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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사회 내 성폭력 : 열정과 신념만으로는 불가능한 해결
  • 여성주의상담팀 이어진
기획특집 _ 운동사회 내 성폭력

열정과 신념만으로는
불가능한 ‘해결’

<운동사회 내 성폭력을 다시 묻다> 토론회 장면

⊙ 여성주의상담팀 이어진

1990년대 한국사회에서 ‘성폭력’이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면서, 성폭력을 구성하고 규정하는 다양한 상황과 맥락들에 대한 논쟁이 지속되어 왔다. 이와 같은 과정 속에서 성폭력은 ‘모르는 사람에 의해, 20대 일반의 젊은 여성’에게 발생한다는 인식을 뒤엎고, 가족관계, 직장내, 교수사회, 데이트 관계 등의 다양한 권력관계와 상황에서 발생하는 것임이 밝혀졌다. 운동사회1 또한 성폭력이 발생 가능한 공간으로 인식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지만, 2000년 10월 성폭력 사례를 가해자의 실명과 함께 공개한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이하 100인위) 활동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며 운동사회 내 성폭력에 대한 논쟁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다.

새롭게 발견되는 성폭력 그리고 자정능력에 대한 질문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상담일지에는 가해자 유형을 표시하는 체크박스가 있다. 상담현황을 분석할 때 가해자 집단을 범주화하기 위해 이를 사용하는데, 2000년을 즈음하여 단체활동가 및 사회복지기관종사자와 같은 집단을 나타내기 위한 카테고리가 생겨났다. 수적으로 운동사회 내 가해자가 증가한 것인지, 일반적 성폭력 집계 추이와 유사하게 숨어있던 피해자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인지는 단언하기 어려우나, 실제적으로 운동사회 내 성폭력은 최근 빈번하게 드러나고 있다. 더불어 우리 상담소에서 상담 혹은 사건지원을 맡게 되는 운동사회 내 성폭력 사건 또한 늘고 있다. 성폭력 사건과 관련하여 운동사회는 조직의 자정능력에 기반을 하여 사건을 해결하고자 한다. 하지만 최근 운동사회 내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의 해결과정을 들여다보면, 해결을 위한 조직의 자정능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운동사회 내 성폭력이 발생할 경우 개별 조직은 민·형사상 가해자를 처벌하기에 앞서 조직 내에서 자체적으로 조사와 처벌을 한다. 이는 성폭력 가해자에게 징계를 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특정 사건을 계기로 조직 전체가 교훈을 얻고자 함일 것이다. 이는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가 다시금 ‘동지적 관계’를 갖게 하고, 성폭력 사건을 통해 구성원 전체가 성인지적 관점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는 조직에 대한 믿음에 기반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몇몇 사건에서 드러난 운동사회 내 자정능력의 수준은 그 ‘믿음’에 상당히 못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성폭력 사건 해결이라는 이름으로, 피해자가 활동할 권리를 보장하려는 노력보다는 오히려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는 조직 보위론에 더 무게 중심이 실려 있음을 목격하게 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진보 진영 내의 성폭력 및 가부장적 성차별을 여실히 보여주었던 전희경2의 책에서는 “사건을 묵인하고 은폐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가해자를 옹호하고 피해자를 운동사회에서 추방하는 고유의 매커니즘이 존재”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안타깝게도 상담소에서 운동사회 내 성폭력 사건들을 접할 때마다, 여전히 이러한 분석이 유효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피해자중심주의’는 침묵이 아니라 소통

운동사회 내 성폭력사건을 지원하다 보면 가장 주목하게 되는 명제가 ‘2차 가해’와 ‘피해자중심주의’다. ‘2차 가해’는 성폭력 사건을 바라보고, 함께 해결해 나가는 공동체 성원들의 의식을 반영하는 부분이고, ‘피해자 중심주의’는 성폭력 피해자를 조력하고 지원하는 조직의 관점을 반영한다. 하지만 이러한 명제가 실제 운동사회 내 성폭력 사건을 잘 해결할 수 있는 원칙으로 이어지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다. 특히나, 운동사회 내 ‘정치’는 이러한 명제가 가진 중요한 전제, 즉 ‘사건의 해결 이후에도, 피해자가 조직 내에서 건강하게 활동하는 것’을 간과하게 만든다.

