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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로 가해자를 고발하다 2nd
  • 진 (성폭력 피해생존자)
생존자 말하기 · 연재 2nd

말하기로 가해자를 고발하다

아니야.
어떤 식으로든 언급은 하고 넘어가야겠어. 이대로는 정말 아니야.
마음을 다잡고 다잡았지만, 몸은 여전히 떨린다.
심장 박동소리가 크게 다가온다.

⊙ 진

프놈펜에 도착하니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나보다 두 달 먼저 들어와 있던 그 사람은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을 하고 있었던 걸까. 건물 1층 외부에 식당과 샤워실을 만드느라 고생한 일을 마치 전쟁 무용담을 풀어내듯 두고두고 자랑하는 사람이다. 각 방에 침대와 서랍장 등을 구비하는 일 정도로 2개월을 허비했다니.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비하하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에 진하게 물들어있는 개차반에게 해외 개발단체의 수장으로서 지녀야 할 리더십과 업무추진력을 기대하기란 애초부터 무리였다.

당장 시급한 과제가 센터 내에 통신망을 갖추는 일이었다. 캄보디아 파견 직후의 밤부터 왕성한 그 인간의 성욕을 짐작케 하는 온갖 음담패설을 듣고 난 후, 컴퓨터 조작법을 방에 들어와서 알려달라는 그 사람의 끈질긴 요구에 시달리는 일이 잦은 때였다. 낮 동안에는 그늘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프놈펜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 거리거리를 오토바이로 누비며 전화기와 컴퓨터를 사고, 보다 저렴한 인터넷 요금 패키지를 찾아 헤매고 다녔다. 날마다 외교부에 들락거리고, 복사하는 데에 들르고, 문구점과 인터넷까페를 찾아다녔다. 한국 본부에서 나에게 사서 들려 보낸 노트북은 사실 센터 공용이었지만 밤마다 그 사람 방에 모셔져 있다가 낮이면 그 사람이 개인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번역 프로젝트를 위해 현지 대학생 여직원에게 책 전체내용을 타이핑시키는 일에만 사용되곤 했다.

센터에 처음 데스크탑이 설치되던 날, 마땅한 책상조차 없어 컴퓨터 포장상자를 바닥책상으로 삼고는 본격적인 서류작업에 들어갔다. 일일 업무일지를 작성하는 일 외에도 분초를 다투는 중요한 작업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 민간단체로서 캄보디아에서 활동을 시작한 만큼, 공식적이고 합법적인 외국 NGO로 현지 정부에 등록될 수 있도록 절차상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는 일이었다.

그 사람이 생각하는 온갖 더러운 짓거리가 행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는 경악할 수준의 깨달음을 얻게 된 일은 컴퓨터를 들여온 다음날에 발생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2층 베란다 거실에서 내 방으로 통하는 입구에 자리한 방의 문 옆에다 데스크탑을 임시로 설치해놓고, NGO 등록 시 요구하는 제안서를 영어로 작성하고 있을 때였다. 직급상 권한도 없는 내가 제안서의 거의 모든 부분을 창조하다시피 했을 정도로, 이 단체가 캄보디아에서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 무엇을, 어떻게, 누구와 할 것이며, 자금 조달을 어떻게 하겠다는 밑그림이 전무한 상태였다. 한국에서 떠나기 전, 본부의 간사나 부장급 실무진에게 재차삼차 문의해봤지만 정확히 알고 말해주는 이 하나 없었거니와, 외부 보조금 신청 시 작성했다는 듬성듬성한 20페이지짜리 서류 내용은 죄다 뜬구름 일색이라 건질 정보가 없었다.

혼자서 끙끙대며 수십여 페이지를 작성하자니 걱정이 태산처럼 쌓여갔다. 그렇게 허위로 일관한 제안서를 이 곳 정부기관에 제출해야 한다니 눈앞에 닥친 현실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해외에 떡하니 벌여놓은 일을 어떻게 꾸려갈 것인지에 대해 사무총장을 비롯해 단체의 어느 누구도 자세히 알고 있지 못하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알고 있는 정보를 총동원해 서류를 꾸며 외교부에 제출하려고 했지만, 필수 기재사항의 누락을 이유로 두세 번 퇴짜를 맞고 나니 더욱더 기운이 빠졌다. 제안서 항목 중 예산 집행계획은 나 혼자 알아서 처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바로 그 날, 그 부분에서 막히자 방 안에서 컴퓨터 작업을 하다가 거실에 앉아 TV를 보고 있던 그 사람을 불렀다. “선생님, 이 것 좀 봐주세요.”

