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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카르텔을 깨기 위해, 긴 호흡으로 다시 시작합니다.
  • 성문화운동팀 키라
기획특집 _ 여성연예인에 대한 이야기들

침묵의 카르텔을 깨기 위해,
긴 호흡으로 다시 시작합니다.

⊙ 성문화운동팀 키라

한 명의 여자배우가 목숨을 끊었고, 고인이 작성한 죽음의 이유는 문서로 남겨졌다. 대한민국에서 이름만 대면 아는 한 언론사와 유명 방송계 인사 등이 포함되었다고 알려진 ‘성접대’의 리스트가 그 죽음의 원인이지 않았냐는 추측은 많은 사람들을 분노케 했고, 신문에는 오랫동안 고인의 이름이 거론되는 기사들이 주요 지면을 채웠다. 많은 이들은 ‘이번이라고 해서 제대로 밝혀지겠느냐’라는 우려와 더불어, 고인이 육필로 남긴 문서가 이번 수사를 ‘성역 없이’ 할 수 있는 증거 자료가 되기를 바라는 실낱같은 기대를 가졌다. 여성 연예인 성상납 문제는 늘 카더라 통신으로만 존재해왔고, 관련자가 대한민국의 막강 권력자이기 때문에 늘 의혹만을 남긴 채 수사는 흐지부지 종결되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찰은 이러한 국민들의 신뢰를 저버리고 사건의 전모도 제대로 밝히지 못한 채 수사를 잠정 중단하였으며, 리스트에 있다고 확실시되었던 언론인은 혐의가 없다는 경찰의 발표로 자유의 몸이 되었다. 남은 것은 고인의 죽음과, 그 해당 언론이 막무가내로 명예훼손 고소한 몇몇 정치인과 단체 활동가들의 참담함이다. 이 과정에서 거대한 무기력감이 습관처럼 우리에게 익숙해지고 있다. 그 무기력감은 ‘우리는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좌절감의 다른 모습이다. 많은 네티즌들이 ‘성역 없는 수사’를 요구하였고, 시민사회단체는 경찰서와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의 의견을 세상에 알렸으며, 경찰에 의견서를 발송하고, 명예훼손 고소를 불사하고 조선일보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지만 결국 우리의 목소리가 ‘공허한 메아리’로만 돌아오고 있다는 참담함이기도 하다. 이 무기력감이 극단으로 치닫는다면, 결국 우리는 앞으로 이와 같은 일이 또 발생하더라도 침묵을 지키게 될지도 모른다. 그 침묵은 ‘열심히 해 봤지만 변하는 것은 없잖아. 세상이 그런거지.’라는 거대한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할 것이다. 그 무기력감이야말로 우리가 반대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기력감을 동반한 이 사회의 망각에 저항하는 행동이 지금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기력함을 만드는 이데올로기와 구체적인 실체를 확인하고, 그것을 공격할 수 있는 우리의 힘과 희망의 내용을 확인해야 한다.

첫째. 자원이 없는 신인 여배우들이 성공을 위해 성접대를 하고 부당한 계약조건을 감수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관행’이 아니라 우리나라 연예 산업의 성차별적 관행이고, 그 관행은 분명히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

심심치 않게 떠도는 여자 연예인에 대한 루머 중 상당수는 성공을 위해 스폰서와 성적 관계가 포함된 계약을 맺는다는 것이다. 그러한 루머는 ‘성접대가 100% 자발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성공하고 싶냐’라는 여자 연예인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진다.

