진술한 전원이 마신 술의 종류와 양을 모두 다르게 진술했음은 물론이다. 과도한 얼차려를 받았다고 했던 병사는 이후 진술을 번복하여 헌병대 조사 중 말한 내용이 사실과 다르고, 과도한 얼차려를 받은 게 아니라고 하였다. 군검찰의 항소이유서에는 만약 전쟁이 났을 때 이와 같은 항명 사건이 발생한다면 어떤 결과가 일어나겠느냐는 한탄조의 내용과, P대위가 평소 문제 장교였다는 아무런 근거 없는 편견이 가득했다.
P대위는 본 사건에 대해 직접 언론에 알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군내 문제를 외부에 직접 알리는 것은 징계 사유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 내에서 P대위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소속 사단 안에서 열린 1심 재판은 일방적으로 S소령에게 유리하게 진행되었고, 여군고충상담관이나 군내 인권보호 시스템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상황을 보다 못한 P대위의 지인이 언론에 이 사건을 알리면서 한겨레 21에 보도되기 시작했고, 우리 상담소가 P대위를 직접 만나면서 사건 지원을 상의할 수 있었다.
1심이 끝난 뒤, 우리 상담소에서는 P대위를 지원하는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 대응할 것을 제안했다. 군내 성교육, 군내 인권침해와 성차별 문제, 성폭력문제를 고민하는 시민단체들이 만나서 〈군내 스토킹 피해자 지원을 위한 공동대책위〉(이하 공동대책위)를 구성했고, 5월 15일에 첫 회의를 열었다. 공동대책위 활동가들은 고등군사법원에서 2심 첫 공판이 열리는 날 6월 10일 아침에 기자회견을 통해 P대위에 대한 무죄판결을 촉구했다. 공동대책위에 참여하는 각 단체의 자원활동가, 기자, 그 밖에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1차, 2차 공판과 선고에 이르기까지 20~30여명씩 꾸준히 법정에 나와 자리를 지켰다. 공동대책위와 함께 공동변호인단이 구성되어, 2~3명의 인권 변호사가 재판에 참석하여 P대위를 변론했다. 두 번째 공판에서는 4시간에 이르는 피고인 신문을 통해 S소령의 스토킹 행위를 조목조목 밝혀내기도 했다. 결국 7월 15일, 고등군사법원에서는 1심 판결을 뒤집고 P대위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P대위의 무죄판결을 주장하고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을 것을 요구하는 활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7월 22일 군 검찰은 대법원에 이 사건을 상고하였다. 공동대책위는 사건이 대법원에 올라가지 않고 무죄판결이 확정될 경우 S소령의 스토킹에 대한 처벌과 군내 성폭력 문제에 대한 정책 제언에 집중하려 했으나, 현재는 3심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조금 속도를 늦춘 상태이다. P대위에게 유죄를 선고했던 사단을 방문하여 이 사건에 대한 왜곡된 소문을 막고 책임을 묻는 방법도 추진하였으나 사단장 면담는 거부되었다.
공동대책위를 구성하여 이 사건을 지원하면서, 우리는 조직 내에서 가해자가 피해자보다 높은 위치에 있을 때 사건이 얼마나 부당한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진급에 대해 평가, 결정을 내리는 평정권을 쥐고 있는 상관에게 대응을 하는 것 자체가 이미 피해자의 군 생활을 위태롭게 할 뿐더러, 같은 이유로 군생활을 계속 하고자 하는 동료들도 피해자를 지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가부장적인 군 문화 한가운데에서 성차별, 성폭력의 문제를 드러내는 것도, 자신의 피해를 차단하는 것도, 또 다른 피해를 막기 위해 가해자의 책임을 묻는 것도 너무나 어렵다. 항명이나 상관모욕, 위수지역 이탈 등 군법에 의해서만 처벌이 가능한 죄명들이 피해자의 발목을 붙들고, 진급에 대한 부담이 어깨를 누른다.
공동대책위 활동가들은 회의 때마다 군 문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군복무를 마친 주변인들의 에피소드부터 이슈화되었던 군내 성폭력 사건, 정책 제언의 방향까지. 가벼운 수다부터 진지하고 장기적으로 고민해야할 문제들까지, 회의 때마다 논의가 좀처럼 끝나지 않곤 했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하지만, 겪어 본 사람들도 ‘겪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를 좀처럼 고민하지 않는 곳. ‘군대에 다녀온 당신이야말로 진짜 국민’이라고 포장하면서 가부장적 위계질서와 폭력문화를 양산하고 인권 침해가 발생해도 ‘이런 거 겪으면 사회에 나가서 다 도움 돼’라고 변명하는 곳. 국민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국민을 보호한다는 발상에서 시작된 군이 어떻게 인권 보장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을까. 3심 판결을 앞둔 군내 스토킹 피해자 지원을 위한 공동대책위의 어깨는 아직 무겁기만 하지만 항소심 승소의 기운을 받아 지속적 관심을 갖고 지원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