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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를 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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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_ 운동사회 내 성폭력

연대를 위한 이야기

많은 성폭력 문제들이 그렇듯, 비판의 시선과 대안을 만들어가자는 다양한 언행들은 각자의 자리를 가지고 있다. 성폭력이 발생하고 꼬여가는 과정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냉소하기도 하고 우려하는 마음들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을까? 발생집단을 중심으로 이름 불리는 운동사회 내 성폭력은 쉽게 외부자와 내부자의 자리를 나누고, 그에 따라 반성하거나 비판하는 역할 구획을 낳아왔다.

그러나 많은 다양한 맥락과 관계 앞에서 이러한 구도는 무력하기도 하다. 예컨대 운동사회가 성폭력의 온상지로 단순분석되거나 냉소될 경우, 피해자의 자긍심이나 맺고 있던 관계들은 어떻게 회복되거나 말해질 수 있을까? 단순화, 일반화의 오류를 넘어 다양한 맥락에 뛰어들어가 성폭력 문제를 만나고 관계 맺는 것만이, 피해경험을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 수 있을 터. 안과 밖에서 공히 말이다.

사회운동진영 ‘내부’에서 활동하며 성폭력 사건지원을 해온 두 여성활동가와 만나보았다.

민주노총 김** 성폭력 사건 피해자 지지모임 피켓을 든 참가자들

일 시 2009년 8월 13일
좌담자 이봉화(진보신당 관악지역 활동가, 이하 A)
타리(진보신당 당직자, 이하 B)
정 리 오매(본 상담소 활동가)

A _ ‘운동사회 성폭력’으로 통칭되는 이야기가 있을 때마다 불편한 심정이 있다. 예컨대 ‘오빠는 필요없다’는 말이 주는 통쾌함이 있지만, 운동하는 나에게 ‘오빠’가 필요하지 않은지는 10년도 넘었다. 운동사회 안에서 많은 여성활동가들이 고군분투 해왔는데, 그런 것에는 관심을 가지고 있나? 내부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잘 드러난 적은 없던 것 같다.

B _ 나는 학생운동을 했는데 성폭력 사건들에 실망하여 그만두고 여성단체에서 일했다. 그리고 2년 전 진보정당에 왔다. 조직문화가 달라 적응중인데, 예를 들어 대중적인 정당에서, 온라인 커뮤니티 가입하듯 최소한의 동의로도 들어오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생기는 성폭력 문제에 어느 정도로 해결을 기대할 수 있을까.

‘사건지원자’가 되어 보기

A _ 처음으로 피해자 대리인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전업운동가가 되기로 결심한 사건이라 소중한 경험인데, 해결과정에서 3kg이 빠졌었다.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생체리듬을 피해자와 같이 했다. 당시에 선배가 “우리 지역의 사건도 아닌데 안 하는 게 어떠냐”고 했다. 지금은 그걸 싸잡아 생각하지는 않지만, 당시에는 ‘이것이 조직보위론인가!’ 분노하면서 이를 악물고 끝까지 했다.

B _ 사건담당자가 되면 중요한 판단과 결정은 나에게, 아니면 몇몇 여성위원들에게 위임하는 경우가 많다. 절차는 100%의 해결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 “절차에 따라 해야죠”라고 깔끔하게 말하지만, 사실은 같이 고민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처리했던 사건들을 두고 다시 생각해보는 경우가 있는데, 많은 반성도 한다. 그런데 이걸 누구와 나눌 수 있나?

A _ 사건지원을 몇 번 해보니 어느새 전문가가 되어 있다. 어떤 분야에서 한두번 경험을 가지면 전문가가 되는 얄팍한 인력풀이 씁쓸하다. 그러나 실은 관심과 성의를 가지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누구도 지원자가 될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다. 조직문화가 바뀌지 않고 있다는 거다. 그런 무심함에서 ‘희소한 지원자’는 쓸쓸함을 느낀다.

A _ 이번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을 보면서도 평소 존중해온 여성 리더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쩌면 여성인데도 저렇지? 그런데 나의 멘토는 내게 “여성이라고 모두가 똑같을 거라고 생각지 말라”고 했다. 여성문제나 성폭력 문제에 관심없는 여성선배들이 무척 많다. 그렇지만 그래도 감수성은 기본적으로 다르다는 게 내 평이다. 사건해결은 여성활동가가 지원하는 편이 낫다고 느끼는 이유다.

신속함을 포기해도, 진정성 있는 고민

A _ 운동영역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 피해자를 옹호하는 사람들도 “왜?”라고 물으면 자기 언어가 없는 경우를 많이 본다. 피해자의 편이었던 사람이 다른 사건에서는 가해자의 편에 서는 걸 보면, 대체 어떤 가치관으로 피해자 편을 들었는지 궁금해진다.

‘피해자는 아직도 고통받고 있습니다’ 피켓을 든 참가자

A _ 신속하게 처리하지 못하더라도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스스로 설명해보는 과정이 중요하다. 무조건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욕을 먹더라도 더 용기있는 과정을 보고 싶었다.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에서 지도부가 총사퇴를 정말 빨리했는데, ‘빨리 총사퇴 하지 않았냐’는 말을 자랑하듯 쓰는 걸 보면서 나는 이렇게 혼란스러운데 당신들은 그렇게 쉬운가? 묻고 싶어졌다. 사퇴를 하더라도, 진정 이것이 문제다, 라고 처절하게 고민하면서 논쟁한 끝에 그 결론에 도달한 것인지를 묻고 싶다.

