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순간 찾아오는 불완전한 치유의 즐거움
패트리샤 맥코믹,『컷』
⊙ 소모임 <여성주의 소설읽기> 회원 당고
별거 아니지만 내가 아는 주문 한 가지
여느 때와는 달리 책장을 넘기는 순간순간, 어쩐지 무척이나 긴장이 되었다. 손에 힘이 빠져 책을 떨어뜨리질 않나, 숨이 가빠오질 않나, 얼굴을 돌리고 책과 내외하질 않나, 그것 참. 가끔은 그런 책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자꾸만 숨을 고르며 한 글자 한 글자를 새기듯이 읽게 되는 책.
이 소설은 거식증, 약물중독, 자해 등 다양한 특징을 지닌 십대 소녀들이 모인 요양원에서 주인공 캘리가 겪는 마음의 변화를 담담히 그려낸다. 캘리를 이곳에 오게 만든 것은 날카로운 것으로 몸을 긋는 자해와 아무것도 말하려 하지 않는 자발적 실어증. 아무도 그녀를 책망하지 않는데도 소녀는 마음속 깊이 ‘모든 게 내 잘못이야!’라며 괴로워하고 또 괴로워한다. 왜 여리고 약한 사람들일수록 자기 탓을 하게 되는지.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하므로 나는 중얼중얼 주문을 외운다. 네. 잘. 못. 이. 아. 니. 야. 이 말이 그녀에게 닿아서 강력한 마법의 힘을 발휘하기를. 네 잘못이 아니야. 응, 그래, 네 잘못이 아니야.
네가 만약 힘들 때면 내가 친구가 될게
“제발 부탁인데 네 몸을 아프게 하지는 마.”
시드니가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갑자기 뜨거운 눈물이 눈가를 자극한다.
그러나 나는 울지 않는다. (『컷』, p.74)
마약 이슈를 가진 시드니와 티파니, 거식증에 걸린 타라와 베카, 폭식증에 걸린 데비, 캘리처럼 자해 이슈를 가진 아만다 등 저마다의 과제를 품은 또래 게스트들과 지내며 점차 마음의 문을 여는 캘리. ‘정상’이라는 선 밖의 시선으로 보면 병들고 이상한 아이들일 뿐이지만, 사실 그녀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연민하며 지켜주려는 지나치게 ‘착한’아이들일 뿐이다.
소설은 캘리의 1인칭 시점으로 흘러가지만 내 마음은 피곤할 만큼 여기저기로 튄다. 캘리의 마음으로 들어가 ‘어? 도대체 내가 왜 이러지?’하고 두려워하기도 하고, 상담자가 되어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소녀를 지켜보기도 하고, 캘리의 엄마가 되어 찌들고 지친 몸으로 애써 캘리를 챙겨보기도 한다. 그 누구에게도 쉬운 삶은 없다는 깨달음 때문에 나는 조금 더 슬퍼졌다. 그나마 시드니 같은 친구들의 마음속에 들어갔을 때가 제일 좋았던 이유는 단순하다. 그녀들에겐 이제 ‘동지’가 생겼으니까. 어둡고 험한 길을 걸어도 친구가 있으면 외롭지 않으니까. 꼭 같은 이유로 그리도 많은 사람들이 상담소를 찾아오지 않았던가.
그 상처까지도 나인 거야
이야기는 빠르게 흘러 소녀는 결국 ‘안전하게’ 치유되리라는 암시로 끝이 난다.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자못 마음이 불편해지는 건 왜일까. 자해 충동을 가진 사람들에게 ‘치유’란 무엇일까. 불안하고 우울한 사람들에게 치유란 무엇일까. 성폭력 생존자들에게 치유란 무엇일까. ‘아무렇지도 않게 말짱해지는 것’이 치유일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정상’의 규칙에 맞추어 사는 것이 ‘완전한’치유일까.
언제까지고 술을 마시는 않는 것만이 알코올 중독자의 치유가 아니리라. 어떤 때는 술을 마시지만 어떤 때는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것도 치유가 아닐까. 늘 평온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조증이나 울증의 미묘한 선을 재주껏 넘나드는 것이 치유의 목표가 될 수도 있다. 스스로가 어떻게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자신을 다잡으려는 안간힘 사이에서 아슬아슬함을 느끼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지구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정상인’들도 아마 그럴걸?
“그런데 저는 이 상처들을 없애고 싶지 않을지도 몰라요.”
한참 뒤에 내가 말을 꺼낸다.
당신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것도 제 자신을 말해주는 일부니까요.”
“그래, 맞아. 그렇지.” (『컷』, p.207)
완전히 치유되는 것, 아무렇지도 않아지는 것,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처럼 되는 것, 이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는 계속 어딘가 아프고 힘들고 괴로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완전한 치유가 아니라고 해서, 여전히 두렵고 불안하다고 해서, 결코 우리가 순간순간 맞이하는 치유의 감동이 덜해지는 것은 아니다. 캘리의 말처럼 빨간 자국으로 남은 생채기조차도 나의 일부다. 우리는 매 순간 상처받고 매 순간 기적처럼 치유된다. 내일이 두렵더라도 오늘의 행복을 선택할 수 있다면, 오늘 우울했더라도 내일은 다른 기분일 거라고 믿을 수 있다면, 그리 나쁘지 않다. 나도, 당신도, 썩 괜찮은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