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 너! 아빠란 사람아
글 보내주실 곳은 ksvrc@chol.com 입니다. 이번 호에는 '水'의 연재수기 열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 水
그 사람은 오늘 뭔가 특별한 것을 준비한 듯 하다.
하얀 사기그릇에 맑은 물을 한잔 담아 왔다. 그 밤은 유난히 달빛도 밝아서 창호지를 바른 뒷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색다르게 느껴지던 밤이었다. 그 사람은 맑은 물이 담긴 사기그릇을 방 한 가운데 두고 마주 보고 앉게 했다. 나는 왜 그렇게 앉으라는지 영문도 모른 채 자다 말고 일어나 앉았다. 지금에서야 생각하는 거지만 그때 우리 가족들은 모두 어디 있었는지 정말 궁금하다. 집에서 항상 존재했던 사람은 나와 그 사람뿐인 것 같다.
그 사람은 뭐라고 이야기를 하고, 엄숙한 의식을 거행하는 사람처럼 조용조용 말했다.
“OO야, 우리 이제 결혼식 할 거야, 지금은 이렇게 정한수만 떠놓고 하지만, 나중에 너 외국에 나가 있으면 내가 가서 결혼식 제대로 올려줄게, 넌 거기서 내 아이 낳고 살면 돼”
하도 기가 막히면 ‘쳇’ 소리도 할 수 없는 것 같다. 아무 소리도 할 수 없었다.
“자, 내 꺼 잡아봐, 나도 니 꺼에 손 얹을게. 이게 약속이야, 이제부터 다른 사람한테는 허락하지 않을게.”
내 손을 끌어다 그 사람의 더러운 것에 얹어놓는데 기가 막힌다. 이게 뭔 짓인가 싶기도 하고. 그 사람은 가만히 내 몸에 손을 얹고는 자신의 신에게 기도라도 하는지 잠시 동안 눈을 감고 조용히 있었다.
“이제부터 우리는 진짜 부부야, 니 엄마는 큰 형님이라고 생각하고, 이제부터 형님이라고 불러, 알았지? 자, 이제 내 꺼에 뽀뽀해, 나도 해줄게”
내 머리를 끌어다 더러운 것에 들이밀었다. 그리고 내 몸에 입을 갖다 대는 것이다.
온 우주에, 아니 우리 집 안에는 늘 그 새끼와 나만 있다.
이럴 때 엄마와 오빠, 동생들은 모두 어디 있는 것인지 도무지 기억할 수 없다.
온 우주에, 아니 우리 집 안에는 늘 그 새끼와 나만 있다. 이럴 때 엄마와 오빠, 동생들은 모두 어디 있는 것인지 도무지 기억할 수 없다. 늘 그랬다. 가족은 분명 여섯 명이었는데, 늘 그 사람이 나에게 이런 짓을 할 때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너무 편하게 하고 싶은 대로 나에게 하는 것이다. 첫날밤을 치르듯 그 사람은 잔뜩 흥분을 한 모양이다. 끌어다 얹어놓은 내 손 안에 그 사람의 더러운 것이 점점 단단해지더니 무기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커져버렸다.
그 사람은 이제 준비를 마쳤다는 듯 야릇한 미소를 띠었다.
“이제 오늘이 진짜 부부로는 첫날밤이야.”
그날도 아프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 사람은 내 몸이 아픈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는지 혼자 마음대로 씩씩거리고, 하얗고 끈적거리는 액체를 쏟아놓고는 잠이 들었다. 달빛은 나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듯 비추고 있다. 이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저 사람과 이렇게 지내고 싶지 않은데, 그냥 진짜 아빠 역할만 해주었으면 하는데 저 사람은 왜 자꾸 나한테 이 지랄을 하는 것일까? 이럴 때 가족들은 모두 어디 있는 것일까?
그들은 나와 아빠의 관계가 의심스러운 듯 말을 하면서도 그냥 넘겨버렸다. 지난번에 엄마가 피임약을 발견했을 때만 해도 그렇다. 엄마는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받았다. 그래서 엄마는 피임약이 필요 없다는 것은 온 가족이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엄마가 책상서랍에서 피임약을 발견했다. 집안은 발칵 뒤집혔다.