<장자연씨를 죽음으로 내몬 성착취 침묵의 카르텔 어떻게 깰 것인가?> 토론회 현장

남자 배우에 비해 여자 배우들 연예인들이 긴 호흡과 비전을 갖는 ‘진정한 연기자’로 인정받으며 성장하기 쉽지 않은 연예·방송계에서, 자원이 없는 신인 여자배우에게 들어오는 스폰서 제안은 거절하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제안을 받아들여 소위 ‘톱스타’ 반열에 오른다고 하여도 그 경험이 또 다시 그 여자 배우의 숨통을 언제든 조일 수 있는 현실에서, 여자 배우들은 자신의 실력을 키우는 데 매진하기보다, 자신의 (남성) 자원에 대한 관리와 대중적으로 어필할 자기 이미지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계속해야만 한다. 많은 이들이 이것을 어쩔 수 없는 ‘권력자의 여색’으로 낭만화 한다. 하지만 이것이 연예산업에서 성공하기 위해 ‘여자배우’가 어쩔 수 없이 거쳐야하는 관문으로 당연시될 때, 이는 하나의 거대한 구조가 되어 개인들을 압박한다. 이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여성 연예인들이 경험하는 부당한 상황에 대한 사회적 환기가 필요하다. 자신이 받아들여야 했던 불합리한 계약 조건, 암묵적인 성접대 강요, 그로 인한 인권침해의 내용이 드러나 사회적으로 소통 가능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카더라 통신으로 남아있으면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인권위원회가 고인의 죽음 이후, 인권상황실태조사 연구 용역 사업을 발주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익명이 보장된다면, 연구 사업을 통해 여성 연예인들이 처한 인권 실태에 대한 대중적 인식과 그를 통한 개선에의 필요성을 공유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으로, 지난 5월 22일 ‘여성 연예인 SOS센터’를 개설하였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 민변 여성위원회, 한국여성의전화가 함께 운영을 맡은 이 센터에서는 여성 연예인들이 처한 부당한 계약 조건과 ‘성접대’와 같은 성폭력, 성매매에 대해 상담하고 사건 지원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앞으로 이 센터의 구체적 운영방향에 대해서는 더 협의를 해 나갈 예정이지만, ‘여성 연예인의 성 루머’로만 떠돌던 이야기들이, ‘인권’의 문제이고 차별과 폭력의 문제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임을 사회적으로 환기하는 계기가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둘째. 여성 연예인을 자살로 내몬 것은 부당한 계약 조건을 강요한 기획사나, 성접대를 받은 권력자 뿐 아니라, 그녀의 입을 막은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기도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까지 성과 관련한 파문으로 가십에 오르내렸던 여자 연예인들을 떠올려보자. 각종 비디오 사건에 등장한 여자 연예인들은 모두 비디오를 빌미로 부당한 요구를 받아야했고, 보복성 비디오 유출의 피해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여자 연예인’으로 회자된다. 심지어 ‘물의 연예인 컴백 논란’이라는 기사(스포츠 서울 2009. 1. 29)에서는 성매매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바 있는 남자 연예인과 비디오 사건의 피해자 여성 연예인을 동일선상에 놓고 ‘물의 연예인’으로 싸잡아서 다루고 있다.

여성연예인 인권지원 서포터즈 선언식 ‘침묵을 깨는 아름다운 사람들’
한 명의 여자배우가 목숨을 끊었고, 고인이 작성한 죽음의 이유는 문서로 남겨졌다. 대한민국에서 이름만 대면 아는 한 언론사와 유명 방송계 인사 등이 포함되었다고 알려진 ‘성접대’의 리스트가 그 죽음의 원인이지 않았냐는 추측은 많은 사람들을 분노케 했고, 신문에는 오랫동안 고인의 이름이 거론되는 기사들이 주요 지면을 채웠다.

이런 ‘우리들의 인식 수준’ 속에서 고 장자연씨가 살아서 자신의 경험을 증언했다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리스트를 작성한 그녀에게 ‘그게 뭐 자랑이라고 대놓고 공개하냐’, ‘몸 팔아서 성공하고 싶었냐’라는 비난 댓글이 올라오지는 않았을까? 그녀의 연예계 활동에서 오랫동안 낙인이 지워지지 않는 상황에서 이러한 커밍아웃은 그녀에게 연예계에서의 생명이 끝이라는 좌절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여자 연예인에게는 때로 극단적인 성적 매력이 요구되지만, 동시에 ‘걸레로 찍히면 이 바닥 생명 끝난다’라는 협박이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연예계는 다른 어떤 곳보다 여성에 대한 이중적 기준이 존재하는 성차별적 공간이다. 여성들을 성적으로 등급화하는 가부장제의 통제 기제가 가장 극단적으로 존재하는 곳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연예계의 관행과 여자 연예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온 몸으로 체험해온 사람이 선택하는 ‘자살’은, 사실 이러한 차별과 폭력에 무감각해진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의 재발 방지를 근본적으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고 장자연 씨와 같은 여자 연예인이 자신의 경험을 사회적으로 드러내었을 때, 그녀와 함께 여자 연예인에 대한 악의적인 반응에 맞서 함께 싸워줄 사람들을 모아야 한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고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정의의 편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들은 평소에 여자 배우들의 섹스 스캔들 및 성형 유무에 대한 가십 인터넷 기사를 클릭해보고 그러한 차별들을 방관하는 이들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변화를 꿈꾸기 위해, 지난 5월 22일 많은 시민사회단체, 정당, 개인들이 모여 ‘여성 연예인 인권지원 서포터즈’를 결성하였다. 이 활동을 시작하는 선언식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여성 연예인들을 내가 지키겠다’는 다짐, 그를 위해 여성 연예인에게 성적 등급화라는 낙인을 찍는 성차별 문화를 반대하고, 여성 연예인들이 실력으로 평가되고 진정한 연기자로 성장할 수 있는 풍토 조성에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또한 여성 연예인에 대한 인권침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관련 기관에 대한 감시와 규제를 촉구하고, 연예 산업 종사자들에게 여성 연예인에 대한 성차별적 관행을 거부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 서포터즈 선언은 앞으로 ‘여성 연예인 인권’의 관점에서 연예 산업의 부당한 관행을 개선하고 법제도를 개선하며, 여성 인권의 시각으로 여성 연예인을 지지·지원하겠다는 시청자들을 모으는 장기적 활동의 시작을 알리는 자리였다.

