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가해자 등록, 공개 시스템
반성폭력운동과 만나는 풍경1
⊙ 본 상담소 前활동가 정유석
“우리 딸이 마을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도록 하지 않았을 거예요.” 성폭력 가해자가 마을에 거주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딸에게 주의를 주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강간, 살해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매건(Megan)의 가족은, 모든 부모는 자녀들을 위해 성폭력 가해자가 마을에 있을 경우 이에 대해 통지받을 권리가 있음을 주장하였고, 1994년 10월, 매건이 살해된 후 89일 만에 뉴저지주는 유죄판결 받은 성폭력 가해자의 정보를 정부 당국에 등록하고, 지역 수사기관으로 하여금 가해자의 소재와 행방을 추적하고 등록된 정보에 대한 시민들의 접근이 가능하게 하는 법을 통과 시키게 된다. 이 법은 연방 차원의 성폭력 가해자 등록, 공개법 제정을 추동해 내었고, 이후 90년대 말까지 미국 내 모든 주에서 관련법이 통과되게 된다. 미국의 성폭력 가해자 등록, 공개법은 이후 캐나다, 영국, 남아프리카, 호주, 일본, 노르웨이 등지에서 비슷한 입법을 하는데 영향을 주게 되고 우리나라 역시 이 법을 모체로 하여, 2000년 청소년 성보호법에 일부 조항을 추가하는 형태로 관련법이 제정되었다. 우리나라는 미국이외에 가해자의 정보가 일괄적으로 공개되는 시스템을 택한 유일한 국가로 간주되었는데, 2007년 개정을 거치면서는 열람권자와 공개방법이 보다 제한되는 방식으로 변화되었다.
반성폭력법 개혁/입법운동(미국의 경우 1970년대 강간법 개혁운동, 한국의 경우 1990년대 성폭력 특별법 입법운동)이후 성폭력 가해자 등록, 공개 시스템은 성폭력 이슈를 다루는 중요한 도구로 인식되면서 미디어와 여론의 관심, 정치인들과 관련단체, 일반 대중의 지지를 받아왔다. 한편, 지역사회 공지 시스템은 가해자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피해자뿐 아니라 시민 일반을 잠재적 피해로부터 보호하고 임파워링 하는 방안으로 간주되었다. 또한 재범에 대한 위험, 수사를 보조할 효과적 법적 도구의 필요성, 가족과 아이들을 보호할 효과적 매커니즘의 필요성(Pearson 1999) 등의 이유들과 성폭력 가해자의 프라이버시를 능가하는 잠재적 피해자들의 권리의 중요성(Fodor 2001)을 바탕으로 그 필요성이 주장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당화에도 불구, 가해자 등록, 공개 시스템은 다양한 영역에서의 논쟁을 가져왔다. 이 시스템이 실제로는 범죄예방과 피해자보호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 그리고 따돌림, 직접적 폭력 등 가해자에 대한 시민들의 자구적 폭력 가능성에 대한 우려 이외에, 이 제도를 둘러싼 대부분의 논쟁들은 일반적으로 (잠재적)피해자들의 보호와 가해자의 인권/헌법적 권리의 보호 사이에 어떻게 균형을 맞출 것인지에 집중되어 왔으며, 이러한 논쟁은 대부분 법적, 인권적 용어들로 구성되어 왔다. 이에 더해, 위험 관리 정책을 강조하는 규제적 신자유주의 거버넌스(governance)의 출현에 대한 우려가 소위 좌파 진보주의 진영에 의해 제기되어 왔다. 한편, 여성주의적 관점은 시민 자유주의적 시각이 간과해온 지점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데, 구체적으로는, 이 시스템이 사회적으로 구성된 성과 젠더화된 권력관계로서 성폭력 이슈를 조명하고자 했던 여성운동진영의 노력과 대치될 수 있다는 우려이다.