“이게 왜 필요해? 저년이 아빠 붙어먹었지? 집에서 이게 필요한 사람이 어디 있다구?”
“아니야, 이년아, 이거 예전에 너랑 쓰던 거 남은 거야, 계속 그럴래?”
오히려 엄마를 협박하며, 거짓말을 하는 그 사람의 표정은 어느새 엄마를 정신병자로 만들고 있었다. 의부증 환자가 되어버린 엄마는 아빠의 주먹 앞에 자신의 추측이 틀렸다고 인정해버렸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고, 들리지 않는 척 가만히 있었다. 나는 ‘내가 아빠 붙어먹은 년인가?’ 라는 생각에 빠져 더 이상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엄마는 온 가족이 다 듣도록 내가 아빠 붙어먹은 년이라고 욕을 했고,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아빠가 엄마를 때리는 상황을 그냥 지켜봐야 했다. 다른 가족들은 우리 세 사람의 행동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엄마를 패는 아빠를 말리는 모습도 볼 수 없었다.
동생들과 오빠들 앞에서 정말 쪽팔렸다. 초등학생인 내가 아빠를 붙어먹었다니…….
그래, 늘 그랬다.
하루는 그 사람이 나와 동생들을 데리고 읍내의 비디오 가게를 갔다. 그때는 한창 강시영화가 유행을 탔을 때다. 나는 어린이들이 보는 강시 비디오테이프를 빌렸다. 그 사람은 동생들에게 먼저 차에 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나만 비디오가게에 다시 데리고 들어갔다.
“아줌마, 여기 재밌는 비디오 있어요?”
아주머니는 비디오테이프가 잔뜩 꽂혀있는 책꽂이 뒤편에서 아무 제목도 스티커도 붙어있지 않은 검정 비디오테이프를 그 사람에게 주었다. 그 사람은 아주머니와 무언가 통했다는 듯 테이프를 검정 비닐봉투에 담아 가게를 나섰다.
나는 빌려온 강시 비디오를 동생들과 봤다. 숨을 쉬지 않으면 살아있는 사람도 지나치는 강시 영화는 당시 최고의 인기였다. 그래서 동생들과 얼마나 오래 숨을 참을 수 있는지 게임도 했을 정도다.
아무튼 그날도 밤이 깊었다. 다른 가족들은 자신들이 잠이 들어 몰랐다지만, 나는 그 말이 믿어지지도 않고, 그냥 그들은 그 사람과 나만 집에 두고 존재하지 않아버렸다. 피곤한 하루를 보내서 곯아떨어진 나를 단잠에서 깨운 것은 그 사람이었다.
“일어나 정신차려봐. 아까 빌려온 재밌는 비디오야, 자 정신 차려봐”
초등학생이던 나는 그 사람이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겨우 잠을 깼다. 처음에는 잠깨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런데 그 사람이 비디오를 켜는 순간, 다른 가족들이 깰까봐 TV볼륨을 ‘0’ 으로 해놓았어도 그 충격적인 장면으로 인해 잠이 확 깼다.
너무 하얀 피부여서 붉어 보이는 백인 남녀가 벌거벗은 몸으로 나오는 비디오였다. 거기 나오는 사람들은 가슴도, 성기도 엄청나게 컸다. 당시로서는 ‘저게 사람의 몸일까?’ 싶을 정도로 컸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실제 남자와 여자가 관계를 맺는 장면이었는데, 아예 성기와 성기가 들어갔다 나갔다 하는 부분을 클로즈업한 이상한 화면이 긴 시간 지속되었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방금 전까지 남자와 짐승처럼 소리를 내며 그 짓을 하던 여자가 욕탕 안에서 다른 여자와 키스를 하고 몸을 어루만지며 또 이상한 소리를 내는 장면이 계속되었다. 또 가죽 끈 같은 걸로 서로 몸을 때리고, 묶으며 신음소리를 내며 그 짓을 했다. 방금 전까지 무척 피곤했는데 잠도 확 달아났고, 무섭기까지 했다. 이런 영화를 보여주는 건 왜일까 싶어 걱정이 되었다.
그 사람은 집중해서 영화를 보더니 내 몸을 꽉 잡았다.