셋째. 고 장자연씨의 죽음을 거대한 침묵의 카르텔 속에서 잊혀지는 사건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다짐과, 그것을 널리 알려나갈 다양한 방식의 ‘기억’ 행위들을 자발적으로 만들어나가고 사회적으로 소통할 것에 대한 다짐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는 그 하나의 시도로 <액션! 할 말 많은 UCC 행동단>을 시작했다. 고 장자연 씨의 죽음에 대한 많은 이들이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UCC를 통해 자신의 기억을 소통하고 세상과 나누는 것이 이 UCC 행동단의 구성 목적이다. UCC 행동단의 블로그(http://blog.jinbo.net/ucc_action)에는 현재까지 총 9편의 UCC가 올라와 있으며, 다양한 단체와 개인들, 소모임에서 자발적으로 제작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첫 번째로 선보인 UCC 행동단의 영상은 68일 동안 경찰의 미온한 수사 작태와 그에 대한 대응 내용을 일지 형식으로 제작하여 많은 공감과 지지를 받았다. 두 번째로는 ‘전기하와 방가방가시스터즈’라는 이름으로 모인 3인이 편곡, 촬영, 제작한 영상으로서, 최근 주목 받았던 ‘장기하와 얼굴들’ 밴드의 인기곡 ‘싸구려 커피’를 개사하였다. 이름하여 ‘싸구려 신문’! 이 영상의 주된 내용은, ‘싸구려 신문을 읽는다~1면부터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라는 가사로 시작되며, 늑장 경찰 수사에 대한 분노와 명예훼손 고소를 남발한 언론사에 대한 비웃음을 날리는 내용이다. 여지블모(여성주의지향블로거모임)에서 제작한 두 개의 영상은 다음과 같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는 제목의 영상은 고인이 귀신이 되어 자신의 죽음 이후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인터넷 기사에서 확인하고 분노하는 내용이다. 결국 책임자를 처벌하지도 못하고 수사를 종결한 경찰에 대해 ‘미네르바도 잡았는데 왜 처벌하지 않나?!’라며 흰 소복에 검은 긴 머리를 풀어헤친다. 영상의 말미는 화면에 피가 흩뿌려져서 공포감과 섬뜩함을 더한다. 여지블모의 또 다른 영상은 ‘대한민국 바나나 리스트’라는 제목으로, 여성 연예인의 성접대 리스트를 공개하는 한 연예 오락 프로그램을 패러디한 작품이다. 고 장자연 씨의 죽음을 둘러싸고 리스트에 있다는 것이 공공연하게 알려진 신문사 이름(*선 일보)에서 영감을 얻어 영상의 제목이 ‘바나나’ 리스트가 되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여기서는 두 진행자가 리스트를 공개하려고 할 때 마다 가면을 쓴 방해꾼들이 등장해서 사회자의 입을 막고 공개를 방해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이 UCC 행동단의 장점은, 이 사건을 둘러싸고 다양한 사람들이 하고 싶었던 수 많은 말들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사권이 경찰에게 있고, 이 사건의 해결을 사법적으로만 사고했을 때,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경찰의 성역없는 수사’를 외치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그 수사를 촉구하고, 그 수사를 촉구하는 더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와 힘을 결집하기 위해서는, ‘경찰/검찰 수사’라는 주장의 폭을 넘어 귀신을 등장시키고, 유행가 가사를 개사하여 노래하면서 우리 안에 이미 갖고 있는 힘과 아이디어를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새로운 시도가 즐겁고 의미 있는 역할을 하리라 기대한다.

고인의 죽음을 계기로 우리들에게 강요되는 침묵의 카르텔을 깨기 위해서는, 이번 사건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와 책임자 처벌에 대한 요구를 포함하여, 이 문제를 여성인권 이슈로 제기하고 그 장기적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한 숨고르기가 필요하다.

경찰은 수사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우리들은 지금, 바로 시작을 선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