한참 설명을 하고 있으려니 아니나 다를까. 어김없이 내 말을 번번이 잘라먹는다. 무조건 큰 액수로만 적으란다. 항목별 용도나 추정금액 따위는 전혀 관심도 없고, 아는 바도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이 센터장이라니. ‘혹시나’ 하는 마음이 ‘역시나’로 돌아선 순간, 그 사람의 징그러운 손길이 등 뒤에서 느껴진다. “우리 이 간사는 재원이야. 계속 수고하라고.”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가증스러운 격려의 말과 함께 그 인간의 손이 내 등을 훑고 있었다.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상의 뒷면 등 위로 난 브래지어 자국을 따라 검지와 중지를 이용해 선을 그려가더니 심지어는 장난치듯 잡아당기고 등을 어루만진다. 순간, 공포보다는 참을 수 없는 모멸감이 온몸을 휘감는 게 느껴졌다. 이건 정말 아니다. 어떻게 저런 인간이 지금 내 옆에……

연이어 충격에 휩싸일 만한 일이 또 벌어졌다. 그 사람과 한 건물에서 생활한지 일주일 반 남짓 흐른 시점이었을 거다. 센터에 데스크탑을 들여온 후 며칠 걸려 인터넷 설치까지 마친 날이었다. 다른 때에 비해 유난히 정신없이 바빴던 날로 기억된다. 매일 오후 5시에 퇴근하는 대학생 남녀직원을 대문 밖까지 배웅하고 건물 안으로 돌아와 2층을 향해 올라가려던 바로 그 때였다. 스킨십을 시도할 때면 역겹기 짝이 없는 특유의 표정과 말투로 변하는 그 사람이 내 등 뒤에 서 있었나 보다. 앞서 걷던 나를 뒤에서 와락 끌어안는다. 사타구니까지 내 엉덩이에 완전히 밀착시킨 상태였다. “우리 이 간사, 오늘 참 수고 많았어. 어디 한 번 안아보자.” 싫다고 내뺄 틈도 없었다. 내 왼팔의 여린 부분을 희롱하듯 훑어내리며 양팔까지 뒤에서 감싸 안더니 손으로 내 오른쪽 가슴을 만지는 게 아닌가! 내색 한번 못하고 참고만 있었더니 결국 이런 짓까지 하는구나. 이 개새끼를 어떻게 하지. 내가 아는 온갖 종류의 욕을 속으로 해댔지만, 이미 시작된 온몸의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그 자리를 어떻게 모면했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그 충격 직후부터 내 안에서 일어났던 일들 뿐이다. 도망치듯 2층으로 올라와 저녁식사를 준비한다고 분주히 1, 2층을 기계적으로 오르내리면서 쏟아지는 눈물을 참으려고 계속 안간힘을 썼던 일과 저녁 준비 2시간 내내 몸의 떨림이 그치지 않았던 일이 기억난다. 한 번 눈물을 쏟으면 나 스스로도 통제가 불가능해질 것 같아 두려웠다. 그런 일을 당하고도 그 사람이 먹을 밥과 국을 내 손으로 끓이고 있다니. 기가 막히고 또 막혔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후환이 두려워서 또 다시 함구하자니 정말 이런 식으로는 도저히 못 살 것 같고, 뭐라고 말을 하자니 저 개 같은 성질을 어떻게 감당할지 태산 같은 걱정이 앞섰다.

아니야. 어떤 식으로든 언급은 하고 넘어가야겠어. 이대로는 정말 아니야. 마음을 다잡고 다잡았지만, 몸은 여전히 떨린다. 심장 박동소리가 거실에 켜진 TV 소리보다도 크게 다가온다. 내가 만든 음식을 앞에 두고 그 사람과 마주했다.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눈치를 보다가 가까스로 용기를 내어 한 마디를 건넸다. “저….. 선생님. 아까요, 제…… 가슴…… 만지셨죠?” 그 와중에 미움 사는 게 무서워 그랬는지 의도와는 다른 말투와 톤이다. 이게 아닌데. 이건 마치 왜 저거 안 사주냐는 식의 앙탈 같잖아. 이번엔 나 자신한테 기가 막혔다. 그러면서도 말을 이어간다. “한국에서 젊은 남자가 그랬다면 정말 가만 안 있었을 텐데, 선생님이니까 이번 한 번만 봐드리는 거예요.” 봐준다는 얘기는 왜 한 건지.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간다. 별 반응 없이 식사에 열중하던 그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지껄인다. “아, 내가 그랬어요? 내가 이 간사 가슴을 만졌다고? 나 그런 적 없는데……” 끝이었다. 더 입을 떼기도, 더 이상의 대꾸를 요구하기도 힘들었다.