“야, 저 여자처럼 저렇게 엎드려봐, 이렇게 해”
그러더니 내 허리를 뒤에서 꽉 쥐어 잡고는 엎드리게 했다. 그리고 딱딱해지고 커진 그 사람 성기를 뒤에서 내 몸으로 강제로 밀어 넣으려 했다. 너무 깊숙이 들어가 내 뱃속까지 쑥 들어오는 것 같았다. 배가 아픈 건지, 밑의 성기 부분이 아픈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냥 내 몸이 모두 아팠다. 어딘가 찢어진 것도 같고,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너무 수치스러웠다. 나는 이러고 싶지 않다. 나는 저 새끼처럼 미치지 않았는데, 개새끼가 지가 하고 싶은 대로 내 몸을 마음대로 하는 게 싫다. 지랄 미친 새끼, 똥물 같은 새끼, 이놈한테서는 어느 새 세상에서는 맡아볼 수 없는 똥물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토할 거 같다.
나는 이러고 싶지 않다.
나는 저 새끼처럼 미치지 않았는데, 개새끼가 지가 하고 싶은 대로 내 몸을 마음대로 하는 게 싫다.
그 사람은 혼자 신음소리를 내며 진짜 좋아서 그걸 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이제는 다른 짓을 해보고 싶은 모양이다.
“야, 이번에는 그래, 이렇게 해봐, 아니 이렇게, 그래, 시키는 대로 해봐, 저거 보고”
그 사람은 그 영화에 나오는 짓거리들을 모두 흉내내보고 싶은 모양이다. 지금은 잘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때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상한 자세들을 강요당해야 했다.
그날 이후 학교에서 수업을 받을 때도 내 눈 앞에는 친구 옥희네 집의 젖소 젖같이 큰 가슴을 가진 서양여자들의 모습과 금발의 꼬불꼬불한 털이 가득했던 서양여자의 성기에 길쭉한 서양남자의 성기가 들락날락하는 장면이 계속 보였다. 어쩌면 저렇게 노골적인 장면을 가까이서 찍었을까 싶은 그 모습을 본 것이 부끄럽기도 했고, 다른 사람들이 전혀 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장면을 알고 있다는 죄책감도 들었다. 수업시간에 이런 장면이 떠오를 때면 나는 나도 모르게 혼자 고개를 흔들어 화면을 흩트리곤 했다. 그러나 그 영화의 장면들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지금까지도. 개새끼가 나에게 준 똥물 같은 기억들은 몸에만 남은 게 아니라 내 머릿속에도 박혀있는 거 같다. 그때의 그 상황, 기억, 냄새, 영상, 소리, 모두 다.
그 사람은 늘 어떻게 나를 괴롭힐까만 생각하는 사람 같다. 어느 날은 그 사람이 하루 종일 서울엘 다녀온다고 갔다. 그럴 때면 나는 밖에서 문을 잠가둔 집안에 갇혀 있어야 했다. 그날도 가족들은 어디 갔는지 기억에 없다. 밤에 그 사람은 또 잠자는 나를 깨웠다. 한밤중 모든 가족이 잠든 시간인 것도 같다. 그 사람은 나를 위해 뭔가를 준비한 듯 했다.
“내가 뭐 사왔는 줄 알아? 너가 요즘 권태기인 것 같아서 준비했어”
그 사람이 내 눈앞에 내민 것은 팔뚝만큼 크고, 징그러운 그것이었다.
“니가 전혀 흥분을 못하니 자위를 하고, 내가 이걸 너한테 밀어 넣으면 다른 남자 상상하면서 해, 니가 지금 권태기라 그래, 내가 너 위해서 이거 얼마나 힘들게 구했는지 알아? 청계천까지 가서 샀다니까”
그 사람은 자신이 나를 괴롭히는 것을 나를 위해 하는 봉사행위라고 생각해버리고 싶은 모양이다. 내 몸을 지 멋대로 한다. 아프고, 쓰라리다.
“이제 좀 좋아? 자 이제 이거 넣을게, 이거 넣어서 좀 흥분하면 그때 내 꺼 넣어줄게”
그 사람 것보다 훨씬 굵고, 길다란 그것을 내 속으로 밀어넣으려 했다. 내 몸이 다 찢어지는 것처럼 쓰리고, 아팠다. 난 사람이 아니다. 이 사람에게 나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 이렇게 생각해버리는 게 나아, 저 멀리 천장에 붙어있는 파리가 되어야지.