성폭력 가해자 정보 등록, 공개 시스템에 대한 법적 논의는 가해자의 기본적 시민적 자유와 인권에 대한 논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국제 인권 논의의 차원에서는 이 법이 시민·정치적 협약과 유럽협약 등 국제 협약에 보장되어있는 가해자의 프라이버시, 가족, 가정에 대한 권리, 비인도적 처우를 받지 않을 권리, 이동의 자유, 자유와 안보에 대한 권리, 노동과 적절한 생활수준 보장에 대한 권리 등을 위반하고 있음이 검토되어 왔다. 그러나, 이 권리들 역시 절대적인 것이라 할 수 없으므로, 가해자 권리에 대한 이러한 주장들은 가해자의 권리와 피해자 혹은 잠재적 피해자의 권리와 균형을 맞출 것을 요구받게 된다. 지역적, 국내적 차원에서의 법적 논의는 헌법의 창을 통해 조명될 수 있는데, 가해자 정보 공개법에 대한 헌법적 도전은 주로, 가해자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과도한 제한과 침해에 관한 실체적 적법성, 가해자가 적합한 청문, 항소 절차 등의 기회를 제공받았는지 등에 대한 절차적 적법성, 그리고 이중처벌, 불소급원칙 등에 대한 이슈가 주로 다루어진다.
법적인 비판이 시민(잠재적 피해자)과 가해자 권리의 이익을 비교하고 균형을 맞추는데 주력한다면, 좌파 진보진영의 접근은 이 법을 만들고 유지하는 법적, 사회적 레토릭(rhetoric)을 분석하는데 초점을 둔다. 성폭력 가해자 관련법에 대한 진보진영의 비판 중 몇가지를 살펴보면, 우선 도덕적 패닉에 대한 우려를 들 수 있다. 이는 일반적으로 어떤 특정 그룹, 문화 등이 사회적 가치와 이익에 위협이 된다고 여겨질 때, 한 사회와 그 구성원들이 이에 과장되게 반응하는 것으로 정의되는데(Cohen 1972), 매카시즘과 911 이후의 무슬림 사회에 대한 공포도 이와 같이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입장에서는, 성폭력 가해자 관련법 역시 성폭력 이슈에서 함께 고려해야할 사회경제적 요소를 배제하고, 재범율이 높은(혹은 높다고 알려진) 성도착자, 소아기호 가해자와 같은 부분적 요소에만 집중하면서 이들에 의한 위협을 일반화하고 모든 아이들을 피해 가능군으로 설정하는 광범위한 도덕적 패닉을 형성한다고 비판한다. 또한 형사정책과 사회통제의 관계도 주요하게 지적되는데, 이는 현대 사회가 가해자의 범죄기록 통제를 통해 어떻게 정상으로부터 비정상을 구분하고 배제하는지에 대한 분석이다. 이 견해는 성폭력 가해자 관련법을 통해 학교, 청소년 기관(혹은 일반 시민) 등으로 하여금 잠재적 가해를 감시하도록 함으로써 정부의 규율적, 규제적 경향이 비정부 행위자들에게로 확대되는 것에 주목한다. 이러한 점과 관련, 성폭력 가해자 등록, 공개 시스템은 정부에게 정보제공자의 역할만을 맡길 뿐 일반시민들에게 정치적 권한은 적게 주면서도 범죄, 위험 감소의 의무를 부과한다고 비판받기도 한다. 공동체 정보공지 시스템은 공공의 공포와 무력감을 감소시키고, 잠재적 피해자화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고려되기도 하지만, 이는 시민 모두들 잠재적 가해자로 전제하는 것과 다름 아니라는 것과 범죄 통제와 감시의 부담을 피해자들과 비정부행위자들에게 부과하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가해자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을 통치함을 역설한다.