그렇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서 운을 뗀 건데. 뭐라도 말해보겠다던 굳은 결심 끝에 나온 말이 어째서 그 모양이었는지. 저 인간은 왜 저렇게 쓰레기 같은지. 그 날은 심하게 뒤척이다 결국 밤을 꼴딱 지새웠다. 심장이 고장이라도 난 듯 덜덜거려서.

그 사람과 탁자 건너편에 멀찍이 떨어져 앉아있으면 가끔 모기향 쪽으로 가까이 오라는 핑계를 대며 자기 쪽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내가 앉은 의자를 통째로 끌어 본인 가까이에 앉혀놓으면, 어김없이 추잡스러운 행각을 이어갔다. 은근슬쩍 바지 위로 허벅지를 쓰다듬는 건 예사고, 내가 다리를 꼬고 앉아있을 때면 (긴 바지를 입고 있었음에도) 손을 내 바짓단 속에 넣어 종아리를 훑기도 했다. 심지어 의자 다리에 베개를 놓고 기대 누워 당연하다는 듯이 내 종아리를 주물럭거린 적도 있었다. 바로 이런 대목에서 늘 미칠 정도로 답답해하곤 했다. 분명 사회통념상 도를 한참 넘긴 짓들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면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했을까. 거부의사를 밝혀야 했나? 어떻게? 구두 표현으로? 아니면 아예 부딪힐 자리를 갖지 않도록 매번 피했어야 했나? 당시에도 지금도 적당한 묘안은 떠오르지 않는다.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었을까.

당시에는 문제의 심각성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성적 이슈에 상당히 무지한 상태였던 것 같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야 비로소 확실히 확인한 바는 현지 여대생 직원과 요리사를 비롯해 여러 여성들에게 나한테 한 것과 비슷한 짓들을 저질렀다는 점과 그런 피해가 발생한 경우 즉각 여러 경로를 통해 도움을 요청했어야 했다는 점이다.

그 사람이 무수히 읊조렸던 성희롱적 발언들을 녹취라도 해놓았다면 좋았을 텐데. 귀국 후 결국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추행죄로 그 사람을 형사고소한 후 조사 과정에서 내 사건을 담당한 수사관께서 해주신 조언을 직접 옮기면 이렇다. “녹음이라도 해놓았더라면 이렇게 고생 안 하고 그 새끼를 확 그냥 조져버릴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 말을 듣자마자 발등을 콱 찍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랬구나. 생각해보니 MP3도 갖고 있었는데. 녹음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간단한 것을. 이런 바보천치 같으니라고! 처참할 정도로 나 자신이 멍청이 같다고 느꼈다. 정말 이렇게 무뇌아일 줄이야.

날마다 성적 불쾌감과 모욕감과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일들을 다반사로 겪으며,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소한 일로 목숨 걸고 핏대 세우는 그 인간을 마주하고 있자니 고문이 따로 없었다. 일은 일대로 더디게 진행되고, 할 일은 많은데 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영어 동어반복으로 지시하며 볶아대는 정도니 모든 일을 나와 다른 두 대학생 직원이 도맡아서 해야 했다. 몸도 마음도 순식간에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무언가에 쫓기는 듯 불안함에 밤마다 선잠을 자고 날마다 30도가 넘는 불볕더위 아래, 내게 언제 무슨 일을 저지를지 항상 불안한 상황에서 같은 한국어로도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과 일을 같이 하려니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물론 아무 시도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혼자 감당해내기에는 여러 모로 한계가 크게 느껴져, 한 번은 작정하고 한국 본부에 전화를 건 적도 있었다. 여자 본부장이라면 내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려줄 것 같아 인터넷폰에 대고 “여기 상황이 너무 힘들다. 더러운 일을 겪었다”고 운을 떼며 울먹거렸지만, “조금만 참아. 정 못 견디겠으면 내가 갈게.”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지금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더럽다”는 단어를 입에 올렸는데 어떻게 무슨 일이냐고 묻지도 않지? 못 들은 것 같진 않던데. 그 때는 의아했지만, 나중에 여러 번 비슷한 일을 겪고 나서야 그 단체의 파렴치한 면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프놈펜에서의 생활을 시작한 후 약 2주 정도 됐을 무렵, 그러니까 캄보디아에서 맞는 두 번째 토요일, 그동안 참고 참았던 모든 일들을 폭발시키는 계기가 된 사건이 일어났다. 센터 현판 디자인에 대해 내가 그 사람이 제시한 안에 동의하지 않고, 다른 의견을 내놓으며 절충안을 이끌어내려고 고집하자 그 개 같은 성질에 불꽃이 튄 것이다. 나와 그 사람 외에 캄보디아인 4명이 함께 앉았던 자리였다. 그 상황에서 그는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고 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의자를 집어던지려고 했었다. 당시 얼음조각처럼 굳어버린 다른 네 사람의 표정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 사람들에게는 생전 처음 보는 폭력 행사의 장면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욱하는 다혈질적인 기질이 익숙하지 않으니까.