“피해자가 말하기 싫어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 피해자한테 물어볼 수가 없어요. 아니, 피해자가 왜 거기 갔냐고 어떻게 물어볼 수가 있어요? 그런 거 물어보면 2차 가해 아닌가요? 그래서 되도록 조용히 모든 일을 끝내놓고 피해자와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피해자가 어디까지 알아야 하는지도 자꾸 헷갈리고, 잘못했다간 이번 민주노총 사건처럼 괜히 줄줄이 불려갈 수도 있고 하니…….”
- 운동사회 내 성폭력 사건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

언제부터인지, 운동사회 내 성폭력 사건에 있어, 피해자에게 성폭력 피해와 관련된 질문을 하고 관심을 보이는 일체의 행위는 2차 가해로 이해되고 있다. 극도로 피해자에게 조심하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대하는 것이 피해자를 위하는 것이며 조직성원의 역할이라고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사건에 대해 피해자에게 질문하지 않고, 피해자와 대화하지 않고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주변의 동료들이 2차 가해를 두려워하며 피해자와의 소통을 멈추는 순간, 피해자들은 조직문화를 개선하려는 자신의 의지, 다시 함께 일하고자 하는 욕구를 조직성원들로부터 외면당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피해자의 심정과 상황은 조직 성원들에게 인식되지 않는다. 반면 가해자는 조직 구성원들로부터 사건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받으며, 자신을 항변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기도 한다. 가해자와 조직원들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는 반면, 피해자의 입지는 점점 축소되어 간다. 애초의 ‘2차 가해’라는 개념은 조직 내의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조직성원들의 책임을 분명히 하여 가해자에 의한 피해만이 아니라 피해 발생 이후 조직구성원이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이 사건의 해결을 무엇이라고 보는지, 그리고 바로 그 해결을 위해 어떤 과정을 밟는지 등 정치적으로 올바른 일련의 과정을 위한 성찰과 숙고를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다. 조직 내의 성폭력이 단순히 가해자의 잘못이 아닌 공동체의 잘못이며, 이를 함께 바로잡기 위해 조직 내 ‘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고 내규에 따른 해결점을 찾는 것인데, 2차 가해라는 개념을 무성찰적으로 적용하여 결국 가해자와 피해자와 조직성원의 입을 막고 있는 것이다.

‘피해자 중심주의’ 또한 ‘피해자 보호’라는 명목 아래 기계적으로 해석되고 적용된다. 아래 운동사회 내 성폭력 피해자가 보내온 이메일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대부분 ‘피해자 보호’를 이유로 사건이 발생하면 조직은 즉시 피해자에게 유급휴가를 주고, 가해자와의 분리라는 약속을 지킨다. 하지만 이와 같은 처리방식이 피해자의 심리상태나 이후 복직 등을 고려하지 않은 기계적인 ‘분리’일 때, 자칫 피해자를 더욱 유약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 조직에서 피해자가 휴식을 취하는 동안 가해자의 활동을 유지시키기 때문에,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리’는 어느 순간 피해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특히 피해자는 조직 내에서 제도적인 혜택을 받았다는 명분이 주어지고, 피해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사건이 해결되고 있다고 호도되기도 한다. 피해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이를 위해서 선행되어야 하는 조치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 없이 피해자가 원하는 대로 조직에서 해주는 것만이 피해자 중심주의로 인식되면서 조직은 조직대로 억울함을 호소한다.

하지만 피해자 중심주의는 성폭력에 대한 가부장적 통념과 판단을 문제제기하는 인식론적 전환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피해자 개개인들의 모든 요구가 가장 옳다는 기계적 해석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인식론적 전환을 위해 공동체 조직원들은 성찰적으로, 진정성으로 사건 해결에 임해야 하며 피해자 역시 그 과정에 참여하는 한 사람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가끔 조직에서 판단컨대 피해자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 진상조사위원회는 난감함을 표할 뿐 피해자와 협상하지 않는다. “왜 피해자와 협상하지 않습니까? 피해자는 협상의 주체가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하면 그들은 말한다. “아니,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피해자가 원하는대로 해주어야지요. 그게 조직이 할 일이지요.”라는 볼멘 섞인 답이 생소하지 않다. 사실 이러한 것은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말 뒤에 숨어서 공동체가 맞서야 할 조직의 가부장성을 성찰할 의무를 방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은 제게 휴가를 주었습니다. 피해자니까 쉬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 또한 몸도 마음도 힘들었기에 쉬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에서 제가 휴가를 내고, 정신과를 다니고, 빨리 나아지기 위해서, 빨리 나아서 다시 출근하기 위해 그렇게 애달아 했던 저를 증오합니다. 제가 출근하지 않는 동안 가해자는 사람들로부터 온갖 동정어린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정도 일에 장기휴가를 쓰는’ 그런 사람이 되어있었습니다.”
- 운동사회 내 성폭력 사건 피해자

