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급진적이어서
지극히 무기력한, 어떤 판결
⊙ 사무국장 오매
지난 6월 18일, 서울북부지방법원 한 법정에서 ‘성폭력 사건’에 대한 판결이 있었다. 결과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법정에 섰던 ‘피고’ A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연신 고개를 저었다. 이 사건을 소개해야겠다.
2008년, 촛불시위로 온 시민이 거리에서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에 항의하고 있을 때, 경찰청 지침에 따라 연일 과잉진압을 해야 했던 서울 606전경대 소속 한 전경이 전의경 제도와 운영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육군으로 전환해줄 것”을 6월 12일 신청하였다. 이후 보복성 불이익이 이어졌다. 근무지 변경 명령, 근무태만 영창 15일, 영창이 끝난 지 세 시간 후 공적제재 의결된 2개월간의 외출·외박·휴가·면회·인터넷·전화 금지 및 생활실 대기 조치, 보호대원 및 보호직원 각 2인 상주 및 감시 배치, 구타유발 행위로 부대원 물의야기 혐의 2차 공적제재, 국가인권위원회의 긴급구제 결정 이후 2차 영창 15일 징계……. 그리고 6월 20일, A씨에 대한 ‘강제추행’ 죄목의 고소장이 접수되었고, ‘구속수사’도 청구됐다.
A씨는 동성애자로 자신을 커밍아웃한 바 있다. ‘강제추행’ 고소장을 낸 대원 중 이모씨는 당시 중대의 왕고참이었고, A씨와 허물없이 지내기도 했던 상관이다. 함께 고소장을 제출한 나모씨와 구모씨는 2007년 8월에 있었던 일을 냈는데, 당시 A씨는 신임대원이었던 이들과 대화할 수 없거나 하더라도 상관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직급이었다. 이들은 어떻게 A씨를 고소하게 되었을까. 606전경대는 A씨가 육군전환배치신청을 제출한 지 닷새 후, A씨에 대한 일제 소원수리를 실시하였다. A씨에 대하여 불만이나 의혹 걸어볼 거리를 다 모은 것이고, 지휘관들은 이에 대해 진술조사면담을 실시했다. 왕고참 이모씨는 법정에서 “저희가 자발적으로 진술한 것”이라고 했지만, 구모씨의 경우 “소대장님과 경찰관이 필요하다고 했다”고 진술했다.
이모씨는, “가벼운 팔짱이나 스킨십은 다른 대원들도 서로에게 다 하고 있는 행동”이라고 진술했다. 그리고 “A가 커밍아웃하기 전에는 추행이라 느껴본 적 없었다”고 덧붙였다. 나모씨와 구모씨의 경우 같은 날 같이 추행을 겪었다고 했는데 당시 A씨는 행정실에서 근무중이었고 근무일지에 기재되어 있었으나 ‘근무일지는 형식적’이라는 부대 지휘관의 법정진술이 받아들여져 부대 내 ‘공문서’의 증거능력은 간단히 상실되었다. A씨가 어떻게 자기 자리가 아닌, 구석 다른 대원의 자리에 끼어들어 타인에게 목격되지도 건들여지지도 않고 어떤 행위를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인 상태였다.
이쯤 되면 재판부의 결정에 귀추가 주목된다. 일사천리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고, 검찰은 기소하고, 부대 측 참고인이 계속 법정 진술하고 수많은 경찰, 부대측 자료가 제출되었으며, 피고가 경찰과 검찰에 대해 인터넷을 통해 비하하며 권위에 도전하고 있다고 검사가 지속적으로 경고의견을 제출했던 공판과정의 끝. ‘독립적인’ 재판부는 과연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서울북부지방법원 형사8단독 재판부가 법정에서 발표한 결정 이유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 상황상 가능했다고 보이고, 여러 대원이 법정 진술하였고, 나모씨와 구모씨는 신병으로서 고참에게 저항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진술이 일관되었고, 이모씨의 경우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에 의한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강제추행은 개인의 성적수치심을 불러일으켰냐 여부로 판단하는 것이며, 의사를 제한할 정도에 달하지 않아도 되고, 거부의사를 밝혔는데 또 하는 것은 명백히 성적자기결정권 침해에 해당되어” 따라서 강제추행죄 유죄.