B _ 성폭력에 대해 사람들이 쉽게 분노할수록, 그것은 극악무도한 범죄, 순결주의, 여성보호주의와 맞닿은 것 같다. 규약 제정을 하는 경우에도 나서서 비판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저걸 반대하면 반 ‘인륜’ 주의자로 보일까봐서인 듯하다. 성폭력 피해자가 낙인 받는 이유와 반성폭력에 일단 동의하는 이유가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A _ 예를 들어 가해자 징계의 수준을 정할 때 내부 갈등이 많다. 피해자가 중심이라고 하면 피해자는 언제나 최고수준의 징계를 원할 거다. 그렇지만 그것만을 기준으로 삼을 수 없을 때가 많다. 내부에서 이걸 얼마나 진지하게 다루느냐가 문제다. 자신의 말을 진심으로 경청하면서 고군분투하는 집단적 의지를 느끼느냐, 거기에 피해자의 1차적 치유가 있다.

B _ 운동사회에 있던 여성활동가가 성폭력사건을 경험하면, 당연히 조직을 거리두고 보게 된다. 여성인 자신과, 조직에 대해서 ‘바라보게’ 되는 시간이 오는 거다. 그 계기를 소중히 생각하는가? 피해자로서 알게된 새로운 시각들을 지지하고, 그걸 새로운 동력으로 보는가? 조직에서 그걸 할 수 있다면 피해자는 살아올 수 있고, 그게 명예회복과 조직복귀다. 그걸 잘 하고 있나?

매번 시작점으로 다시

B _ 성폭력 사건 처리과정을 보면, 이것이 왜 기본합의였는지 처음부터 다시 이야기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 같다. 예를 들어 온라인 게시판에서 사건 처리결과를 두고, 조직 전체의 결정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처리단위 위원 중 누가 ‘페미’인지를 찍어내고 그를 공격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한편으로는 사건처리 절차에 함께하는 법조인이 ‘법적’ 논리로만 접근하기도 한다. 이것을 똑똑한 가해자들이 ‘이용’한다. 주로 가해자들의 권리를 두고 절차적 적법성을 중시하는데, 피해자의 권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야기할지?

A _ 100인위의 시대가 10년이 흘렀는데, 그런 방법이 좋은 것인지 다시 구성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2차 가해에 대해서 축소 적용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혹자는 2차 가해보다는 명예훼손 개념을 쓰는 게 정확하겠다고도 한다. 성폭력 사건들이 지나가며 우리에게 남긴 상처들이 있다. 그 상처를 경험한 사람들은 주로 성폭력 사건이 생기면 침묵하는 걸 보게 된다. 반면에 무조건 여성주의를 반대하고 공격하는 이들도 있다. 이제껏 만들어온 해결체계 자체를 해체시키는 공격인데, 솔직히 이들과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할지 감이 안 오기도 한다.

운동을 부정하지 않고 연대하고 싶다

A _ 이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뭘까. 성폭력은 평등한 관계맺음을 가장 심하게 왜곡하는 폭력행위이면서 가장 빈발하는 형태다. 발생하고 있는 불평등의 문제에서 가장 선두에 서 있는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여성이라는 존재 자체는 역사적으로 차별을 받아왔지만 수적으로는 대등하지 않나. ‘마이너리티’를 고민하는 내게, 성폭력은 중요한 문제다.

B _ 운동사회 성폭력 문제에 대해서 여성단체가 개입하는 것을 꺼리는 조직들도 있다. 운동사회에서 일어나는 내부의 관계, 특별한 맥락을 모른 채 비판하는 것에서는 연대를 느끼지 못한다는 거다. 동지적 관계를 파괴하지 않는 것, 공동체 내에서 최선을 다해 해결하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한다. 상흔을 심하게 겪었던 지난 과정을 통해 얻은 결론이라는 것. 그러나 부족한 점도 있다. 피해자와 소통하고 그 경험을 깊이 이해하는 방식이라든지. 그리고 성폭력 사건을 겪으면서 새롭게 가지게 되는 시각과 동력을 충분히 지지하고, 그것을 조직을 변화시키기 위한 거름으로 쓰이도록 하는 것에 여전히 조직은 수동적이다. 그러면 그 피해자는 또 고립되거나 여성문제는 부문화된다.

A _ 조직 내에서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욕망과, 외부와 만나고 싶다는 마음 두 가지가 다 든다. 이 안에 있고 싶으면서도 이 안에 있기 싫은 마음을 어떻게 둘 다 위무할 수 있을까. 그래서 다시 여성이 아닐까, 한다. 그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은 여성들 간에 서로 만나고, 돕고, 같이 해결할 수 있으면 하고 바란다. 보편적인 경험과 우리들이 처한 특수한 맥락을 다 자기 안에 가지고 있으니, 서로 상담자가 되고 네트워크를 이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