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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연 문건, 그리고 여자 연예인/스타 되기의 성정치학
  • 영화평론가 / 동국대 교수 유지나
기획특집 _ 여성연예인에 대한 이야기들

장자연 문건, 그리고 여자 연예인
<스타 되기의 성정치학>

⊙ 영화평론가 / 동국대 교수 유지나

여성 이미지를 그린 콜라주 벽화

2000년대 들어, 여자 연예인들이 연이어 자살했다. 이은주, 유니, 정다빈, 최진실, 리스트까지 동반한 장자연, 그녀에 관한 수사가 미완으로 종결된 다음 날 우승연이 자살했다. 신인부터 스타에 이르기까지, 가수에서 탤런트, 배우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죽음의 사연은 각자 다르겠지만, 이 사회는 우울증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우울증의 원인은 실연, 악플, 스트레스 등이라는 설명도 덧붙여진다.

주민등록번호를 적고 지장까지 찍은 장자연 문건에 이르러서야 성상납의 고통이 여자연예인(들)의 우울증 원인으로 강력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장자연의 사례는 악덕 기획사에 잘못 걸려든 운 나쁜 경우이며, 실제 연예계 풍토는 많이 개선되어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라는 해명성 변명도 나왔다. 물론 한 개인의 문건으로 비롯된 것이기에 특수한 사례처럼 보이지만, 익명을 달고 오랫동안 흘러나온 연예업 종사자들의 목격담에 이르면 이런 정황은 구조적인 문제를 드러낸다.

그렇다면 이 모든 현상을 목격해 온 우리에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불가능한 의문점들을 짚어보자.

1 박정희 시해 사건 당시, 안가의 그 자리에 여가수와 모델지망생인 어린 여자는 무슨 일을 하고 있었을까? 분명 술접대를 하고 있었다. 과거에는 기생이 하던 일, 지금은 룸살롱이나 유흥업소에서 하는 일이다. 당대 최고권력이 부르니 영광으로 거기 갔는지, 아니면 명령불복종으로 피해가 두려워 그 자리에 갔는지 몰라도, 일단 그 자리에서 그녀들은 충격적 상황을 목격하고 누구에게 이야기도 못한 채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그런 술자리는 딱 한 번이 아니라 관행이다. 이런 수치스러운 관행에 대해서는 <증발>이라는 신상옥의 조악한 영화가 그런 정황을 슬쩍 보여준다.

2 배우에겐 연기력이 관건인데, 그 기본 요건인 발음도 제대로 못하는 대사 구현 장애를 가진 여배우가 주연을 한다. 영화는 실패. 그런데 그 여배우가 다시 TV나 영화에서 주연을 따낸다. 그녀를 주연으로 캐스팅한 감독에게 왜 그런 착오를 거듭 범하느냐,고 물어본다. ‘다 알면서 왜 그런 걸 묻느냐’는 표정을 지으며, 그는 답했다. “그녀를 주연으로 캐스팅해야 투자가 가능하니, 어쩔 수 없다”라는 것이다.

[편집자주] 이번 기획 특집은 지난 3월 초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자연 씨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들의 모음입니다. 고인의 죽음 이후, 고인이 직접 작성한 소위 ‘성 상납한 대한민국 거물급’의 리스트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경찰은 전격 수사에 착수하였지만 지금까지도 경찰은 제대로 된 수사 결과를 내놓지 못 하고 있습니다.

키라 활동가는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고인의 죽음을 계기로 시작한 활동 내용과 그 내용의 의미를 짚으며, 이 이슈를 여성 연예인 인권 문제로 대응할 수 있는 여성 운동의 전략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자세히 소개합니다. 미디어 액티비즘의 고민을 접목한 UCC 행동단 활동의 활동 내용이 흥미롭습니다.