나보다도 공포에 질린 여대생 직원과 그 자리를 피해 복사 핑계를 대고 외출했다가 그 여대생으로부터 실로 경악할 만한 일들에 대해 듣게 되었다. 자신에게도 하드코어 포르노 CD를 주며 집에서 부모 몰래 보고난 후 독후감을 써오라고 했단다. 심지어 딸에게 저지른 짓까지 서슴없이 밝힌 모양이었다. 1층에 머물던, 그만둔 이전 요리사에게까지 마스터베이션을 해달라고 강제로 요구했던 사실을 전해 들었다는 얘기도 있었다. 근처 시장에서 이불을 팔던, 눈에 확 띌 정도로 예쁜 여인이 유부녀라는 사실을 알고도 호텔에서 만나자는 전갈을 전해달라고 해서,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대충 얼버무렸다는 일도 내게 털어놓았다. 싫다고 거부한 적은 없냐고 물었더니 눈이 동그래지면서 오히려 내게 반문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그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지 않느냐고. 미친 사람이라고.

얘기를 들을수록 얼굴이 너무 화끈거렸다.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근심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도대체 누구한테 무슨 짓을 얼마나 하고 다닌 거지? 그 새끼를 잡아다 찢어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당장 내일모레면 한국에서 청소년봉사단이 여기로 올 텐데. 뾰족한 대안은 전혀 없었다. 그냥 저 새끼가 죽도록 싫었다. 저 쓰레기의 목소리도, 웃는 모습도, 오버하는 손짓 몸짓도 죄다 하나하나 떼어다 시궁창에 처박아버리고만 싶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기대감에 부풀어 해맑은 표정을 한 아이들이 곧 오잖아. 어떻게 하지?

일단 고비는 넘겨야 했다. 이 간사 같은 사람하고는 일 못하겠다며, 본부에 연락해서 본인이 그만두든지, 이 간사가 떠나든지 해야 한다며 그 폭력미수 사건이 있던 날 밤 그가 나를 닦달했다. 인내심이 깡그리 독기로 분한 내게 그것은 도발과도 같았다. 될 대로 되어버려라, 이제. 도저히 상종 못할 인간. 마음대로 하시라고, 나는 잘못한 것도, 아쉬울 것도 없으니 편한 대로 하시라고 처음으로 그에게 반기를 들었다. 그게 상당히 의외였나 보다. 분을 못 이겨 있는 대로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미 그 때 나는 희망이란 단어를 거의 잊고 있었다. 정말 그만두어야 할지, 그렇다면 언제쯤 그래야 할지,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니면 이대로 저 인간과 계속 함께 일해야 하는지. 참고 견뎌야 한다는 생각도 별로 없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오는데. 그 애들에게는 평생 기억에 남을 만큼 소중한 경험이 될 텐데. 청소년봉사단의 현지 실행 프로그램을 계획한 건 그 사람이었다. 물론 엉망으로. 1/10이라도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 불안하기만 한데, 누구한테 어떤 식으로 도움을 요청하면 좋을지 마땅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뭐 하나 뜻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각오는 단단히 하고 왔건만, 이렇게 상상도 못할 일에 대해서는 아니었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칠흑 같은 어둠이 계속되는 것만 같았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