변화을 위한 액션, 심화과정이 필요

최근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잠잠하던 운동사회 내 성폭력은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운동사회조직이 가지는 특수성 중 민주성, 청렴성, 도덕성, 윤리성 등은 성폭력 발생과 연결될 때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는데, 그 영향이 상당히 기형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조직의 도덕성이나 진보성에 대한 타격이 두려워 쉬쉬하거나, 피해자의 입장보다는 조직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에만 급급한 것은 여전히 성폭력을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의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을 반증한다. 문제를 인정하고 민주적이고 인권친화적 해결과정에 대해서 모색하는 공동체야말로 자정능력을 갖춘 조직으로서 그 도덕성과 진보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며 ‘모두가 함께 잘 사는 민주사회’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운동사회 내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이를 해결하는 과정은 어때왔는지 이제는 성찰이 필요하다. 조직 내 반성폭력 규약이 생긴지 10년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믿고만 있던 운동사회 내 성폭력 해결능력을 검증하고, 검증을 바탕으로 한 냉철한 사후대책이 절실한 까닭이다.

민주노총 성폭력사건을 볼 때 성폭력 사건해결을 위한 과정에서 전제되어야 하는 지원원칙에 관해 운동사회 내 조직은 충분한 논의를 통한 조직의 합의가 부족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내규를 통해 원칙은 만들어져 있어도, 이를 구성하는 경우의 수에 관해서는 대처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운동사회 내 실무자들은 고백한다. 이처럼 피해자의 권리보장이라는 미명하에, 피해자는 배제되고 결국 가해자가 살아남는 ‘피해자 지원’은 이례적인 처리방식이 아니며 지나치게 소극적인 피해자 지원으로 그치게 된다. 이 부분에서 조직의 성찰이 요구된다. 이렇게 열정과 신념만으로는 불가능한 해결이 있다는 것을 운동사회 내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그 동료들은 뒤늦게 인정한다.

<운동사회 내 성폭력을 다시 묻다> 토론회 전경

여성단체가 제시한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의 입장과 제언」(2009.02.10)은 일반 운동사회 조직에 대한 성찰로도 확장된다. 이는 주요하게 성폭력의 발생 원인에 대한 규명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실제적인 대안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피해자와 조직을 저울질하는 조직보위론, 일상적인 성별분업에 기반한 남성중심적 조직문화, 형식적으로 의무화·매뉴얼화 되어 있는 일부 현실성 없는 성폭력 예방교육에 대한 문제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변화시키기 위해 철저한 현실검증을 바탕으로 한 실효성 있는 전문기구에 권력을 부여하고 아래로부터의 일상적 개혁이 필요함을 주장하고 있다.

그간 어려운 고백들이 있었다. 이제는 그 고백들을 바탕으로 ‘2차 가해’가 무엇인지, ‘피해자 중심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내부의 치열한 성찰과 논의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운동사회가 주장하는 성폭력 사건 해결의 ‘자정능력’은 내부에서, 그리고 외부에서 신뢰받을 수 있을 것이다.

1 박정미(2002)에 따르면 ‘운동사회’는 엄밀한 이론적 개념 정의라기보다는 시민사회, 정치사회에 유비되는 서술적 개념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사회운동 그 자체나 사회운동 조직과 세력이 위치한 장(場)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박정미(2002). 「성폭력과 여성의 시민권: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 사례분석」.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석사학위논문.>

2 전희경(2008). 『오빠는 필요없다: 진보의 가부장제에 도전한 여자들 이야기』. 이매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