고인의 죽음을 ‘제 2의 나혜석’이라고 칭했던 유지나 교수는 고인의 죽음을 계기로 가부장제의 성정치의 기제가 드러나야 함을 주장합니다. 연예계의 관행으로 여겨져 온 ‘여성 연예인, 성상납’의 문제는 이 사회가 여성의 성력(性歷)을 문제 삼아 ‘걸레’로 낙인찍어 처벌하는 사회인 이상, 변화의 실마리를 찾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더불어,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주체는 다른 누구도 아닌, 여성 연예인 당사자들이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노동조합 문제갑 정책위원장과의 인터뷰는 노조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이슈, 여성연예인 인권 침해의 원인과 해결 방안, 현재 추진 중인 제도 개선의 취지와 현재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현장의 목소리와 고민은 여성 연예인 인권에 대한 여성 운동의 장기적 플랜을 세우는 데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 기획특집 중, 외부 필진의 글은 상담소의 편집 의도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여성 스타의 흑백 사진

3 적나라하게 섹시한 자태로 춤추고 노래하는 여가수, 섹시함 자체를 내세워 기획 스타가 된 댄스 여가수 그룹들……. 이들 중 어떤 이는 표절곡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심지어 노래도 제대로 못하는 가수로서의 기본 실력을 못 갖춘 경우도 상당수이다. 오죽하면 ‘언니들 노래 좀 하자’라는 음악평론이 다 나올까. 그래도 그녀들은 스타이다. 기본 실력으로 크는 게 아니라 섹시함이 우선이니까. 소주 광고도 반라의 그녀들 모습이 휩쓴다. 그런데도 그들은 무대 밖 모습을 보여주는 방송에서 섹시함과는 정반대로 조신하고 소탈해서 (알고 보면) 현모양처형으로 자신을 이미지화한다. 표리부동의 극치이다. 배신감이 들 정도로.

4 수년 전, 프랑스 신인 여배우가 한국영화에 출연하기 위해 잠시 한국에 머문 적이 있었다. 투자가 잘 안 돼 지지부진했던 이 영화의 감독이 스탭과의 술자리에서 여배우에게 강제로 키스를 하려하자, 그녀는 모두 보는 데서 그를 밀쳤다. “한국에서 여배우 하려면 이런 걸 다 감당해야 한다”라며 그는 자신의 태도를 정당화했다. 충격을 받은 그녀는 다음날 프랑스로 돌아갔다. 입양인인 그녀에게 한국은 자신을 버린 나라지만 그래도 노스탤지어를 갖고 돌아와 당한 이 사건은 어떤 의미일까? 어머니의 나라는 입양국인 프랑스와 달리 권력이 있는 남자가 여자를 아무데서나 덮쳐도 되는 나라일까? 그래서 어머니는 자기 아이 양육을 감당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5 성형공화국이 되버린 한국, 여자연예인들은 성형을 밥 먹듯이 한다. 성형외과 의사는 방송에 나와 성형이 자신감을 갖게 해주는 좋은 행위라며 성형을 통한 자아개선 효과를 홍보한다. 뻐드렁니가 그 이탈적 자태로 매력적이었던 여배우도 성형을 해 여타 성형미인들과 비슷해지고, 성형 이중인간 여가수를 찬양하는 <미녀는 괴로워> 같은 영화가 흥행 1위를 기록한다. 아마도 그녀들은 더욱 사랑받으려고, 더 자긍심을 키우려고 성형을 했건만, 그로 인해 악플에 시달리고, 우울증에 걸리고 목을 매달 정도의 절망 속에 빠지는 것일까? 성형외과 의사의 말대로 자긍심 향상은 커녕 부조리한 악순환의 심화 아닌가?

이런 의심들, 이런 어이없는 작태들, 여자의 몸이 전쟁터가 되는 이런 상황은 그녀들의 마음을 만신창이로 만들었으리라. 그런 참담함의 악순환을 싸잡아 이 사회의 병리학은 ‘우울증’이라는 단순한 진단으로 처리한다. ‘우울해서 성형하고, 약 먹고, 술 마시고, 급기야 괴로워 자살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조금만 깊이 추적해보면, 소통부재의 문제가 떠오른다. 왜 그녀들에게는 고통을 소통할 친지 한 사람조차 제대로 없는 것일까? 어떤 스타는 연예계 사단을 거느렸다는데, 왜 그녀의 친권회복운동 공식석상에 그 누구도 얼굴 하나 내비치지 못하는 것일까? 도대체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 대중의 사랑을 얻으려는 노심초사, 대중의 사랑을 잃을까, 하는 불안의 저변에는 무엇이 존재하는 것일까?

