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를 읽고
⊙ 소모임 <토닥> 회원 토리
토닥의 질적연구 공부하기 세 번째 시간. 이번 세미나는 정희진의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를 읽고 토론하는 시간이었다. 토닥이들 모두 ‘전에 읽었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며 책을 읽은 첫 느낌을 이야기했다. 한 번 혹은 몇 번을 읽었지만 전혀 다른 책 같다고도 했다. 아마도 이 책이 출판된 2000년도와 현재의 토닥이들의 삶이 변화했다는 것과, 8년여의 시간동안 각자 접해온 여성폭력 사례들이 책을 읽으며 떠올랐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이 논문(이 책은 저자의 석사학위 논문을 재구성한 글이다)을 쓰며 몇 번을 도서관 책상에 엎드려 울었다는 저자의 글이 없었다면, 아내폭력의 매커니즘을 분석하는 저자의 시선이 매우 냉정하다거나 가해자들에 대한 분노에만 차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저자는 아내(증언자)와 남편(가해자)의 입장을 함께 기록하고, 이 두 개의 시선과 그 시선을 구성하는 한국사회의 가족이데올로기를 논한다. 독자들은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아내폭력의 일상성과 잔인함을 목격하게 된다. 꼼꼼한 참고문헌과 저자의 해석은 ‘네가 지금 읽어내는 그 느낌들이 맞아’라고 다시 한 번 확인해주는 듯하다. 가족 내 성별 역할로 유지되는 가족 제도가 언제든지 폭력을 발생시킬 수 있는 기반이 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토닥이들은 저마다 각자의 입장에서 나의 일상과 이런 사례들을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우리가 연구자의 입장이라면 어떤 방법을 통해 증언자인 아내들의 입장을 잘 담아내는 글을 쓸 수 있을지 고민해보기도 했다. 우리가 그녀들의 입장에 완전히 설 수 있을까. 입장의 동일시를 아무리 가져와도, 결국 저마다의 경험과 역사의 차이에서 오는 한계를 깨닫고 성찰하는 것이 더 필요한 것은 아닐까. 생존자들과 거리두기와 공감은 늘 힘들고 어려운 주제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스터디를 한 다음 날, 아내폭력으로 인해 죽음에 이른 피해자와 무죄가 선고된 남편의 이야기가 언론에서 보도되었다. 남편은 아내의 외도를 추궁하기 위해 아내를 방에 감금했다. 남편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아내는 방으로 난 베란다로 도망쳤지만 떨어져 숨지고 말았다. 법원에서 감금치사로 기소된 남편은 감금죄만이 인정되었고 치사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부인의 추락사실을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내 사망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하는 행동을 항거로 읽을 수 없었기 때문에 무죄라는 판결은 성폭력 사건의 판결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말이다.
아내폭력 가해자의 죄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에는 가해자의 항변과 가족이데올로기가 우선에 놓인다. 남편의 폭력 행동은 가정의 규율을 지키려는 의무이기에 그럴 수 있다고 동의하지만, 여성의 대응, 탈출은 가정을 해체시키려는 괘씸죄가 된다. 추측, 아니 장담하건데, 무죄를 선고받은 그 남편의 아내폭력은 단 보름의 감금 동안에만 있지 않았을 것이다. 가해자 입장에서 폭력은 '아내의 역할'을 훈계하고 통솔하기 위한 남편의 의무이자 역할이었을 것이다. 법원의 판결로만 보면 그녀가 마치 '자살'이라도 한냥 나오지만, 그 여성의 베란다로 탈출은, 남편의 폭력에서 벗어나 살고 싶은 의지였을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미세하거나 뚜렷하게 나타나는 일상의 정치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들을 이야기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특정한 상흔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아내폭력 피해자'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다는 것도, 새로운 고민의 주제로 다가왔다. 성별로 나뉜 권력관계와 차별이 있는 한 그것을 유지시키는 도구로서의 폭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