한편 여성주의적 접근을 통해서는 정부권력 확대를 위해 섹슈얼리티와 법적 시스템을 이용하는 것에 대한 진보진영의 평가를 공유하면서도, 이 법이 어떻게 반성폭력법 개혁, 입법 운동이 개념화하고자 했던 성폭력의 정치적 맥락을 제거하는지에 주목해볼 수 있다. 이는, 기존의 진보진영의 평가가 단순히 형사(범죄) 정책 발전을 통한 사회통제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거버넌스와 성폭력범죄 통제의 관계를 다른 일반 범죄 통제를 통한 국가 통치에 단순히 대입시킴으로써 성폭력에서의 젠더 역동을 무시했음을 지적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한편, 성폭력 가해자 등록, 공개법이 입법, 운용과정에서 채택한 원리들은 여성운동이 반성폭력법 개혁, 입법운동을 통해 관철시키고자 했던 가치와는 대립되는 것으로 평가 될 수 있는데, 뉴저지주의 가해자 위험도 평가척도를 살펴본 Corrigan(2004)의 분석을 중심으로 몇 가지 시사점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2
먼저, 여성운동이 피해자들 사이의 구분과 차별적 대우에 비판적이었던 것과 달리, 가해자 등록, 공개 시스템은 특정 피해자들에 대한 특별한 보호가 필요함을 강조하는 형태로 입법된 것의 문제이다. 이는 특정 피해자들의 취약성을 강조하는 것은 합리적인 듯하나, 어떤 피해자들을 더 보호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다른 피해자들은 아닌 것으로 만드는 역학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가해자 등록법이 청소년 관련법에 편재되어있고, 청소년 대상의 특정 범죄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 청소년위원회의 성폭력 가해자 위험군 평가척도와 뉴저지주의 가해자 위험성 척도에서, 피해자의 나이가 많을수록 가해자의 위험도가 낮아지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이때 피해자 나이 척도는 단지 나이에만 관계된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피해자의 성적 행동과 성력에 중점을 두는 성폭력 일반에 대한 전형적 법적 태도와 연동되며, 또한 이러한 태도는 무력한 피해자 이미지-어린이 피해자의 그것-와는 조화되지 않는 성인 피해자에게 최협의설을 적용, 최대한의 저항의 책임을 묻게 되는 것과도 긴밀히 연동한다. 미국의 경우 우리나라와 달리 성인 대상의 가해자 역시 등록하도록 폭넓게 규정하고 있으나, 두 나라 모두, 피해자의 나이, 범죄유형(물리적 힘의 정도, 접촉 정도 등)에 따라 위험성을 다르게 평가하면서 ‘취약한 청소년을 대상으로 흉기나 극단적 폭력을 수반한 강간’으로 전형적 성폭력 이미지를 강화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전의 가해전력 등에 따라 고위험군으로 분류하는데 이는 아는 관계에서의 고소, 유죄율이 낮은 현실적 어려움을 고려할 때, 아는 관계의 성폭력에 대한 편견을 나타내는 부분으로 평가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성폭력 가해자 등록, 공개 시스템은 좋은 피해자와 나쁜 피해자를 구분하고 일반 강간, 단순 강간으로부터 진짜 강간을 구분하며, 피해자들 사이의 다른 처우를 문제화하고자 했던 여성주의의 노력을 되돌려 놓는다.
반성폭력운동이 주요하게 문제제기했던 성폭력의 원인에 대한 인식은 성폭력 가해자 등록, 공개법을 통해 다시 흔들리게 된다. 이는 성폭력을 정상화하는 사회문화적 구조를 문제시하고자한 여성운동진영의 노력과는 달리, 가해자 등록 시스템이 성폭력을 개인의 정신적 결함과 병리학적 이유의 결과로 보고 있음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이러한 경향에 대한 우려는 뉴저지주 매건법의 경우 명확히 드러나는데, 입법목적과 매뉴얼을 통해 소위 ‘Myth on Crazed Rapist’를 채택하고 있으며, 가해자의 위험도 평가 과정이 “정신 건강과 법률 전문가에 의해 합리적으로” 유추되도록 하고 있어, 성폭력을 설명하기 위해 사회구조적 접근보다는 개별사건에서의 역동을 중시하는 심리학적 견해 및 언어를 채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척도는 위험성에 대한 여성의 경험을 배제한다는 점에서 비판된다.(Wells Motley 2001) 우리나라에서의 성폭력 이슈의 비정치화, 병리화의 경향은 신상공개법 제,개정 과정 이전에 성폭력특별법 제정단계와 이후 반성폭력운동에 대한 정부의 백러쉬 과정 등에서 이미 드러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일례로, 정부가 2005년 성폭력특별법 개정안을 통해 기존 성폭력상담소들의 역할을 초기상담과 연계로 제한하고, 성폭력 이슈에 접근하는 시각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지게 될 조사, 연구, 교육 등의 역할을 의료적, 심리적 지원 모델에 근간한 정부주도의 성폭력방지센터로 이관하고자 했던 시도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상공개법의 경우도 운영의 세세한 방식과 운영주체의 가치관 등이 자세히 검토될 일이다.
