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1-1번지
⊙ 水
경기도 00군 00리 산 1-1번지, 2008년 4월 5일 동료들과 산에 갔다. 날씨가 포근하고, 불어오는 봄바람이 싱그러운 그런 아침이었다. 좋다, 나의 편안한 일상이.
나는 동료들과 점심을 먹고, 느긋하게 산책을 했다. 햇살도 따사롭고, 화창한 기분 좋은 오후였다. 시골이라 대중교통도 없고, 오가는 사람도 적었다. 가끔 산악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지나가는 정도였다. 낮잠이라도 한숨 자고 싶은 평온한 시골에서의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산속에서 화장실 갈만한 장소를 찾던 중 가까운 곳에 있는 기도원을 찾았다. 동료들이 화장실에 들어가고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그 평화로운 나의 오후 속으로 자동차 한 대가 들어왔다. 운전자는 운전에 정신이 팔려 나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내려진 차창을 통해 나는 정확하게 그 사람을 알아 볼 수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아빠란 사람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지금이 현실인지 아니면 내가 깨어나려고 노력해야하는 꿈인지 알 수 없었다. 가위에 눌린 듯 온 몸이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옆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내 뺨을 스치는 봄바람이 아니었다면 소리라도 치며 꿈에서 깨어나려 노력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은 현실이었다. 현실, 실제 내 삶 속으로 그 사람이 들어와 마주하게 된 것이다.
순간 그곳은 나와 그 사람만 있는 진공상태의 시간과 공간이 되었다. 내 주변에 동료들이 있었지만 나 혼자 그 공포스런 시간과 공간 안에 있었다. 당장이라도 그 사람이 차에서 내려 나를 강제로 끌고 어디론가 데려갈 것 같았다.
“야, 이년아 너 때문에 내가 7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감옥에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머리채라도 잡고 그 사람만을 위한 고립된 공간, 집구석으로 끌고 갈 것 같았다.
너무도 평화로운 나의 일상 속으로, 어떤 예상도 하지 못한 나의 안전한 시간 속으로 그 사람이 불쑥 들어온 그 순간. 나는 “겁” 속에 빠져버렸다. 아니 “겁”이 나를 삼켜버렸다.
그 순간 나는 없고, “겁”만 존재했다.
“겁”은 몸이 느끼는 걸까? 마음이 느끼는 걸까? “겁”을 표현하는 건 말로 가능할까? 몸짓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정말 겁이 났다고 말하고 나면 겁에 휩싸여 있던 감정이 좀 풀릴까? 어떻게 하면 이 기분 나쁜 “겁”딱지를 떼어버릴 수 있을까?
나는 천천히 뒤돌아섰다. 그 사람의 차가 몇 걸음 안 되는 가까운 곳에 있어 갑작스레 몸을 돌려도 티가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옆에 서 있던 팀장님께 귓속말을 했다.
“아무것도 묻지 말고, 그냥 같이 저 밑에까지, 안전한 데까지 같이 내려가 줄 수 있어요? 같이 내려가줘요. 그냥 아무 것도 묻지 말고, 뒤 돌아보지도 말아요.”
“그래.”
한발을 내딛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 사람이 알아채고 뒤따라올까 겁도 났지만, 그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 뒤돌아보고도 싶었다. 그러나 목이 돌아가지 않았다. 지금쯤 그 사람이 차에서 내려 내 뒷모습을 보고 따라 오는 것은 아닐까? 저 사람이 왜 이곳에 나타나? 일부러 찾아오라고 약도를 그려 줘도 찾기 힘든 이곳에 저 사람은 어떻게 나타난 거야? 미친 놈 지 놈이 나한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는 내 눈앞에 어떻게든 보이지 않는 거 아냐? 왜 저렇게 시퍼렇게 살아서 돌아다니고 지랄이야. 몸이 떨리고, 솟아날 것 같지 않았던 눈물이 내 눈에서 솟았다. 이 눈물은 무엇일까? 두려움일까? 뭐가 두렵단 말인가? 그 사람에게 여전히 두려움을 느끼는 내 몸에 대한 짜증도 눈물에 섞여 나왔다.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도망가지 싶어 더 짜증이 났다. 그러면서도 내 발은 여전히 그 사람으로부터 한발 한발 멀어지려고 필사의 노력을 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당장이라도 돌아서서 그 사람에게 성큼성큼 걸어가고 싶었다. 내 속의 나는 계속해서 그 사람에게 따지러 돌아서고 있었고, 실제의 나는 조용히 그 사람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야, 너 여기는 왜 왔어? 지금은 내가 여기 볼 일 있어서 왔으니까, 너 나가”
시원하게 내지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내 머릿속에서만 할 수 있는 소리였다. 실제 나는 여름 같은 봄날씨에 덜덜 떨며 차갑게 얼어붙었고, 눈물은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 콧물과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도 초라해 보였다. 멋지게, 당당하게 뒤돌아서서 그 사람에게 말하고 따지고 싶은데 내 몸의 어느 것 하나 그런 나의 생각에 장단을 맞추지 않았다. 조용히 고개 숙이고, 흐르는 눈물 때문에 몸까지 떨어가며 그를 피해서 도망가고 있다니…… 너도 별 수 없구나 싶어 더 눈물이 났다.