“좀 참아봐, 그럼 좋아질 거야, 다른 남자 상상하라니까. 이게 아주 큰 사람이라고 생각해, 너 이 정도는 들어갈 수 있어”
계속해서 강제로 내 몸을 가지고 하는데 어떻게 막을 수도 없었다. 정말 나를 가지고 놀고 있다. 나는 이 사람에게 더 이상 살아있고, 생각과 느낌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딸은 더더욱 아니다. 나는 그 사람에게 손에 들고 있는 성기 모양 만큼이나 무생물이다.
그렇게 조금씩 힘으로 밀어넣다가 더 이상 들어가지 않자 직접 자기가 나를 위해주는 것처럼 “이제 진짜 들어간다”라며 내 위로 올라왔다. 그 사람은 정말 나를 위해 해주는 걸로 생각하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다. 입이 있어도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몸에 손과 발이 달려있어도 아무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생각 같아서는 저 새끼 몸에 달린 그것부터 살갗 하나하나를 직접 내 손으로 짝짝짝짝 찢어내고 싶은데…….
그 사람은 그것을 검은 비닐봉투에 담아 침대 밑에 두었다. 그리고 수시로 밤마다 그걸 꺼내 내 몸에 넣어보곤 했다. 색다르게 무언가를 시도해보고 흥분하고 싶어하는 그 사람의 갖은 노력(?)에도 내 몸이 반응하지 않자 그 사람은 더 갖가지 노력을 했다.
그렇게 나를 가지고 장난치던 일도 싫증이 난 모양이다. 하루는 나를 앉혀놓고 진지하게 말했다.
“너가 아무래도 불감증이 심한 것 같애, 그럼 나중에 애도 못 갖는데, 그러니까 지금 치료를 하자, 불감증 잘 고치면 권태기도 지나갈 거야. 안산 시내에 가면 성인극장 있거든, 거기 가면 남자들이 많이 있어, 가서 내가 뒤에 앉아있을 테니 모르는 남자 옆에 가서 앉아, 그럼 그 남자가 니 몸을 만지기 시작할거야, 이렇게 허벅지에 손을 얹을 거야, 그럼 그냥 가만히 있어, 그러면 보지도 만지고, 옷 속으로 손을 넣으려고 할 거야, 그리고 가슴도 만지려고 하고, 뽀뽀도 하려고 할 거야, 그럼 그냥 가만히 있어, 그러면 그 사람이 밖으로 나가자고 하면서 여관에 가자고 할 거야, 그럼 따라가는 척 하다가 내가 데리고 올 테니 거기까지만 해봐, 그럼 잔뜩 흥분될 거야, 그럼 집에 가서 내가 해줄게”
나는 그 말만 들어도 미칠 것 같았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가기 싫다고 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나에게 화를 냈다.
“야 이년아, 니가 무슨 성모 마리아라도 돼, 시키는 대로 해, 니가 그래도 안 속거든, 어차피 니 엄마 피가 섞여서, 니 엄마가 갈보였어, 이년아, 그 피가 어디가?”
그 사람은 강제로 나를 성인극장까지 끌고 갔다. 정말 후진 극장, 간판 그림도 이상하고, 이름도 듣도 보도 못한 저질 영화만 틀어주는 곳이었다. 거기에는 정말 아저씨들만 있었다. 그 사람은 양복을 차려입은 아저씨 옆으로 나를 데리고 가더니 자기는 그 뒤에 앉았다. 나보고 그 옆에 앉도록 한 후 바로 뒤에 앉아 나와 그 아저씨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아저씨는 정말 그 사람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팔걸이에 손을 내리는 척 하더니 내 허벅지에 손을 얹고는 주무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느낌이 그 사람의 그 짓만큼 더럽게 느껴져 벌떡 일어나 영화관을 나왔다. 그러자 뒤에서 지켜보려던 그 사람은 급하게 나를 따라 나오며 내 귀에 대고 딱딱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 이년아, 니가 그런다고 내가 널 깨끗하다고 생각할 거 같아, 니가 다른 남자를 원한다는 거 알아, 너 이따 집에 가서 보자, 죽었어.”
