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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자리 저 미니스커트는 정말 불쾌한 성희롱?
  • 성문화운동팀 오매
기획특집 _ 직장내성희롱법제화 10년

내 옆자리 저 미니스커트는
정말 불쾌한 성희롱?

성문화운동팀 오매

<내 옆자리 저 미니스커트, 정말 불쾌한 성희롱?> 3차 릴레이 시민토론회 현장

올 여름, 서울의 한 대학교 인트라넷에서는 수백개의 리플 논쟁이 벌어졌다. 이름하여“미니스커트 논쟁”. 글쓴이는 중요한 시험을 보러 갔는데 대각선 자리에서 짧은 미니스커트에 앞뒤가 파진 옷을 입고 향수냄새를 뿌린 여성 때문에 집중을 못해 시험을 망쳤다고 한다. 남자수험생을 표적으로 삼아 방해하고 수치심과 불쾌감을 끼친 그 여성의 행각. 많은 지지와 공감의 덧글을 통해 지탄되면서 급기야‘성희롱’이라 명명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를 과연 성희롱이라 할 수 있을지 없을지의 논쟁이 이어졌다.

미니스커트가 성희롱이냐? 는 논제는 성희롱 문제제기를 매우 희화화하는 대표적인 양태로 보인다. 그러나 이와 유사한 논쟁은 여기저기에서 벌어지고 있다. 성희롱이라는 개념을 도대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거기에 누가 기대있고 누가 등져있는지? 위로를 찾는 이와 억압을 느끼는 이는 각각 무엇을 경험하였고 문제라고 보는지? 답이 명확하거나 설득의 전략이 명쾌하지만은 않다. 꺼내 이야기할 지점이 많아 보인다. 결국 "내 옆의 저 미니스커트, 정말 불쾌한 성희롱?" 이라는 제목을 걸고 지난 10월 30일 서강대 양성평등성상담실과 3차 릴레이시민토론을 열었다. 그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볼까.