여자연예인을 둘러싼 이 모든 우울과 낙심과 두려움의 근저에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통해 온 성정치학의 구조적인 문제가 팽배해 있다. 이어지는 자살사태는 그런 관행의 수위가 목까지 치밀어 올라왔다는 점을 증명해준다.

우리 모두는 삶의 에너지인 에로스(Eros) 에너지로 살아간다. 이성/동성과의 관계에서 따뜻하게 발휘되는 몸과 마음이 깊게 소통하는 것이 삶의 핵심이다. 이것이 무너지면 에로스 에너지는 곧 타나토스(Tanatos)라는 죽음의 에너지, 자기파괴의 에너지로 변환된다. 삶 속에는 늘 죽음의 욕망이 함께 존재하기에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이다.

에로스 에너지가 제대로 발휘되려면 상대를 자신과 같은 인격으로 대하며 상호평등하게 깊게 소통하는 맛을 익히고 경험해야 한다. 그러나 봉건적 성도덕률은 여남간의 에로스 소통보다, 남성의 성욕 충족을 중심으로 ‘정숙한 여자’와 ‘걸레 여자’로 이분화된 여성형을 양산해낸다. 섹슈얼리티에 대한 이중적 기준과 위선이 이 사회 여남성 양성 모두를 타락시켜 피폐하게 만든다.

연애, 로맨스는 힘들고 귀찮아서 못하겠다,는 이들도 있으니 너무 삐뚤어진 것이 아닌가? 그러니 성매매특별법에도 불구하고 온갖 방식의 매매춘으로 여남성이 만난다. 자녀 학원비를 위해, 유흥비를 위해 몸 파는 여자들의 파행담이 매스컴에 등장한다. 정경부인을 집에 모셔두고 온갖 유흥상에서 여자를 사는 남자들을 도덕적으로 질타하는 경우는 없다. 남자는 원래 그런 동물이란다.

여전히 간통죄를 유지하며 평생 단혼제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이런 이중적 위선은 이제 벗겨져야 한다. 성폭행, 성추행, 급기야 성상납 사건이 목숨을 걸고 밝혀져도, 약한 여자가 강한 남자에게 당하는 관행으로 치부하는 이런 반인권적 발상과 실태는 이제 고발되고 폭로되고, 수정되어야 한다.

여자 연예인이 권력남의 성상납 대상이 된다는 사실은 현재만의, 일부만의 일이 아니다. 권력이 없는 남자가 각자 자신의 경제수준에 맞는 성매매를 하고, 성추행, 성폭행을 하는 것도 동형 구조이다. 섹슈얼리티 이해와 발현을 둘러싼 본질이 삐뚤어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장자연 문건은 철저하게 재조사되어 시비가 가려져야만 한다. 더불어 연예계의 제도적 관행을 여성인권을 중심으로 제도개선이 시행되어야 한다. 여자 연예인 자체도 실력으로 승부하는 자긍심 회복 운동을 벌여야 한다.(성형으로 몸까지 고쳐가며 권력남에게 술 따라주는 접대부가 아닌 예인정신으로 자신을 키워가는 자긍심으로부터 자신을 다지는 풍토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여자 연예인의 섹슈얼리티를 즐기면서도 그녀들이 조신하기를 기대하는 팬덤의 이중적 태도도 수정되어야 한다. 섹슈얼리티 태도에서 마돈나처럼, 조디 포스터처럼, 차라리 (주관적 취향으로는 혐오스러워도) 패리스 힐튼 같은 다양하고 솔직한 여자 연예인상이 제각각 개성 있게 드러나는 게 훨씬 건강하다. 예술이라는 것은 독창성을 실존근거로 한다. 여자예인들이 다양한 섹슈얼리티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이 사회의 여성 역할 모델 스펙트럼을 넓히는 것이고, 보다 긍정적이고 상식에 맞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함께 ‘걸레 여자론’을 깨주어야 하며, 옥소리의 간통사건을 인권문제로 도와줄 필요가 있다. 이제 ‘침묵을 깨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