팀장님은 조용히 같이 걸었다. 내 몸에서는 내 머리로 어찌할 수 없는 눈물과 두려움이 흘러나와 나를 녹여버렸다. 내 몸은 머리도, 마음도 넘어서는 뛰어난 감각을 가진 듯 했다. 적어도 그 사람이 입힌 상처에 대해 떠올리는 것과 사정거리 이내로 들어온 그 사람에 대해 파악하고, 두려움을 느끼는 면에서 내 몸은 머리와 마음보다 더 예민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더듬이가 있는 것 같았다, 그 사람을 알아채는 더듬이.
나는 그 사람으로 인해 내 ‘마음’과 ‘영혼’이 죽음만큼 힘든 고통과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했었는데 동물적 감각으로 느끼는 ‘몸’은 관념적 두려움과 상처에 대한 기억을 뛰어넘는 감각으로 아파했다. 내 몸은 내가 또 맞을까봐, 또 그 사람에게 끌려가 갇히고, 원치 않는 그 짓거리를 당하게 될까봐 겁에 질려 있었다. 그 짧은 순간, 그 사람의 얼굴을 본 그 몇 초 동안 내 몸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고, 또 어떤 두려운 일이 벌어질지 몰라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160cm도 안 되는 몸이 그걸 느끼느라 부대끼고 있었다. 내 온 몸, 내 모든 세포가 그 사람에 대한 겁에 질려 화들짝 놀라 깨어났다. 세포들도 하나하나 입을 열어 소리치고 있는 것 같았다.
“너무 무서워, 너무 겁나, 어떻게 저 사람하고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있을 수가!”
몸의 미세한 떨림들이 계속되어 한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 안정이 되자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내가 왜 도망가나 싶었다. 서로 마주치면 도망갈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라는 생각에 그 사람 앞에 당당하게 서 있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무기가 될 만한 돌덩이라도 들고, 그 사람 얼굴을 찍어주고 싶었다. 어떻게 얼굴 똑바로 들고, 기도원에 들어서는지. 또 여기서 어떤 더러운 짓거리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속이고 있을지. 적어도 신경 써서 내 눈앞에는 나타나지 말았어야지, 어디 하늘 아래 얼굴 들고 돌아다니다 나랑 마주치기까지 하나 싶어 화가 났다.
오후 일정을 접고 집으로 돌아오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러면 여전히 그 사람에게 내 삶이 휘둘리는 것 같아 싫었다. 그 사람은 이제 더 이상 내 삶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내 몸"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실컷 울고 난 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했다. 물론 2분 거리에 그 사람이 있었지만, 그 사람이 운전하던 것와 비슷한 차가 지나가면 신경이 쓰이기도 했지만, 애써 무시했다. 나는 그곳에서 해야 하는 일들을 마치고서야 서울로 돌아왔다.
동료들과 헤어지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오늘 누구 봤을 거 같아? 나 오늘 산에 나무 심으러 갔잖아, 누구 마주쳤는지 알아?”
나의 질문에 정답을 말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내가 정답인 “그 사람, 아빠”를 말했을 때 모두들 말을 잇지 못했다. 한 친구는 왜 기도원 화장실을 이용했냐며 기독교 쪽에는 오줌도 누지 말라고 농담을 했고, 다른 친구는 장난 아니라며 완전 내 삶이 영화 같다고, 드라마 같다고 했다. 나와 아빠의 악연을 아는 이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기가 막혀 큰 소리로 웃기까지 했다. 나도 너무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내 글을 좋아라 하는 친구는 ‘야, 너 이 이야기는 쓰면 사람들이 거짓말 하는 줄 알겠다. 뭐 드라마 쓰는 것도 아니고, 너무 기가 막히잖아, 드라마 보면서 에이 어떻게 저기서 저렇게 우연히 만난데~ 라고 말하는 그런 장면이잖아 완전 대박감인데...’라고 했다.
그래 기막히지. 근데 그런 일들은 내 인생에 수두룩 빽빽하다구, 쳇.
암튼 15년 가까이 그 사람을 안 보고 살았는데, 심지어 동생들의 결혼식도 가지 않으면서 그 사람과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했는데 이렇게 어이없이 그 면상을 마주치게 되다니.......