도대체 뭘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 사람은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하는 것일까?
왜 나한테 이런 짓을 하도록 하는 것일까?
도대체 뭘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 사람은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하는 것일까? 왜 나한테 이런 짓을 하도록 하는 것일까?
그 사람은 조수석에 나를 앉힌 후 운전을 하며 가던 중에 주먹으로 나를 세게 때렸다. 왼쪽 눈을 정통으로 맞은 나는 눈이 흐릿해졌다.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이년아, 내가 너 위해서 이러는데 왜 그래, 이년아, 니가 깨끗하지 않다는 거 알아, 너도 그렇게 하는 거 원하면서 왜 그래?”
입술을 꽉 물고, 힘주어 말하는 그 사람의 개 같음에 질려버린 나는 눈두덩이가 퉁퉁 붓도록 맞았지만, 울지 않았다. 그렇게 맞으며 집에 도착하자, 성인극장에서 한 협박을 실행하기 위해서인지 안방으로 끌고 가 그 짓을 했다. 일부러 폭력적으로 더욱 내 몸을 아프게 하기 위해 노력해가며 그 짓을 했다. 이날은 더욱 힘들고, 아프게 나를 괴롭혀 이제 더 이상은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 강하게 생각했다.
가라, 너! 아빠란 사람아!
水의 한마디
휴가를 냈다, 하루 종일 생각을 하면서 여유롭게 '수의 한마디'를 정리하고 싶어서.
사실 이번 호 글은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쓰고, 읽고, 고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계속해서 수치스러웠다. 내가 느껴야 할 감정이 아니다, 아니다 스스로에게 말해주었지만 쪽팔린다는 그 느낌은 해결되지 않았다. 힘들었다. 이건 그 새끼가 느껴야하는 게 아닐까? 내가 왜 이러지?
두어 달 전 내가 살아온 삶이 빚어놓은 내가 너무 싫고 부끄러웠던 날이 있었다. 그날 나는 그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나야, 나. 니 딸 OO."
"아이구, OO야, 잘 지내냐?"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알아?"
"야, 그래도 부모한테 잘 해야지 너 나한테 이러면 안 된다, 앞으로라도 잘 살고 싶으면 부모한테 잘 해라."
"부모? 야, 너 미안하다고 해, 미안하다고 하란 말야"
"뚜~뚜~"
미친 놈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 나는 다시 걸었다. 내 번호가 뜨지 않게 전화를 걸다가 나는 그냥 내 번호가 뜨게 전화를 했다. 난 더 이상 그 새끼 안 무서워 할 거다.
"이게 전화를 끊어? 미안하다고 하라고"
"미안하다 뿐이냐"
"그냥 미안하다고 하라고, 너 때문에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알아? 미안하다고 해, 미안하다고 하라고, 내가 만약에라도 자살해서 죽으면 너 때문인 줄 알아, 새끼야"
미친놈에게 소리소리 지르고, 전화를 끊고 나서 집에 웅크리고 앉아 한참을 울었다.
이제는 그 사람이 더 이상 무섭지 않다. 그래, 무서워하지 않을 거다. 내 전화번호도 일부러 안 바꿨다. 개새끼가 전화 오면 개소리해주면 되지, 뭐.
이제 水의 글쓰기는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해야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는 과거의 힘든 기억들을 풀어내기 위한 글쓰기였다면, 이제부터는 지금을 살고 있는 수를 써보고 싶습니다. 더 이상 그 사람도, 그 사람의 짓거리들도 없는 지금의 삶을 사는 수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습니다. 지금은 과거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써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까지의 글을 엮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도 생깁니다. 혹시, 그 작업을 함께 하고 싶은 분이 독자 중에 계실까요? 사진을 잘 찍거나, 귀여운 그림을 그려주실 분, 글을 잘 손봐주는 친구, 제목을 잘 만드는 친구를 만나면 참 좋겠습니다. 이 힘들고 짜증나는 이야기를 함께 봐온 이들과, 이 이야기가 여기서 멈추지 않도록 작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거창한 책이 아니라, 생존자들과 나눌 수 있는 아주 작은, 그런 책 말입니다.(관심있으신 분은 상담소 편집자를 통해 연락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