“그러나 고소인들이 사건 10개월이 지나서 한꺼번에 고소장을 제출했고, 피고인에 대한 여러 불이익이 이루어지던 시점에 제기된 것을 참작하여” 집행유예 결정.
성폭력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은 전에 없이 급진적이었다. 추행이 과연 가능한 상황이었는지에 대해 매우 상세한 반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벼이 기각하고 ‘충분히 가능했을 법한’ 쪽으로 과감히 해석하였다. 또 피고인이 마음껏 운신할 수 없는 직급이었음을 고려하기보다, 고소인들이 얼마나 저항할 수 없는 위치였는지를 절대적으로 고려하였다. 폭행과 협박은커녕 의사를 제한할 정도에 달하지 않아도, 그러니까 고소인이 전경대 내 상관이었다 하더라도 성적 수치심을 느꼈으면 강제추행이라는 것, 어떻게 의사표현을 했더라도 거부의 뜻이었으면 절대적으로 그 의사에 반하면 안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 이렇게 되면 어찌되는 것인가. 이제껏 우리가 보아왔던 수많은 ‘엄격한’ 판단들, 피해자에게 왜 끝까지 저항하지 않았냐며 화간이었던 것 같다고 가해자에게 무죄 선고하고, 도리어 피해자를 무고죄로 기소했던 사건들, 가벼이 만진 것에까지 형사처벌을 동원하는 것은 과잉형벌이 아니겠느냐며 고소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수많은 사건들은, 이제 뒤집어지는 것인가?
여성 피해자가 권력적인 남성 가해자에 맞서 싸웠던 수많은 사건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었던 이런 판결이 이 사건에 등장한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성폭력에 대한 급진적인 판결이 나왔다고 쌍수를 들고 환영할 수 있을까? 이번 사건의 ‘고소인’들은 이번 판결로 성적 수치심이라는 ‘피해’에 대해 어느 정도 보상과 위로를 받았을까? 이 급진적인 판결은 다른 성폭력 피해자들에게도 순서가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성폭력이 얼마나 치열한 싸움판에 놓여 있는 개념인지 내가 겪어온 소회를 나누고 싶다.
남성중심적 사법부는 피해자의 인권을 지지하기보다 기득권력의 이익을 대변해 왔다. ‘남성들의 성욕’이라는 신화를 옹호하기 위해 가해자의 우발성을 강조해왔고, ‘남성들의 성적 취미’를 정당화하기 위해 여성이 먼저 유혹하고 유발했다고 덧씌워왔다. 이번 사건의 재판부는 ‘어떤’ 권력을 옹호하고 유지하기 위해 갑작스레 안면을 바꾸어 ‘피해자 중심주의’를 빼앗아 들었을까?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판결을 마치고 법정을 빠져나오던, 경찰청 고위 관료들로 보이는 양복 입은 몇 분 신사들의 만면의 웃음과 그들이 서로 악수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너무나 급진적인 판결,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절대적이고 배타적인 옹호를 내세운. 그러나 커밍아웃한 이후에, 전경제도에 대해 문제제기한 이후에 부대 내에서 수많은 괴롭힘과 왕따를 겪어야 했던 A씨는 이번 판결에 의해 가해자가 되었다. 군대 내 동성애자가 처해 있는 인권침해 상황에 더해, 군대 권력에 저항하고 문제제기하는 자에게 언제라도 성폭력 혐의를 씌울 수 있는 판례가 생겨버린 것이다. 그래서 지극히 무기력했던 판결.
이 사건의 항소심도 역시 같은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2심에서도 공정한 판결을 받지 못할 것 같아 우려된다. 급진적인, 세상을 뒤집는 제대로 된 판결을 기대하지만 도저히 만나볼 수 없어 고통이 심해가는, 다른 수많은 ‘피해자’들의 얼굴이 스쳐간다.