“산 1-1번지 사건” 이후 몇 달이 지났다. 살이 3kg정도 빠졌다.
난 왜 내 삶을 글로 쓰고 있는 것일까 다시금 생각해봤다. 내가 아빠란 사람에게 당했던 성폭력 피해는 그 사람이 절대 말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은 기억하지 않아 말하지 못할 수도 있다. 아니 기억하더라도 그 사람의 입장에서 기억하겠지, 그러니까 감옥에 갔다 온 것을 억울해하지 않았을까? 나는 그 피해 사실을 기억하는 유일한 생존자이다. 갑자기 언젠가 읽었던 안네의 일기와 빅터 프랭클의 글들이 떠오른다. 독일군의 무차별적인 폭력과 죽음의 공포 앞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았던 순간들의 기록. 그들의 글을 보며 울기도 하고, 희망을 갖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인정받는 고통의 시간과 극복의 기록을 보면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더 단단히 했다. 나의 글을 쓸 것이다. 필력이 딸려도 쓸 거다. 글을 쓸 공간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아무도 읽는 이 없더라도 쓸 것이다. 나를 위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을 위해.
<다음 호에 계속>
水의 한마디
내가 겪은 일은 역사적으로 누구나 기억해줄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아빠란 사람으로 인해 겪은 고통에 대해서는 그 사람과 나 두 사람만 안다. 우리 둘 중 어느 누구도 말하지 않고 살다 죽으면 그 일은 없었던 일이 될 수도 있다. 그 사람은 절대로 그 일들을 말하지 않을 것이고, 글로 쓰는 일은 더더욱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이 입을 다물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살고 있는 모습을 볼 때 나는 내가 입을 열어야 하는 이유를 더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이 내게 했던 더러운 짓거리는 분명히 있었던 사실이다. 그 사람은 그때도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목사 행세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내게 있어 그 사람이 한 짓들은 내 영혼을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로 심각한 것이었다. 그 가운데 살아남기 위해 기도하고, 울부짖으며, 숨쉬고, 결국은 탈출하고, 살아남았다.
하지만 간신히 살아남은 정도로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 내 잘못도 아니고,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하는지 (나는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가 자연스럽게 죽을 수만 있으면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다. 왜 그런 느낌이 내 속에 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나는 그 사람이 내 인생을 맘대로 할 때부터 죽고 싶었다) 알고 싶었다. 그 이유를 밝히 알고, 치유의 길이 있다면 제대로 걸어보고 싶다. 그렇다고 내가 우울하게 사는 것도 아닌데, 막 사는 삶을 사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 사람을 갈기갈기 찢어서 죽이고, 말려서 죽이고, 나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나를 찾아오곤 한다.
내가 어찌해볼 수 없는, 내 힘으로는 어떻게 되지 않는 것들이 내 안과 밖에 있다. 원치 않았지만 개같은 아빠에게서 태어나 자라야했고, 그나마 화해가 되어 잘 지내보고 싶었던 엄마는 갑작스레 일찍 돌아가셨다. 나는 내가 어떻게 손을 댈 수 없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낮은 자존감으로 힘들어하며 겨우 살아가고 있다. 사회생활하며 티내지 않으려고 별 지랄 다 해봤다. 지금도 하고 있는데 예전에는 그 지랄 같은 노력조차도 티 나게 했지만, 요즘은 그렇게 티내지 않고 한다. 티를 내면 사람들이 떠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혼자 속으로, 속으로 해야 그나마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이런 현실이 견딜 수 없이 힘들고, 외로울 때가 참 많다.
"저도 아빠란 사람한테 엿같은 짓거리 당해서 당신네들처럼 하하호호 잘 못하고, 사회생활 당신들이 원하는 만큼 못하고, 좀 꼬여있고, 아니다 싶으면 막 하는 거거든요. 당신들 내가 겪은 일 겪고 살아왔으면 지금 나보다 더 하실 거 같거든요. 암튼 나 힘들면 다 놔버리고 싶은 맘 굴뚝같거든."
이런 나의 사고 속에는 여전히 그 아빠란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다. 몸만 그 사람에 대한 두려움에 휘감겨있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내가 그 사람에게 영향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이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오늘도 글을 쓰는지 모른다.
완전히 벗어나는 날, 나는 다 쓴 원고를 가지고 불을 싸지르든, 비행기를 접어 날리든, 책을 만들든 어떻게 하든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다. 몸도, 마음도, 영혼도 그 사람에 대한 겁에서 풀려나는 그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산 1-1번지" 뿐 아니라, 단 둘이 집구석에서 마주치게 되더라도 겁나지 않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