참여자 1 : 미니스커트와 시험은 상관이 없다. 희생양 찾기일 뿐. 그렇지만 민소매 입거나 웃통을 벗은 남자가 땀냄새를 팍팍 풍기면 나는 불쾌하고, 그들이 쉽게 그럴 수 있다는 점을 권력으로 느낀다. 그게 나에게 폭력이 될 수 있고.
참여자 9 : 토론회의 광고지를 보며 남녀 커플이 대화했다.“저런 상황, 불쾌해?”(여)“시험기간에는 불쾌하지”(남)“왜 평소에는 괜찮고 시험기간에는?”(여)“그건 예의가 아니니까”(남). 예의란 무엇일까? 선배에게 물어보니 "상대를 편안하게 해 주는 것" 이라고 한다.‘배려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발제자님께 묻는다. 그럼 미니스커트를 안 입어 주는 게 해결책일까?
참여자 4 : 성희롱이 무엇을 규제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인지가 중요하지 않나. 성희롱의 기준이 성적수치심, 불쾌감이라고 하면서“저런 행위는 나한테 불쾌감을 주니까 성희롱”이라는 건 변질이다. 너는 뚱뚱하니까 내가 불쾌하고, 그러니까 나에게 성희롱이 되나?
참여자 3 : 빨간색이 좋다는 이유로 억울함을 당했다. 후배의 옷차림을 보고 나는 빨간색이 청순하고 예뻐보인다고, 빨간색 옷 입은 여자가 좋다고 했다가 성희롱 가해자, 변태로 몰렸다. 사회적인 낙인! 빨간색에 대한 선호는 개인적 취향이고 미감인데, 그걸 왜 사회적으로 이미 특정 의미화된 코드에 연결해서 곡해하는지? 나만의 의미와 이미지화 되어 있는 것을 앞으로 드러내고 살지 말라는 것인지?
참여자 10 : 자신을 여러 가지 정체성 중에서 '여자로' 취급하는 것, 후배나 동료, 친구가 아니라 그저‘여자’로 보는 것이 너무 싫었던 게 아닐까.‘여자 취급’이 사람을 참 제약하고, 또 여성화는 차별받는 위치로 만들어버리지 않나. 남자들이 성희롱 당했을 때, 다른 게 아니고‘여자취급’받았다는 것에 대해 분개하는 것이 그걸 뒷받침한다.
참여자 7 :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책임 전가하기도 한다. 상대의 성적결정권을 존중한다고 오늘 해도 돼? 손 만져도 돼? 라고 물어보려니, 무척 남성성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고 무시한다. 남자들을 가해자로 정하고 취급하기 전에 자신들의 생각이 무엇인지 먼저 명확하게 표현해달라. 지하철에서 몸 닿이는 게 싫으면 정중히 양해를 구한다든지 먼저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지 않나.
참여자 5 : 그 버스 속 여학생이, 발제자의 성기가 닿았었다는 것을 정말 몰랐을까? 나이 드신 아주머니는 아들 뻘인 사람에게 이 새끼 저 새끼 욕할 수 있지만, 모두가 다 그런지? 어린 여학생은 말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가해자로 몰릴 사람들도 긴장이 있겠지만, 피해자가 되는 게 구질구질하고 너무 두렵고 싫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진짜 피해자다.
참여자 3 : 법으로 규제하게 될 경우, 또 다른 폭력이 발생할 수 있다. 많은 분들이 그래도 아직은 규제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지만, 기계적으로 그 내용을 외워서 이해하지 못하는 채로 기계적으로 o, x로 행동하게 되는 것이 추구했던 목표일까? 그리고 개인의 정신상태까지 규제하게 된다. 이런 걸 개인이 지켜야 하는‘법’으로 만든다는 것.... 폭력을 낳고 있지는 않는가?
참여자 8 : 어떤 폭력(성희롱)에 대한 규제가‘폭력’을 낳았다면, 그 때의‘폭력’이란 어떤 폭력인가?
참여자 6 : 미니스커트 입는 거 좋아하지만 점점 못 입는다. 치마입을 때 파일이나 가방으로 뒤를 가리게 되는데, 뒤에 아무도 없어도 무의식적으로 한다. 누가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 속옷이 보이지는 않을까. 내 친구들도 꼭 그렇게 한다. 다른 여자들도 하고 모두가 한다. 남자들은 "가릴 바에는 왜 입고 다니냐?" 라고 하는데, 화가 난다. 너 보라고 입는 거 아니다! 내가 원해서 입는 거다!
참여자 12 : 상대 여자가 미니스커트를 입은 게 어떤 폭력을 유발하려는 의도가 있던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우연히 혹은 힐끔 쳐다본 내 시선에도 폭력성이 없었던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두 가지가 만나 폭력이 되는 것은 무슨 원리일까? 폭력이 내재되어 있는 것인가? 그걸 폭력으로 결합하게 하는 고리가 있었을까? 폭력이 가능하게 된 것은,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담론적인 차원에서, 사회적인 차원에서 기획된 무엇이라는 것이다.
참여자 14 : 여성의 신체, 젊은 여성의 신체는 성적으로 상징화되어 있다. 그러니까 그 신체에 가해지는 언행들은 성적인 텍스트로 읽히게 된다. 또 양쪽의 규범이 다 있다. 섹시해야 하며, 동시에 수치심도 알아야 할 것. 다리는 보여주지만 특정한 부위는 보여주면 안되고, 스커트는 짧아야 되지만 팬티는 보이면 안된다. 여자 가수들이 가슴골은 드러내도 실제 옷이 내려가 유두가 드러나면 안된다는 것.
참여자 14 : 성희롱 하면 그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성적수치심이라는 건데, 성적인 것들과 연관해 가지는 곤혹감? 굉장히 주관적이다. 성적수치심이라는 거 자체로는 뭘 설명할 수 없을 정도다. 개개인의 가치판단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 성적수치심이라는 건 남녀 간 인식차가 굉장히 크다. 개인의 판단과 성별차이에 따른 인식차이. 이 중 법률은 무엇에 근거해서 어떤 장치로 만들어졌던 걸까?
참여자 13 : 성희롱이 어떤 것에 근거해서 되풀이되고 있는지, 근원을 살펴야 한다. 산불이 나면 화점의 남은 잔불을 끄는 데 가장 총력을 다한다. 잔불과 같은 근원을 끄지 않으면 문제다. 남녀의 차이는 크고, 완전한 평등은 힘들다. 행위 하나하나를 쫓아다니고 판단하고 논쟁하게 되고 규제하는 소극적 평등의 추구보다는, 적극적인 평등으로 나아가는 방향을 생각해봐야 한다.

직장에서의 노동권과 평등권을 보장하는 법률을 넘어, 이제‘성희롱’은 일상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성적 피해를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그러나 피해를 문제제기하고 권력관계를 개선하는 힘을 발휘하기보다 논란과 차이 속에서 맴돌고 있는 면도 크다. 규제 준수나‘배려’와 같은 실천지침이 있기는 하지만 이 역시 의문에 봉착한다. 근원적인 변화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성희롱의 문제제기의 근간을 살펴보자면, 다른 차원에서의 적극적 평등책을 필요하다는 것, 성희롱을 줄이고자 한다면 그것이 어떤 남성과 여성을 가정하고 있는지 다시 검토해보아야 한다는 것. 미니스커트 논쟁에서 시작해 이번 릴레이 시민토론의 의문풀이가 닿은 지점이다.

당분간 성희롱 반대운동의 현장에서 이런 나선형의 의문풀이는 계속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난 10년간 성희롱의 법적 개념과 규제책을 만들며 일률적인 상식수준을 마련하고자 했다면, 이제는 각자의 의문들을 적극 교류하고 토론할 시점이다. 논쟁과 의문, 문제제기와 해답은 서로를 고양시킬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일상의 성희롱 문제제기가 우리에게 준 것 또한 답하기보다 질문하기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