특정 피해자에 대한 차별적 보호와 성폭력에 대한 병리적 접근 이외에도, 성폭력 가해자 등록, 공개 시스템은 가족제도를 더욱 보호하고자 하고, 공적, 사적 영역의 구분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이중기준을 강화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나이 어린 여자형제, 생물학적 자식, 양자 혹은 배우자의 자식 등을 상대로 한 성폭력 범죄의 경우 가장 낮은 위험군(위험도 0점)에 속하게 되고, 반면 낯선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가해자의 경우 가장 높은 위험도를 가지 것으로 구분되는 뉴저지 평가척도는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근친 성폭력사건의 가해자정보 공개여부는 피해자에게 미칠 영향을 우려하여 성폭력상담소들에 의해서도 피해자 권리의 측면에서 고려되어야 할 부분으로 주장되어 왔는데, 위험군이 낮은 것으로 구분되는 것과 피해자에게 미칠 우려를 고려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로, 공개대상 정보의 제한 등을 통해 피해자 정보를 보호하면서도 친밀한 관계의 성폭력을 위험도 높은 것으로 인식하는 방안은 현실적으로 충분히 고려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가해자 등록, 공개법은 근친성폭력, 아는 관계의 성폭력을 덜 위험한 것으로 특정짓고 심지어는 괜찮은 성폭력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비판될 수 있으며, 이 시스템이 공적, 사적 영역의 경계를 잇고 소위 사적,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을 드러내고자 했던 여성주의의 노력과는 반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비판될 수 있다.
등록대상과 기간, 공개범위 등 세세한 부분에서의 차이에도 불구, 우리나라와 미국의 가해자 등록, 공개시스템은 특정 성폭력 가해자로부터의 공동체 전반과 잠재적 피해자 보호를 목적으로 하고 있고, 덜 위험한 가해자와 더 위험한 가해자를 구분하는 방식, 법이 착안되고 작동되는 전제 등에서 닮아있다. 그동안 이 법에 대해, 미국의 강간위기센터들은 별다른 입장표명을 하지 않아왔고, 다만, 이 법이 시행된 이후, 실제 성폭력 사건에서 유죄협상제도(plea bargaining)를 통해 유죄를 인정하는 가해자의 비율이 낮아지고 끝까지 재판을 통해 무죄판결을 구함으로써 피해자의 부담이 더욱 가중되고 있는 어려움을 얘기한 정도이다. 우리나라의 성폭력 상담소 등 여성운동진영에서는 기존의 법제도와 이 법을 둘러싼 가해자 인권논의 등에 피해여성의 경험이 반영되지 못했음을 지적하고, 성폭력 가해자 신상공개법 제·개정 시 적극적 지지의견을 피력한바 있으나, 헌재의 논리와 자구적 방어권 논의에 머무르는 정도로, 이 법이 채택한 전제들과 이로 인한 문화적, 사회적 영향이 결과적으로 여성주의 진영이 목적한 것과 어떻게 달라져 있거나 왜곡되어 있는지에 대한 분석은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반성폭력 개혁, 입법운동이후 성폭력 이슈 자체에 대한 담론은 과연 발전이 있었는지, 새롭게 출현하는 성폭력관련, 성폭력 가해자관련 법안들에 어떻게 대응해 왔는지, 이와 같은 흐름을 분석하고 대응할 여성주의적 언어를 갖추지 못해온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질문해볼 일이다.
가해자 관련 법안에 대한 법적, 진보주의적 논의들이 풍성한 반면, 이에 대한 여성주의적 접근은 찾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는 가해자 관련법이 여성주의 반성폭력 개혁, 입법운동의 수사학을 기초로 구성되었다고 얘기되거나 혹은 반성폭력운동의 연장선에 있는 성과로 인식되고 있음을 고려할 때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이 시스템에 대한 여성주의적 접근은 법적, 진보주의적 접근이 갖는 이분법적 한계-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 권리의 충돌 혹은 강압적 정부권력과 가해자, 시민의 충돌로서 이슈를 파악하는-를 넘어 이러한 견해가 간과한 젠더 역동성을 드러내고, 이 법이 성폭력을 둘러싼 담론을 어떻게 재형성하는가를 근본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특별법 제정이후 제도화와 비판력 약화, 성폭력 이슈에 대한 대응담론 정체 등의 어려움을 딛고, 반성폭력운동진영과 학계 모두, 다시 힘을 모아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